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 STAGE_3
세르반테스의 소설 ‘재기발랄한 시골 귀족 라 만차의 돈키호테(El Ingenioso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 속 주인공 돈키호테는 4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회화·연극·뮤지컬·영화 등에서 영감의 원천이 되어 왔다. 발레 ‘돈키호테’에서 그는 신스틸러로 존재감을 각인시킨다. 주인공 커플의 사랑 이야기에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극에 재미를 더할 그 모습은 오는 11월 15~1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오르는 마린스키 발레 & 오케스트라의 ‘돈키호테’에서 만나볼 수 있다.
돈키호테, 한 편의 로맨스에 감초로 떠오르다
중세 기사들의 영웅담에 매료된 돈키호테는 마음속에 그리고 있던 이상의 여인 둘시네아를 찾아 시종 산초 판자와 함께 모험을 떠나기로 한다. 스페인의 한 마을, 선술집 딸 키트리와 이발사 바질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지만, 키트리의 아버지 로렌조는 이들의 사랑을 완강히 반대하며 키트리를 우둔한 귀족 가마쉬와 결혼시키려 한다. 그때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가 등장한다. 키트리를 둘시네아로 착각한 돈키호테가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해프닝이 벌어지자 키트리와 바질은 때아닌 골칫거리에 난감해하다 결국 숲속 집시들의 캠프로 도피한다.
원작 소설 속 돈키호테의 유명한 무용담이 이제 등장한다. 키트리와 바질을 쫓던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해 공격하는 장면. 위세 좋게 용맹함을 발휘해볼까 하지만, 이내 풍차 날개에 치여 돈키호테는 정신을 잃고 만다. 그런 그를 위로라도 해주려는 하늘의 뜻이었을까, 그는 꿈속에서 요정들과 함께 있는 둘시네아 공주를 만나 행복해한다. 다시 마을로 돌아온 바질과 키트리는 로렌조 앞에서 자살 소동을 벌이고, 키트리가 둘시네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돈키호테는 로렌조에 으름장을 놓아 결혼 허가를 받도록 돕는다. 마을 사람들의 축복 속에 결혼식이 열리고, 돈키호테는 산초판자와 함께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중세시대 유행했던 기존 기사도 문학은 봉건귀족의 명예와 탐욕스러운 이상을 추앙했다. 이를 비판하며 등장했던 돈키호테는 비록 몽상에서 비롯된 여정을 시작하지만, 세상과 인간에 대한 깊은 지혜와 이해심을 가진 인물이었고, ‘불의를 바로 잡고 무분별한 일들을 고치고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해’ 그리고 꿈에 그리던 사랑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설 줄 아는 세상에 필요한 낭만주의자였다.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믿음과 의지의 소산물이었으며, 또 낭만과 이상을 꿈꾸는 것조차 각박한 현실에서 돈키호테의 용기를 종종 망상으로 치부해버리곤 하는 우리의 회의적 조소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마린스키 발레가 선사할 ‘돈키호테’
코믹발레의 대명사로 불리는 발레 ‘돈키호테’는 스페인의 정취가 느껴지는 화려한 무대와 의상, 그리고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희극적인 마임과 더없이 화려하고 강렬한 색채를 자랑하는 춤의 향연으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는 작품의 특성은 많은 관객의 사랑을 받은 이유였던 동시에, 많은 안무가에게 재창작의 가능성과 기회이기도 했다.
오늘날 공연되는 발레 ‘돈키호테’는 1869년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로 세상에 등장했다. 1900년, 프티파의 제자였던 알렉산드르 고르스키는 프티파의 안무를 더욱 다채롭게 꾸며 마린스키 발레와 함께 러시아 발레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볼쇼이 발레에서 초연했다. 그로부터 2년 후 마린스키 무대에 오른 그의 ‘돈키호테’는 더욱 화려해져 있었다. 프티파의 주 스토리 라인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극의 마지막 장에 ‘부채를 든 키트리의 변주(Variation of Kitri with the fan)’와 돈키호테의 꿈속 장면 중 ‘둘시네아가 된 키트리의 변주(Variation of Kitri as Dulcinea)’를 덧붙여 그 이전 버전을 더욱 촘촘히 메운 것이었다. 이러한 고르스키의 ‘돈키호테’는 초연 당시 프티파의 오리지널을 훼손했다며 관객의 충격을 적잖이 낳기도 했지만, 그가 삽입했던 ‘부채를 든 키트리의 변주’는 이후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오늘날 그의 보강과 혁신은 프티파의 스타일, 구조와 조화를 이룬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렇게 프티파-고르스키 버전은 세계 모든 ‘돈키호테’의 토대가 되었고, 많은 안무가에 의해 끊임없이 재안무 되며 오늘날 다양한 버전의 ‘돈키호테’를 낳았다. 다른 무용창작자의 춤을 모방·차용하거나 인기 있는 플롯을 극에 활용하며 폭넓게 변화를 주고 있는 것. 최근 국내 무대에 올랐던 ‘돈키호테’들 또한 새롭게 재안무 된 것들이 주되다. ‘돈키호테’의 초기 버전이 다른 나라의 무대로부터 사라진 지 한참이 지났지만, 러시아에서는 여전히 건재하다. 러시아 내에서만 세 곳의 프로덕션이 프티파-고르스키 버전, 그 고유함을 계속해서 무대에 올리고 있을 정도다. 그중 한 곳인 마린스키 발레가 그들의 ‘돈키호테’를 국내 무대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20세기의 러시아, 대변혁기의 풍파에도 살아남은 발레 프티파-고르스키 버전의 ‘돈키호테’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고전의 가치를 기대해 본다.
낭만을 춤추는 세계의 별들
“마린스키 발레는 프티파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다. 처음 그대로의 ‘전통’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3년 전 봄, 마린스키 발레의 수석무용수로 갓 피어올랐던 김기민이 정의한 마린스키 발레다. 이미, 고전의 가치를 중시하는 마린스키 정신이 몸에 밴 듯 자연스러웠던 그가 마린스키 발레단 & 오케스트라 본진을 이끌고 한국 관객을 찾는다.
2011년 동양인 남성 무용수 최초로 마린스키 발레에 입단하여 4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그는 2016년 무용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성무용수 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파리 오페라 발레·영국 로열 발레·미국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오스트리아 빈 국립발레 등 세계 발레단의 러브콜과 유명 갈라 공연 등에 초청 받으며 현역 최고 무용수로 인정받고 있다.
극 중에서 김기민과 함께 연인으로 등장하게 될 발레리나는 빅토리아 테레시키나. 파워풀한 테크닉과 날카로운 균형 감각으로 극찬을 받아온 그녀는 2018년도 러시아 ‘올해의 예술가상’까지 거머쥔 명실상부 세계 최정상의 프리마 발레리나다. 무엇보다도 그녀와 김기민의 파트너십이 극의 완성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테레시키나는 김기민의 마린스키 데뷔 무대에 함께 오른 것을 시작으로, 여러 작품에서 꾸준히 합을 맞춰왔다. 2017년 마린스키 발레의 런던 투어 당시, ‘돈키호테’의 바질과 키트리로 분하여 보여주었던 김기민과 테레시키나의 더할 나위 없는 케미스트리를 이번 내한 공연을 통해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글 박찬미 사진 서울콘서트매니지먼트
마린스키 발레 & 오케스트라 ‘돈키호테’
11월 15~1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김기민·빅토리아 테레시카나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