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음악제에서 만난 베를린 필 악장, 다이신 카시모토

계절과 만난 축제, 자유의 땀으로 젖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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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2년 8월 1일 9:00 오전

바이올리니스트 다이신 카시모토

계절과 만난 축제, 자유의 땀으로 젖은 음악

대관령음악제에서 만난 베를린 필 악장과 나눈 소탈한 음악 이야기


2009년부터 13년째 베를린 필의 악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다이신 카시모토(1979~)가 제19회 평창대관령음악제(7.2~23) 무대에 섰다. 그는 아스나가 토루(1951~)에 이어 두 번째로 임명된 일본인 악장이 됐다. 젊은 나이에 악장이 된 그는 본지와 나눈 지난 인터뷰에서 “베를린 필은 생각보다 더 깨어있고 열려있는 집단이었어요. 덕분에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레퍼토리를 익히느라 어려웠던 것 빼곤 특별한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며 “단원들과 긴밀히 소통하며 그들이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추구하는 스타일과 방식을 대변하려 합니다”라고 말했다(본지 2018년 6월호).

13일 공연에 오른 그는 피아니스트 알레시오 백스와 함께 바흐의 소나타 BWV1017,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3번,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를 연주했다.

“솔리스트로 무대에 서면 자유로움을 느낍니다.” 그가 독주 무대를 설 때 느낀다는 자유로움은 대관령음악제를 향하는 기차에서부터 느껴지는 듯 했다. 축제가 열리는 진부역을 지나는 강릉행 KTX 열차 안에는 여름의 자유로움을 찾아 떠나는 설렘으로 북적인다. 그 설렘은 누군가를 바다로, 산으로 이끈다. 진부역에 도착하자 여름의 적막을 거센 빗소리가 갈랐다. 쏟아지는 폭우 사이로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새어 나왔다. 다이신 카시모토였다. 숲의 고요함과 빗소리가 어우러져 그의 바이올린 소리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사연 많은 먹먹한 음악처럼 들렸다.

막 리허설을 끝낸 카시모토를 만났다. 머리칼이 땀에 젖어 지쳐 보였다. 물을 권하는 기자의 손짓에 “이러한 습한 날씨에 익숙하지 않다”라며 생수병 뚜껑을 연다. 그는 꽤 소탈한 사람이었다. 모르는 것에 아는 체 하지 않고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권위적인 악장도, 날이 선 솔리스트도 아닌, 그저 ‘좋은 음악’만을 위해 하루에도 수십 시간을 연습에 쏟는 영락없는 음악가였다.

한국에서 보니 더 반갑습니다. 2018년 정치용/코리안심포니(현 국립심포니)와의 협연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팬데믹 이후 다시 연주 여행을 하게 되어서 반가워요. 그립기도 했거든요. 2월에는 미국에서 파비오 루이지/달라스 심포니와 함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고, 3월 피아니스트 코스가 유우와 ‘봄’을 주제로 리사이틀을 가졌습니다. 7월에는 프랑수아 자비에 로트/쾰른 귀르체니히 오케스트라와 생상스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연주했고요.

오케스트라의 악장이기도 하지만, 여러 오케스트라의 초대를 받는 협연자이자, 독주회를 통해 꾸준히 연주의 폭을 넓히고 있는 솔리스트이기도 하죠. ‘세 명의 카시모토’로 오케스트라, 협연, 솔로 무대로 설 때 마음가짐에 어떤 차이가 있나요?

세 명의 카시모토라니!(웃음) 결국 형태만 다를 뿐, 카시모토 한 사람이 연주하는 여러 음악일 뿐입니다. 오케스트라와 할 때는 지휘자와 악단이 원하는 해석의 균형을 맞추는 데 신경 쓰고, 솔리스트로 무대에 설 때는 자유롭지만 다른 악기군과의 앙상블도 신경씁니다. 바이올린이라는 하나의 악기로 다른 종류의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솔리스트일 때 자유롭다”고 말하는 목소리는 악장의 일을 이야기하실 때랑 사뭇 다른 목소리 톤이네요. 악장과 솔리스트 중 선호하는 연주가 있나요?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리사이틀에서 연주할 때와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할 때, 또 베를린 필과 교향곡을 연주할 때 받는 감동과 영감이 모두 다르기에 어느 것 하나를 꼽기가 어렵군요. 모든 형태의 연주가 즐겁습니다. 다만, 일이 너무 많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웃음)

한 오케스트라의 악장이 다른 오케스트라의 협연자로 무대에 설 때 느낌도 궁금합니다.

다른 오케스트라랑 함께 할 때는 습관적으로 그 오케스트라 소리의 균형과, 현악기와 관악기가 등장하는 타이밍 등을 머릿속에 그리게 됩니다. 직업병이라고 할까요? 솔리스트로서 한 작품 속에 온전히 들어가 연주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 오케스트라 연주에 균열이 생길 때 제 연주에 방해를 받기도 합니다. 그럴 땐 최대한 제 소리에 집중하려고 하고요.

