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시코디스트 장 롱도 & 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 에마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11월 1일 12:00 오전

만약 우리가 연주회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면 다음의 이유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너무 익숙해 별 감흥이 없든, 자주 접하지 않아 낯설든. 획일적인 연주와 난해한 감상에 지쳤다면 주목할 만한 소식이 있다. 해석의 다양성과 즉흥성이 강조되는 바로크 음악과 현대음악을 가지고 두 명의 프랑스 출신 건반악기 연주자 장 롱도와 피에르 로랑 에마르가 내한하는 것이다. 익숙한 것을 새롭게, 새로운 것을 친근하게 만드는 방식을 따라가다 보면 막혔던 공감의 통로가 다시금 회복될지도 모른다.


▲ ⓒEdouard Bressy

장 롱도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대단한 작품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고 있다. 이제 내가 모르는 것을 말해달라.”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하는 연주자들은 이와 같은 요구에 직면한다. 하나의 노래와 그에 따른 30개의 변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동일한 노래가 반복되는 동안 끊임없이 새로움을 창조해야 하는 과제가 그들에게 주어진다.

사실 이 과제는 바흐가 먼저 작품에서 수행했다. 그는 바로크의 다양한 변주 기법을 파노라마처럼 펼쳐냈으며, 1741년 ‘아리아와 다양한 변주곡을 수록한 2단 하프시코드를 위한 연습곡’이라는 이름으로 이 작품을 출판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느리고 우아한 사라반드풍 아리아가 제시된 후 아리아의 베이스 선율을 기초로 30개의 변주가 진행된다. 변주들은 치밀한 음악적·수학적 논리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따라서 작품의 건축적 구조를 파악하는 것이 작품 이해의 중요한 열쇠가 된다. 작품은 아리아와 30개의 변주, 그리고 다시 처음의 아리아를 반복한다. 총 32곡으로 구성된 작품의 주제인 아리아 역시 32마디로 대칭을 이루며 각각 16마디의 전반부와 후반부로 이루어진 두 도막 형식을 띤다. 또한 작품의 16변주가 프랑스풍 서곡인 점으로 미루어보아 전체도 16개의 변주로 구성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뉨을 알 수 있다.

바흐는 3의 배수인 변주곡(3·6·9변주 등)에 카논을 배치했는데, 이 카논은 처음에는 유니즌으로, 두 번째는 2도 카논, 세 번째는 3도 카논 등으로 점차 확장돼 27변주에서는 9도 카논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렇지만 마지막 30변주에서 바흐는 놀라운 음악적 유머를 보여준다. 이 변주는 카논이 아니라 쿼들리벳으로, 대중적인 노래들을 재미있게 결합해 만드는 노래다. 이제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고 이미 작품의 흐름을 안다고 생각한 순간, 바흐는 노래와 춤이 어우러진 흥겨운 축제로 극적 반전을 보여준다. 사실 바흐가 만들어낸 다양하면서도 복잡한 음악적인 사고를 긴 호흡으로 따라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즉, 연주자에게 주어진 과제는 작품에 나타난 바흐의 새로운 시도들을 매순간 흥미로운 실험과 도전으로 만드는 것이다.

1991년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난 장 롱도(Jean Rondeau)는 현재 가장 떠오르는 건반악기 연주자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블랑딘 베를레에게 10년 이상 하프시코드를 사사했으며, 오르간, 피아노, 재즈와 즉흥 연주, 합창 지휘, 작곡 등을 배웠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후 소르본 대학교에서는 음악학을 공부했다. 2012년 21세의 나이로 브뤼주 하프시코드 콩쿠르에서 1위를 수상했으며, 동시에 유럽연합의 젊은 음악가에게 주어지는 상인 EUBO개발신탁상을 수여받았다. 같은 해 프라하 스프링 콩쿠르에서는 2위와 함께 특별상인 현대 작품 최고 해석상을 받았다.

바로크와 현대음악에서 탁월한 연주력을 인정받은 장 롱도는 재즈와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깊다. 그는 바로크 앙상블 네버마인드의 단원으로 활동 중이며, 그가 작곡한 재즈 작품을 연주하기 위해 노트 포겟 앙상블을 결성했다. 바로크와 현대 음악, 그리고 재즈는 순간순간 변화하는 현장성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맥을 같이한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프시코드가 “진정으로 근사한 악기”라고 말한다. 그의 연주는 풍부한 프레이징으로 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내며 대가적 기교와 대담한 표현으로 많은 이를 사로잡는다. “악기에 대한 나의 열정을 나누고, 젊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어 그들이 하프시코드를 연주하고 싶게끔 만들고 싶다”고 밝힌 장 롱도. 그의 파격적인 외모 역시 하프시코드를 많은 이에게 널리 알리기 위함이다. 하프시코드가 과거의 유물이 아닌, 세련되고 매혹적인 악기임을 연주와 외모로 설파하는 것이다.

롱도는 2015년 데뷔 음반 ‘바흐 이매진’(Erato)을 통해 바흐를 선택했다. 11월 17일 금호아트홀에서의 내한 공연에서는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연주한다. 탄탄한 연주력과 자유롭고 강한 개성을 지닌 그는 자신이 연주하는 악기와 작품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연주자다. 바로크 시대 이후 오랜 시간 잊힌 하프시코드의 매력이 지금 그의 손끝에서 참신하게 재탄생하고 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시작과 끝이 같은 음악이다. 그렇지만 그 사이에 놓인 30개의 변주가 끝나고 나면 마지막 아리아는 전혀 다르게 들린다. 지금까지의 모습보다 앞으로 어떤 존재로 변모할지에 대한 기대가 더 큰 연주자, 장 롱도. 그가 어떻게 익숙한 것을 새롭게, 같은 노래를 다르게 만들어갈지가 주목된다.


