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 충남 부여 출생
2002 서울대 음대 졸업
2005 베를린 음대 졸업
2007 도밍고 오페랄리아 콩쿠르 우승
2008 빈 슈타츠오퍼 데뷔
2009~현재 빈 슈타츠오퍼 전속 가수
‘베르테르’ 알베르, ‘돈 조반니’ 마제토
‘마농 레스코’ 레스코, ‘라 보엠’ 쇼나르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 역 외
빈 슈타츠오퍼에는 현재 네 명의 한국인 성악가가 전속 가수로 소속돼 있다. 그중 2009년 가장 먼저 입단한 바리톤 양태중이 맏형으로서 6년째 활동 중이다. 2007년 오페랄리아 콩쿠르를 우승한 후 바로 이듬해 빈 슈타츠오퍼에서 ‘세비야의 이발사’의 피가로 역으로 데뷔한 양태중은 몇 차례의 러브콜을 더 받은 후 전속 가수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에서 그의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방법은 인터넷에 업로드 된 피가로의 아리아를 보는 것이 유일하다. 2003년 참가한 콩쿠르에서 ‘세비야의 이발사’ 피가로의 ‘나는 마을의 해결사’ 아리아를 부른 영상이다. 이 아리아는 첫 유학길에 오른 그에게 행운을 안겨다주었을 뿐 아니라 빈 슈타츠오퍼의 데뷔 무대를 장식하기도 했다.
유쾌한 피가로 그 자체인 그는 이제 밝고 젊은 바리톤에서 좀더 원숙한 바리톤으로 변모해나가고자 한다. 연간 25개 가량의 작품을 준비해야 하는 전속 가수의 바쁜 일정상 한국 공연을 성사시키지 못해 국내 팬들에게는 비교적 덜 알려진 편이지만, 더 넓고 다양한 세계무대를 만나기 위해 새로운 도약을 준비 중인 그를 우리는 미리 눈여겨봐야 한다.
어떻게 빈 슈타츠오퍼의 전속 가수가 되었나?
2007년 도밍고 오페랄리아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는데, 당시 심사위원이 빈 슈타츠오퍼의 극장장이었다. 그가 오디션을 볼 것을 권유해서 이듬해 ‘세비야의 이발사’의 피가로 역으로 캐스팅됐고, 2009년부터 전속가수로 활동하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아 지금까지 6년째 활동하고 있다. 극장 측에서는 장기 계약을 원했으나 2년마다 재계약을 해왔으며, 게스트 성악가로서 활동하고 싶은 계획에 이번에는 1년만 계약을 연장했다. 전속 가수로 있으면 다른 오페라단에서 게스트로 서달라고 요청이 와도 참여를 하지 못한다. 기회가 와도 극장에서 잡힌 스케줄과 충돌하면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에서 한국에서 한 번도 공연을 하지 못 했는데, 이제는 우리 극장에서 할 만큼 했으니 좀더 다양한 무대에 서보려 한다.
빈 슈타츠오퍼에서는 주로 어떤 역할을 맡는가.
벨칸토 바리톤에 속한다. 벨칸토부터 초기 베르디의 가벼운 역까지 맡을 수 있는 소리로, 영웅적이고 무거운 인물보다 밝은 역할을 주로 맡는다. ‘세비야의 이발사’ ‘사랑의 묘약’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파우스트’ 같이 높은 음역을 필요로 하는 오페라 무대에 주로 선다.
자신에게 맞는 음역대는 어떻게 정하게 되는지 궁금하다.
중간 음역에서 높은 음역으로 바뀌는 파사조가 어디서 일어나는지, 자신이 가진 음역의 성향에 따라 정하게 된다. 고등학교 때 처음 성악을 시작한 후 고음이 잘 불리기에 테너가 아닌가 하고 고민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고음이 난다고 모두 테너는 아니더라. E♭ 정도의 음에서 소리가 바뀌면 바리톤이고 좀더 높은 곳에서 바뀌면 테너라고 하는데, 나는 ‘세비야의 이발사’의 피가로처럼 좀더 높은 소리를 요구하는 역할을 맡는 바리톤이라는 걸 알았다.
다른 극장에 가면 해보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
베르디 오페라! 빈 슈타츠오퍼에서도 커버(비상 시를 위해 대기하는 역할)로 준비는 많이 해뒀는데, 이제 내 이름을 걸고 하고 싶다. ‘라 트라비아타’의 제르몽을 맡기엔 아직 좀 젊어서 하지 못했지만, 이제 마흔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할 것 같다. 밝은 음색을 가져서 내가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젊은 아버지를 표현할 수도 있으니까. 소리 빛깔이 아닌, 음악 안에서 중후함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려면 그 작품에 나를 원하는 극장을 찾아봐야 한다.
여러 극장에서 활동하려면 매니지먼트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하나만 보고 달려가는 성격이라 미리 찾아보지 않은 게 후회된다. 콩쿠르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얻고, 좋은 극장에서 공부를 많이 하고 열심히 경력을 쌓는 데 열중하느라 여러 극장에 적극적으로 공연하러 가지 않았다. 에이전시의 명함을 받고도 연락을 안 했었다. 극장에 충실하면서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시기였던 점은 분명하지만, 미리 준비를 해두지 않은 것은 후회되는 지점이다.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피가로 역을 맡아달라고 연락이 와서 극장 측에 스케줄을 하루 빼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사실 극장에서 한 번 거절했을 때 “이번에는 꼭 가고 싶다. 우리 극장에 좋은 가수 많으니 한 번 빼달라”라고 재청하면 되는 건데, 극장에 충실하기 위해서 포기했다. 그런데 살아보니 충실함이 능사는 아니었다. 그래서 내 뒤로 들어온 후배들에게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계속 찾아가서 공연하러 갔다 오겠다고 말해라. 그래도 전혀 문제없다”라고 말해준다. 외부에 나갔을 때 성공적으로 공연하면 계속 러브콜이 오니 욕심을 가지라고 말이다.
