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투란도트’, 테너 이용훈의 돋보였던 활약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5월 30일 9:00 오전

GAEKSUK’S EYE from AMERICA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투란도트’ 4.30~5.14

테너 이용훈의 돋보였던 활약

푸치니(1858~1924)가 미완으로 남긴 채 세상을 떠난 그의 마지막 오페라 ‘투란도트’는 동료 작곡가 프랑코 알파노가 완성해 1926년 토스카니니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이하 메트 오페라)는 지난 달 마르코 아르밀리아토 지휘로 ‘투란도트’를 선보였다.
푸치니는 자신의 작품 제목으로 주로 여주인공의 이름을 사용했다. 그의 대표작인 ‘토스카’ ‘나비부인’ ‘마농레스코’ ‘투란도트’도 작품 속 소프라노가 주인공을 맡았다. 그런데 ‘투란도트’만큼 테너 주인공이 두드러진 역할을 하는 작품이 있을까. 칼라프 왕자는 2막 앞부분을 제외하면 처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극을 끌고 간다. 갈등을 초래한 장본인이자, 매듭을 풀어가는 해결사 역할까지 맡은 중심축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경우 칼라프 왕자는 왕궁 앞이나, 군중의 주목을 받은 채 노래한다. 일반적으로 합창단은 무대 안쪽에 배치되어 주요 역할의 배경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번 프로덕션은 달랐다. 합창단을 오케스트라 피트 바로 앞에 앉혔다. 가장 낮은 곳이고, 청중과 가장 가깝다. 반면 왕은 군중과 대척점에 놓았다. 왕과 그의 보좌는 무대 가장 깊숙하고 높은 곳에 뒀다. 그리고 양 끝을 연결해 생겨난 경사면에서 칼라프와 투란도트를 포함 다른 배역들의 노래와 연기를 입체적으로 대할 수 있도록 했다. 마치 모든 관객이 2층 박스석에서 무대를 보는 듯한 효과인 셈이다.이번 공연은 프랑코 제피렐리(1923~2019)의 바그너 ‘반지’ 시리즈에서 무대감독으로 활약한 나이튼 스미트가 연출을 맡았다.

 

이용훈 ©Ken Howard

물리적 어려움을 이겨낸 연출

제피렐리 프로덕션의 가장 큰 특징은 압도적인 화려함과 정교한 아름다움이지만, 이런 이유가 오히려 성악가들에게 곤란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2막의 첫 번째 왕궁 장면은 객석의 탄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을 만큼 화려함의 극치를 선사했지만, 실제로 소리를 전달해야 하는 가수의 입장에서는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객석과 가장 멀고 높은 곳에서 노래했던 왕은 청중에게 명확한 소리를 전달하지 못했다. 물리적인 거리가 매우 멀고 높았기 때문이다. 칼라프가 왕을 처음으로 조우하는 장면에서도 왕을 바라보는 테너 이용훈(1973~)은 완전히 관객을 등진 채 왕과 레치타티보(음율 있는 대사)를 주고받았다. 스미트의 연출은 노래가 더 잘 들리도록 묘수를 부리는 대신, 한 발도 움직이지 않고 왕을 직시하는 칼라프의 자신감을 그의 뒷모습을 통해 드러내려 했다. 이런 연출적 선택은 명확한 소리 전달보다 오히려 설득력이 있었다. 팬데믹 직전, 이용훈이 라마데스로 출연했던 베르디의 ‘아이다’ 역시 제피렐리 프로덕션이었다. 2019년을 끝으로 막을 내린 이 프로덕션 역시, 웅장한 스케일과 화려한 무대로 31년 동안 메트 오페라의 백미를 장식했다. 무대의상 1회 세탁 비용으로만 약 5천만 원이 소요될 만큼 엄청난 예산이 소요된 작품이다.

 

모나스티르스카

승리하리라! 빈체로!

3막이 시작되면 대망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가 등장한다. 이 곡 하나면 먹고 산다는 이야기가 있을 만큼 역량있는 테너의 바로미터 같은 곡이다. 이 아리아만 기다리던 관객들은 이용훈의 목소리만큼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메트 오페라에 그가 출연하는 날이면 예외 없이 매진을 기록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용훈의 목소리는 명쾌하고 그의 최선은 청중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원래 이용훈과 호흡을 맞추기로 예정되었던 투란도트 역은 러시아 출신 안나 네트렙코(1971~)가 내정돼 있었으나 네트렙코와 의견 조정을 해오던 메트 오페라의 대표 피터 겔브가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지 않은 그와 지난 3월 최종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투란도트로 우크라이나 출신 소프라노 류드밀라 모나스티르스카를 캐스팅했다. 모나스티르스카는 놀랄만한 성량과 존재감을 과시했다. 2012년 나부코의 아비가일레로 메트에 데뷔한 그는 ‘토스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돈 카를로’ ‘일 트로바토레’ 등에서 중요 배역을 맡아 유럽 극장을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다.

글 김동민(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사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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