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사에 획을 긋고 있는 대국

한·중 수교 30주년, 대륙의 음악가들을 찾아서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1월 10일 9:00 오전

RECORD COLUMN

음악사에 획을 긋고 있는 대국

한·중 수교 30주년, 대륙의 음악가들을 찾아서

 

2020년 12월 28일, 팬데믹 상황에서 부음 하나가 들려왔다.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영국 국적으로 활동한 피아니스트 푸총(1934~2020)이 코로나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첼리스트 요요마보다 훨씬 이전에 서방에 이름을 알린 중국 출신 연주자였다. 한창 활동하던 1960~80년대 대륙의 연주자는 극소수 망명객 외엔 없었다. 그는 화려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한참 저평가되었다. 국내엔 그의 음반이 제대로 소개가 안됐다. 냉전 시대 ‘중공’ 출신이란 정치적 이유, 아니면 아시아 연주자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했는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대부분의 당시 한국 대중은 “중국인이 클래식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국 피아노 음악의 초석을 놓은 푸총

(1) Eloquence 4843712

(2) Sony 19439913092

 

 

 

 

 

 

 

 

 

지난해 푸총을 기리기 위해 많은 음원이 재발매됐다. 대부분 폐반된 60년대 웨스트민스터 녹음도 전집(Eloquence)(1)으로 태어났다. 그가 저평가됐다는 사실을 입증할 귀한 기록이다. 까마득한 후배 랑랑(1982~)은 음반 해설지에 푸총과의 인연을 이렇게 소개했다. “2001년 내 런던 공연을 지켜본 후 나를 껴안으며 눈물을 흘린 뒤 ‘기대가 크다’고 말한 기억이 생생하다.” 푸총의 눈물과 기대는 개척자로서 고독했던 과거와 상전벽해의 현재가 교차한 감정 아니었을까.

중국 연주자 계보는 마오쩌둥의 악명 높은 문화대혁명기(1966~1976)를 중심으로 전과 후로 나뉜다. 이전을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푸총이다. 운과 실력이 모두 좋았다. 1953년 폴란드 유학 기회를 잡고 1955년 아시아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에 3위로 입상하며 영국 망명길이 열렸다. 1965년 같은 대회에서 우승한 마르타 아르헤리치(1941~)는 훗날 “푸총의 강건한 타건과 화려함을 억제한 담백한 해석이 롤모델이 됐다”고 털어놨다. 1970년대 말 콜럼비아에서 녹음한 쇼팽 선집(Sony)(2)에서 전성기의 농익은 표현력을 맛볼 수 있다. 콩쿠르 입선 후 영국에 정착한 푸총은 타고난 사교성으로 자신을 ‘서양화’해 갔다. 3년간 예후디 메뉴인의 사위였고(푸총은 모로코 주재 한국 대사의 딸과 두 번째 결혼을 했다), 다니엘 바렌보임에게 재클린 뒤프레를 소개한 오작교였다. 그렇게 푸총이 유럽 음악계의 ‘인싸’가 되는 동안, 중국에 남아있던 부모는 문화대혁명기 ‘타락한 지식인’으로 낙인찍혀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맞는다.

 

아이작 스턴의 눈에든 원석

(3) DG 4631802

(4) DG E4742362

(5) DG 4775582

(6) Mirare MIR156

(7) Mirare MIR048

(8) Accentus ACC30372

문화대혁명의 암흑기 동안 미국에선 요요마(1955~)라는 걸출한 첼리스트가 나왔다. 하지만 사람들은 파리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교육받은 그를 중국인이라기보다 코즈모폴리턴으로 바라봤다. 1978년 개혁개방을 천명한 덩샤오핑 정권은 이듬해 미국 음악계의 대부인 아이작 스턴을 초청해 대대적인 선전을 벌인다. 공연·마스터클래스·지식층과의 대화로 채워진 스턴의 방중은 유명한 다큐멘터리 ‘마오쩌둥에서부터 모차르트까지’로 제작됐고, 1981년 아카데미상 다큐멘터리 부문에 수상을 하기도 했다.

당시 스턴의 눈에 들어 세대가 다른 두 명의 스타가 나왔는데, 첼리스트 지안 왕(1968~)과 여성 피아니스트 주 샤오 메이(1949~)가 그들이다. 10살의 나이에 스턴의 다큐에도 등장한 지안 왕은 예일 음대에서 알도 파리소를 사사하며 요요마를 잇는 세계적인 첼리스트로 성장했다. 그는 도이치 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한 첫 아시아 첼리스트이기도 하다. 하이든 첼로협주곡(DG)(3)과 바로크 앨범(DG)(4), 바흐 무반주 모음곡(DG)(5)은 굵고 거친 소리 대신, 소리의 미감과 노래에 집중한 지안 왕의 미덕이 잘 드러나 있다.

