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는 도밍고. 그가 ‘평생의 의무’라고 말해온 프란체스코 포스카리로 분해 무대에 올랐다
지난 1월 15일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베르디의 초기 오페라 ‘포스카리 가의 두 사람’이 공연되었다. LA 오페라에서 2012년 9월 초연된 이 프로덕션은 스페인 발렌시아 공연에 이어 빈에서 세 번째로 공연되었으며, LA 오페라의 총감독이자 현존 최고의 스타 성악가인 플라시도 도밍고의 출연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가수로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 중인 도밍고는 최근 베르디 바리톤 배역의 매력에 푹 빠져 있는 듯하다. 작년 여름 잘츠부르크 축제에서 ‘조반나 다르코’에 출연한 것을 비롯하여, 11월에는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안나 네트렙코와 함께 ‘일 트로바토레’를 성공적으로 공연했으며, 향후 밀라노·베로나 등지에서 ‘시몬 보카네그라’ 공연 일정이 계획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는 2012년 ‘포스카리 가의 두 사람’ 공연을 앞두고 ‘LA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역에 도전하는 것에는 평생 의무감과 같은 책임 의식이 있다”라며 배역에 대한 열의를 밝혔다. 도밍고의 열정과 LA 오페라의 음악감독 제임스 콘론의 수준급 지휘에도 불구하고 이번 테아터 안 데어 빈의 ‘포스카리 가의 두 사람’은 (도밍고를 제외한) 주요 출연진들의 평이한 역량과 오페라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조악한 연출 탓에 ‘도밍고에 의한, 도밍고를 위한’ 프로덕션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반쪽짜리 프로덕션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정치 속에서 희생되는 가족을 다룬 베르디 초기작
베르디의 여섯 번째 오페라인 ‘포스카리 가의 두 사람’은 오늘날 상대적으로 공연이 잘 되지 않는 베르디 초기작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공연 자체가 드문 작품이다. 1844년 로마 초연 당시에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으나 이후 재공연부터는 거의 비슷한 시기 작곡된 ‘에르나니’ 이상의 인기를 누렸다. 이탈리아 전역에서 공연된 것은 물론, 유럽 및 미국에서까지 줄곧 공연될 정도였으니 말이다. 베르디의 선배 격인 당대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 도니체티 역시 ‘포스카리 가의 두 사람’ 공연 관람 후 젊은 베르디에게 ‘미래의 인물’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영국 낭만주의 문학의 대가 바이런 경의 동명 작품을 유명 오페라 대본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가 각색한 ‘포스카리 가의 두 사람’은 15세기 베네치아의 실제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여느 역사 소재의 극작품이 그러하듯 작품 속 사건은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품이 아니기에 줄거리를 먼저 살펴보면, 베네치아의 도제(베네치아 공화국 최고 지도자)인 프란체스코 포스카리는 억울하게 살인 누명을 쓰고 지중해 크레타 섬에 유배된 외아들 자코포를 처벌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코포의 부인 루크레치아는 남편의 무죄를 굳게 믿으며 유배지에서 남은 인생을 함께 하려 한다. 그녀는 어린 자식들과 함께 10인 평의회와 시아버지이자 도제인 프란체스코가 자리한 재판장에 나타나 눈물로 탄원하지만 프란체스코 역시 공화국의 법 앞에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10인 평의회의 일원이자 포스카리 가의 최대 정적인 로레다노는 교묘한 술책으로 베네치아로 잠시 압송된 자코포를 다시 크레타로 유배시키고 루크레치아의 동행을 금지하는 판결이 내리도록 손을 쓴다. 자코포가 크레타로 떠나는 배에 승선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의 무죄를 입증하는 편지가 전달되고, 프란체스코는 급히 아들을 데려오려 하지만 극도로 절망한 자코포는 이미 배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뒤다. 10인 평의회는 로레다노를 앞세워 프란체스코에게 도제 퇴위를 종용하고, 아들의 사망 소식과 도제 퇴위라는 불명예를 일순간에 접한 프란체스코 역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둔다.
