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수첩
김한 클라리넷 리사이틀
알고보면 너무 정교한 현대음악
10월 7일 금호아트홀 연세
메시앙(1908~1992)·윤이상(1917~1995)·슈톡하우젠(1928~2007)은 동시대 작곡가이자 같은 음악 양식을 공유한 음악적 동료였다. 그리고 우리가 주목하는 젊은 연주자 김한(클라리넷)·양인모(바이올린)·브래넌 조(첼로)·박종해(피아노)도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음악가들이다. 그들이 함께 모여 세 작곡가의 작품을 한 무대에 올렸다.
공연 시작 전, 연주자가 입장하는 문 너머로 윤이상의 ‘피리’ 도입부를 연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주자에게 언제나 부담스러운 순간은 곡의 도입부일 터. 무대에 등장한 김한은 ‘피리’의 첫소리를 신중함으로 시작했다. ‘피리’는 한국의 전통악기 피리의 속성과 음향적 특징을 서양악기로 옮겨온 듯하지만, 윤이상은 소리의 재현이 아닌 철저히 제3자의 시선으로 피리 소리를 그렸다. 그런데도 국악기 본연의 정신은 작품 속에 있다. 그 정신은 윤이상 안에서 소멸하지 못한, 단군의 고조선과 조선에 거쳐 건너온 리듬과 가락이었다. 마디가 아닌 호흡으로 구획되는 박절, 박자표의 지시가 아닌, 대기 중 흐르는 시간의 교통을 따르는 것이 ‘피리’가 향하는 방향이었다. 김한이 표현한 현대주법은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또 정확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냉철한 시선으로 작품을 해석한 탓일까. 악보 너머의 시선으로만 볼 수 있는 이 곡의 ‘정신’은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보다 자유롭고 음표 사이의 호흡이 더 여유로웠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두 번째로 만난 슈톡하우젠의 ‘작은 어릿광대’는 1975년 작곡한 클라리넷 독주곡으로, 이탈리아 희극에 등장하는 어릿광대(할레퀸)를 본따 제목을 지었다. 연주에 앞서 “무대 준비로 인해 5분 정도 소요될 예정이니, 기다려 달라”는 안내 문구가 들려왔다. ‘5분 치고는 길다’는 생각이 떠오를 무렵, 무대 좌·우측의 문이 활짝 열리고 요란한 클라리넷의 트릴 소리와 함께 광대가 무대로 난입했다. 하얗게 분칠하고 입술은 빨갛게 칠한 김한. 그는 어릿광대가 틀림없었다. 김한은 음악에 맞추어 슬픈 표정·익살스러운 표정·화난 얼굴을 지어 보이며 객석을 향해 손가락질하기도, 발을 굴리기도, 무대를 뛰어 가로지르기도, 엉덩이를 흔들고 머리를 흔들기도 했다. 관객들은 어디까지 웃어야 할지, 어디까지 울어야 할지 혼란스러워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작곡가의 지시와 기획에 따른 것이다. 슈톡하우젠은 연주자가 공연을 위해 준비한 특정 의상을 입은 채 연주와 춤, 마임을 함께 수행할 것을 적고 있다. 사정에 따라 무용수와 타악기 주자를 동반하기도 한다.
김한의 익살스럽고 ‘진심’인 연기에 이내 관객은 그의 연주(연기)에 마음껏 웃고 박수를 보냈다. 음악은 곧 광대의 언어이자 슈톡하우젠의 유머였다. 레치타티보가 기악으로 옮겨오면 저런 모습이겠구나 생각하며 김한과 슈톡하우젠의 유머를 음미했다.
2부는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를 김한을 포함해 양인모(바이올린)·브래넌 조(첼로)·박종해(피아노)의 연주로 만났다. 네 사람은 마치 하나의 소리인 것처럼 연주했다. 현의 질감도, 바람의 질감도, 타건의 질감도 경계 없이 하나였다. 각 악기 솔로가 중요하게 부각되는 악장을 포함해 갑작스러운 시작, 긴 휴식 사이 리듬이 흐르는지 알 수 없는 구간 등 연주자 간의 호흡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다섯 번째 곡인 ‘예수님의 영원성에 대한 찬양’에서 수십 마디에 거쳐 진행되는 크레셴도와 ‘몰토 비브라토’의 정상을 그려낸 브래넌 조의 연주도 인상 깊었다.
