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

오래된 소리가 건네는 떨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6월 28일 12:11 오후

한국 관객에게 이상적인 카운터테너로 꼽히는 안드레아스 숄이 오는 6월, 네 번째 내한 공연을 갖는다. 2000년에는 류트 주자 에딘 카라마조프, 2010·2013년에는 아내인 쳄발리스트 타마르 할페린과 왔고, 이번에는 영국의 명문 고음악 앙상블 잉글리시 콘서트와 함께다

©Decca/James McMillan

클래식 공연을 자주 가는 관객도 ‘스리 테너’ 아무개처럼, ‘3대 카운터테너’ 아무개를 바로 입에 올리긴 어렵다. ‘카운터테너’의 어감 자체가 지식을 요구하는 등 다른 음역의 가수에 비해 대중성을 얻기 힘들다.용어로서 ‘3대 카운터테너’가 등장한 건 1995년 아르모니아 문디가 동명의 앨범을 발매하면서부터다. 안드레아스 숄(b.1967)·파스칼 베르탱·도미니크 비스가 소개됐고, 재킷만 보면 ‘스리 테너’의 아류로 폄훼될 만했다. 숄을 제외하면 지금은 거의 국내 팬들에 잊힌 이름이다. 그러나 23년 전 아르모니아 문디가 꼽았던 실력파 카운터테너들의 생명은 길다. 1965년생 베르탱은 프랑스 캉과 릴에서 2015/2016년 오페라 ‘세르세’에 출연했고, 올해 예순셋의 비스는 2018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포페아의 대관’에 현역으로 출연한다.2010년 안드레아스 숄이 내한할 때 국내 미디어들은 브라이언 아사와·데이비드 대니얼스를 붙여 ‘세계 3대 카운터테너’로 불렀다. 2000년대 초반에는 대니얼스 대신 일본의 메라 요시가츠를 범주에 넣었다. 아사와는 2016년 세상을 떠났고, 메라는 사실상 대중가수로 전향했으며, 지난해 세종솔로이스츠와 내한한 대니얼스를 알아보는 국내의 움직임은 미미했다. 지난 20여 년간 숄과 견줬던 동료들은 그렇게 주류와 멀어졌다.2018년을 기준으로, 숄은 지금도 세 손가락에 꼽힐 위상을 보이는가? 불어권 오페라하우스에선 1978년생 필리프 자루스키가 2010년대 초반부터 왕좌를 차지했고 지금도 정상급이다. 영국 주요 무대에선 단연 1979년생 요크 출신의 이스틴 데이비스가 최고의 주가를 달린다. 숄의 전매특허였던 헨델 ‘줄리오 체사레’ 타이틀롤은 이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의 드미트리 예고로프가 독일권 극장을 꿰차고 있다. 오십 줄에 늦둥이 아빠가 된 숄이 카운터테너에 무리한 캐릭터를 요구하는 최근의 전막 연출에 순응하긴 어렵다.그러나 비스부터 예고로프까지, 숄과 자루스키를 제외하면 대부분 극동에선 인지도가 매우 낮다. ‘세계 3대 카운터테너’로 묶어봐야 오직 숄만 빛난다. 특히 한국에선 예나 지금이나 ‘카운터테너’하면 안드레아스 숄이다. 20세기 후반부터 이미 현대차 CF로 친숙한 ‘백합처럼 새하얀(White as lilies)’은 숄이 노래뿐 아니라 작곡도 했다. 카운터테너 슬라바가 내한하면 “남자로 태어났지만 카스트라토처럼 거세하지 않고도 가성(假聲)으로 여성 음역을 내는 카운터테너”라는 설명이 붙었다. 그러나 숄은 ‘파리넬리’ ‘거세’ ‘고환’을 소환하지 않아도 라디오 방송이나 매장 포스터로 충분히 스타성이 부연됐다. 근대적 카운터테너의 시원인 알프레드 델러(1912~1979)를 직접 보지 못한 서울 관객들에게 정통성과 이름값 면에서 숄은 이상적인 카운터테너 자체다.

