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깊고 담백한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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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0월 9일 11:50 오후

MY WAY

시간이 쌓여 가는 만큼 그녀의 음악도 깊어지고 있었다

©Marco Borggreve

 

 

 

 

 

 

 

 

 

 

 

 

 

 

 

“안녕하세요, 저 강주미예요!”

전화로 들려오는 목소리에서 청량함이 전해졌다. 8월, 강원도 평창에 불던 산산한 바람을 닮았다. 올해 평창대관령음악제 무대에 오르는 연주자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악장으로 일인다역을 해내느라 분주했던 클라라 주미 강을 평창에서 만났다.

인터뷰 장소로 이동하러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에도 어린 학생들은 그녀를 보자 함께 사진을 찍자며 몰려왔다. 수수하고 편한 차림이었지만, 그때마다 그녀는 흔쾌히 요청에 응했다. 몸에 밴 여유와 우아함은 무대 밖에서도 한결같았다.

지난봄 교향악축제에서 클라라 주미 강은 성시연/서울시향과의 협연으로 브루흐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연주했고, 한여름을 장식한 평창대관령음악제의 폐막 공연에서는 레너드 번스타인의 ‘플라톤의 “향연”으로부터 온 세레나데’를 협연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하는 무대임에도 그녀는 담백함과 세밀함을 놓지 않았다. 귀한 옷감을 손으로 쓸어내리듯 음의 질감과 결을 섬세하게 매만졌다. 그녀의 피아니시모는 객석 저 멀리 떨어져 앉은 관객의 귀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진짜 피아니시모’였다.

10월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비롯한 이번 투어에서는 바이올린과 피아노 두 대만 오롯이 마주하는 무대를 가진다. 러시아 계열과 독일권 레퍼토리를 선보인 지난 몇 년의 리사이틀을 거쳐, 이번 공연은 드뷔시·이자이·프랑크 등 프랑스 및 프랑코-벨기에 악파에 주목한다. 여기에 부소니 소나타 2번이 더해져 다채로움을 더한다.

젊은 여성 연주자에게 흔히 있는 일이지만, 클라라 주미 강 역시 ‘한 떨기 꽃’으로 종종 비유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차라리 나무에 가깝다. 뿌리는 땅에 강하게 박혀 있고, 가지와 이파리는 하늘하늘 유연하게 움직이는 버드나무. 깊고 단단하게 내린 뿌리를 통해 자양분을 흡수하고, 그 에너지를 가지 끝까지 끌어올려 잎사귀를 틔워낸다.

 

2년 만에 갖는 리사이틀이다. 오랜만이라 반갑다.

그런가? 난 너무 빨리 돌아온 것 같다.(웃음) 리사이틀은 2년마다 하겠다고 스스로 정해 놨다. 1년에 한 번 하기에는 빠듯하더라. 해외 스케줄도 그렇고, 피아니스트의 일정까지 조율하려면 1년은 너무 짧다.

함께하는 피아니스트에 대한 ‘욕심’이 많은 걸로 안다. 손열음과 지속적으로 합을 맞춰왔고, 선우예권과도 함께한 바 있다. 오는 10월 31일 독일에서 손열음과, 11월 이탈리아에서는 김선욱과 듀오 공연을 가질 예정이고.

개성 있는 피아니스트를 좋아한다. 나한테만 다 맞춰주는 것보다는, 피아니스트와 내가 서로 맞춰나가는 걸 좋아한다. 예전에 콩쿠르 무대에 오를 때는 문자 그대로 ‘반주자’와 함께 하는 게 편했지만, 연주자로 생활하기 시작하고서부터는 피아니스트와 나의 대등한 균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자신이 메인이라고 생각하는 플레이어들이 많지 않나. 피아노 덮개를 얼마만큼 많이 여느냐 가지고 다투는 경우도 다반사다.

나는 단 한 번도 피아니스트에게 소리를 줄여달라고 한 적 없다. 열음 언니와 공연할 때도 ‘이 부분에서는 피아노가 좀 더 나와 달라’고 실랑이(?)를 벌이곤 했다. 나는 내 리사이틀 제목에 꼭 ‘듀오’라고 써달라고 요구한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연주하는데 피아노의 역할이 당연히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번 공연에 함께하는 피아니스트 알레시오 백스 역시 리즈 콩쿠르와 하마마츠 콩쿠르에서 우승한, 독주자로서의 기량이 뛰어난 인물이다.

알레시오는 베테랑이다. 피아니스트로서 다양한 실내악을 많이 경험했고, 특히 바이올린과 호흡을 많이 맞춰왔다. 조슈아 벨과 다이신 카시모토의 내한 리사이틀에 피아니스트로 함께한 바 있다. 이번 공연 프로그램에 대해 알레시오와 굉장히 많이 상의했다. 부소니 소나타 2번은 알레시오가 적극적으로 제안해서 프로그램에 넣게 된 곡이다.