이번 공연을 위해 주저 없는 용기를 낸 김한과 연주자들의 훌륭한 호흡을 비롯해 모든 정적과 음악 사이의 호흡을 인내로 잘 참아낸 관객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김한은 오는 12월 30일 재즈 앙상블과 함께 미국 재즈 클라리네티스트 베니 굿맨(1909~1986)의 ‘Sing Sing Sing’과 거슈윈의 ‘포기와 베스’ 등을 연주할 예정이다.
글 임원빈 기자 사진 금호문화재단
국립오페라단 삼손과 데릴라
연출가의 ‘선택’과 오페라단의 ‘선택’ 사이에서
10월 7~10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원작 자체를 훼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에요. 제게는 이렇게 각색한 이야기가 훨씬 더 강력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결정한 것이죠. (연출가 아흐노 베흐나흐, 국립오페라단 ‘삼손과 데릴라’ 프로그램북 중)
베흐나흐는 ‘과감한 연출가’였다. 기원전 1500년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영웅 삼손의 이야기를 1938년 독일 나치 시대로 가져왔다. 이에 따라 갈등 구조와 인물 설정도 달라졌다. 종교적 박해는 나치즘에 의한 탄압으로 각색했고, 삼손(크리스티안 베네딕트·국윤종)은 유대인 저항군의 지도자, 그를 유혹하는 블리셋 여인 데릴라(이아경·김정미)는 독일 스파이, 블리셋 민족이 섬기는 다곤신의 대사제(사무엘 윤·이승왕)는 히틀러를 추종하는 나치 SS친위대 대장으로 변모했다.
베흐나흐는 ‘친절한 연출가’였다. 21세기식 ‘삼손과 데릴라’로 관객을 안내하는 장치를 여럿 마련해놓았다. 특히 시각적 연출을 직관적으로 활용했다. 막이 오르고 세바스티안 랑 레싱/코리안심포니가 서주를 시작하자, 무대에 흑백 영상이 투사됐다. 이번 프로덕션의 핵심이 된 ‘수정의 밤’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 나치 단체 회원들의 무차별 공격으로 인해 평범한 일상을 잃은 유대인들과 파괴된 거리 곳곳의 모습이 비쳤다. 덕분에 관객은 1938년 배경의 ‘삼손과 데릴라’에 몰입한 채로 1막 관람을 시작할 수 있었다.
베흐나흐는 ‘고증의 연출가’였다. 무채색 일변도의 무대는 잔혹하고 비극적인 역사에 걸맞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삼손과 데릴라’의 이미지로 각인된 금빛 휘황한 중동풍과는 전혀 다른 미장센을 연출했다. 3면으로 구성된 무대 구조물은 막이 진행될 때마다 회전하여 다른 장소로 모습을 바꿨는데, 1막에서는 유대교 회당 밖의 잿빛 담벼락, 2막에서는 벽과 가구 모두 흰색의 응접실, 3막에서는 어두컴컴한 나치의 고문실이었다.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나치 군복, 나치 국장에 들어간 하켄크로이츠와 독수리 문양의 휘장 등을 활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흐나흐는 ‘불협화음의 연출가’였다. 그의 이러한 연출적 노력이 유려한 생상스의 음악 앞에서 자꾸만 불협화음을 냈기 때문이다. 삼손을 유혹하는 데릴라의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로 유명한 이 오페라의 음악은, 서정적이고 관능적인 선율이 주를 이루며 프랑스 낭만오페라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이러한 음악과는 무관하게 내내 경직된 분위기의 이번 작품에서는 삼손을 유혹하는 여인들의 관능적인 춤조차 나치가 육체 단련을 위해 권장했던 체조 동작으로 대체되었다. 연출과 음악의 부조화는 ‘삼손과 데릴라’의 백미로 불리는 3막 ‘바카날’에서 극에 달했다. 독특한 리듬, 이국적인 음악에 프랑스 오페라의 특징인 화려한 발레가 함께 어우러지는 장면인데, 음악보다는 삼손의 단죄라는 극적 결말을 위한 내용 전개에 치중하여, 향락을 즐기고 유대인을 학대하는 나치의 모습을 판토마임으로 표현하는 데 그쳤다.