녹슨 카운터테너가 아닌 ‘진짜 음악가’

왜 많은 카운터테너 가운데 숄은 특별한 대접을 받았는가? 변성기 이전까지 비스바덴의 소년 합창단에서 활동한 숄은 소리가 변함에 따라 카운터테너로 전향하는 과정을 거쳤다. 돌아보면 조심스럽게 새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이 중세의 연금술과 흡사하다. 인간을 황금같이 완성하는 과정에서 남성과 여성, 중성의 결합을 통해 카운터테너는 정신적으로 높은 경지를 지향하고, 완성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분투한다. 세상의 모든 카운터테너는 후천적 노력으로 단순한 금속을 금덩이로 만들고자 한다. 세계 어느 학교에서도 카운터테너를 길러내는 특정한 체계는 정립되지 않았다. 개중에는 서른까지 테너로 활동하다가 감기에 걸려서 가성으로 부르다가 카운터테너로 전향한 경우도 있다. 숄도 애초에 ‘제2의 델러’로 불리지 않았고, 누구도 ‘제2의 숄’로 불리지 않는다.숄의 금빛 광채를 알아본 건 역시 고음악 지휘자들이었다. 로빈 블레이즈의 투명한 소리가 마사아키 스즈키를 간질이고, 제라르 렌느의 과격한 보컬이 1980년대 윌리엄 크리스티를 자극하듯, 성별의 구분을 무화하는 숄의 야릇한 보이스를 필리프 헤레베허와 르네 야콥스가 1990년대 초반부터 캐스팅으로 존중했다. 헤레베허는 바흐 수난곡, 야콥스는 몬테베르디 ‘성모 마리아의 저녁 기도’에 무명의 숄을 전면에 내세워 그의 이름을 돌게 했다. 들으면 목소리의 주인공이 궁금해지는 연주였다. 아르모니아 문디 재킷에서 안경을 걸친 숄의 인상은 박학다식하고 유쾌한 모범생 느낌이 진했다.소프라노 영역을 남자가 내는 소프라니스트의 고음은 놀랍지만 고고함을 풍기긴 어렵다. 그러나 숄이 헨델 ‘그리운 나무 그늘이여’ 앨범에서 목에 비브라토를 걸어서 음정을 가지런히 유지하는 청초함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아무리 테크닉이 뛰어난 가수라도 불안정한 소리를 모면하는 순간이 있지만, 숄은 고음과 중음, 저음의 음역 사이를 언제나 매끄럽게 이어냈다. 숄이 음악계에서 능력 있는 카운터테너로 인정받는 건 고음을 잘 내서가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과 능숙함으로 주변 음악가들과 관객들이 그를 믿고 새로운 미적 체험에 나서고픈 마음을 움직여서다. 메조소프라노 바르톨리가 ‘줄리오 체사레’를 숄과 함께 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40대 이전까지 숄의 목소리는 중성적이면서 크리미했다. 음높이로 치면 메조소프라노까지 내는 자루스키보다 낮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더 서려 있었다. 자루스키가 학창 시절에 참고한 숄의 미덕이 중음의 울림을 늘리는 법이었다. 자루스키나 숄이나 진성으로는 바리톤을 낼 수 있지만, 두성을 이용하면서 낮은 음역의 힘을 잃을 때, 오페라 배역의 알토 레퍼토리를 진짜 알토나 메조소프라노에 뺏길 수 있어서다. 자루스키는 숄의 궤적을 보고 레퍼토리를 알토로 늘릴 수 있었고 숄은 자루스키의 등장으로 나태함을 경계했다.2006년 숄은 메트에 자신의 출세작인 ‘로델린다’ 중 베르타리도 역에 데뷔한 이후, 배역을 놓고 라이벌과 벌이는 고도의 경쟁적인 분위기에서 한 걸음 물러나는 모양새다. ‘고음악 분야의 저스틴 팀버레이크’처럼 대우하는 뉴욕의 분위기를 보고 지난 15년간 앞만 보고 달려온 여정을 반추했다. 겉으로는 도전적으로 미지의 레퍼토리를 개척했지만, 음반사의 프로젝트에 따라 이뤄진 작업들에 앞으로 끌려다니지 않으려는 마음가짐도 이즈음 갖췄다. 공연 횟수가 줄고, 과거 레퍼토리가 반복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그것이 공연의 품질을 높이려는 진심이었다. 2017/2018 시즌도 앙상블 1700과 잉글리시 콘서트의 협업을 제외하면 종전 작업의 반복이 많다.그래서 좀 더 성숙한 50대의 숄을 만나는 이번 내한이 ‘녹슨 카운터테너’가 아닌 ‘진짜 음악가’ 숄을 보는 기회다. 숄은 그동안 카운터테너가 등장하는 현대 오페라 작품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젊은 가수라면 앞으로 일을 하기 위해 브리튼이나 버트위슬, 필립 글래스의 전막 오페라를 알아봐야 하지만 숄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2015년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80세를 맞이해 패르트 ‘마니피카트’(서방 기독교 계열의 라틴어 성가)를 공연했고, 지난해부터 본 윌리엄스, 알반 베르크의 근대 작품을 살핀다. 원래부터 카운터테너에게 맞게 쓰인 작품에 시대를 대표하는 카운터테너가 움직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난 5월 11일에는 뮌헨 가슈타이크에서 열린 LGBTI 합창제 갈라에도 참가했다. 음악적 성취뿐 아니라 사회적 자아에서 제 목소리를 내는 요즘의 숄은 2010년대 초반 슈베르트 ‘방랑자’를 부를 때와는 또 다른 의욕이 느껴진다. 다음은 숄과의 전화 인터뷰 일문일답.

