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명작 발굴하기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0월 18일 9:00 오전

노먼레브레히트 칼럼

숨은 명작 발굴하기

코로나로 구속된 일상에 신선한 바람을 주입할 음반 5선

올 여름 음악계는 힘 빠지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치명적인 코로나로 인해 대면 공연이 제한됐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적 시기에 청중의 마음을 달래줄 대형 음반사들의 상상력 또한 부족했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음반사가 그랬다는 말은 아니다. 여행이 사라진 이 시대에 기운을 돋아줄 몇몇 음반을 소개한다

샐리 비미시 ‘왕의 영금술사’ 외

애블라나 현악 3중주단

Willowhayne Records WHR067

만약 영국 히스로 공항 입국심사장에서 영주권 증명을 위해 영국 음악 작품을 꼽아 말해야 한다면, 이 앨범이 좋은 선택지가 될 것이다. 에블라나 현악 3중주단(바이올린 조너선 마틴데일·비올라 루시 놀란·첼로 페기 놀란)은 제럴드 핀치(1901~1956)의 ‘현악 3중주를 위한 전주곡과 푸가’에 대한 놀라운 해석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그가 고인이 된 그의 스승을 위해 작곡한 애도곡이다. 시골 교회의 목사같이 작곡했던 영국계 유대인 핀치의 작품에 대해 명확히 말하기 어렵지만, 이 곡은 그의 가장 완벽한 영감과 진실한 순간 중 하나가 분명하다.
올해 여름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휴 우드(1932~2021)의 ‘이타카’ Op.61은 모든 고요에도 불구하고 ‘율리시스의 귀향’이라는 설득력 넘치는 개념 속에서 사실적인 드라마를 자아낸다.
영국인보다 아일랜드인에 가까운 어니스트 존 모에란(1894~1950)의 현악 3중주곡(1931)은 뚜렷한 에메랄드 빛깔을 띠고 있으며 그 빛깔은 변함이 없다. 이 작품은 그가 남긴 대부분의 다른 작품보다 더 활기차고 경쾌하다.
이 앨범에서 최고의 영광은 샐리 비미시(1956~)의 ‘왕의 연금술사’(2013)에게 돌아간다. 작품은 플로든 전투에서 참패하고, 영국 역사상 전투에서 전사한 마지막 왕으로 기록된 제임스 4세를 그리고 있다. 비미시는 제임스 4세를 ‘음악 묘비명’을 받을 자격이 있는 문화인으로 여긴다. 그녀가 보내는 헌사는 백파이프의 흔적에 능하고 서정적인 탄성이 매력적이다.

니노 로타의 실내악

다이신 카시모토(바이올린)/에마뉘엘 파위(플루트)/ 폴 메이어(클라리넷) 외

Alpha ALPHA746

1943년 여름, 밀라노의 젊은 작곡가 니노 로타(1911~1979)는 이탈리아 남부의 미개발 지역으로 이주한 뒤 그곳에서 여생을 보낸다. 당시 32세였던 그는 바리에서 교직 생활을 하고, 이후 음악원 교장직을 맡은 것에 만족하는 듯했다. 하지만 그가 부업으로 호화로운 영화계에 뛰어들어 돈을 벌지 않았더라면, 세상은 그의 소식을 다시 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로타는 페데리코 펠리니(1920~1993) 감독의 영화 ‘백인 추장’(1952)을 기점으로 그와의 공생을 시작해 세계적인 명성을 거머쥐었고, 영화음악이라는 예술 장르를 재정립했다. 오늘날 우리가 ‘뭔가 영화음악처럼 들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미국 할리우드의 코른골트(1897~1957)와 이탈리아의 할리우드라 불리는 시네시타의 로타가 남겨둔 흔적 덕분이다. 그럼에도 코른골트의 음악이 그랬듯, 로타의 ‘진중한’ 음악 또한 비교로 고통받았다.
베를린 필하모닉의 스타 주역들과 그들의 동료들이 총출동한 이번 앨범은 로타가 1950년대 영화음악의 절정기에 이탈리아 바리에서 쓴 3중주 및 9중주를 집중 조명한다. 키가 작고 말을 아꼈던 개인적인 성향의 로타는 음악적 자기 성찰에 진귀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펠리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세계는 안쪽에, 즉 그의 내밀한 곳에 있었으며, 현실이 그곳에 들어갈 방법은 없다.” 그의 플루트·바이올린·피아노를 위한 3중주와 클라리넷·첼로·피아노를 위한 3중주는 오선지 위 여기저기에서 춤추고 있지만, 그 안에는 스스로 망명한 야생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오는 듯하다. 9중주 역시 동시대 체코 작곡가 마르티누(1890~1959)의 걸작에 버금가며, 일반적인 음악적 대화보다 드높은 초월성에 도달할 만큼 놀랍다. 마지막에 수록된 그의 전주곡 13·2번은 바흐만이 가져올 수 있는 침묵으로 나를 함락시켰다. 이번 앨범에는 에마뉘엘 파위(플루트)·다이신 카시모토(바이올린)·오를리엥 파스칼(첼로)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로타가 제시한 쾌활한 영감에 바짝 긴장한듯하다.