축제의 목표는 ‘좋은 음악’

독일의 발트뷔네 페스티벌이 베를린 필이라는 악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면, 평창 대관령음악제는 축제를 중심으로 음악가들이 모여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룬 축제입니다. 각 형태의 축제가 갖는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어느 축제든, 좋은 음악을 만들고자 하는 음악가들의 마음은 같을 겁니다. 그럼에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는 보다 특별한 경험을 안겨줍니다. 평소 솔리스트로 활동하는 음악가와 실내악단에 속한 음악가가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라는 이름으로 모입니다. 이때 서로 주고받는 영향과 정신적인 교류가 더 활발해지는 것 같습니다. 관객들 역시 1년에 한 번, 그날의 연주를 위해 모이는 음악가들의 무대를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특별하게 느낄 것입니다.

한국에도 대관령음악제를 포함해 통영국제음악제·여수음악제 등 여러 음악축제가 풍성하게 열립니다. 여러 축제에 참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음악제가 더 발전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난감하네요. 저는 비즈니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무엇이 더 개선되고 발전해야한다는 생각보다는 각 페스티벌이 결국 향하는 목표는 동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이죠. 규모와 형태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12명의 음악가들과 함께 실내악 축제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규모를 더 확장하고 할 계획이 없습니다. 각 축제마다 가진 색과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번 대관령음악제의 주제인 ‘마스크’는 ‘페르소나’라는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죠. 이번 연주를 통해 대중이 갖고 있는 클래식 음악에 대한 편견 중 벗어버리고 싶은 점이 있다면요?

특히 아시아 국가의 관객들에게 클래식 음악은 여전히 엄격하고 엘리트주의에 사로잡혀 있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경직되어 있다고 할까요? 특히 여름 축제와 같이 큰 행사에서는 관객들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편견을 벗어버릴 수 있게 더 개방되어야하고, 접근이 쉽도록 기획되어야 합니다.

솔리스트 카시모토의 다음 행보가 궁금합니다.

많은 일이 계획되어 있는데요, 2022/23시즌에는 토시오 호소카와(1955~)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베를린에서 세계 초연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질병의 전쟁 속에서 희망과 위로를 담은 작품입니다. 지휘자 파보 예르비와 함께 연주할 예정입니다.

REVIEW

독주의 자유로움이 이끈 연극적 연주

카시모토·백스 듀오 리사이틀 7.13 알펜시아 콘서트홀

카시모토는 그동안 말러나 R. 슈트라우스의 작품처럼,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음향과 에너지로 관객을 압도하는 음악들을 오케스트라의 제일 선두에서 이끌어왔다. 이번 무대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과연 이러한 음악적 경험이 어떻게 독주곡에서 발현될지였다. 그가 연주하는 압축된 바흐는 어떠할지, 오케스트라 연주로 잠재되었을 음악적 자아가 어떻게 폭발적으로 그리그와 프랑크를 통해 드러날지 궁금했다. 그동안 국내 관객에게 그의 속내를 비친 연주가 드물어서 더욱 그러했다.

카시모토는 “바흐의 소나타를 제외하고는 알레시오 백스와 자주 연주했고 익숙한 작품들”이라고 이야기했다. 그의 말처럼 공연에서 지켜본 두 사람의 연주는 서로의 음악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는 듯한 호흡이었다. 카시모토는 백스가 치고 나오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그저 믿고 내던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기에 리듬의 탄력은 계산된 논리가 아닌 본능적이고 원초적이었다. 누구보다 오케스트라의 소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지휘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그였기에 단단하고 밀도 있는 음향이 홀을 가득 메웠다. 특히나 매혹적인 G선의 비브라토와 고음에서 흔들리지 않는 연주는 과연 베를린 필 악장다웠다.

카시모토의 연주는 학자의 논리나 구도자의 외골수적인 해석과 달랐다. 그리그 소나타의 3악장 클라이맥스에서는 음을 글리산도(미끄러지듯 음을 이어 연주)하여 절정을 보여주었다. 그 드라마틱한 장면은 머리의 논리보다 ‘그래야만 했던’ 본능적인 반응 같아 보였다. 2부의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의 급변하는 선율의 악상에도 늦거나 이르지 않게 반응하여 다양한 음악적 표정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수많은 교향곡 연주를 통해 체화한 탓일 거다. 극적인 순간에 그의 음악은 빛났다.

백스의 노련함도 잊지 못한다. 바이올린의 선율이 힘을 받을 수 있게 그는 온몸을 사용해 음악을 만들었다. 피아노는 음을 누른 후에 크레셴도를 할 수 없지만, 몸을 피아노에 지긋이 기대 음악의 에너지를 카시모토에게 전달했다. 그 마음을 카시모토도 알고 있다. 연주 중간중간 그와의 연주의 합이 맞을 때면 카시모토는 살짝 웃어 보였다.

기자는 많은 음악 축제를 통해 계절의 변화를 만나고 있다. 지난 4월, 세계·한국 초연하는 현대음악으로 풍성했던 통영국제음악제는 ‘봄’의 시작과 용기를 닮았고, 해외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이 모여 축제를 이룬 대관령음악제는 ‘여름’의 풍요로움을 닮았다. 그리고 오는 가을이 시작되는 9월, 단풍 빛으로 붉게 물들 여수음악제를 다녀올까 한다. 각 계절의 얼굴을 닮은 한국의 음악 축제들이 이토록 풍성하니, ‘객석’ 독자들도 제철 음식과 함께 제철 음악제를 맛보는 건 어떨까?

글 임원빈 기자 사진 대관령음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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