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지휘자 김보미·이영만, 한날한시에 맞물린 운명의 수레바퀴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5월 28일 8:15 오전

VERSUS

합창지휘자 김보미(수원시립합창단)·이영만(서울시합창단)

한날한시에 맞물린 운명의 수레바퀴

같은 작품 ‘카르미나 부라나’로 만나, 각자 다른 연출 방향으로 다가가는 묘미에 대하여

 

5월 21일 오후 7시 30분, 국내의 두 합창단이 동시에 “O Fortuna! (운명의 여신이여!)”를 외친다. 서울시합창단(단장 이영만)과 수원시립합창단(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김보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칼 오르프(1895~1982)의 ‘카르미나 부라나’는 1937년 발표된 세속 칸타타로, 독일 바이에른에 위치한 베네딕트보이에른 수도원에서 발견된 라틴어 세속 시집에서 24개를 엮은 곡이다. 특히 작품의 수미상관을 이루는 ‘운명의 여신이여’는 영화 및 TV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삽입되어 대중들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대규모 합창단과 세 명의 솔리스트, 다섯 명의 타악기 주자와 두 대의 피아노가 더해진 오케스트라, 그리고 어린이 합창단까지 필요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동일한 날짜에 이 작품이 흡사 ‘맞붙듯’ 공연되는 풍경은 이색적이다.

그렇지만 동일한 것은 작품 뿐, 각 합창단이 선사할 음악까지 동일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두 합창단을 이끄는 이영만과 김보미는 각자의 방식으로 이 작품에 접근한다. 운명의 여신이 쥐고 있는 거대한 수레바퀴가 상징인 이 작품에서, 그들은 각각 어떤 방식으로 그 수레바퀴를 움직일까?

 

‘카르미나 부라나’는 다소 독특한 위치의 칸타타로 보인다. 이 작품만이 가지는 특수성을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영만 이 작품의 풀 네임은 정말 길다. ‘악기 반주와 마법 같은 이미지가 어우러진, 가수와 합창단이 부르는 세속적인 노래’라는 제목으로 당시 음악계에 상당히 반향을 미칠 만한 칸타타였다. 차라리 오페라라고 분류했으면 모를까, ‘세속 노래’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작품이다.
김보미 그에 더해, 언어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구성이다. 라틴어가 주를 이루면서 지금의 기준에서 제대로 발음하기 어려운 중세의 독어와 불어도 등장한다.
이영만 오르프가 이 곡을 쓴 1937년 음악계는 꽤나 복잡하고 난해한 음악으로 흐르는 기조가 강했다. 오르프도 처음엔 그런 영향을 받긴 했으나, 이 곡을 쓰는 시점에선 생각을 달리 했다. 당시 그는 다시 ‘근본’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오르프는 가장 원초적인 ‘리듬’을 중요시 했다. 이 작품에서도 당시의 시류를 거스른 흔적들이 많이 포착된다.

 

닮은 듯 또 다른, 각자의 접근 방식

많은 대목들로 구성된 칸타타지만 중추적인 서사는 없다. 이 곡을 하나로 묶는 키포인트를 어디서 찾았는가?

이영만 이 작품은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 나름대로의 우리의 삶을 살며 많은 것을 결정하려 하지만, 결국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나. 이 작품도 그러한 운명의 여신의 수레바퀴에서 시작한다.
김보미 이 안에 담긴 각 내용이 직접적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오르프는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연결지었다. 운명의 여신이 수레바퀴를 돌리는 시작, 그리고 마지막에 운명의 여신이 다시 나타나기까지 음악은 단 한 번도 끊어지지 않는다. 결국 이 곡 자체가 끊임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수레바퀴인 셈이다.
이영만 비장한 노래 뒤에 별안간 봄(1부)이 찾아온다. 여기서는 마치 어린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듯하다. 그 뒤로 이어지는 선술집(2부)에서는 이미 다 노화된 감정으로 찌든 모습이 느껴지고, 3부에는 모든 것이 합일되는 ‘사랑의 정원’이 펼쳐진다. 3부의 피날레는 그야말로 사랑이 완성되는 듯 최고조로 벅차오르지만, 바로 그 뒤에 ‘운명의 여신’이 나타난다. 결국 우리의 삶은 운명 속에서 그렇게 돌고 도는 것이다.

