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빛예술단 음악감독 김종훈, 악기로 희망을 켜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4년 1월 8일 8:00 오전

THE LIGHT


한빛예술단 음악감독 김종훈

악기로 희망을 켜다

 

빛처럼 환하게 새해를 여는 시각장애인 예술단의 각오와 계획

 

시각장애인 전문연주단인 한빛예술단(이하 ‘한빛’) 단원들은 말한다. “그저 눈만 불편할 뿐이다. ‘눈이 안 보여서 아무것도 못 한다’라는 건 없다”라고. 실제로 그들은 무엇이든 척척 해낸다. 클래식 음악과 팝 음악을 아우르며 폭넓은 레퍼토리를 준비하고, 해외 공연도 거뜬히 다녀온다. 자신의 한계를 규정짓지 않아서일까. 서로에게 더욱 귀 기울이며 맞춰가는 한빛의 음악엔 뭉클한 감동이 있다.

신년음악회를 앞둔 한빛예술단의 김종훈 음악감독과 대화를 나눴다. 음악감독으로서의 목표를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장애인이니 감안하고 들어주세요’ 이런 설명이 필요가 없는 연주회, 오직 음악으로 무대를 가득 채우고, 관객과 감동을 주고받는 공연을 만드는 것입니다.”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그의 음성에한빛 단원들이 자기 능력을 십분 발휘하며 꿈을 펼칠 수 있는 이유가 담겨있었다.

 

신년음악회를 통해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이, 더 큰 소망과 더 높은 목표를 갖고 도전하길 바라면서 연주하려고 한다. 어려운 조건에서도 열심히 노력해 멋진 무대를 만드는 한빛의 모습을 통해 용기를 얻을 수 있길 바란다.

협연 아티스트를 섭외하는 기준이 궁금하다.

한빛은 비장애인 예술가들에게 특별한 걸 요구하지 않는다. 결국 음악을 만드는 일은, 함께하는 과정에서 서로 배려하고 인내하고, 음악을 공유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뿐 아니라 비장애인 연주자들도, 협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한빛의 방식에 맞추며 긍정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 같다.

이번 협연자인 베이스 구본수와는 두 번째 무대인데.

안타깝게도 시각장애인들은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기가 어려운데, 2020년 공연 당시 우리에게 먼저 다가와 마음을 열었던 그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실력이 뛰어난 연주자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구본수는 협연 과정에서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 들어 굉장히 좋았다. 이번 신년음악회를 다시 함께하게 되어 정말 기쁘다.

 

음악감독으로서, 공연 준비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목표를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정을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노력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발전하는 것을 느끼고 음악이 아름다워질 때의 쾌감과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때의 뿌듯함과 성취감은 인생 전체에서 봤을 때, 음악가로 살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음악도 세상도 훨씬 더 다채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길 바란다. 한빛 단원들이 잘 따라오고 성장하고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창단 21주년, 기쁨이 가득한 연주

 

올해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상황과 환경에서 시대의 요구를 따라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 어린이 인형극 제작, 해외 공연 추진, 강의·공연·축제를 접목한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교육 등을 기획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빛도 더 많이 발전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또, 8월 29일엔 ‘조이풀 판타지(Joyful Fantasy)’라는 제목의 공연도 연다. ‘판타지’가 형식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악곡을 의미하는 것처럼, 우리도 장애와 비장애라는 편견의 틀을 깨는 의미의 연주회로 기획했다. 평범한 생각을 뛰어넘는, 아주 환상적인 무대를 만들고자 한다.

음악감독으로서의 목표가 궁금하다.

