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HOT 이탈리아 I 로마 오페라 ‘메피스토펠레’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1월 8일 8:00 오전

WORLD HOT_ITALY

전 세계 화제 공연 & 예술가

 

로마 오페라 ‘메피스토펠레’ 11.25~12.5

섬세한 악마의 완벽한 부활

 

초현실주의적 연출은 작품의 먼지를 털어냈고, 공연장은 사회적 캠페인에 동참했다

 

©Fabrizio Sansoni

로마 오페라 극장에 13년 만에 돌아온 아리고 보이토(1842~1918)의 ‘메피스토펠레’는 오랜 동면에서 깨어나 수십 년의 먼지를 털어내고 2023/24 시즌, 로마를 포함해 칼리아리와 베네치아 극장에서도 올려진다. 로마 오페라 극장에서는 마드리드 테아트로 레알과 협력하여 초현실주의적 연출로 유명한 사이먼 스톤(1984~)이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에 데뷔하며, 음악감독인 미켈레 마리오티(1979~)가 연단에 올랐다.

공연은 스톤의 새로운 무대 연출과 마리오티의 탁월한 음악적 해석이 결합되어 역사 속에 주목할 만한 작품을 남겼다고 감히 평할 수 있다. 먼지와 거미줄을 쓸어버린 예술가들의 손길 덕분에 숨어있던 보석이 반짝이는 순간이었다.

 

 

아쉬움을 넘어서는 만족

©Fabrizio Sansoni

도입부 무대 위에는 강박적인 미학이 지배적으로 보이는 흰색의 방이 있다. 마치 사람 머릿속의 정신적 공간으로 보였다. 때로는 다채로운 조명으로 비치며, 몇 가지 필수적인 장치만 있다. 방의 둘레에는 벽을 등지고 서 있는 어린이 합창단과 로마 오페라 합창단이 있다. 중앙에는 나선형 계단이 있고, 바닥에서 은색 양복에 선글라스, 아이패드를 들고 메피스토펠레가 등장한다. 첫 시작부터 천상의 소리와 지상의 소리가 대비되는 음악을 통해 이 작품의 가치를 증명했다. 객석 아래에 금관악기와 타악기를 배치하여 극도로 확장되고 강력한 소리를 만들었으며, 합창의 피아노시모 부분에서는 어른 합창과 어린이 합창이 만든 헤미올라(편집자 주_3박 계열 음악에서 2박으로 리듬을 나누듯이 정해진 박과 다르게 연주하는 리듬)가 전율을 일으켰다.

주인공인 메피스토펠레를 노래한 베이스 예지 부트륀은 고음역에서 멋진 소리를 들려주었지만, 원작에 비해 매우 인간적이었다. 스톤의 연출은 메피스토펠레를 유혹과 죄의 절대 악으로 그리기보다 성장과 발전의 수단이며, 실존과 구원을 향한 그의 의지에 더욱 집중한 듯하다. 1막에서 회전목마·솜사탕 기계·풍선이 있는 놀이공원 세트 안에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 안무를 인용하는 댄서들과 광대로 위장한 메피스토펠레는 풍자적인 모습을 지녔지만, 패러디를 의도했다면 유머가 부족한 듯 보였다.

1막의 두 번째 장 ‘계약’은 동물과 사람의 엑스레이 사진이 가득한 파우스트의 실험실이, 2막은 다양한 색상의 공으로 가득 찬 거대한 볼풀로 마르타의 정원이 꾸며졌다. 연출가는 파우스트·마르게리타와 메피스토펠레·마르타의 사랑을 공놀이와 노래만으로 간결하게 연출했다. 악마의 축제인 발푸르기스의 밤은 계속되며, 메피스토펠레가 돼지를 도살하여 떨어지는 붉은 피가 새하얀 세트와 강렬하게 대비되었다.

©Fabrizio Sansoni

3막 감옥에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는 마르게리타의 아리아 ‘어느 날 밤, 깊은 바닷속에’는 무대 위 화면으로 함께 연출됐다. 화면 속 여러 배우가 함께 직관적으로 표현하여 아리아에 담긴 후회와 좌절은 배로 전달됐다. 그리스 시대 기둥이 세워진 4막은 갑작스러운 고전풍의 무대와 의상으로 새로운 놀라움을 야기했지만, 현대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동행하여 끊임없이 예상을 깨는 연출을 보였다. 앞의 모든 이야기가 주인공의 꿈임을 말하는 듯한 에필로그에서 파우스트는 호스피스병동에 입원하게 된다. 4막을 제외하고는 정적이던 합창단이 내용과 맞지 않아 의아했지만, 음악만은 가진 에너지와 소리로 모든 것을 전달했다.

로마 오페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은 오페라 전체를 장악했다. 지휘자 마리오티가 만들어 낸 음악은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지금까지 들어본 것 중 최고”라는 평을 받았다. 오케스트라 음색은 파스텔 톤과 원색 사이를 번갈아 가며 변화하는 팔레트 같았고, 균형 잡힌 악기 소리로 표현된 음악적 질감은 가히 완벽했다. 치로 비스코가 이끄는 합창단의 반짝이면서도 정제된 음악은 표현과 음역 모두 뛰어난 기술을 보여줬다. 복잡한 보이토의 악곡에서 단 한 음절도 벗어나지 않으며, 아름다움과 정확성 측면에서 놀라움을 선사했다.

이탈리아계 미국인 테너 앤서니 치아라미타로는 편안한 음색을 가진 서정적인 파우스트 그 자체였다. 발레리아 세페(1985~)의 마르게리타는 섬세했으며, 극적인 음색과 해석은 아주 설득력이 있었다. 1막에서만 등장한 테너 윤유상의 네레오는 짧다면 짧았지만, 다음 여러 작품에서 보기를 기대한다는 평을 받으며 좋은 인상을 남겼다.

 

극장에 놓인 빨간 구두의 정체

본 공연에 앞서 로마 오페라 극장은 26세 미만 젊은이들을 위한 ‘메피스토펠레’ 개막 시사회를 열었으며, 11월 25일 ‘세계 여성폭력 반대의 날’에 연대와 헌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빨간 신발 운동’에 참여했다. 멕시코 예술가 엘리나 쇼베(1959~)의 여성 학대와 살해를 비난하는 2009년 설치물로 태어난 ‘빨간 신발 운동’은 그 이후로 여성의 권리와 성폭력에 대한 투쟁의 상징이 되었다. 매년 이탈리아는 여성 폭력으로 인한 사회적·경제적 비용으로 약 170억 유로를 지출하며 약 280개 이상의 폭력 방지 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여성 폭력을 긴급하고 위험한 현상으로 인식하며 매년 각계각층에서 여러 모양으로 도움과 목소리를 낸다.

로마 오페라 극장 역시 2023/24 시즌 첫 시작에 빨간 구두를 객석 위에 놓음으로 성폭력 퇴치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자 했으며, 예술의 언어로 사회를 향한 목소리를 냈다. 무엇보다도 사회의 미래인 젊은이들을 현대의 문제에 성찰하도록 이끄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으며, 젊은 층이 사회 문제에 직접 참여하도록 했다. 현대의 ‘극장’은 사회 문제의 ‘대변인’이 되어 대중 인식에 기여할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날 로마 오페라 극장이 증명했다.

이실비아(성악가·이탈리아 통신원) 사진 로마 오페라 극장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