©Decca

헨델을 중심으로 영국과 이탈리아를 노래하다

한국에 오랜만에 오는데 소감이 어떤가?

예술의전당에 들어갈 때 궁금한 게 있었다. 쿠션이 준비되어 있는데 관계자에게 이건 어디에 쓰냐고 했더니, 어린이 관람을 돕기 위해 마련됐다고 했다. 부모가 공연에 아이들을 데려오고, 함께 열심히 바로크 음악을 듣는 것을 보았다. 클래식 음악이 아동 두뇌 발달에 좋다는 걸 알지만 불행하게도 독일에선 그런 경우가 없다. 두 살 반짜리 딸이 있는데 클래식 음악, 특히 바이올린 소리를 듣기 좋아한다. 매일 ‘비발디, 비발디’를 외치며 ‘사계’를 듣고 싶어 한다. 언젠가 내 딸이 유모와 함께 우리 부부의 공연을 보러 온 적이 있는 데 참 소중한 공연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공식적으로 밝히는 스승이 리처드 레빗과 르네 야콥스다.

바젤 스콜라 칸토룸 시절, 스승인 리처드 레빗이 내 목소리에서 발전 가능성을 봤다. 그에게 기술적인 면을 배웠다면 야콥스는 깊이를 더해줬다. 야콥스는 해석을 중시하라는 메시지가 구체적으로 다가오도록 본인이 직접 상세하게 예를 들어줬다. 나에겐 없었던 바로크에 대한 새 문을 열어준 셈이다. 스스로 창조하지 못하면 무대에 올라가지 말라고 했다. 학생이 아티스트로 진화하는 데 필요한 정신적 가치였다. 특히 나에겐 절대로 야콥스 본인을 모방하지 말라고 했다.

동아시아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1994년 르네 야콥스와 함께 두 개의 몬테베르디 프로그램으로 일본을 찾은 게 처음이다. 막 카운터테너로 성장하던 시기였다. 2000년 즈음에 마사아키 스즈키가 바흐 콜레기움 재팬(BCJ) 프로젝트로 불러준 적이 있다. 딱 한 번의 초청이었지만, 놀라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라이프치히가 아니라 도쿄에서 이런 바흐 해석을 볼 수 있다니, 나에겐 충격이었다.

한국 음악가도 유럽에서 고음악을 배우고 본국으로 오는 경우가 많아졌다.

잘 알다시피 스즈키도 네덜란드에서 공부했고, 유럽에서 지휘자로 주목받았다. 한국 음악가가 깊은 연구를 위해 유럽에 오는 건 환영할 일이고, 지휘를 공부하면 한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공연 기회가 생길 것이다. 아시아 음악가의 해석이라고 얕잡아보는 분위기를 BCJ가 많은 부분 해소했다.

내한 프로그램을 보니 헨델이 중심에 있고, 하루는 비발디, 하루는 퍼셀이 붙는다.

