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시대의 불안을 위로하는 부드러운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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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0월 9일 11:5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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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내한하여 레너드 번스타인의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를 연주하는 그의 피아니즘에 빠지다

©Bartek Barczyk

15년 만이다. 완벽함의 대명사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내한이 10월 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펼쳐진다. 2003년 첫 내한 때 브람스의 ‘6개의 소품 Op.118’과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 등을 연주하며 곡에 대한 완벽한 이해와 자신만의 해석으로 이 시대 거장의 면모를 들려주었던 그다.

지메르만은 이날 지휘자 에사 페카 살로넨이 이끄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레너드 번스타인의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를 연주한다. 레너드 번스타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의 무대이기도 하다.

지메르만과 번스타인의 인연은 각별하다. 번스타인이 타계하기 전 그에게 “자신이 100세가 되었을 때 교향곡 ‘불안의 시대’를 같이 연주해 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을 만큼 그들은 음악적으로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 서로를 신뢰했다. 지메르만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음악세계에 레너드 번스타인은 굉장히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 바 있다. 번스타인의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는 모더니즘의 대표작가 W.H.오든의 시 ‘불안의 시대’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작품이다. ‘불안의 시대’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뉴욕의 어느 술집에서 벌어지는 4명의 인물의 행동과 생각을 추적하고 그들이 서로 소통하는 과정을 통해 각자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상상의 탐구를 묘사한 작품으로 당시 사회의 불안한 심리와 현상을 잘 그려내고 있다. 불안한 존재인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이 곳곳에 깔려 있다.

이 시를 모티브로 해서 작곡한 번스타인의 ‘불안의 시대’에는 피아노 독주 파트가 나오는데 공연 초기에는 번스타인이 연주를 맡아 무대에 서기도 했다. 허무한 삶 속에서 의미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생각의 흐름이 피아노 선율 속에 살아 숨 쉰다. 스케르초풍 악장에서의 감각적인 묘사와 재즈풍의 선율은 번스타인 특유의 상상력 넘치는 내면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피아노로 내면을 연구하는 철학자

그런 면에서 번스타인의 ‘불안의 시대’는 거장으로 칭송받고 있는 지메르만이 이 시대에 전하는 묵직한 성찰의 메시지일 수 있다. 그는 예민한 감성과 완벽한 테크닉으로 세계 피아노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주목받았지만 그의 삶은 음악 속에 파묻혀 은둔하지 않았다. 자신과 가정, 음악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축을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조화롭게 균형을 이뤘다.

음악적 전통이 있는 폴란드 가정에서 태어났고 1975년 18세의 나이로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화려한 명성을 얻은 지메르만. 카토비체 콘서바토리의 시니어 강사였던 안제이 야신스키와 함께 음악 공부를 시작하며 인연을 맺은 피아노는 이제 그 자신이 되었다. 이후 기돈 크레머, 예후디 메뉴인과 같은 실내악 파트너들을 비롯해 레너드 번스타인,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리카르도 무티, 사이먼 래틀과 같은 뛰어난 지휘자와의 만남은 그의 연주를 더욱 빛나게 했다. 더불어 쇼팽·베토벤·브람스·루토슬라프스키 등 다양한 레퍼토리를 통해 자신의 음악세계를 넓혀 갔다.

그는 자기 자신의 피아노를 직접 실어 나르며 무대에 오를 만큼 피아노 악기와 음향에 대한 전문성을 자랑하며 공연 중에 하는 녹음과 촬영에는 무척 예민하다. 내한 당시에는 공연장 내에 설치되어 있는 마이크를 모두 치워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또한 유튜브가 음악에 미치는 폐해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고 있는 연주자 중 하나다. 하지만 심리학과 컴퓨터 공부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데에는 언제나 열정적이다. 이런 태도들은 무엇이든 천천히 느리게 완벽히 접근하려는 그의 철학과도 맞물린다.

피아니스트 김주영 역시 “지메르만은 열정을 지성으로 승화시키려는 순수 피아니즘의 신봉자이며 쇼팽·리스트·드뷔시·시마노프스키·루토슬라프스키·번스타인을 포용할 수 있는 유일 무이의 능력자”라고 말한다.

최근 그는 파보 예르비가 이끄는 상하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중국 데뷔 무대를 가졌고 타이페이와 방콕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콘서트를 열면서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한국 나이로 예순을 바라보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로부터 찬사를 받고 있는 그의 이날 연주가 100년 전 우리 곁에 왔던 번스타인의 영감을 또 다른 불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전하게 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는 각자의 불안의 시대 속에서 길을 헤매며 표류해 왔다. 확실한 건 이날 무대에서 우리 영혼이 바라는 것은 수많은 긴장과 문제들을 부드럽게 포용하는 음악의 힘이라는 것이다.

글 국지연 기자

 

에사 페카 살로넨/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협연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10월 18일(협연 에스더 유)·19일(협연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오후 8시 롯데콘서트홀

라벨 어미거위 모음곡, 레너드 번스타인 교향곡 2번 ‘불안의 시대’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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