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양정윤

깊어진 뿌리로 맺는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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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1월 5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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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마다 같은 장소에서,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자신을 마주하다

음악가로서의 성취, 외로움, 좌절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겪었다는 그녀의 답변에서 어느덧 성숙한 연주자의 모습이 엿보였다. 여러 콩쿠르 입상에 이어, 이제는 자신만의 음악을 빚으며 진정한 열매를 맺고 있는 바이올리스트 양정윤. 작년에 이어 다시 한번 예술의전당에서의 독주회를 통해 관객을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다.

 

리피처 콩쿠르 우승 이후 벌써 일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콩쿠르 우승 이후 더 많은 공연을 했고, 그것이 많은 사람을 만날 기회로 연결되었던 것 같아요. 공연의 성격과 지역에 따라 초청자의 기대에 맞춰 연주곡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제 레퍼토리의 폭도 넓히고 레퍼토리에 대한 관념에도 변화가 생겼고요.

독주회를 비롯해 2018 교향악축제와 경기실내악축제 등 다양한 연주활동을 보여주고 있는데. 각기 다른 매력으로 흥미와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요. 큰 편성으로 풍성한 사운드와 함께하는 협연은 독주부분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고, 피아노와의 듀오에서는 더욱 완성도 높은 연주로 판타지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죠. 피아노 3중주나 현악 3중주·4중주 같은 보편적인 실내악 편성도 좋지만, 베토벤 7중주나 모차르트 플루트 4중주 등 자주 연주되지 않는 편성의 연주도 재미있는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마르크노이키르헨 콩쿠르와 리아나 이자카제 콩쿠르 참가한 이후, 두 콩쿠르에 심사를 맡았던 리아나 이자카제(Liana Isakadze)와 인연이 되어 유학 시절 수년 동안 그녀의 멘토링과 지도를 받기도 했죠. 보고 싶고 가슴 떨리게 하는 분에 대한 얘기네요. 리아나는 그때도 만났지만 나중에 다시 찾은 인연이에요. 제 진로의 전환기에 옆에 있어 주셨죠. 2011년 독일에서 잠시 휴학을 하면서 오케스트라 아카데미 활동을 했는데, 그때 솔리스트로서는 어두운 순간이었어요. 리아나와의 재회가 오랜만이라 긴장되었지만, 용기를 내어 프랑스에 있는 그녀에게 전화했죠. 음악 공부를 더 하고 싶으니 도와달라고 말하자 흔쾌히 찾아오라고 답해주셨어요. 이후 3년 동안 주기적으로 그라스와 파리 근교에 위치한 그분의 댁에서 같이 지내면서 지도를 받았어요. 리아나는 디테일한 지도도 훌륭하지만, 그보다도 소리의 비전을 제시해주신 분이세요. 그녀의 캐릭터와 소리는 정말로 사람을 매료시키죠. 방에서 연습 소리를 엿듣기도 하고, 레슨에서 비교를 해보는 과정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어요. 어떻게 악기에서 그런 소리가 나는지…! 그녀의 상상력이 가득한 소리는 제게 소리에도 생명과 표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또 어떤 부분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고 있는지 궁금해요. 여러 음반을 듣고, 악보도 여러 개를 비교하며 연습해요. 작곡가에게서 자극받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상상하죠. 내가 아는 모차르트라면, 내가 아는 바흐라면 어땠을지 상상해보기도 하고요. 찰나에 스쳐 가는 생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집중하다 보면 나 자신이 새로워지는 듯한 기분도 느끼죠.

 

끊임없는 발전을 꿈꾸다

연주자로서도 계속 활동을 이어가고 있지만, 이제는 여러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의 입장에서 또 다른 책임감이 느껴질 것 같아요. 연주자로서 기본적으로 연주 실력도 중요하지만, 연주의 성격이나 장소, 관객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고, 또 엔터테이너적인 부분도 요구되기 때문에 저도 배우는 게 많아요. 제자들한테는 좋은 음정과 소리 만들기에 대한 얘기를 주로 하고 있어요. 레퍼토리를 선정할 때 시대나 작곡가의 특징을 파악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작품의 성격에 따라 배경이나 기본 지식 등 비전을 제시하고, 실질적으로 곡에 맞는 프레이징과 아티큘레이션을 설명하죠. 콩쿠르를 통해 성취와 외로움, 좌절,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겪어보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서도 도움을 주려 하고요.

요즘에는 교육 분야나 연주 외에도 콘서트 해설이나 진행, 다른 예술 분야와의 콜라보 등을 통해 음악을 전하기도 하는데. 원래 연주회에는 설명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자랐는데, 요즘은 렉쳐 콘서트가 점점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렉쳐 콘서트를 딱 두 번 진행했는데 연주만 하는 것보다 제 생각을 부연 설명함으로써 전달이 더 편하다는 걸 느꼈어요. 최근에 프랑스 음악의 특징을 얘기하며 콘서트를 진행했는데, 관객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어 좋았어요.

오는 11월,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독주회를 앞두고 있죠? 이번 연주 프로그램은 많은 분에게 영향을 받아 구성했어요. 지난 4월, 대구에 연주하러 갔다가 작곡가 이영조 선생님을 뵈었는데, 선생님의 ‘혼자놀이’를 꼭 연주해보고 싶다 말씀드렸더니 감사하게도 이메일로 악보를 보내주셨어요. 그렇게 ‘혼자놀이’를 연주하기로 했죠. 공연에 함께할 피아니스트는 하노버 음대에서 같이 수학했던 일리야 라쉬코프스키인데, 러시아 출신의 그가 함께 연주해준다는 제안에 메인 소나타를 프로코피예프로 변경했어요. 프로코피예프의 긴 작품이 추가되며 전반적인 흐름이 다소 진지해진 감이 있어 후반부에는 베토벤 ‘로망스’와 생상스 Op.28 등의 소품을 배치해 균형을 맞추었고요.

독주회 이후의 활동도 궁금해요. 12월 초에 이탈리아에서 협연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프렌즈오브뮤직’ 연주에 참여해요. 실내악 팀도 구성 중이고요. 내년 1월에 모차르테움에서 사사했던 피에르 아모얄 선생님이 내한하시는데, 오랜만에 뵐 생각에 기뻐요! 실내악 연주를 제안하셨는데, 한국에서 실현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글 박찬미

 

양정윤 바이올린 리사이틀

11월 18일 오후 2시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소나타 1번·베토벤 ‘로망스’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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