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와 세이지/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의 마츠모토 페스티벌 실황 외오자와 세이지/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의 마츠모토 페스티벌 실황 외

스승의 뜻을 이어가는 거장의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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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2월 4일 9: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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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뜻을 일본문학계의 거장과 나누고, 음악가들과 실행하는 오자와의 삶

책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와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는 각각 2015년과 2018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이야기’라는 제목에 걸맞게 두 권 모두 대담집이다. 전자는 무라카미 하루키(1949~)가, 후자는 오에 겐자부로(1935~)가 오자와 세이지(1935~)와 대담을 맡았다(이하 각각 ‘음악을 이야기’와 ‘문학과 음악’으로 표기).

두 책은 3년 차로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다. 오자와 세이지가 두 작가와 만났던 해는 각각 다르다. 2018년 번역된 ‘문학과 음악’이 2000년에 나눈 대담으로, 오자와가 1973년부터 재직한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감독 말기일 때다. 2015년 번역된 ‘음악을 이야기’는 식도암 수술 후 휴식기인 2010~11년에 나눈 대담이다. 2000년 오에와의 대담 때는 오자와가 만년의 음악적 엔진을 풀가동할 때였고, 2010~11년 무라카미와의 만남은 치열한 장으로부터 한 발자국 떨어져 있을 때다. 따라서 동갑내기 오에와의 대화는 훨씬 다이나믹하고 현실 비판적이며, 오히려 아래 사람인 무라카미와의 대화는 회고조와 회상조가 많다. 각각의 매력을 하나씩 꼽으라면, 무라카미는 ‘음악가 오자와’를 부각하고, 오에는 ‘인간 오자와’에 접근한다.

 

음악가 오자와와 인간 오자와를 만나다

무라카미의 서재는 책보다 음반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답게 음악에 대해 치열하고 꼼꼼히 묻는다. 무라카미의 물음에 답하는 오자와의 답변들은 지휘자의 오케스트라 사용설명서 같다. 특히 카라얀(1908~1989)과 번스타인(1918~1990) 문하에 있었던 오자와를 통해 두 거장을 반추하는 재미도 있다. 두 거장의 교육관도 그들의 지휘철학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오자와 카라얀 선생은 디렉션을 미리 확실하게 정해놓고, 오케스트라에 게도 그걸 확실하게 요구하거든요.

무라카미 연주 전에 이미 자기 안에 음악이 완성되어 있군요.

오자와 그런 이야기죠.(38쪽)

(…)

오자와 우리는 레니를 스승으로 생각하면서 가르침을 받고 싶어한단 말 이죠. 그런데 레니의 말로는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너희는 내 동료다 하는 거죠. 그러니까 눈에 띄는 게 있으면 자기한테도 주 의를 줘라. 그런 미국인다운, 좋은 미국 사람의 평등 지향 같은 면이 있었어요.(52쪽)

한편, 오에와의 대담은 음악을 통해 일본 사회와 문화예술계를 살펴보는 듯하다.

오자와 미국에서 일하다 보니 일본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데, 일본인 의 우수성은 인정하지만 저렇게 자만하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 지겠거니 생각했어요. (…) 우리 음악계도 거품 경제 때, 그러니 까 일본에 돈이 넘쳐 났을 때 외국에서 온갖 것을 마구 사들였 어요. 당시엔 우리 음악가들이 외국 음악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외국 것을 돈으로 살 수 없는 상황이 되니까 자존감이 확 떨어지더군요.(‘문학과 음악’ 80쪽)

무라카미가 오자와의 음악적 경력을 파고 들고, 오에가 예술과 인간이라는 대주제하에 문학의 편에 서서 음악의 문을 두드린다. 그리고 두 소설가가 오자와에게 공통적으로 관심을 보이는 것은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와 그 활동이다.

 

바람이 잘 통하는 지휘

사이토 히데오와 오자와

오자와는 1960년대에 번스타인/뉴욕 필의 부지휘자로 취임했지만 고국에선 오랫동안 지휘봉을 잡지 않았다. 1962년 NHK교향악단과의 마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대해 두 작가도 묻지 않으며, 2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오자와와 고국에 대한 관계도 묻지 않는다. 오자와는 그 기간을 토론토 심포니(1965~1970), 샌프란시스코 심포니(1969~1976), 보스턴 심포니(1973~2002)에서 보냈다.

오자와가 고국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 것은 스승 사이토 히데오(1902~1974)의 10주기 기념 공연 때문이었다. 첼리스트 겸 지휘자이던 사이토는 오자와를 비롯해 일본의 다수 지휘자들을 배출했다.“1984년에 전 사이토 선생의 십주기를 기념해서 제자들이 모여 오케스트라를 만들어 연주했어요. (…) 그랬더니 이거 괜찮은걸, 계속해서 해도 되겠다, 이렇게 된 거에요.”(‘음악을 이야기’ 179쪽)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후 1992년부터 매년 8~9월 나가노현 마츠모토시(市)의 ‘세이지 오자와 마츠모토 페스티벌’의 중심 공연을 맡고 있다. 사이토를 기념하는 음악제였지만, 오자와의 국제적 네트워크에 의지하여 진행하는 상황에서 그가 생존해 있는 동안 이름을 바꾸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듯하다.