필립 글래스 현악 4중주 3번 ‘미시마’ 외

페카 쿠시스토(바이올린)/니코 멀리(피아노)/노르웨이 체임버 오케스트라

Pentatone PTC5186745

코로나로 인한 제약으로 공연계는 침체되었다. 누구도 새로운 교향곡을 작곡하지 않았던 지난 10년 동안 우리는 바이올리니스트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페카 쿠시스토와 같은 이들에게 초연 의뢰된 새로운 몇몇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번 신보는 미니멀리스트적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들로 그 수준이 한층 높아졌다. 핀란드의 거장은 필립 글래스(1937~)의 작품을 비롯해 그를 보조하던 미국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니코 뮬리(1981~)의 초연 작품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단조롭고 예측 가능할까봐 지레 겁먹었던 나는, 퍽 기분 좋게 여러 번 놀라고 말았다. 멀리의 바이올린 협주곡 ‘수축(Shrink)’은 반복적이기는 하나, 파란만장한 결론으로 우리를 몰고 가는 영속적인 추진력이 이를 완화한다. 벨기에산 혹독함 한 줄기와 미국산 컨트리 음악 한 덩이가 풍성한 거품을 만들어내고, 성공회 찬송가는 지하 묘지 어딘가에 파묻힌 채 도사리고 있다. 나는 멀리의 반 세기적 절충주의에 대해 오랫동안 감탄을 금치 못했다. 특히 이 협주곡은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페카 쿠시스토(1976~)는 여느 말이 필요 없이 그 어떤 작품도 쉽게 들려주는 현란한 실력의 가진 거장이다.
필립 글래스의 작품을 평가하는 이들은 절대 그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비난은 오직 그를 격려할 뿐이다. 일본 소설가 유키오 미시마(1925~1970)의 삶과 격렬한 죽음에 대한 영화적 명상을 담은 글래스의 현악 4중주 3번 ‘미시마’를 쿠시스토가 편곡을 맡아 노르웨이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새로운 악보로 재탄생시켰다. 글래스에 대해 그의 평소 연주보다 그의 작품이 더 낫다고 말하는 데에 무례한 의도는 없다. 음악적 재능은 극도로 예리하다. 다만 그가 이따금 곡조를 바꾸기를 바랄 뿐이다.