▲ ⓒMarco Borggreve

피에르 로랑 에마르의 쿠르타그와 메시앙

“색다른 작품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제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해달라.”
이와 같은 청중의 요청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현대음악 연주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익숙한 것을 새롭게 만드는 것만큼 생경한 것을 친근하게 만드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이다. 피아니스트 피에르 로랑 에마르(Pierre-Laurent Aimard)는 어깨의 힘을 빼고 계속해서 이 어려운 작업을 해내고 있다. ‘현대 피아노 음악의 수호자’라는 그의 권위는 청자로 하여금 그가 연주하는 작품 안으로 쉽게 들어갈 수 있도록 하는 데서 생긴다. 온화한 미소와 열린 태도를 지닌 그는 현대음악의 친절한 안내자이자 명쾌한 해설가다.

에마르의 연주회는 프로그램의 구성에서부터 그만의 특징이 드러난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그가 어떤 연주자인지를 이해해야 한다. 1957년 프랑스 리옹에서 태어난 에마르는 12세에 메시앙의 부인이자 파리 음악원의 교수인 이본 로리오를 만났다. 메시앙 부부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그의 음악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한 에마르는 1973년 16세의 나이로 메시앙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19세에 피에르 불레즈가 창단한 현대음악 전문 연주단체인 앙상블 앵테르콩탱포랭의 창단 단원이 됐다.

이후 현대음악 전문 연주자로 독보적 길을 걸어왔지만, 그는 고전음악에서도 남다른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다. 고음악의 거장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와 함께 2003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녹음(Teldec)했으며, 2008년 내놓은 바흐 ‘푸가의 기법’(DG)은 빌보드 클래식 음악 부문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연주회 레퍼토리로 ‘뉴욕 타임스’지로부터 “세심하게 만든 계시적인 프로그램 자체가 한 편의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접 증명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11월 24일 LG아트센터 열리는 에마르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은 쿠르타그와 메시앙의 작품이 중심이다. 1926년에 태어난 헝가리 작곡가 죄르지 쿠르타그는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작곡가 중 한 명이다. 이날 연주곡 중 하나인 그의 대표적인 피아노 작품 ‘놀이’ 시리즈는 1973년부터 현재까지 8권이 출판됐다. 음악적 아이디어가 자유롭게 전개되는 작품으로, 쿠르타그의 고유한 음악 어법이 잘 드러나는 동시에 연주자의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는 작품이다. 1967년부터 리스트 음악원에서 피아노 교수로 재직한 쿠르타그는 1986년 음악원에서 은퇴한 후 여러 음악제에 초청되고 있으며, 2006년엔 그라베마이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20세기의 위대한 프랑스 작곡가로 꼽히는 메시앙은 그만의 독특한 작곡 어법으로 종교적이며 명상적인 음악을 작곡했다. 음악의 색채를 중요시한 그는 시시각각 변하는 다채로운 음색으로 감각적이면서 감동적인 세계를 만들어낸다. 특히 그에게 ‘새’는 매우 중요한 음악적 소재다. 직접 채보한 새소리를 소재로 한 ‘새들의 기상’ ‘이국의 새들’ ‘새의 카탈로그’에서 메시앙은 자연의 신성함을 사색적 분위기로 전달한다. 13개 악장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독주곡 ‘새의 카탈로그’는 각 악장의 중심이 되는 다양한 새와 주변 환경을 묘사한 역작이다.

에마르와 두 작곡가의 인연은 특별하다. 에마르는 헝가리로 가서 쿠르타그에게 직접 작곡을 배웠을 만큼 그의 음악 세계에 깊이 매료됐다. 올해는 쿠르타그 탄생 90주년을 맞아 그에게 헌정받은 새로운 작품 ‘이름 없는 수난곡’을 초연했다. 또한 메시앙 부부와 가족 같은 관계를 맺어온 에마르는 “나의 DNA 안에 메시앙의 음악이 있다”라고 자부할 만큼 메시앙 음악의 탁월한 해석으로 명성이 높다. 지난 6월에는 그가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인 영국의 올드버러 페스티벌에서 ‘새의 카탈로그’ 전곡을 완주해 메시앙 연주에 대한 그의 독보적 존재감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에마르의 통찰력 있는 프로그램은 이번 연주회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1부에서는 바로크 시대의 얀 스베일링크와 낭만 시대 슈만의 작품, 그리고 쿠르타그의 ‘놀이’ 중 발췌곡, ‘이름 없는 수난곡’과 ‘조각’ Op.6D를 교대로 배치해 바로크부터 현대까지를 관통하는 건반악기 음악의 독특한 매력을 선보인다. 2부는 메시앙의 ‘새의 카탈로그’가 중심축이다. 새를 중심으로 한 바로크 작곡가 루이 클로드 다캥의 하프시코드 모음곡 ‘제비’로 시작해 메시앙의 ‘새의 카탈로그’ 중 7권 ‘마도요’, 쇼팽의 녹턴 Op.9-1을 거쳐 메시앙의 ‘새의 카탈로그’ 중 3권 ‘숲종다리’로 마무리한다. 마지막 두 작품인 쇼팽의 녹턴과 메시앙의 ‘숲종다리’는 모두 B♭조를 기반으로 밤을 배경 삼은 노래라는 점에서 신비로운 조화를 이룬다.

에마르는 이번 내한 공연에서 다양한 작품을 주의 깊게 배치해 각 곡의 아름다움과 전체의 배색이 동시에 돋보이는 또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든다. 작품의 본질을 꿰뚫는 시선은 예리하지만, 청중을 향해서는 한없이 포용력 있고 따뜻한 에마르의 연주는, 그의 친근한 외모처럼 새로운 음악 세계에 선뜻 다가가게 만드는 흡인력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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