이 곡을 지휘할 때 어떤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는가?

김보미 모든 대목을 긴장감 있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작품은 여러 대목들이 이어지는 구조다. 게다가 쉬어가는 부분이 없다보니 그 긴장감이 잘 이어지도록 집중해서 음악을 이끌어야 한다.
이영만 이 작품이 원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여러 차례 연주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어려움을 느낀다. 사람들이 이 곡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감상의 기준이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우리만의 차별화된 ‘카르미나 부라나’를 내놓는 것 자체가 숙제다.
김보미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유절 형식’인데, 반복을 통해 가사에 더 집중하게 만들게 하려는 오르프의 의도였다. 그래서 음악도 극적인 부분과 정적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부분의 균형감을 잘 맞춰야 한다. 덧붙여, 교회음악이 아닌 세속음악인 탓에 라틴어라 할지라도 낯설고 생소한 용어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언어 연구도 꽤나 공을 들이고 있다.

가사의 주를 이루는 라틴어를 잘 전달하기 위한 방법은?

김보미 라틴어는 국가별로 읽는 방식이 모두 다르다. 그래서 같은 라틴어 곡이라도 어떤 발음을 택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고민이 필요하다.
이영만 ‘카르미나 부라나’는 세속 칸타타에 속하다 보니, 보통 이탈리아식으로 읽는 라틴어를 채택하곤 한다. 또한 언어와는 별도로 항상 내가 강조하는 것은 자음과 모음, 특히 자음 발음에 있다. 자음이 확실하게 자리를 잘 잡아주면 전달력이 또렷해진다.
김보미 오르프는 독일 남부 출신으로, 그곳만의 라틴어 발음이 따로 있다. 그래서 작곡가가 직접 쓰던 그 라틴어를 적용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내가 유학했던 레겐스부르크도 독일 남부였다.(웃음) 덕분에 그 지역의 라틴어 발음을 배울 수 있었는데,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그때 익힌 독일 남부식 라틴어 발음을 잘 지도하려 한다.

수원시립합창단

서울시합창단

 

 

 

 

 

 

 

 

시립합창단을 이끌며 느끼는 자부심과 노력

지금 지도하는 합창단의 저력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이영만 서울시합창단 단원 개개인의 기량이 굉장히 뛰어남을 느낀다. 더군다나 어느 무대에서건 잘 연주하고자 하는 욕심들이 꽤 엿보인다. 종종 내 지휘에 대해서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라며 보다 명확한 소통을 위해 제안하는 단원들도 있다. 이를 통해 더 나은 합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런 단원들을 보며 나도 그들을 더 잘 이끌기 위해 강한 책임감을 느낀다.
김보미 수원시립합창단은 ‘시립’이라는 특성 상 감당해야 하는 연주의 수도 많고, 레퍼토리의 장르도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그 모든 무대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사명감이 강하다. 철저한 프로의식을 가지고 소리를 관리하는 모습을 보면, 단원들에게 존경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는 사무국도 하나의 자랑이다. 항상 수많은 일을 묵묵히 수행해주는 사무국에 감사하다.