베흐나흐는 자신이 이탈리아 아레나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베르디 ‘나부코’를 오스트리아인이 북이탈리아를 점령했던 시기와 장소로 각색한 사례를 들며, “현대 관객은 현대사를 더 자신들의 이야기로 느끼고 쉽게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작곡가의 오페라를 이탈리아 역사로 각색한 것과 한국에서 프랑스 오페라를 독일 나치 시대를 배경으로 각색한 것은 분명 다른 반응을 낳을 수밖에 없다. 한국 관객에게 선보일 작품이 가질 공감의 지점에 대해 더 깊은 고민을 해야 했다. 게다가 이번 무대는 국립오페라단이 생상스 서거 100주년을 맞아 40년 만에 올리는 ‘삼손과 데릴라’ 전막공연이라는 의의가 있다. 그만큼 국내에서 ‘삼손과 데릴라’는 전막오페라로 자주 접할 수 없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원작의 맛을 제대로 구현해 선보이는 것이 공연의 기획의도에도, “국민 모두를 위한 오페라”라는 국립오페라단의 비전에도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글 박서정 기자 사진 국립오페라단
제20회 전주세계소리축제 소리 #20
사람이 곧 축제요, 역사다
9월 29일~10월 3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손안에 전주세계소리축제(이하 소리축제) 스무 해 역사가 펼쳐졌다. 온라인으로 생중계된 개막공연 ‘리오리진(RE:Origin)’(9.29) 이야기다. 박재천 집행위원장이 총연출을 맡아 토크 콘서트로 기획했고, 20년간 소리축제와 인연을 맺어온 20여 명의 패널이 출연했다. 첫 소리축제에 참여했던 소리꾼부터, 축제의 성장을 지켜봐 온 평론가, 매년 축제의 모습을 기록해온 사진작가, 열혈 관객에서 이제는 예비 소리꾼으로 성장한 청소년까지, 소리축제에 대해 저마다의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 음악과 함께 어우러졌다. 사람이 곧 축제요, 역사였다.
“세월이 정말로 무상합니다. 제가 무대에 서서 20년 전 영상을 보니까 ‘야, 그때는 나도 좀 젊었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30년 후에도 또 이 무대에 설랍니다, 저는.”(소리꾼 김일구)
팔순의 소리꾼이 부르는 ‘광대가’에는 무상한 세월을 견딘 꼿꼿함이 있었다. ‘광대가’는 조선 말기에 신재효가 지은 판소리 단가다. 김일구 명창은 광대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조건을 열거하는 ‘광대치례’ 부분을 불렀다. 판소리를 근간으로 하는 소리축제의 본질을 되새긴 첫 무대였다. 기록 영상의 활용도 돋보였다. 판소리를 하기 전 보여준 영상에는 제1회 소리축제 개막식에 참석한 김대중 전 대통령 내외, 그리고 그 무대에 선 20년 전 김일구 명창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영상은 소리축제의 역사를 가장 생생히 돌아보는 방법이자, 코로나로 대면 관객은 물론 비대면 관객의 만족도까지 신경 써야 하는 축제 측의 영리한 선택이었다.
변해야 산다
20주년이라는 특별함에도 서울에서 전주로 향하는 발걸음을 망설인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무엇이 특별할까’라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축제의 꽃인 개·폐막공연과 주요 기획공연은 온라인에서 무료로 관람할 수 있었다. 굵직한 초청작들은 서울에서 이미 공연된 것이었다. 세계 속 한국음악을 지향하며 다채로운 월드뮤직 공연으로 타지역의 관객까지 불러모으던 소리축제의 차별성을 발휘하기도 힘든 시기였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리축제는 전주에 위치한 실내공연장인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관광명소인 전주한옥마을을 두 축으로 수십여 편의 공연이 펼쳐지는 대규모 축제이자 문화행사였다. 올해 축제는 확연히 달랐다. 행사 및 체험보다는 지역에서 예술성 높은 작품(총 26편)을 선보이는 데 무게 중심을 두었고, 관객과 예술가가 공연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도록 실내공연장 환경에서 개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예술제로의 전환을 지향하는 집행부의 의지와 대규모 축제 개최가 불가능한 코로나 상황이 맞물린 결과였다. 스무 살을 맞은 소리축제는 안팎으로 새로운 변화의 요구에 직면했다.