푸총과 같은 상하이 출신인 주 샤오 메이는 문화혁명 시기 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으나 끝까지 악기를 포기하지 않고 야만의 시대를 견뎠다. 스턴은 그의 인생역정을 듣고 미국 유학을 주선했다. 30세가 넘은 나이에 가정부 아르바이트를 하며 보스턴 뉴잉글랜드 음악원을 다녔고, 이후 프랑스 파리 음악원에서 본고장의 기술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배움을 마치고 데뷔했을 때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주 샤오 메이는 이례적으로 바흐·스카를라티·헨델 등 바로크 건반 음악에 천착했다. 구도자 스타일의 바흐 건반 파르티타(Mirare)(6)에는 영화 같은 삶과 중국 철학에서 깨달은 초연함이 묻어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10년 새 두 차례나 녹음했는데 첫 번째(Mirare)(7)보다는 나중 녹음(Accentus)(8)이 낫다.

 

바링허우 세대의 또 다른 이름, 자유와 개성

(9) Maxell ME3500023

(10) DG 4776402

(11) Warner 0190295320188

 

(12) DG 4715852

(13) DG 4776593

(14) Sony G010003538822

 

(15) Telarc 88985332922

 

(16) DG 4818971

 

 

개혁·개방 정책 중 음악계를 가장 크게 변화시킨 것은 공교육 부활과 유학 자유화다. 중국 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경쟁을 뚫은 천재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본고장 문화를 체화하며 사회주의 규율과 자본주의 자율성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이름+성’의 서양식 이름을 사용한 것도 신세대들의 특징이다. 1977년 베이징 출신으로 현재 톱클래스의 기타리스트로 성장한 슈페이 양은 첫 주자다. 곧이어 등장한 바링허우 세대(덩샤오핑이 1가구 1자녀 정책을 실시한 80년대에 태어난 세대)는 정부의 클래식 음악 굴기 정책과 맞물려 시장에 빅뱅을 일으켰다. 1982년생 동년배 윤디(리윈디)와 랑랑, 5살 아래인 유자 왕(1987~)은 DG와 함께 전속계약하며 ‘3총사’로 통했다.

이들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명확히 갈린다. 트렌디한 감각과 테크닉으로 무장한 미래 자원이란 호평과, 음악성은 얄팍한데 거대 시장을 뒷배로 성장했다는 혹평이 공존한다. 셋의 개성은 확연히 다르다. 윤디가 2000년 쇼팽 콩쿠르 우승했을 당시, 결선에서 연주한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Maxell)(9)은 중국인은 기교만 뛰어나다는 선입견을 무너뜨렸다.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의 선 굵은 해석과 머리 페라이어의 시정이 공존했다. 그는 2006년(DG)(10)과 2020년(Warner)(11) 같은 곡을 두 차례 더 녹음했는데, 자신이 직접 지휘까지 소화한 후자가 실황의 긴장감에 가까운 호연이다. 조형미가 돋보이는 리스트 소나타(DG)(12)와 감각적인 프로코피예프 협주곡 2번(DG)(13)도 활동 초기 입지를 다져줬다.

음악과 무관한 집안에서 교육받고 자란 윤디와 달리 랑랑은 중국 전통 현악기 얼후 주자인 아버지의 다그침 아래 악기를 익혔다. 랑랑은 이런 아버지에 반발해 자해를 시도했을 만큼 갈등의 연속이었다. 랑랑은 훗날 “베이징 시절은 최악이었다”고 회상했다. 이같은 질풍노도의 청년기는 한 자녀 정책 아래 태어난 바링허우 세대의 어두운 단면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의 극성은 좋은 방향으로 작용했다. 랑랑은 아버지와 함께 1997년 도미해 커티스 음대에서 수학하며 개리 그래프먼을 사사했다. ‘미국물’ 덕분일까. 랑랑이 지닌 즉흥성·쇼맨십·스토리텔링 화법·강한 카리스마는 윤디와 확실히 차별화가 된다.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와 피아노 협주곡을 담은 ‘뉴욕 랩소디’(Sony)(14)는 랑랑의 장점을 극대화된 수작이다. 데뷔 앨범인 탱글우드 실황(Telarc)(15)부터 2020년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DG)(16)까지 50종이 넘는 앨범을 통해 폭넓은 시공간의 장르와 사조를 소화했다. 마흔의 나이에 이룬 외형적인 성과만 보더라도 현시점에서 그가 가장 영향력 있는 피아니스트란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세대교체가 일으킨 변화의 바람