후에 들어온 성악가들에게 어떤 조언들을 해줬는지 궁금하다.
나 혼자 3년쯤 있다가 이용훈·홍일·박종민·고현아가 빈 슈타츠오퍼에 오게 됐다. 아무래도 한국 가수들에겐 혼자 겪으며 깨달았던 노하우들을 설명해주게 된다. 극장과의 관계에 대한 조언이 주를 이루는데, 극장에서 요구한다고 무조건 응하지 말라는 것이다. 예전에는 무대에 올리는 배역 하나에 커버까지 맡아 준비하는 와중에 갑자기 또 하나를 맡아달라고 부탁하면 힘들어도 응했다. 하지만 내가 무리하기 시작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고, 그건 오히려 공연에 지장을 준다. 나는 아플 때 한 번도 공연을 취소하지 않았는데, 극장 측은 전속 가수가 아플 시에 대한 보험을 들어놔서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잘 해보고 싶은 생각에 의욕만 내세우지 말고,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무대에 나가는 게 진정한 프로라고 말해준다.
배역이 결정되면 공연 준비는 어떻게 하나.
시대적 배경부터 찾아 읽으며 우선 대사에 대한 공부를 한다. 시간이 많다면 차근차근 혼자 피아노 쳐가며 익히겠지만, 한두 달씩 차분하게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보니 도움을 받아 준비한다. 극장에 소속된 반주자가 열 명 정도 있는데, 이 사람들은 작품에 대해 미리 공부해둔 사람들이다. 반주자이자 음악 코치라서 발음이나 음색, 표현 전반에 대해 조언을 해준다.
한 해에 몇 작품 정도 준비하는 편인가.
빈 슈타츠오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의 작품을 올리는 곳이다. 가장 많을 땐 일 년에 50편을 공연한 적도 있다. 내 경우 일 년에 열 작품 정도 무대에 오르고, 15편 정도는 커버로 준비한다. 무대에 오를 배역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커버 역할을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그간 엄청난 수의 작품을 원 없이 공부할 수 있었다. 이제는 한 작품씩 충분히 공부하며 깊이 있게 준비하고 싶다. 커버로 준비하면 리허설을 전혀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역할을 맡은 성악가들과 함께 호흡하고, 무대에서 직접 불러보는 것과 다를 수밖에 없다.
무대에 오르기까지 리허설을 몇 번 하는가?
새 프로덕션인지, 다시 올리는 연출인지에 따라 다르다. 새로 제작되는 공연일 경우 한 달 정도 같이 모여서 준비하는데, 1막 하나를 맞춰보는 데만 일주일씩 걸릴 정도다. 이전에 올랐던 프로덕션이 다시 오를 경우 일주일 전에 모여 무대에 선만 그어놓고 연습해보는 게 전부다. 그러다 보니 데뷔 무대는 정말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됐다. 극장 측에서 공연 사흘 전에 빈으로 오라고 연락을 해왔는데, 공연 경험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상태라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혼자서라도 철저하게 대비해놔야겠다 싶어 그 연출에 대한 DVD를 보며 동선을 연구했다. 사흘 전에 도착했는데,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선만 그어놓고 무대가 있는 척 연기를 하는 방식이었다. 심지어 오케스트라 리허설도 없어 본 공연에서야 처음 제대로 맞춰보게 된 것이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아리아를 불러야 하는데 세상에 계단이 그렇게 길고 가파를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어찌나 숨이 차오르던지 예상했던 호흡이 아니었다. 사다리가 쓰러질까 봐 걱정도 되고. 극장장이 바뀌면서는 일주일 정도는 공연 연습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됐다.
이제는 사흘 전에 투입돼도 잘 해낼 수 있게 되었나.
이전에는 충분히 준비가 덜 된 오페라에 투입될 땐 떨리는 마음으로 동선을 계산하면서 노래를 불렀다.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무대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계산하지 않고 무대 위에서 즐기고 있는 걸 느꼈다. 데뷔 공연 때는 지휘자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열심히 노래만 불렀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관객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 반 동안 어둠에 대고 소리를 지른 것이다. 이제는 여유가 생겼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음악을 전달하고 싶은 마음에 자연스럽게 관객이 눈에 들어온다.
수많은 성악가들과 공연하면서 특별하다는 생각이 든 사람은 누구인가.
레오 누치. 일흔이 넘은 사람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그들 곁에서 커버를 준비하면서 그런 살아있는 대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가수들에게는 무언가 특별한 게 있다. 관객들은 이유 없이 아무나 좋아하는 게 아니다. 오페라가 종합예술이다 보니 단순히 노래만 잘 부른다고 인기를 얻는 게 아니라 표정이나 몸동작 하나에까지 감동이 달려 있다. 결국 특별한 가수가 되고 싶은 게 바람이다. 특별함을 주는 나만의 ‘그 무언가’를 늘 고민한다.
글 김여항 기자(yeohang@gaeksuk.com) 사진 Michael Poehn/Wiener Staatso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