“소리축제는 전라북도의 응집된 문화예술적 배경과 가치를 안고 탄생한 축제인 만큼, 전통을 현대적으로 윤색하고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면서 문화계에 화두를 던지고 시대의 예술을 자극하는 매개로 존재해왔습니다. 그런 20년의 역사를 축제의 틀 속에 가두지 않고, 시대와 예술에 물음과 성찰을 던지겠습니다.”(박재천 전주세계소리축제 집행위원장)
축제는 관객이 만든다
10월 2일, 축제 4일 차에 한국소리문화의전당을 찾았다. 전통 그대로의 공연부터, 전통과 접목한 동시대 예술, ‘소리’의 의미가 확장한 대중음악 공연까지 이토록 다양한 장르가 함께하는 전통예술축제는 드물다. 과연 소리축제가 ‘예술성’을 기준으로 모아낸 공연들이 어떤 시너지를 보여줄까. 정작 이틀간 머물며 기자가 깊이 실감한 것은, 기획의 힘도, 뛰어난 예술성도 아닌, 축제를 축제답게 만드는 ‘관객의 힘’이었다. 어떤 공연이든 열린 마음으로 즐기는 관객들은 스무 해 지속된 소리축제가 쌓은 가장 큰 자산이었다.
지난여름, 국립극장에서 열린 여우락페스티벌을 관람하며 아쉬운 점이 있었다. 축제가 축제 같지가 않다는 것. 연주자들은 흥을 돋우고 연주는 절정으로 치닫는데, 객석에 가만히 앉아 관람하기란 고역이었다. 경직된 관람문화가 굳어진 극장은 애초에 축제 장소로 부적합하다고 내심 단정 지었다. 일반 공연과 달리, 리듬에 맞춰 몸도 흔들고, 함께 온 사람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관람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 선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소리축제에서는 그게 극장 안에서도 가능했다. 관객들은 마치 고수라도 된 양, 소리 높여 맞장구를 치고 크게 호응했다. 누구 하나 핀잔주는 이 없었다. 자연스레 함께 즐기는 분위기, 축제였다.
관객의 환호가 특정 공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윤진철 명창의 ‘적벽가’에 맞춰 연신 “얼쑤” “잘한다”를 쏟아내던 관객들은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온 전통음악, 탱고를 연주하는 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에도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아스토르 피아졸라 퀸텟은 내한공연 중에 전주를 찾았지만, 특별히 소리축제에서는 아쟁 김영길 명인과 합동 무대를 선보였다. 국립현대무용단의 ‘힙합(HIP合)’은 안무가 김설진(‘등장인물’)·김보람(‘춤이나 춤이나’)·이경은(‘브레이킹’)의 신작을 전통의 소리를 코드로 엮은 트리플 빌 작품. 새로운 한편 난해한 구석이 있었음에도 객석의 높은 집중도가 느껴졌다. 새로운 시도에 열려있는 관객들의 모습은 젊은 국악인들을 발굴하는 소리축제의 프로그램인 ‘소리프론티어’ 선정작품을 관람할 때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지역의 청년 예술가들이 장식한 폐막공연 ‘피버 타임–전북청년열전’은 “조금 촌스러울 수 있다”던 관계자의 귀띔이 무색하게, 가장 큰 환호를 받았다.
모든 게 변한다, 전통도
축제의 마지막 날 폐막 결산 기자회견이 열렸다. 박재천 집행위원장, 한지영 콘텐츠운영부 부장, 김회경 대외협력부 부장이 참석해 축제를 마치는 소회를 나누는 자리였다. 코로나 2년 차를 맞아 변화하는 소리축제의 방향성을 점검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한지영 부장은 “많은 스태프·예술가·자원봉사자·언론·관객까지, 다 같이 만드는 게 축제라는 걸 확인한 시간이었다. 함께 문화예술을 즐기는 공간과 시간에서 만들어지는 힘이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한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김회경 부장은 “최근 대중매체에서 국악을 너무 가볍게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어떻게 다르게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라고 밝혔다.
2014년부터 소리축제를 이끌고 있는 박재천 집행위원장은 올해 축제의 성과로 새로운 관객층을 확인한 것을 꼽았다. 초청공연으로 선보인 현대무용 작품 ‘다크니스 품바’ ‘힙합’을 통해 젊은 관객층이 유입된 것이다. 박 집행위원장은 “그간 전통의 소리 안에서 나름 여러 장르를 끌어안는 시도를 해왔는데, 지역에서 멀어서 보기 힘든 작품을 현장에서 보고 싶어 하는 관객의 수요도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소리축제는 전통을 근간으로 하기에 판소리, 전통음악의 비율에 대한 집착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라며, 전통예술축제에서 범위를 넓힌 예술제로의 전환을 본격적으로 예고했다.
글 박서정 기자 사진 전주세계소리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