(17) DG 4778795

(18) DG 4778140

(19) DG 4794954

(20) Pentatone PTC 5186341

(21) Pentatone PTC5186355

(22) Decca 1797344

(23) RCA 88875061442

(24) BIS BIS2238

(25) BIS BIS2381

(26) Channel CCSSA80807

(27) Channel CCS40719

(28) Channel CCS43221

유자 왕은 또 다른 파격을 보여준다. 영국 ‘가디언’지는 “그의 내면엔 기교, 지성을 갖춘 피아니스트와 아르마니, 롤렉스 시계를 찬 뾰족 머리 패셔니스타가 혼재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유자 왕은 “음악은 충분히 아름답고 관능적인데 그에 맞는 옷을 입는 게 뭐가 문제냐”고 당당히 맞선다. 이런 자유분방함 때문에 ‘오늘은 어떤 연주를 들려줄까’보다 ‘어떤 옷을 입고 나올까’를 더 궁금해하는 청중이 많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연주에 자신 있다는 뜻이다.

유자 왕은 랑랑과 마찬가지로 커티스 음대에서 그래프먼을 사사했다. 젊음과 자유를 무기 삼아 앨범과 연주마다 정형을 거부하는 시그니처를 남겼다.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르슈카’(DG)(17)의 맹렬함, 쇼팽 소나타 2번의 명석한 프레이즈, 리게티 연습곡의 디테일한 리듬(DG)(18), 라벨 피아노 협주곡의 색채감(DG)(19)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다.

3총사 외에 1979년생 동갑인 사 첸과 시 시앙 웡도 마니아층의 지지를 얻고 있다. 사 첸은 윤디가 우승한 쇼팽 콩쿠르에서 4위에 올랐고 이어 리즈 콩쿠르와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 차례로 입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펜타톤에서 잇달아 발매한 음반 중 추천작은 쇼팽 피아노 협주곡 전곡집(Pentatone)(20)과 라흐마니노프 연습곡과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Pentatone)(21)이다. 시 시앙 웡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스위스 국적으로 활동하는 실력파 피아니스트로 RCA·데카·소니 등 다양한 레이블에서 베토벤·모차르트·슈만 등 독일 고전·낭만주의 레퍼토리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 슈만 앨범(Decca)(22)과 베토벤 협주곡의 실내악 편곡 버전(RCA)(23)은 필청을 권한다.

주링허우(1990대 이후 출생한 세대)를 지나 링링허우(2000년 이후 출생한 세대) 세대도 줄줄이 대기하고 있는데, 상하이 태생인 하오첸 장(1990~)이 단연 돋보인다. 랑랑과 유자 왕과 같이 커티스 음대에서 그래프먼을 사사해 ‘엘리트 코스’를 밟았고 2009년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일약 차세대 1순위로 떠올랐다. 슈만·리스트 등을 묶은 데뷔 앨범(BIS)(24)과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을 담은 음반(BIS)(25)은 콩쿠르 우승이 허명이 아님을 증명한다.

바이올리니스트로는 닝 펭(1982~)과 티안와 양(1987~)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닝 펭은 쓰촨(四川)음악원을 거쳐 영국 왕립 음악원에서 수학하고 2006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곧바로 채널클래식스와 계약한 뒤 파가니니 앨범 ‘헬로 미스터 파가니니’(Channel)(26)를 내며 ‘파가니니가 중국에서 현신했다’는 찬사를 받았다. 중국 무인들의 기예를 보는 듯한 그의 운궁은 초절기교의 프레이즈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다. 최근 발매한 파가니니와 비외탕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담은 음반(Channel)(27)과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를 담은 음반(Channel)(28)을 발매하며 파가니니 해석가로서의 위상을 굳히고 있다. 티안와 양은 베이징 음악원에서 배운 순수 국내파로서 말년의 스턴이 미국에 소개하면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었다. 그는 파가니니와 기술 면에서 쌍벽을 이루는 사라사테의 바이올린 작품 전곡을 낙소스 레이블과 녹음하며 평단의 찬사를 받고 있다.