‘카르미나 부라나’에는 어린이 합창단이 함께 하는데, 어린이 단원들을 지도할 때 나름의 방식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보미 어린이라고 해서 성인 합창단을 지도하는 방식과 크게 다른 것은 없다. 아이들도 프로 음악가와 똑같은 책임감으로 대한다. 그래야 아이들과 성인들이 같은 무대에 서서도 서로를 존중하게 된다. 오히려 아이들을 대할 때 중요한 것은 태도다. 교육자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에 따라 즉각적인 반응으로 드러난다.
이영만 아이들은 아이들만의 소리를 가지고 있기에, 무리해서 어떤 소리를 요구하려 들지 않고, 그저 호흡과 발성의 방향이 올바르게 가도록 길만 잡아 줄 뿐이다. 이 곡의 편성이 크긴 하지만 아이들이 굳이 음량을 끌어올릴 필요는 없다. 성인 합창단에 좀 더 감칠맛을 올려 주는 느낌에 가깝다.
김보미 또, 아이들은 의외로 대범한 면이 있어서 성인보다 무대에서 크게 긴장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다만, 연습이 잘 안 되어있으면 바로 주눅들어버린다. 그래서 몸이 자동으로 기억할 수준까지 연습을 시키는 편이다.

 

대중과 눈높이 맞추기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운명의 여신이여’는 유명하지만, 그 외에는 내용을 모르는 관객들이 많다. 미리 익혀두면 좋을 만한 특색 있는 몇 대목을 뽑아준다면?

이영만 인상적인 몇 대목을 뽑자면 ‘운명의 여신’ 이후 등장하는 봄이다. 마치 여린 음량으로 나지막이 들려오는 악기 소리는 봄의 태동을 느끼게 하고, 단선율의 노래는 봄이 왔음을 알리는 듯하다.
김보미 많이들 재밌다고 느끼는 대목이 2부 선술집에서 등장하는 테너의 솔로 ‘일찍이 내가 살던 호수’다. 일명 ‘백조고기의 노래’라고도 불리는데, 붙잡힌 백조가 화덕에 구워지면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노래다. 설명만 들으면 굉장히 슬픈 분위기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는데, 아주 독특한 부분이다. 참고로 테너가 정말 격한 고음을 내야 하는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이영만 사실 모든 대목이 다 매력적이라 꼽으려니 어렵지만, 이 작품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부분은 마지막 ‘운명의 여신’이 등장하기 전 ‘최고로 아름다운 것’을 찬양하는 부분이다. 노래와 악기가 총출동하며 클라이맥스를 이루는데, 이 부분에서 관객들이 가장 큰 압도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에 바로 이어지는 ‘운명의 여신’ 구조도 완벽하다.

마지막으로 ‘카르미나 부라나’ 공연을 찾을 관객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보미 담고 있는 내용이 많은 작품이다 보니 처음부터 흐름이 잘 와 닿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감정의 흐름에 집중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사랑과 희열부터 비통함과 고통까지, 감정의 삼라만상이 다 녹아있는 작품이다. 내용보다는 각 대목이 가진 분위기를 따라가다 보면 몰입에 도움이 더 될 것이다.
이영만 앞서도 말했지만, 항상 새로운 ‘카르미나 부라나’를 올려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윤별발레컴퍼니와 협업하며, 한 두 장면이 아닌 작품 전반에 발레와 연출을 가미했다. 어디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맛의 ‘카르미나 부라나’를 보여줄 수 있는 무대라 자부한다.
최성혁 기자 사진 서울시합창단·수원시립합창단

 

김보미(1977~) 연세대 음대 교회음악과 졸업 후 레겐스부르크 교회음대를 거쳐, 빈 국립음대에서 교회음악 최고과정을 최우수로 졸업했다. 빈 소년 합창단 상임지휘자로 활동했으며, 국내외 유수의 합창단에서 지휘했다. 현재 연세대 음대 교회음악과 교수이자, 수원시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이영만(1962~) 서울대 음대 성악과 졸업 후 노스텍사스 대학에서 합창지휘로 석사, 미국 음악원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서울대학교 성악과 강사, 추계예술대학교 성악과 겸임교원, 인제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국내 유수 합창단에서 지휘했다. 현재 서울시합창단장으로 활동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김보미/수원시립합창단(협연 박미자·양준모·이명현)
5월 21일 오후 7시 30분 수원SK아트리움
이영만/서울시합창단(협연 강혜정·염경묵·강동명)
5월 21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칼 오르프 ‘카르미나 부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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