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헤드 보컬 톰 요크

행동하는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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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6월 10일 9:00 오전

FOCUS

필자는 클래식 음악 전공자이다. 한 음악이 ‘클래식’이 되어 지금까지 전해진다는 것은 많은 이에게 감동을 줄만한 힘이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때때로 동시대와 교감하기보다는 감정에만 호소하는 클래식 음악이 서글프기도 했다. 음악이 실천적인 행동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 오랫동안 생각했고, 그러던 중 톰 요크의 음악을 만났다.

음악, 세상을 향한 애정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라디오헤드의 음악에는 사회를 향한 저항 정신이 녹아있다. 1985년 결성한 라디오헤드는 현재까지 9장의 정규 앨범을 발매했다. 앨범이 나올 때마다 라디오헤드는 삶과 사회를 향한 저항의 목소리를 높였다. 밴드는 음악성을 추구하면서도 대중성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무엇보다 라디오헤드 멤버들은 직접 행동하고자 노력했다. 예컨대, ‘라디오헤드 OK COMPUTER(2018, 여름의숲)’의 저자 권범준은 라디오헤드를 두고 ‘환경운동가 그룹’이라고 표현했다. 톰 요크는 지구 온난화에 관해 문제를 제기한다. 라디오헤드 3집 ‘OK Computer’는 ‘물질문명에 의해 타락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고, 8집 ‘The King of Limbs’에는 ‘자연이 파괴되면 세상도 사라진다’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라디오헤드가 환경 보존을 이유로 오랫동안 영국의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 참여를 거절한 일화도 유명하다. 이러한 라디오헤드는 2010년 아이티 지진 피해자를 위해 자선공연을 했다. 행동하는 음악가의 좋은 귀감이지 않은가. 2012년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은 라디오헤드 내한으로 화제를 모았다. 당시 라디오헤드는 기획사에게 공연 조건으로 ‘공연장에서 재활용 분리 쓰레기통, 텀블러, 재활용 식기 사용’을 요청했다. 직선적인 메시지와 실천하는 움직임, 심지어 대중의 열렬한 사랑까지 받고 있으니 라디오헤드의 파급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성공과 불안은 늘 함께했다

밴드의 보컬 톰 요크는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음악적인 커리어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그의 욕심은 라디오헤드 2집 때부터 느껴진다. 지금의 라디오헤드를 있게 한 곡은 단연 1집의 ‘Creep’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영국에서 순차적으로 흥행을 얻은 이 곡은 그야말로 대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성공은 톰 요크를 고립시켰다. 대중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을수록 톰 요크의 불안 증세가 점점 심해졌다. 다음 앨범을 준비하는 톰 요크는 ‘Creep’를 뛰어넘는 강력한 ‘한 방’을 고민했다. ‘Creep’에서는 처절한 자기혐오가 대중의 공감을 샀으니, 2집에서는 더욱 진솔해지기로 한다. 톰 요크는 학창 시절부터 생각해 온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2집 앨범에 담았다. 그리하여 2집 ‘The Bends’에서부터 지금의 라디오헤드 스타일이라 일컬을 수 있는 저항의 목소리가 시작됐다. 자신의 재능에 대한 끝없는 불신은 톰 요크에게 노력하는 방법을 알려줬다. 라디오헤드 멤버들은 모두 곡을 만들기 위한 컴퓨터 기술을 익혔고, 녹음 스튜디오 장비를 능숙히 다루게 됐다. 1997년 발매한 3집 ‘OK Computer’는 라디오헤드를 세계적인 스타로 끌어올렸다. 성공이 지속될수록 톰 요크는 끊임없이 변모해왔다. 이후 라디오헤드가 내는 모든 앨범은 호평을 얻었다.