 

중국 오케스트라계의 거목, 지휘자 유 롱

(29) DG 4836594

(30) DG 4836606

(31) DG 4837452

20세기 말 잇단 독주자 그룹을 배출한 중국은 글로벌 무대를 타깃으로 지휘자를 배출한다. 1964년 생인 유 롱(1964~)이 주인공이다. 문화혁명기 동안 작곡가였던 조부 딩상더(1911~995)에게 피아노를 배운 그는 상하이 음악원에서 수학하고 독일 베를린 예술대 유학을 한 이력이 전부다. 1992년 귀국 후 중국 방송교향악단을 맡아 처음으로 공개 오디션 제도를 도입해 악단의 소리를 바꿨다는 평을 들었다. 이후 차이나 필을 이끌며 2014년 중국 악단으로 처음으로 영국 BBC 프롬스에 참가했다. 광저우 필 음악감독도 겸했던 그는 2009년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상하이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그는 직관과 온화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서구적인 음향을 완성했다는 평을 받았다. 시진핑 주석의 부인이자 음악계 최고 실세인 펑리위안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기도 했다. 실력은 물론 밝은 장래가 보장된 지휘자를 놓칠 리 없다.

오래 전부터 중국을 클래식 음악의 미래 시장으로 확신한 DG는 2018년 유 롱과 상하이 심포니를 묶어 전속 계약함으로써 중국은 40년 전 시작한 ‘클래식 음악 굴기’의 클라이맥스를 이루고 있다. 처음 내놓은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DG)(29)는 2019년 자금성 실황으로 화제가 됐지만 녹음이 악장별로 고르지 못하다. 반면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무곡’(DG)(30)은 사운드의 볼륨감과 리듬감을 제대로 살렸다. 말러의 ‘대지의 노래’(DG 4837452)(31)는 중국 민요 곡조에 이백 등 시인의 시를 가사로 차용한 만큼 콘셉트가 딱 들어맞으며 합주력도 만족스럽다.

 

동서양의 조화를 꿈꾼 대륙의 작곡가들

(32) Decca 4788473

(33) Sony SK89347

(34) Sony SK 63368

(35) Naxos 8570608

이제 작곡가로 눈을 돌려보자. 중국에서 서구식 작법으로 음악을 쓰기 시작한 때는 청나라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민요와 서양 사조가 섞여 형식과 내용의 틀이 잡힌 것은 20세기 중반부터이다. 작곡가는 크게 애국주의 리얼리즘에 뿌리를 내린 국내파와 유럽과 미국에서 아방가르드 계열의 해외파로 나뉜다. 음반으로 감상이 가능한 작곡가 중 시안 싱하이(1905~1945)와 천 강(1935~)은 1세대 국내파의 대표다. 시안 싱하이가 그의 동료 작곡가와 합작한 ‘황하 피아노 협주곡’(1964)과 천 강이 허 정하오(1935~)와 합작한 ‘나비연인 바이올린 협주곡’(1959)은 중국의 관현악을 처음 접하고자 하는 애호가들에게 흔히 추천하는 작품이다. 공산당의 프로파간다에 자주 이용되는 만큼 민요풍의 쉽고 아름다운 멜로디와 고양감이 일품이다. 전자는 아날로그 시대 이미 유럽에 알려져 1977년 이스라엘 연주자 일라나 베레드의 연주(Decca)(32)로 발매된 바 있다.

공산화 이후 세대로 탄둔(1957~)은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 작곡가일 것이다. 1977년 북경 음악원에 들어가서야 정식으로 작곡을 배운 그는 독일 유학 중 일본의 토루 타케미츠, 미국의 조지 크럼, 한국의 윤이상 등과 교류하면서 중국에 뿌리를 두고 다국적 사조를 융화한 작법을 확립했다. 그의 작품을 담은 음반은 24종이나 된다. 요요마의 첼로 협연이 돋보이고 아카데미 음악상을 거머쥔 영화 ‘와호장룡’ OST(Sony)(33)가 감상용으로도 훌륭한 추천작이다. 홍콩의 중국 반환 기념작 ‘심포니 1997’(Sony)(34)도 웅장한 서양 칸타타와 중국 경극 음악을 가미해 아주 쉽게 들린다. 헨체(1926~2012)와 윤이상 등 독일 아방가르드의 영향이 드러난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Naxos)(35)은 비교적 근작 가운데 추천할 만한 명작이다.

탄둔과 함께 미국 국적으로 활동하는 부부 작곡가 저우 롱(1953~)과 첸 이(1953~), 브라이트 성(1955~)도 다 함께 문혁기 이후 베이징 음악원과 상하이 음악원에서 작곡을 익히고 미국으로 이주, 현재 현대음악계의 최전선을 이끄는 주역들이다. 이 중 저우 롱은 2011년 미국 작곡가 최대 영예인 퓰리처 음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글 이재준(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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