부소니 2번은 레코딩도 흔치 않고 한국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 곡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소개하려고 꾸준히 노력한다. 서른이 넘으면서 ‘이게 내 역할이구나’하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프랑크 소나타도 하나 넣고, 거기에 새로운 작품을 같이 조합시킨다. 한국 청중은 음악적 귀가 굉장히 좋고 음악을 이해하는 수준이 높은데, 매번 듣던 곡만 들려주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다.

 

나와 내 음악만을 위한 시간

연주로 접했던 클라라 주미 강이라는 아티스트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이 모습이 별다른 괴리 없이 일치한다. 연주는 심지가 단단하면서도 그 표면이 부드럽고, 개인적으로도 주관은 분명하면서 동시에 굉장히 열려있는 것 같다.

주변에서는 나더러 팔랑귀라고 많이들 그러던데.(웃음) 주관이 강한 건 맞지만 남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진 않는다. 20·30대는 계속해서 변하는 시기 같다. 순간순간 느끼는 것에 반응하고. 그래야 발전하는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멈춰 있게 된다. ‘다른 사람들 인터뷰 보면 되게 뚝심 있어 보이는데, 왜 나는 매번 생각이 바뀌지?’하고 생각했던 때도 있다. 지금은 ‘그게 나’라는 걸 받아들인다. 나는 계속해서 바뀌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곡가가 느낀 걸 무대에서 전해주는 것일 뿐이라는 걸 깨달아가고 있다.

창조와 예술을 업으로 삼는 여느 직업과 마찬가지로, 음악으로 가득 찬 삶을 산다는 건 자기 자신을 연료로 삼아 그것을 쉬지 않고 불태우는 것과 같다. 소진을 뜻하는 번아웃(burn out)이라는 단어가 와 닿는 이유다.

번아웃에 대해 예전부터 많은 경고를 받아왔다. 기돈 크레머도 내게 ‘너 이렇게 3일마다 협주곡 바꿔가면서 연주하면 나중에 번아웃 온다’고 몇 년 전에 말했다. 그땐 솔직히 체감하지 못했다. 집에서 가만히 있는 게 싫었고, 뭐라도 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조용히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이내 깨달았다. 오히려 연주 일정이 많지 않을 때 스스로 발전하는 것 같다. 그래서 예전보다 연주도 많이 줄였다. 여기저기서 들어오는 요청을 이제는 상황에 따라 자연스럽게 거절할 수 있게 됐다. 예전엔 쏟아지는 모든 스케줄을 다 해내고는 혼자 힘들어했는데, 그게 현명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그럴 나이가 아니다. 내 몸이 바뀌고 있고, 나에게 필요한 시간을 알게 됐다.

특히 젊은 음악가들은 자신의 속도와 에너지를 조절하지 못한 채 전력질주를 하다가 어느 순간 고장 난 차처럼 멈춰버리고 마는 경우가 많다.

또래 연주자들과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 ‘음악이 우리의 직장이지만 거기에 절대 지지 말자’고 다짐한다. 생계와 현실 때문에 일에 굴복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내가 아직 가족을 꾸리지 않아서 이렇게 거침없이 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황이 허락하는 한 내가 하고 싶고 내게 의미 있는 것들을 내가 원하는 파트너들과 작업하려고 한다. 물론 이렇게 마음먹어도 스케줄의 일정 부분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들을 해야만 할 때가 분명 있기 마련이다.

최고의 퍼포먼스를 끌어내기 위한 컨디션이 어떤 것인지 깨달은 것 같다. 그걸 알고 실천하는 것이 롱런의 비결인데.

평생 연주하는 것이 내 꿈이다. 마흔이 되고 쉰이 되면서 갈수록 더 잘하고 싶고, 일흔 살 넘어서까지도 연주하고 싶다. 길게 달리기 위해서는 나이에 맞게 몸을 잘 써야 한다. 10·20대에는 물론 철저히 연습해야 하지만, 그 이후에는 연습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나는 이제 조금만 피곤하다 싶으면 악기를 내려놓고 악보를 눈으로 보면서 머리로 연습한다. 연주는 근육을 쓰는 일이라서 언제나 조심해야 한다. 젊은 시절 몇 년 동안 바짝 몰아서 연주하고 음반 내면 나중에는 뭘 하나? 그러고 싶지 않다.

클라라 주미 강이라는 사람은 건강한 낙천주의가 있구나. 대책 없이 헬렐레하는 낙천주의 말고, 건강하고 긍정적인 밝음이 있다.

다 내려놨다. 내려놓고, 내려놓고, 내려놨다!(웃음) 자신을 내려놓으니 음악이 나오더라.

 

글 이정은 기자 사진 에투알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 피아니스트 알레시오 백스 듀오 리사이틀

10월 14일 오후 5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 10월 16일 오후 7시 30분 강릉아트센터 사임당홀 / 10월 18일 오후 7시 30분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 10월 19일 오후 7시 30분 안성맞춤아트홀 소공연장

드뷔시 소나타 G단조, 부소니 소나타 2번, 이자이 ‘슬픈 시’, 프랑크 소나타 A장조,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279·K576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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