그리하여 계속 움직인다

2015년 톰 요크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올드 타임스’의 음악을 작곡했다. 극작가 해럴드 핀터와 연출가 더글러스 하지가 함께한 뮤지컬이다. 당시 더글러스 하지와 6개월 동안 메일을 주고받으며 작업했고, 70년대 빈티지 신시사이저를 사용한 음악을 선보였다. 이어서 톰 요크는 올해 5월 개봉한 ‘서스페리아’의 음악감독으로 참여했다. ‘서스페리아’는 톰 요크의 첫 영화음악 데뷔작이다. 라디오헤드의 조니 그린우드와 필 셀웨이가 이미 영화음악가로 활동하기 때문에 언젠가 톰 요크도 영화에 도전하리라 조심스레 예상해왔다. 사실 톰 요크는 여러 번 영화 사운드 트랙 작업을 제안 받았다. 일례로 데이비드 핀처의 영화 ‘파이트 클럽’ 사운드 트랙을 단호히 거절한 바 있다. ‘서스페리아’의 감독 루카 과다니노는 국내 영화 팬들에게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유명하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는 영화음악으로도 찬사를 받았다. 루카 과다니노는 후속작으로 ‘서스페리아’ 제작이 결정된 순간부터 톰 요크와 함께 작업하리라 결심했다. ‘서스페리아’는 1977년 발표한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루카 과다니노는 톰 요크를 직접 찾아가 영화의 음악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톰 요크는 루카 과다니노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영화 사운드 트랙에 참여해본 적도 없는 자신에게, 이미 전설이 된 원작 ‘서스페리아’의 리메이크 작품을 맡기다니. 톰 요크는 몇 달간 거듭 생각하며 원작 영화를 여러 번 봤다. 원작 사운드 트랙은 역시나 뛰어났고, 원작을 레퍼런스 삼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톰 요크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 그런 순간들이 있잖아요. 도망가고 싶은데 안 하면 후회할 것 같은 순간…” 마침내 그는 ‘서스페리아’의 음악 감독으로 합류했다. 톰 요크는 원작 음악이 ‘모티브를 계속 반복하는 형식’을 사용하는 점에 주목했다. 이미 라디오헤드의 여러 곡에서 톰 요크는 반복적인 음악 어법을 즐겨 사용해왔다. 톰 요크는 원작 음악을 들으며 “제발, 제발, 그만 반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느꼈고, 이러한 반복 기법은 톰 요크의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동안 무슨 주문을 만드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영화 ‘서스페리아’는 1977년 독일 베를린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루카 과다니노는 톰 요크에게 1977년 음악 레퍼런스들을 제공했다. 톰 요크는 영화 작업 경험이 없는 자신을 믿어 준 루카 과다니노를 신뢰했다. 해외 여러 인터뷰를 살펴보면, 톰 요크가 루카 과다니노의 제안을 대부분 긍정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이 느껴진다. 톰 요크는 자신이 좋아하는 독일의 크라우트록에 집중하며 작업을 발전시켰다. “우리가 작업을 결정하기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사실 루카 과다니노는 미친 것 같아요. 그런데 미친 사람들이 만나는 건 좋은 거죠!” 톰 요크는 루카 과다니노의 각본에도 경이를 표했다. 루카 과다니노의 “자신이 원하는 걸 설명하는 방식”이 매력적이라고좋았다고 한다. 영화 ‘서스페리아’에서 루카 과다니노는 원작을 잊게 할 정도로 대담한 재해석을 선보인다. 특히 영화 중반부터는 원작과 완전히 다른 구성이 특징이다. 극의 배경이 되는 1977년 독일은 극좌파 세력의 테러가 기승이었다. 루카 과다니노는 당대 유럽의 정치·사회적 모순과 마녀사냥에 초점을 두고 극을 풀어간다. 사회에 끊임없이 저항해온 톰 요크가 루카 과다니노 각본에 흥미를 느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미 다수의 영화에 참여한 밴드 멤버 조니 그린우드는 톰 요크에게 “영화 장면에만 매달리지 말고, 하고 싶은 실험이 있으면 밀고 나가라”고 조언했다. 톰 요크가 영화 ‘엑소시스트’의 ‘Tubular Bells’를 레퍼런스 삼았다고 밝힌 것처럼, ‘서스페리아’ 사운드 트랙 ‘Suspirium’은 특히 아름답다. 피아노와 플루트, 목소리의 찬연한 조화를 듣고 있자면 공포영화 음악이 이리도 달콤해도 되는지 묻고 싶어진다. 영화는 공포보다는 절망을 느끼게 하며, 톰 요크의 음악은 공포보다는 슬픔에 닿아있다. 톰 요크의 새로운 도전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새해부터 톰 요크는 클래식 음악을 작곡했다는 사실을 전했다. 그는 프랑스 출신의 자매 피아니스트 카티아 & 마리엘 라베크를 위해 ‘Don’t Fear the Light’를 썼으며, 프랑스와 영국, 독일에서 투어 공연을 함께했다. 오는 7월 28일, 톰 요크는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첫 단독 내한 공연을 열 예정이다. 이번 내한은 2012년 라디오헤드로 지산밸리록페스티벌을 찾은 이후 7년 만이다. 이번 공연은 라디오헤드부터 솔로 활동까지 톰 요크와 작업한 프로듀서 나이절 고드리치와 비주얼 아티스트 타릭 배리가 함께할 예정이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곳에서 음악으로 덤덤히 이야기하는 톰 요크. 그는 오늘도 21세기 클래식을 만들어가고 있다.

글 장혜선 사진 Sean Evans

톰 요크 내한공연  

7월 28일 오후 7시 올림픽공원 올림픽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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