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 뤼스에 바치는 현대적 헌사 ‘니진스키와 함께’

상젤리제 극장에서 몬테카를로발레가 선보인 니진스키의 작품을 다시 만나다

우수 컨텐츠 잡지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6월 7일 9:00 오전

WORLD HOT

지난 2월 8~10일 몬테카를로 발레단과 오케스트라가 파리 공연을 가졌다. 이번에 선보인 프로그램은 ‘니진스키와 함께(En compagnie de Nijinsky)’로 발레리노이자 안무가 니진스키의 전설에 관한 작품으로 구성됐다. 2월 9일 샹젤리제 극장은 발레 뤼스(1909년 세르게이 디아길레프가 조직한 발레단) 팬들로 만원이었다. 이곳은 1913년 니진스키가 ‘봄의 제전’을 초연한 곳이기도 하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이 발레 뤼스에 보이는 이러한 애착은 우연이 아니다. 20세기 초 발레 뤼스는 모나코에 안착해 당대 뛰어난 예술가들과 협업하며 놀라운 창작력을 과시했기 때문이다. 공연된 네 작품 중 제로엔 베르브뤼젠의 ‘꿈을 원하나?(Aimai-je un rêve?)’와 요한 잉에르의 ‘페트루슈카’는 프랑스 초연으로,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의 ‘다프니스와 클로에’(2010)와 마르코 괴케의 ‘장미의 정령’(2009)은 리바이벌 공연으로 선보였다. 지휘는 카즈키 야마다(Kazuki Yamada)가 완주했다.

니진스키의 체취에서 더해진 새로움

‘다프니스와 클로에’는 라벨의 동명 음악에 붙인 작품이다. 에르네스트 피뇽 에르네스트가 무대 영상과 장식을 담당했다. 마이요는 라벨의 작품이 지닌 텍스트적 흐름을 생략하고 두 사춘기 소년·소녀의 사랑 이야기로 작품을 그렸다. 고로 안무는 깨질 것 같은 연약함과 애무의 연속에 중점을 두었다. 마이요는 “이 발레에서 나는 우리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이미지로 남아 있는 청소년 시절의 추억을 재생하고 싶었다. 이 작품은 욕망의 발현과 두려움, 그리고 매혹을 연상시킨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적이고 일상적인 동작을 취하는 두 연인은 섬세한 애무를 통해 떨어질 수 없는 연관성을 그린다. 바람이 불면 한쪽으로 몰리는 풀의 움직임처럼 모든 동선이 유연하다. 그리스 조각상에서 보이는 얇은 튜닉을 연상시키는 백색 의상 또한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다프니스 역의 시몬 트리뷰나와 클로에 역의 안자라 발레스테로의 표정에는 두 캐릭터가 지닌 희열과 동경이 물씬 담겨있었다. 적갈색 의상을 입은 도르콩(마테즈 유르반)과 리세용(마리아나 바라바스)이 등장해 4인무를 펼치는 부분에서는 색다른 다이내믹과 비르투오소가 더해지면서 생기는 묘한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꿈을 원하나?’는 드뷔시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에 붙인 안무로 니진스키의 체취가 강하게 담겨있다. 100년 넘는 발레 뤼스의 전통이 여전히 시사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이 발레가 추구해온 근대적인 접근 덕분이다. 이에 더해 베르브뤼젠은 니진스키적인 요소와 자신만의 비전을 성공적으로 융화시켰다. 그는 목신 캐릭터를 두 명의 무용수로 늘렸는데 목신 캐릭터(알렉시 올리베이라)는 니진스키적 요소인 얼룩무늬가 들어간 타이츠를 입고 그의 분신인 청년은 얇은 청바지 차림을 하고 등장한다. 긴 머리에 마스크를 쓴 목신은 야성적이고 괴기한 느낌을 준다. 이를 통해 베르브뤼젠은 드뷔시 전주곡의 영감이 된 말라르메의 시 ‘꿈을 원하나?’에서 제시된 목신의 동물적인 일면을 색다르게 강조하고 있다. 안개처럼 무대를 뒤덮은 스모그 속에서 두 무용수는 하나인지 둘인지 모를 모호한 듀오를 펼친다. 마치 사랑을 나누는 것 같기도, 마치 투쟁을 벌이는 것 같기도 하다. 작품은 남체의 아름다움을 극단적으로 부각함으로써 중성인 목신이 성적 정체성을 찾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 세기 이전의 작품으로 현대사회를 풍자하다