거의 30년 동안 프로 가수로 활동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작품 중에서 망라하다 보니 헨델이 중심에 놓인 건 당연하다. 집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매일 부르는 곡들이라 하더라도 신선하게 내놓는 게 내 임무다. 독창회가 아닌 연주단체와의 투어 프로그램은 내가 정말 잘 부르는, 이미 준비된 레퍼토리를 선보여야 한다. 한국에서는 세 번 공연 하는데, 어느 투어에서든 첫 공연보다 두 번째, 세 번째 공연에서 더 성숙한 음악을 들려주게 된다. 비발디와 퍼셀이 뒤로 갈수록 더 숙성될 것이다.

가수와 연주단체가 프로그램을 숙성해서 소화한다는 건 어떤 뜻인가?

악보에 적힌 음들을 정확하게 부르는 것에서 시작해서 자유로운 음악을 만들어내는 과정까지의 진화가 투어에서 그대로 드러나는데, 그 노출 과정을 고음악 연주자는 두려워해선 안 된다. 개인적으로 이번 투어에서 두 개의 신작을 처음 소화하는데, 점차 완성도가 높아지는 게 보일 것이다.

해외 투어에서의 최대 난관은 무엇인가? 시차인가?

예민함과의 싸움에서 얼마나 평정심을 찾느냐가 관건이다. 이번 경우 한국에는 공연 이틀 전 정도에 들어가서, 시차 적응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대신 한국 관객이 워낙 열정적이다 보니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 자칫 본래의 해석을 잃지 않도록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곳에선 숙소에서 공연장까지의 교통 정체나 공연장 경비원들의 깐깐함 때문에 초연함을 유지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나이가 들어도 공연에 관해서는 늘 예민하다.

아리아 ‘그리운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콘서트 형식으로만 불렀지 전막 오페라 ‘세르세’로 소화하진 않았다. 단편만 추려서 부를 때 진정성이 떨어지진 않을까?

‘그리운 나무 그늘 아래에서’는 너무 유명한 곡이어서 전막을 하지 않아도 나 정도 커리어의 가수라면 반드시 잘 불러야 하는 곡이다. 청중들이 다양한 성악가의 해석으로 자주 들었기 때문에 나만의 것을 보여주는 게 더 중요하다. 비록 전막은 아니지만 공연마다 곡에서 새로운 면모를 찾아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익숙하고 쉬운 작품을 재생산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청중들도 잘 알 것이다. 아름답게 부르려는 욕구와 악보가 내포한 진실 사이에 균형을 찾는 일을 매일 하고 있다.

느린 헨델 아리아여서 더 어렵나?

성악가라면 이 곡이 가수의 성격을 모두 드러내는 작품이란 걸 알 것이다. 악곡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페이크 모션을 쓰면서 음악적으로 보충이 필요한 자리를 동작으로 메우는 가수도 본다. 자아를 음악에 온전히 맡기면서 기교적으로 쉽게 들리도록 불러야 하는 건 전막을 소화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Eric Larrayadieu

‘카운터테너’의 틀을 넘어서

비발디의 ‘주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은 지휘자 옆에서 솔리스트로 부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2014년 아카데미 오브 에인션트 뮤직과 할 때는 본인이 지휘와 가창을 함께 했다. 

개인적으론 지휘자가 모든 걸 관장하고 솔리스트로 바이올린 리더와 조율하는 게 가장 편하다. 앙상블과 이미 작품에 대한 이해를 완벽하게 나눴다면 서로의 상태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도 완성도 있는 음악이 나왔다. 지휘와 가창을 함께 하면, 내가 숨이 찰 때 지휘자로서 템포 조절이 힘들어진다. 결과적으론 그만큼 가창에 신경을 덜 쓰게 된다. 잉글리시 콘서트 지휘자 해리 비킷과는 1992년에 처음 만난 것 같다. 다 맡길 수 있다.

퍼셀 작품의 대부분이 중세 영국 영어의 어휘와 텍스트에 근거한다. 당시 영어의 묘미와 언어적 뉘앙스는 어떻게 습득했나?

두 가지 열쇠가 있다. 음악이 있는 시가와 구어(口語). 퍼셀 작품에 관련한 언어적 감각을 키우는 건 당대 시가의 경향을 따라가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구어의 처리에 예술가의 상상력이 필요하다. 학생을 가르칠 때나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작곡가의 창작 의도를 물어보거나 자문한다. 구어가 어땠으리라 짐작하는 것은 그때마다 답이 달라지기는 하지만 연구의 세월이 축적되다 보니 퍼셀에 대한 나만의 방식은 구축된 것 같다.