2017년에 발매된 영상물은 베토벤 교향곡 2번(2015년 9월 실황)과 7번(2016년 8월 실황)이 수록되어 있다. 오자와/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의 음반 녹음은 많았지만, 영상물 발매는 두 번째다. 첫 번째는 2005년 발매된 스트라빈스키 ‘오이디푸스 렉스’(Philips 0743077)다.

무대의 단원들이 정렬한 뒤 등장하는 지휘자와 달리 오자와는 단원들과 함께 느릿느릿 무대로 걸어나온다. 시각장애가 있는 단원의 자리를 챙겨주고, 사이를 돌아다니며 악수를 나눈다. 마츠모토시의 동네 할아버지 같다. 그는 여든의 노인이다. 젊은 시절, 악기 하나하나를 부지런히 짚고 ‘큐’ 사인을 하는 지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상체의 가슴을 벗어나지 않는 작은 손놀림뿐이다. 하지만 교향곡 2번과 7번을 유기적으로 생생하고 놀랄 만큼 확장성이 뛰어난 음악적 우주로 만들어낸다. 이러한 느낌을 활자로 만나볼 수 있는 것도 두 책이 주는 묘미다.

오자와 심포니는 아닌 게 아니라 변했죠. 커다란 묶음으로 탄탄하게 음 악을 만든다기보다 속 내용을 확실하게 들려주는 스타일로 바 뀌었어요.

무라카미 안소리가 들린다는 말씀이군요.

오자와 그렇죠.

무라카미 사이토 기넨의 베토벤이 딱 그런 느낌입니다.

오자와 사이토 선생이 그러셨으니까요. 그래서 내가 베를린 필을 지휘 하면 그런 비판을 많이 받았어요. 베를린 필의 소리가 옅어졌다 고 말이죠. 그때 내가 전부 큐를 보냈거든. 일일이 지시를 내린 거예요. 그랬더니 카라얀 선생이 그러시는 거예요. 세이지, 내 오케스트라에 대해 그런 것까지 할 필요는 없다. 넌 전체를 지휘 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하면 바람이 잘 통하게 되거든요. 지시를 내리면 개개의 연주자가 바람이 잘 통 하게 돼요.(63~64쪽)

마르타 아르헤리치(1941~)가 함께 한 베토벤 ‘합창 환상곡’도 수록되었다. 피아노, 관현악, 합창이 함께 하는 작품으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이나 ‘합창’ 교향곡을 연상시킨다. 단원들과 아르헤리치, 관객들은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며 오자와의 80세 생일(2015년 9월 1일)을 축하하기도 한다.

 

다음 세대를 위한 거장의 약속

‘문학과 음악’의 말미에 오에와 오자와는 다음 세대를 위한 각오를 내비친다. 오에가 “소년 시절의 우리를 배신하지 않고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일하다가 생을 마칠 것”이라며 노장의 전투력을 과시한다면, 오자와는 “본능일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배운 것을 다음 세대에 남기고 싶다, 내게서 끝나지 않도록 뭔가 남기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어요”(265~267쪽)라고 한다. 그래서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와 마츠모토 페스티벌은 오자와의 의지가 반영된 구현체와 같다. 오자와는 이외 뮤직 아카데미, 오자와 국제 실내악음악아카데미 오쿠시가 등에서 교육의 장을 열고 있다.

두 책에는 스승 사이토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만, 영상물에는 사이토보다 오자와의 존재가 부각된다. 하지만 뜻이란 늘 가슴에 새겨져 보이지 않는 법. 사이토는 일본음악계를 책임질 젊은 음악가들의 가슴에 뜨겁게 새겨져 있는 것 같다. 오자와로 하여금. 국내에서 사이토의 이름은 오자와를 거쳐 회자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1983년 사이토의 책이 국내에 번역 출간된 적이 있어 깜짝 놀랐다. 표지의 모든 정보가 한자로 되어 있어 쉽게 검색도 안 됐다. 제목 ‘指揮法’(지휘법), 저자 ‘齋藤秀雄’(사이토 히데오), 역자 ‘禹鍾億’(우종억), 출판사명도 한자이다. 222쪽 구성이다. 한국에도 교향악 문화를 일으키고 여러 제자를 배출한 임원식(1919~2002)과 홍연택(1928~2001)이 있다. 홍연택은 잊혀져가고, 임원식의 호를 딴 운파 메모리얼 오케스트라가 있었지만 지금은 유명무실할 뿐이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이달의 추천 음반&책

❶ 2015·2016 마츠모토 페스티벌의 베토벤 교향곡 2·7번, ‘합창 환상곡’오자와 세이지(지휘)/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마르타 아르헤리치(피아노)EUROARTS 2064024
❷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오자와 세이지/무라카미 하루키2011년 출간, 2015년 번역(권영주 역), 비채
❸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오자와 세이지/오에 겐자부로 2001년 출간, 2018년 번역(정회성), 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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