미래의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선배 최예은이 건네는 따뜻한 조언과 격려, 그리고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보다
멀게만 느껴지던 무대 위 연주자와 얼굴을 가까이 마주하는 순간. 누군가는 막막하던 고민에 대한 힌트를 얻고, 누군가는 따뜻한 응원을 받으리라.
‘객석’은 미래를 책임질 예비 예술가들에게 선배와의 만남의 장을 제공해 이들이 예술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마스터클래스를 기획했다. 지난 8월 발레리나 서희의 마스터클래스에 이어, 10월 11일 종로의 오디오가이 스튜디오에서 열린 ‘꿈을 주는 마스터클래스’는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이 멘토로 함께했다.
사전 신청을 통해 선발된 4명의 학생이 최예은의 ‘일일 학생’으로 참여했다. 그녀의 레슨은 ‘꼼꼼 그 자체’였다. 활을 잡는 손의 모양과 움직이는 방향까지 세세하게 살피고, 자신의 연습 노하우를 이야기하면서 학생 스스로 혼자서 연습할 때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면 좋은지 조언했다. 몸이 경직된 학생에게 이완된 상태로 연주하는 법을 가르쳐주던 최예은은 “전 몸의 긴장을 풀려고 일부러 누워서 연습하기도 해요”라며 그 자리에서 피아노 의자에 누워 바이올린을 연주하기도 했다. 그녀의 말을 받아 적으며 진지하게 경청하던 이들도 그 순간만큼은 큰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최예은이 가장 자주 한 말은 바로 “좋아요!”였다. 그녀의 조언을 듣고 학생이 아주 작은 변화라도 보이면, 최예은은 놓치지 않고 이를 칭찬하고 격려했다. 큰 눈으로 학생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에는 어린 후배들을 향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클래스가 끝난 뒤, 스튜디오에 마련된 널찍한 보드에는 최예은에게 던지는 질문이 담긴 메모지가 가득 붙여졌다. 구체적인 연습 방법에서부터 사소한 일상까지,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의 ‘아름다운 민낯’을 궁금해하는 이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날 현장에서 진행된 최예은과의 공개 인터뷰를 지면에 옮긴다.
보잉을 통한 강약 표현을 잘하고 싶은데, 활을 쓰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나요?
제일 쉬운 길은 자신의 소리를 듣는 거예요. 머릿속으로 ‘이렇게 저렇게 해야겠다’고 계획하는 것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의 소리를 듣고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스스로 깨닫고 해결책을 찾는 것이에요. 연습에서 가장 중요한 건 ‘듣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전 제 연습을 녹음해서 많이 들어봐요. 본인의 소리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듣고 판단하게 되면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죠.
비브라토를 잘하기 위한 특별한 연습 방법이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갈라미언의 마스터클래스 영상이 많은 참고가 되었어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방금 말한 보잉 이야기처럼 자신의 소리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해요. 비브라토에 국한해 고민하기 전에, 자신이 원하는 소리의 색깔이 어떤 건지 깨닫고 만들어보는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죠.
슬럼프가 올 땐 어떻게 극복하나요?
“그래, 나 지금 슬럼프야!”라고 태연하게 받아들여요. 슬럼프를 이겨내는 데에는 왕도가 없어요. 그저 그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연습이 잘 안 되면 다른 곡도 들여다보고, 때론 아예 연습을 쉬기도 해요. 단순히 연습이 잘 안 된다거나 기교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등의 차원을 넘어서, 슬럼프는 한 사람의 인생을 덮치며 찾아오게 되더라고요. 무리하지 않고 현명하게 그 시기를 넘기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아요.
스승인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에게 받은 가르침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작곡가와 작품의 뒷이야기, 음악가들의 사적인 편지 등 음악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을 많이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연주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와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조언해주셨죠. ‘개인적인 일로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연주를 해야 할 때 어떻게 마음을 추슬러야 하는지’ 같은 부분들이죠. 무터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거기서 비롯되는 에너지가 엄청난 사람이에요. 그걸 원동력 삼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존경해요.
연습한 만큼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편인가요?
아뇨,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그러지 못했어요!(일동 웃음) 준비한 대로 무대 위에 펼쳐놓기까지 20년은 더 걸릴 것 같아요.
공연 전 긴장될 때 어떻게 하나요? 자신만의 습관이 있나요?
무대에 오르기 직전의 긴장을 즐기는 수밖에 없어요. 떨리는 마음은 아무리 애써도 잡히지 않더라고요. 저는 무대에 서기 전에 손을 엄청 자주 씻어요. 손을 씻으면 두려움과 떨림도 같이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랄까요?
연주 후 끝나고 자신만의 뒤풀이 방법이 있나요?
일단 맥주 한 잔 마시면서 마음을 진정시키고,(웃음) 텔레비전을 틀어놓은 채 잠들 때까지 멍하니 쉬어요. 극도의 긴장 상태 뒤에 잠이 잘 오지 않는데, 머리를 비우는 기분으로 가만히 쉬다 보면 어느새 잠이 들곤 해요.
평소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수영, 피트니스, 스트레칭, 요가 등 평소에 여러 가지 운동을 즐겨 해요. 요즘은 특히 유산소운동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어요.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요.
요리를 잘한다고 알려졌는데, 어떤 음식을 잘 만드나요?
해외에서 오래 살다 보니 기본적인 한식은 거의 할 줄 알고, 파스타도 자주 해 먹어요.
바이올리니스트 최예은의 최종 목표는?
음악을 진정으로 즐기고 나누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아무리 훌륭한 연주라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잖아요. 많은 사람과 아름다운 음악을 나누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진행 김선영 기자(sykim@gaeksuk.com) 사진 심규태(H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