‘장미의 정령’은 베버의 두 작품 ‘무도회에의 초대’와 ‘영혼의 주인(Le maître des esprits)’에 안무됐다. 무대를 뒤덮은 붉은 장미 꽃잎과 동일한 꽃잎으로 만들어진 바지를 입은 남성 무용수가 상체 동선이 딱딱 끊어지듯 반복되는 역동적인 동선을 펼쳤다. 솔로는 환상적인 순간을 선사했다. 다만 니진스키적인 의상 빼고는 새로운 비전이나 내레이션은 볼 수 없어 유감스러웠다. ‘페트루슈카’는 내레이션면에서 새로운 비전을 유희적으로 제시했다. 잉에르와 극작가는 페트루슈카를 낡아서 버려진 마네킹으로 설정했다. 이는 소비주의에 빠져 사는 현대 사회에 대한 풍자다. 바닥에는 쓰레기처럼 쌓인 하얀 마네킹이 가득하다. 유명 디자이너 세르주 라거포드는 그중 한 마네킹을 잡고 애무한다. 그 순간 영혼이 없던 마네킹 페트루슈카(조르주 올리베이라)는 의식을 지니게 되고 자기 옆에 버려진 발레리나(안나 블랙웰)를 향해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는 무어인(알바로 프리에토)을 사랑한다. 여기까지는 모두 하얀 인형 차림이다. 의상팀에 의해 페트루슈카는 노란색과 빨간색 모티브의 광대복, 무어인은 북아프리카풍 물색 조끼와 바지 그리고 삼각모자, 발레리나는 쿠레주풍 붉은 플라스틱 원피스에 금발 가발을 쓰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게 된다. 이들의 삼각관계는 질투에 찬 페트루슈카가 칼을 들고 무어인을 찌르러 따라다니며 아주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원작에서 시장터를 가로질렀던 것과 달리 이들은 패션쇼장을 횡단한다. 즉, 스트라빈스키의 대본에 없는 캐릭터들을 창조한 것이다. 칼 라거펠트를 풍자한 세르주 라거포드(레나르트 라츠케)나 패션 크리틱 안나 윈투어(에이프릴 발)가 그 예다. 재봉·화장·헤어스타일 등 여러 스태프도 등장한다. 안나 윈투어가 등장하자 스태프들은 그녀의 발아래 차례로 의자를 대며 길을 만든다. 피상적인 패션계의 아첨을 패러디한 것이다. 이곳을 무어인을 죽이기 위해 따라온 페트루슈카가 쑥대밭으로 만든다. 이에 라거포드의 조수는 페트루슈카의 상체와 하체를 잘라 분리한다. 라거포드가 손에 쥔 인형 페트루슈카를 가슴에 품고 노스탤지어에 빠지며 조명이 꺼진다. 잉에르는 마네킹 캐릭터 안무에 고장 난 로봇 같은 반복적인 동작과 기계처럼 딱딱하게 움직이는 제스처를 적용했다. 엇박자와 강박적인 박동이 긴장감을 조성하는 스트라빈스키의 음악(1947년 버전)에 맞추어 의상팀 군무는 동선이 큰 동작과 잔잔한 스텝이 잘 맞아떨어지게 구상했다. 유머러스한 작품의 정서는 바우슈의 ‘연극 무용’을 떠올리게 했고, 창조적인 무브먼트에서는 발레 뤼스 특유의 개방성이 돋보였다.  글 배윤미(파리 통신원)

Leave a reply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