시가의 대상이 연인일 경우, 뒤에서 아내가 쳄발로를 연주하고 있어도 가창의 방향은 객석을 향한다. 

객석에 아내가 있다고 가정하고 부른다. 카운터테너가 여자 역할을 하고 있어도,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이 노래를 바친다는 생각을 갖고 해석한다. 아내가 반주할 땐, 사랑을 전하는 장면에서 객석을 바라보는 게 조금 어색하긴 하다. 내가 누구를 두고 사랑을 노래하느냐는 장소나 연주 파트너에 따라 해석의 방향이 바뀐다. 신에 대한 간청이라면, 마치 뮤지컬 연기처럼 보일지 몰라도 객석 대신 하늘을 보고 노래하는 게 옳다.

헨델의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의 경우, 2002년 로열 덴마크 오페라를 시작으로 2016년 프랑크푸르트 오퍼까지 여러 번 공연했다. 세라 코널리와 같은 메조소프라노나 귀도 쿤체 같은 바리톤도 이 역을 소화하지만, 드미트리 예고로프·앤서니 로스 코스탄초·야니브 도르·크리스토퍼 에인슬리 같은 카운터테너들이 이 역을 주도적으로 맡는다. 당신의 지난 20년간의 선구적 업적이 고음악 지휘자들에 영향을 미친 것 아닌가?

나 이전에도 사실 요헨 코발스키 같은 카운터테너들이 그 역을 맡기는 했다. 코펜하겐의 덴마크 오페라도 카운터테너들에게 역을 잘 허락하는 대표적인 극장이었다. 단순히 내가 거둔 업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지휘자와 연출가, 극장장이 카운터테너로 작품을 내놓았을 때 흥행과 비평에서 모두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자신감이 퍼진 덕에 후배 카운터테너들의 입지가 조금 더 넓어진 게 아닐까.

왜 고음악 지휘자들이 ‘줄리오 체사레’에서 메조소프라노 대신 카운터테너를 선호할까?

바로크 시대로 돌아갔다고 상상해 보자. 당시 청중들이 왜 높은 음을 내는 카스트라토에 열광했을까? 대부분 고음과 사운드에 대한 환상을 기대했을 것이다. 당시 청중이 원한 아주 빠르면서 열렬하게 불러야 하는 존재를 카스트라토나 카운터테너, 남성 소프라노, 남성 메조소프라노, 그 무엇이라 불러도 상관없다. 그런데 당대 남자들은 일상에서 낮은 음조로 이야기하거나 울어선 안된다는 게 통상의 관습이었다. 그 시절의 행동 양식을 탐구하는 고음악 전문가라면, 무엇이 남성적이고 여성적인지를 현대적 관점에서 반문할 것이다. 카운터테너가 그 대답을 내놓는 데 좀 더 유용하지 않을까?

후진을 양성할 때 두성과 팔세토(가성)의 차이를 엄격하게 두는 입장인가?

오늘 질문 중에서 가장 어렵다.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하다. 내 기준으론 테너라면 B♭에서 C까지 흉성으로 처리할 수 있다. 거기에서 1/3이나 1/4 정도 더 높은 음을 낼 때 머리를 써야 한다고 보고, 나는 그 기술을 팔세토라고 한다. 팔세토는 아주 협소한 범위의 제한된 음들을 관련한다. 두성은 그보다 훨씬 유연하고 넓은 음역을 커버할 때 사용되는 전체적인 범위를 포괄한다고 본다.

카운터테너는 어떨 것이란 선입견이 있는 청중이 다수를 이룬다.

내가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듣기도 전에 이미 카운터테너는 어떨 것이라는 결론이 나 있다. 저 사람은 카운테테너니까 무대에서도 잘 우는 것처럼 실제로도 잘 울겠지, 울 때도 여자처럼 흉내 내는 건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늘 신경이 곤두서 있다. 연기가 휴머니티를 발현하는 통로이자 방법이 되어야 하는데, 어느 순간 그걸 억제하는 자신과 마주한다. ‘카운터테너는 역시 여자 같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자제할 때 답답하다. 무대에 나갈 땐 그 누구도 아니고 내가 줄리오 체사레다. 이 작품에선 당신이 영웅이라면 고음을 낼 수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바로크 작품들이 지닌 카운터테너 상이다. 카운터테너가 고음을 내는 능력은 대중의 편견과는 전혀 상관없는 영역에 있다. 고도의 훈련을 통해 가다듬은 기술이자 인간 자유의 한 표현 양식이다.