정치 속에서 희생되는 가족이라는 주제는 베르디의 중후기작 ‘시몬 보카네그라’ ‘돈 카를로’를 연상시킨다. 최고 지도자라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정작 억울한 누명을 쓴 아들을 구출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적 실세는 10인 평의원회인 것을 뼈저리게 느끼며 “아버지로서도 지도자로서도 불행할 뿐이네”라고 무능력하게 읊조리는 프란체스코의 캐릭터는 ‘돈 카를로’의 필리포 왕과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베네치아로 압송된 자코포가 감금된 지하 감옥 장면의 암울한 표현은 이미 중후기 묵직한 역작들을 예고하고 있다. 또한 간결하게 압축된 줄거리와 빠른 사건 전개, 단순하면서도 긴박감 넘치는 음악은 ‘시몬 보카네그라’ ‘돈 카를로’보다 처음 작품을 대하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렇기 때문에 ‘포스카리 가의 두 사람’이 현재 잘 공연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의아하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아마 주인공 프란체스코 역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는 성악가가 드물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한 편의 어설픈 이벤트 쇼 같은 ‘미국식’ 무대
예상했다시피 공연의 모든 초점은 프란체스코 역을 노래한 도밍고에 맞춰져 있었다. 나이 탓에 성악적 기량보다는 연기력으로 커버할 것이라는 선입견이 들겠지만 오히려 정반대였다. 고뇌하는 늙은 ‘사자’(베네치아의 상징)로서는 너무 젊고 싱싱한 목소리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도밍고의 음성은 전성기 시절 그대로였다. 반면 무대 위 아우라와 그간의 무대 경험 그리고 준수한 외모로 묵직한 ‘배우’ 도밍고를 기대한 필자에게 그의 연기는 다소 실망스러운 면이 없지 않았다. 아마도 다른 가수였다면 훌륭한 수준이었지만 ‘도밍고’라는 기대치 탓도 있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감옥 장면에서 프란체스코가 냉엄한 도제가 아닌 나약한 아버지로서 지켜줄 수 없는 아들을 방문하여 피 끓는 부정을 노래하는데, 처절한 심정을 노래하는 아버지 도밍고는 아들을 무대 반대쪽에 내버려 둔 채 지휘자를 보고 일렬로 서서 어떠한 감정 표현도 없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할 뿐이었다. 아들 자코포 역의 아르투로 샤콘 크루스는 고통으로 점철된 캐릭터의 폭넓은 감정 표현을 하기에는 너무나 나약했다. 루크레치아 역의 다비니아 로드리게스는 성악적인 기본 기량은 출중했으나 무대 위 배우로서는 지나치게 설익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마치 1950년대 디바를 모방하는 듯한 어설픈 움직임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로레다노 역의 로베르토 탈리아비니 역시 도제의 오랜 정치적 숙적으로서 극의 대립 구도를 팽팽하게 긴장시키기에는 존재감이 부족했다. 지휘자 제임스 콘론은 공연 직후 빈의 주요 일간지로부터 “베르디 초기작 특유의 박진감이 결여된 소극장 수준의 사운드”라는 혹평을 받았지만 분명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가 있었다. 지난 12월 도이치 오퍼의 ‘팔스타프’를 훌륭하게 지휘한 도널드 러니클스와 마찬가지로 콘론 역시 좋은 연출가와 작업했더라면 더욱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이번 공연의 가장 큰 문제는 연출에 있었다. 연출을 맡은 미국 출신의 새디어스 스트라스버거는 연출가라 칭하는 것조차 ‘연출가’라는 직업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는 ‘연출’의 역할을 19세기에 통용되던 ‘무대 감독’으로 잘못 이해한 것 같다. 작품을 이해하는 것, 특히 음악이 어느 장면에 왜 이렇게 작곡되었으며 무엇을 말하고 있고, 이것을 어떻게 관객에게 시각적으로 제시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둘째 치고 연출에 대한 어떠한 기본 개념도 없어보였다. 아마도 그는 적당히 무대 디자인에 참여한 후 가수들에게 등·퇴장 시점을 알려주고 나머지는 출연진이 알아서 하도록 방치한 것 이외에 아무런 작업을 하지 않은 듯하다.
싸구려 뮤지컬 수준의 무대 디자인과 조명 효과, 그리고 답답한 합창단의 모습은 한심하기까지 했다. 무대 양옆에서 마치 석상처럼 등장한 합창단이 자동 기계 인형처럼 서서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다시 무대 양쪽으로 퇴장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눈을 의심한 관객들이 필자 이외에도 여럿 있었을 것이다. 그간 출중한 연출의 무대를 여럿 선보인 테아터 안 데어 빈의 무대에서 이런 수준 이하의 연출이 공연되는 것 자체가 극장에 대한 모독이었다. 특히 각 막이 오르기 전 영화 자막처럼 스크린을 띄워 줄거리를 영사하는 방식은 촌스러움의 극치였다. 오페라 역사가 짧은 미국에서 통할지는 몰라도 빈에서는 관객의 씁쓸한 실소만을 자아낼 뿐이었다.
더욱이 의상의 조악함은 최근 필자가 접한 공연 중에서도 최악이었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여성 배역의 의상이었다. 루크레치아와 시녀들의 의상은 ‘스타워즈’ 또는 어설픈 일본풍의 의상이 연상되는 우스꽝스러운 실루엣으로 제작되었는데 마치 국적 불명으로 모차르트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밤의 여왕과 세 시녀들의 모습처럼 보였다. 특히 원색조의 괴기한 시녀들의 의상은 의상학과 학생의 과제물 수준으로, 극 속 상황과 전혀 연관이 없는데다 전체 무대와도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루크레치아의 경우 제 아무리 공화국 최고 지도자를 시아버지로 둔 귀족 여인이라 할지라도 남편을 구명하기 위해 반미치광이 상태로 동분서주하는 상황에 매번 화려하게 차려 입고 무거운 보석으로 완벽하게 치장할 여유가 있었을지 의문이다. 빈틈없이 치장한 루크레치아의 모습에서 그녀의 절박한 극중 상황을 공감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한 편의 어설픈 이벤트 쇼 같은 ‘미국식’ 무대로 일관한 이번 공연은 마치 유럽 연출가가 어설프게 동양의 전통극을 연출한 듯한 어색한 느낌을 주었으며, 미국식이 어디서나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오페라를 ‘화려하게 치장한 스타 성악가들의 노래자랑’쯤으로 여기는 안이한 생각이 오페라라는 장르 자체를 잘못 이해하는 첫걸음이라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공연이었다.
글 이설련(베를린 통신원) 사진 Herwig Pramm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