재능을 갖고 음악가를 꿈꾸는 시각장애인이 직업 활동까지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한빛의 설립 목표다. 한빛이 직업 연주자들의 본보기가 되는 단체로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기억되기를 희망한다. 결국은 우리가 어떤 선구자적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한빛이 좋은 선례가 되어 앞으로도 많은 장애인들이 문화 활동을 직업적으로, 전문적으로 하는 좋은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024년, 한빛예술단이 어느덧 창단 21주년을 맞았다. “한 장애인 예술단체가 이렇게 오래 존속하고 발전하는 건 참 기적 같은 일이에요. 한빛을 향한 지지와 도움이 헛되지 않도록,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단체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마지막 인사가 한빛예술단의 30주년, 더 나아가 40주년과 50주년을 기대하게 했다.

김강민 기자 사진 한빛예술단

 

김종훈(1968~) 한양대 음대 졸업 후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를 졸업했다. 2015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 협연했다. KBS 제3라디오 ‘심준구의 세상보기’ 중 ‘김종훈의 귀에 쏙 클래식 명곡’을 진행한 바 있으며, 현재 한빛예술단의 음악감독이자 한빛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2024년 한빛예술단의 계획

인형극 제작

2024년엔 어린 관객도 즐겁게 관람할 수 있는 기획 작품을 준비 중이다. 2023년, 창작 음악극 ‘노래가 나를 데려가’를 초연한 바 있다.

‘일 더하기 우리’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주관하는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이 내년으로 5년 차를 맞은바, 사업 첫해부터 함께해 온 한빛예술단도 콘텐츠 다각화를 모색 중이다. 교육이 보다 실효성을 가질 수 있도록, 강의와 공연을 결합시키고, 향후 더 나아가 축제 형식으로까지 나아갈 예정이다.

공연 유통 경로 확대

2023년, ‘장애예술인 창작물 3% 우선구매제도’가 신설됐다. 이를 계기로 지역문화재단·공공기관·기업 등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해외 공연

2023년, 뉴저지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이 있었다. 코로나 이전엔 해외 무대에 자주 올랐던 만큼, 세계 무대를 목표로 활동을 이어가고자 한다.


INTERVIEW

 

한빛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2020년, 당시 한빛의 천성애 원장님으로부터 “함께 공연하면 좋겠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간의 활동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늘, 더 많은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고, 감사하게도 많은 분들이 이 마음을 알아주신 덕분에 다양한 공연을 할 수 있었다. 한빛과 함께했던 사회 공헌 콘서트도 마찬가지다.

장애인 예술인과 함께할 기회는 잘 없었을 텐데.

한빛 단원들은 모든 곡을 암보하기에 보면대가 없다는 점에 한 번, 자신의 파트뿐 아니라 다른 단원들의 파트까지 모두 외운다고 해서 두 번, 음악감독님이 마이크 송수신기로 모든 파트를 꼼꼼하게 체크해서 세 번 놀랐다. 한빛 단원들의 음악을 향한 열정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한빛과 공연하게 되어 정말 영광이었다.

공연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처음엔 ‘조금 불편하진 않을까’라며 걱정도 했었는데, 선입견이었다. 비장애인 악단들과 비교해 음악적으로도 전혀 뒤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한빛과 함께 무대에 오를 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있어 좋았다.

이번 공연에서 보여 주고픈 것은.

‘구본수는 장르적인 한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번 무대는 오페라 아리아·팝 음악·뮤지컬 넘버 등 다양한 레퍼토리로 준비했다. 성악가로서 이름을 알렸지만,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다. 아티스트로서의 단단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한빛의 신년음악회를 찾는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빛’이라는 이름과 같이, 빛처럼 환한 연주를 선보이는 공연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지칠 때가 있다. 이번 공연을 통해, 그 힘든 시기를 이겨낼 힘을 얻길 바란다.

 

구본수(1988~)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후 독일 바이마르 음대에서 수학 중 ‘팬텀싱어3’에 출연해 이름을 알렸다. 2020년 크로스오버 그룹 ‘안단테’를 결성해 2년간 그룹의 리더로 활동했다. 2019년 성정음악콩쿠르 최우수상, 2015년 세일가곡콩쿠르 3위 등을 수상했으며, 2023년 자작곡 ‘대나무숲’을 발표했다. 현재 밀알복지재단의 홍보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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