글 한정호(음악·무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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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음반으로 듣는 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의 음악세계

©Decca/James McMillan

안드레아스 숄의 디스코그래피는 방대한 편으로, 숫자도 많거니와 중세음악부터 직접 작곡한 대중음악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자랑하고 있다. 카운터테너 가수 중에서는 비교 대상이 거의 없는데, 다만 프랑스 음악은 즐겨 부르지 않는 듯하다. 초창기에 몇몇 소규모 레이블에서 녹음한 후에 90년대부터는 아르모니아 문디(이하 HMF)에서 집중적으로 음반을 발표했으며, 이 시기의 녹음들은 숄의 명성과 인기에 큰 몫을 담당했다. 그 후 데카를 거쳐 최근에는 여러 레이블에서 자유롭게 녹음을 발표하고 있다.

바흐와 함께 걸어온 그의 시간

숄의 디스코그래피에서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작곡가는 역시 바흐이다. 필리프 헤레베헤는 90년대 내내 숄을 자주 독창자로 기용했는데, 저마다 완성도의 차이는 있지만 하나같이 훌륭한 연주들이다. 우선 바흐 알토 칸타타집(HMF)1을 꼽아야 할 것이다. 바흐의 알토 칸타타는 알프레드 델러 이래 뛰어난 카운터테너라면 누구나 녹음했던 핵심 레퍼토리로, 숄은 델러와 제임스 보먼 이래 영국계 카운터테너들과는 또 다른 연주를 들려주었다. 30대 시절 숄의 벨벳같이 부드럽고 윤기 있는 음색과 섬세한 표현이 헤레베허의 ‘성악적인’ 해석과 만나 이루어진 명연으로, 지금도 여전히 디스코그래피의 첫머리에 놓일 만하다. 그 밖에 헤레베헤는 두 번째 ‘마태 수난곡’과 ‘요한 수난곡’ ‘B단조 미사’ 등 바흐의 대규모 교회음악 녹음들(HMF)에서도 숄을 알토 독창자로 내세웠는데, 저 유명한 ‘모두 다 이루었나이다’ 등 노래 자체는 대단히 아름답지만 어딘가 전체적인 흐름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느낌이 아쉽다. 어쩌면 그러기엔 숄의 노래가 너무나 아름다웠던 것일까? 숄은 그 후 2012년에 바젤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작업한 음반(Decca)2으로 바흐 독창 칸타타를 완성했는데, 다채로운 음색과 비브라토를 잘 조절하며 가사의 의미를 성찰하는 40대 중반의 원숙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저 유명한 82번 ‘저는 만족합니다’는 카운터테너의 연주 중 가장 뛰어나다 할 만하다. 얼마 전에는 도로테 오베를링거가 이끄는 앙상블 1700과 함께 또 다른 바흐 앨범을 발표했는데, 50대에 접어든 숄이 다시 녹음한 칸타타 170번은 특히 각별한 느낌이 든다. 한편 바흐 이전 독일 바로크 음악으로는 감동적인 요한 크리스토프 바흐의 ‘라멘토’와 북스테후데의 ‘애가’를 들을 수 있는 ‘독일 바로크 칸타타집’(HMF)을 대표작으로 꼽고 싶다.

바흐 알토 칸타타집(HMF)1

바젤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작업한 음반(Decca)2

세네시노가 부른 작품을 다룬 음반(Decca)3

퍼셀 노래집(Decca)4

 

 

 

 

 

