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NOTE 공연 수첩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3년 12월 4일 9:00 오전

CHOICE REVIEW

기자들의 공연 관람 후기


유기성 있는 연주

힉엣눙크! ‘일뤼미나시옹’

11월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여기 그리고 지금’이라는 의미의 ‘힉엣눙크’는 올해도 그 의미를 잘 살렸다. 그들의 손끝에서 음악은 옛것의 재현이 아닌, 현재의 생동이었기 때문이다. 1부는 세종솔로이스츠만으로, 2부는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함께했다.

첫 곡은 브리튼의 스승인 프랭크 브리지(1879~ 1941)의 ‘왈츠 인터메조’로 문을 열었다. 뒤이어 연주된 앤드루 노먼(1979~)의 바이올린 8중주를 위한 ‘그란 투리스모’의 날카로운 불협화음은 앞선 곡과 대조됐다. 1부 마지막 곡인 하이든의 ‘작별’은 초연됐을 당시 연주자들이 무대에서 한두 명씩 사라지던 것을 활용해, 재미있는 1부 마무리를 완성해 냈다.

이안 보스트리지가 무대에 올라와 연주한 2부의 연가곡 ‘일뤼미나시옹’은 1부의 유쾌한 분위기를 모두 지워냈다. 그는 공연의 며칠 전 ‘벤저민 브리튼과 전쟁’이라는 인문학 강의(9일, 거암아트홀)에서 ‘반전(反戰)’과 ‘동성애자’라는 핵심어로 브리튼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는데, 그 내용이 가곡에 투영된 듯했다. 9곡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에 총 세 번 등장하는 가사 ‘나만이 이 야만적 퍼레이드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가 마치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이 세상을 ‘야만적 퍼레이드’에 비유하는 것으로 보였다. 1곡에서는 이를 선언하는 예술가처럼, 6곡에서는 초연한 독백을 잇는 청년처럼, 8곡에서는 세상의 종말을 말하는 신과 같이 노래했다. 모든 곡이 단단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서사를 이루었고, 그것을 만들어 준 것은 그의 노래와 세종솔로이스츠의 연주임을 단언케 했다.

이의정 기자 사진 세종솔로이스츠

 

 

냉정과 열정 사이

로베르토 곤살레스 몬하스/

홍콩 필하모닉(협연 양인모)

10월 2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19년, 오스모 벤스케/서울시향과의 협연 이후 4년 만에 들은 양인모의 시벨리우스는 작년 콩쿠르 우승을 거친 후, 한층 더 성숙해져 있었다. 그는 지난 10월 호 특집 인터뷰에서 “이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어떤 인상을 남겨야 한다는 부담은 없다. 다만, 연주에서 추구하는 바가 있다면 더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이라고 밝혔는데, 이번 공연에서 말 그대로 어떤 인상을 남기기보다는 그가 늘 강조하는 ‘절제’가 담긴 연주를 선보였다. 기교와 해석 그리고 체력이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 난곡을 소화하면서도 콩쿠르 위너의 역량을 보여주기 위한 연주가 아닌, 본인이 생각하는 필요한 감정만을 담은 담백한 연주였다. 2부의 드보르자크 교향곡 9번은 홍콩필의 장점이 돋보인 선곡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출신의 젊은 지휘자 로베르토 곤살레스 몬하스(1988~)는 날렵하고도 가벼운 지휘로 홍콩 필의 열정적인 연주에 생기를 더했다. 앙코르곡은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 다국적 연주자들로 구성된 악단이 조화롭게 빚어낸 한국적인 선율이었다. 이날 ‘냉정’와 ‘열정’ 사이에서 두 젊은 음악가는 서로 다른 색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홍예원 기자 사진 프레스토아트

 

 

이토록 매력적인 타인의 문화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

10.25~12.31 잠실종합운동장 내 빅탑

 

지난해 ‘뉴 알레그리아’로 인기몰이를 거뒀던 태양의 서커스가 올해 ‘루치아’(2016)를 선보인다. 아즈텍 문명에서부터 이어지는 멕시코의 다양한 문화를 소재로 한 이 아트 서커스는 스페인어로 ‘빛(luz)’과 ‘비(lluvia)’를 합친 단어다.

‘루치아’는 이 두 요소를 환상적인 미장센으로 소화한다. 남미 특유의 색감과 11m 상공에서 쏟아져내려오는 ‘레인 커튼’의 효과는 관객의 즉각적 탄성을 끌어낸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여행자는 마임으로 각 신의 스토리를 잇는다. 훌라후프나 저글링, 공중 돌기 같은 기존 서커스의 기술을 활용했지만, 환상 속에서 만난 세계인 듯한 몰입을 선사한다. 더 아슬아슬한 묘기를 보여주는 것은 오히려 관심 밖의 일이다. 멕시코 역사의 풍부한 문화적 유산 속에서, 관객은 마음껏 감탄하면 된다.

태양의 서커스 ‘루치아’는 2024년 1월부터 처음으로 서울이 아닌 지방, 부산에서 공연을 갖는다. 부산시는 2030부산세계박람회를 앞두고 태양의 서커스와 매년 정기 공연을 개최한다는 협약을 맺었다. 상설 공연장 건립까지 논의 중이다. “언젠가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태양의 서커스’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밝힌 태양의 서커스 다니엘 라마르 부회장의 인터뷰에 덧붙여, 이토록 아름답고 효율적으로 전통 문화를 활용하는 태양의 서커스의 다음 신작의 이름이 ‘해운대’라면 어떨까 하는 기대도 품어본다.

허서현 기자 사진 마스트인터내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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