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향한 차분한 발걸음 바수니스트 유성권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1년 11월 22일 9:00 오전

ARTIST’S ESSAY

일상의 예술사

무대를 향한 차분한 발걸음

바수니스트 유성권

나의 행복은 나의 안에 존재한다.

행복이란 결국, 각자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 정한경, ‘안녕, 소중한 사람’

 

2005년 3월 28일, 16세의 어린 나이에 독일 베를린으로 유학을 떠났다. 베를린의 첫인상은 젊음의 열기와 활기로 가득 찬 지금의 모습이 아닌, 어둡고 추운 곳이었다. 하지만 더 넓은 세상을 갈망했던 나에게 좋은 도전의 기회였기에 베를린은 특별한 곳이 되었다.

나의 세계가 달라진 건 한 마스터클래스에 참여하면서였다. 당시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대학생이 참여하는 마스터클래스였고,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압박과 부족함을 느꼈다. 한 학생의 연주를 듣고 ‘난 지금까지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그 학생의 얼굴, 연주가 열렸던 홀, 그리고 관객석에 앉아 연주를 보는 내 모습이 생생하다. 마스터클래스를 계기로 부족함을 알게 되었고, 내 음악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소리의 길 앞에

 

그날 이후, 아침마다 학교에 가서 연습했다. 당시 연습실을 빌리기 위해 대장에 이름을 쓰는데, 늘 내 이름이 첫 번째였다. 생각해보면 참 단조로운 일상이었다. 아침 7시에 연습을 시작했고, 수업을 듣고 밤 10시 30분에 연습을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물론, 연습 중간에 25센트짜리 커피를 마시며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단조로운 일상이 좋았다.

연습할 때는 단순했다. 될 때까지 했고, 걱정하기보다 문제 해결에 중점을 두었다. 당시의 교수님이 지금도 “너처럼 열심히 한 학생은 없었어”라고 언급하시는 것을 보면, 악기에 대한 노력의 결실을 그 말 한마디로 보상받았다고 생각한다.

교수님은 나의 두 번째 전환점이 되어주었다. 바순의 넓은 소리보다는 심지가 있고 둥글둥글한 따듯한 음색을 좋아했는데, 당시 직설적이고 넓은 소리의 연주자들이 많을 때였다. ‘내 소리가 문제인가?’ ‘내가 좋아하는 소리가 지금 시대에 맞는 소리일까?’하는 고민이 있었다. 입학한 지 3년째 되던 해에 계획했던 일이 잘 안되었고, 그 원인을 선생님으로부터 찾으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

학교를 옮겨야겠다고 결심하고, 교수님께 떠나겠다고 조심히 말을 건넸다. 그때 선생님의 놀란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어렵게 입을 떼셨다.

“아쉽지만, 옮기고 싶다면 옮겨도 돼. 하지만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소리가 아닌, 네가 좋아하는 소리를 연주했으면 좋겠어.”

그때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내가 좋아하는 소리를 하자. 교수님만큼 나의 소리를 좋아하고 이끌어줄 사람은 없구나.’

결국 학교를 옮기지 않았고, 다음 해인 2009년 베를린 방송교향악단 수석 오디션에 당당히 합격했다.

 

 

 

 

 

 

 

 

 

 

 

 

끊임없는 질문으로 잇는 음악의 길

‘내가 내는 소리가 좋은 소리인가?’라는 고민은 입단 이후에도 이어졌다. 학생이었던 내가 독일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의 수석이 되고, 수십 년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몸담았던 음악가들과 함께 하는 일은 힘들었다. 끊임없이 발전해야 했고, 좋은 소리를 위해 스스로를 다그쳐야 했다. 바순 부수석인 알렉산더 포그트는 “내가 독일 사람인데, 네가 진짜 ‘독일적인 소리’를 가지고 있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 한마디로 지난 인고의 시간을 보상받았다.

‘좋은 소리’에 대한 고민은 ‘좋은 음악’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생각해보면, ‘좋은 음악’이라고 느끼는 순간은 내가 느낀 감정이 음악이 이야기하는 감정과 일치하는 순간이다. 삶을 통해 겪은 모든 감정이 선율에 맞닿을 때, 상상으로 그리던 소리와 음악적 요소가 정확히 맞을 때 오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또한, 음악을 통해 느낀 바를 관객과 함께 나누고 공감할 때 음악가로서 행복을 느낀다. 내가 좋아하지 않지만, 그 음악이 대중에게 사랑받는다는 이유로 똑같은 음악을 해야만 한다면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마스터클래스를 가졌을 때 한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은 연주 때 떨리지 않으세요?” 내 대답은 “아니요. 난 설레요”였다. 음악과 나에 대한 확신이 좋은 음악과 소리의 바탕이 된다. 하지만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무대에 선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확신은 완벽한 준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떨렸던 무대라고 한다면 완벽하게 준비가 덜 된, 음악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무대였다.

‘지금 하는 음악이 맞는 걸까?’라고 더는 질문하지 않는다. 좋은 소리와 음악을 찾기 위해 쌓은 노력의 결실과 내 음악을 좋아해 주는 관객들이 질문의 답이 되었기 때문이다. 질투하기보다 응원할 수 있고, 바쁜 삶에 쫓기기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유로운 저녁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으로 모든 질문에 답이 되었다. 그런 삶 속에서 또다시 음악이 나에게 질문을 해올 때, 다시 묵묵히 그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 한다. 주위를 둘러보며, 꾸준히, 오래 걷고 싶다.

 

글 유성권

바수니스트 유성권(1988~)은 예원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고 재학 중 도독하여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을 마쳤다. 21세의 나이로 베를린 방송교향악단의 종신 단원으로 임명됐다. 현재 베를린 예술대에 출강하고 있다.

 

 

 

일러스트 임주희

피아니스트 임주희(2000~)는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로버트 맥도널드를 사사하고 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취미로 그리는 그림을 SNS에 올리는 등 대중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젊은 연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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