폭넓은 레퍼토리가 주는 매력

숄에게 ‘콘서트 가수’로서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가 바흐라면 ‘오페라 가수’로서는 단연 헨델을 꼽아야 하며, 1990년대부터 숄이 헨델의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에서 이룩한 성과는 바흐 곡을 능가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폴 매크리시와 함께 녹음한 오라토리오 ‘사울’과 ‘솔로몬’(Archiv)이 있다. 특히 ‘사울’에서 숄이 만들어낸 순백색의 ‘아름다운 청년’ 다윗은 아마도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의 경우 두 가지 영상물로 만날 수 있는데, 바르톨리, 폰 오터, 자루스키, 요헨 코발스키까지 그야말로 ‘드림팀’이 등장하는 잘츠부르크 프로덕션(Decca)도 볼 만하지만 숄의 노래만 본다면 모르텐젠(HMF)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로델린다’ 역시 두 개의 영상물이 있는데, 전체적으로 메트 실황(Decca)보다는 글라인드본 실황(Warner Music)이 인상적이다. 한편 바흐 칸타타 이상으로 카운터테너들의 격전장인 헨델 아리아집에서 숄은 세 장의 음반을 냈으며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저마다 독특한 매력이 있는데, 이번 연주회에서 부를 ‘그리운 나무 그늘’과 ‘오, 한없이 자비로우신 주님’을 모두 들을 수 있는 ‘영웅들’(Decca)도 좋지만 숄 자신이 매우 깊이 공감한다는 전설적인 카스트라토 가수 세네시노가 부른 작품을 다룬 음반(Decca)3이 기억에 남는다(헨델 외 다른 작곡가의 곡도 몇 곡 담겨 있다). 그 밖에 숄이 참여한 헨델 음반 중에서는 윌리엄 크리스티의 ‘메시아’(HMF), 마르쿠스 크리트의 ‘앤 여왕의 생일을 위한 송가’(HMF)가 훌륭하며, 덴마크 왕립 오페라 극장 실황인 ‘파르테노페’ 영상물(Decca)도 볼 만하다.한편 중세 및 르네상스 레퍼토리에도 조예가 깊다는 점은 숄의 큰 강점인데, 이미 경력 초창기부터 기욤 드 마쇼의 미사곡 같은 작품의 녹음에도 참여한 숄은 지금까지도 종종 초기 음악을 노래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음반을 하나만 꼽으라면 아무래도 중세 독일을 대표하는 음유 시인(미네징거) 오스발트 폰 볼켄슈타인을 노래한 음반(HMF)일 것이다. 여기서 숄은 무려 멋진 바리톤 음성까지 선보이며 상상력과 유머 감각이 돋보이는 멋진 노래를 들려준다. 중세음악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가수나 앙상블을 선호하는 이도 있겠지만, 숄이 아니었다면 지금도 소수의 애호가들만이 즐기는 이 흥미진진한 음악을 접한 이가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젊은 시절의 싱그러운 매력이 가득한 ‘독일 바로크 노래집’(HMF)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한 장으로, 여전히 최상의 음반으로 남아 있다.숄은 프랑스 음악은 별로 다루지 않는 데 반해 영국 음악은 즐겨 부른다. 그가 부르는 다울랜드, 퍼셀, 헨델의 영어 노래는 영어권 가수들과는 살짝 다른 독특한 발음이나 악센트가 어우러져 어딘가 이국적인 아름다움이 있는데,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지만 숄을 좋아하는 애호가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영역이다. 유려하고 세련된 영어 민요와 류트 노래(HMF)와 화려하고 외향적인 퍼셀 노래집(Decca)4을 들 수 있는데 가수로서의 모든 기교를 담아낸 퍼셀과 젊은 시절의 청순함이 인상적인 다울랜드 모두 매력적이다.마지막으로, 숄의 색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음반들이 있다. 폭넓은 대중적 인기가 없으면 만들어지기 힘든 음반이라는 점에서 그의 위상을 엿볼 기회이기도 하다. ‘방랑자’(Decca)에서는 흔히 카운터테너의 레퍼토리라고 여기기 힘든 독일 가곡을 불렀으며, ‘숄 고스 팝(Scholl Goes Pop)’(Sony)에서는 아예 밴드와 함께 (자작곡이 포함된) 대중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한국에서 발매된 베스트 음반에는 ‘아리랑’과 ‘새야 새야’가 담겨서 화제를 모았는데,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마지막으로 숄이라는 가수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다큐멘터리 영상물(ArtHaus)을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영상물에서 숄은 서울에서의 연주 경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글 이준형(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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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한화클래식-카운터테너 안드레아스 숄 & 잉글리시 콘서트

6월 14일 오후 7시 30분 천안예술의전당 대공연장 / 6월 15·16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헨델 오페라 ‘줄리오 체사레’ 중 ‘아름답게 꽃피는 들에서’ ‘너의 왕에게 말하리라’, 비발디 ‘주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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