빌헬름 푸르트뱅글러 교향곡 1번

파우지 하이모르(지휘)/ 로이틀링겐 뷔르템베르크 필하모닉

CPO 555377-2

제2차 세계대전으로 유럽 대륙 전역에서 수백만 명이 사망한 1943년 봄,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지휘자가 베를린 필을 소집해 자신이 처음으로 작곡한 b단조 교향곡 1번을 연습시켰다. 빌헬름 푸르트뱅글러(1886~1954)는 1908년부터 간헐적으로 이 작품을 써왔으며, 당시 큰 기대감을 안고 4악장을 막 추가한 터였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열망은 초연에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굉장히 실망스러웠어요” 그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전쟁으로 현대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당시, 그 모든 슬픈 현실 가운데에서도 교향곡은 상대적으로 사소하게 보인다. 하지만 푸르트뱅글러 자아의 크기는 그가 무시하기로 선택한 나치에 대한 공포를 비롯해 그의 주변 대부분을 가릴 정도로 거대했다. 그의 교향곡은 후대에 보내는 ‘복권’이어야 했지만, 리허설 도중 그는 작품으로는 도심을 벗어나게 해줄 차 한 대도 사지 못할 것을 분명 깨달았을 것이다.
1954년 푸르트뱅글러가 세상을 떠나고, 이 전설적인 지휘자에 대한 숭배는 나날이 커졌지만, 그의 첫 번째 교향곡은 1991년까지 연주되지 못했다. 그 뒤 그의 작품을 담은 음반 두 개가 발매되었으나, 그 어느 음반도 납득할 만하지 못했다. 나는 파우지 하이모르가 지휘하는 로이틀링겐 뷔르템베르크 필하모닉으로부터 규모에 상관없이 독일 음악계에 숭고한 기여를 하는 레이블을 더 많이 기대했었다. 푸르트뱅글러의 작곡 재능은 음계로 측정하기에는 너무 작다는 내 이전 판단을 이내 확인했지만 말이다.
만약 브루크너가 말러와 결혼해서 늦둥이를 낳고 아이의 교사로 바그너와 브람스를 고용했다면 그 아이가 푸르트뱅글러의 교향곡 b단조 같은 것을 끼적였을 수도 있겠다. 이 작품은 작곡되었다기보다, 혼합된 것에 가깝다. 다른 작곡가들의 전매특허 주제들이 약 90분가량 되는 거대한 배경 여기저기에 붙어 있고, 각 악장은 이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곡조로 시작된다. 클래식 음악계의 보물을 대량으로 훔치는 모습은 너무나 노골적이다. 3악장의 아다지오(느리게)가 시작된 지 6분 만에 푸르트뱅글러는 마치 우리가 전혀 모를 것처럼 베토벤의 9번 교향곡 일부를 쏟아 내기 시작한다. 허영심은 차치하고서라도, 어떻게 그렇게 통찰력 있고 정확한 지휘자가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 무심할 수 있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할 때까지 그는 자신과 타인의 음악을 거듭 반복한다. 로이틀링겐 뷔르템베르크 필하모닉의 훌륭한 음악가들은 우리가 시련을 극복하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음반에 포함된 굽실거리는 작품 해설은 지금껏 오랫동안 내가 읽었던 해설 중 가장 혼란스럽다.
카푸스틴 피아노 협주곡 4번 외
프랑크 두프레(지휘·피아노)/로산너 필리펀스(바이올린)/ 뷔르템베르크 하일브론 체임버 오케스트라
Capriccio C5437
니콜라이 카푸스틴(1937~2020)은 세상이 그의 음악을 주목하기 전에 죽어야만 하는 운명이었다. 재즈에 대한 사랑으로 그는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라디오 오케스트라의 하우스 피아니스트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 나가며 자신의 음악이 아닌 다른 이들의 음악을 연주했다. 카푸스틴의 ‘피아노와 빅 밴드를 위한 토카타’(1964)는 그의 창조성을 분명하게 전달한다. 구소련 정치 위원들은 감명받지 않았지만 말이다. 카푸스틴은 공연과 출간을 몇 번 달성하긴 했지만, 서구 세계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21세기의 일이다. 그는 6개의 피아노 협주곡과 20개의 소나타 등 161편의 작품을 남긴 채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현대의 청자들에게 그의 음악은 예스럽게, 마냥 진부하게 들린다. 그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은 1930년대 무도회장 사교춤의 스윙과 정취가 느껴지며, 바이올린·피아노·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Op.105는 록밴드 롤링 스톤스가 탄생 당시 유행에서 벗어난 존경할 만한 리듬을 떠올리게 한다. 2021년 카푸스틴의 음악을 듣는 것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행위이자 유행의 명령에 대한 반항의 몸짓이다. 그는 시대에 역행하는 작곡으로 우리가 현재 가진 불만에 다다르고 있다.
‘뉴욕타임스’지는 이달 특집 기사에서 구소련 작곡가들의 짓밟힌 꿈을 뛰어넘는 명성을 다루며 시대에 역행하는 작곡가에 대한 관심을 두도록 발판을 마련했다. 이 앨범은 작곡가의 출신이 어디인지 문득 궁금해지게 하는 앨범이다. 나는 그 누구도 ‘카푸스틴은 모스크바 출신이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에 피아니스트 랑랑을 걸겠다.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 프랑크 두프레(1991~)는 카푸스틴의 피아노 협주곡 4번에서 적당한 리듬감과 약간의 블루스를 가미한 반면, 로산너 필리펀스(1986~)의 바이올린 연주는 놀라울 정도로 즉흥적이다. 다만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음반 재킷이다. 왜 바이올리니스트나 지휘자보다 피아니스트 두프레의 얼굴이 메인을 장식하고 있으며, 음반 홍보에도 왜 그의 얼굴이 더 많이 사용되고 있는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좋게 보아도 그가 전체 비용을 지불한 게 아닌 이상 실례가 아닐까. 번역 evener
글 노먼 레브레히트 영국의 음악·문화 평론가이자 소설가. ‘텔레그래프’지, ‘스탠더즈’지 등 여러 매체에 기고해왔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블로그(www.slippedisc.com)를 통해 음악계 뉴스를 발 빠르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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