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유튜브에 아티스트 이름만 써넣으면 수많은 동영상이 뜨고 진귀한 아티스트의 연주 모습을 어디에서나 감상할 수 있지만,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이런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시 아티스트들은 그야말로 베일에 가려진 ‘전설’과도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음반 속 표지 사진처럼 엄숙했으며(표지 사진에선 절대로 웃는 법이 없었다), 풀 먹여 다려놓은 교복 깃처럼 언제나 꼿꼿했다. 메이저 회사에서 음반을 낸 연주자들은 스타 대접을 받았고, 그들의 연주회를 단 한 번이라도 접해볼 기회를 가졌던 사람들은 그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겼다.
그럴 때이니, 유명 연주자가 한국을 찾아 내한 연주를 한다는 것은 요즘처럼 티켓을 파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그야말로 클래식 음악계의 ‘잔치’였다. 어떤 레퍼토리를 연주하느냐는 문제도 되지 않았다. 그저 그들이 이 외지고 먼 나라에 와준 것만도 영광이라고 생각하던 시대였으니까. 매스컴도 내한 소식을 앞 다투어 보도하는 바람에 다른 홍보 활동은 필요하지도 않았다. 콘서트홀은 언제나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로 붐볐고, 오랜만에 잔치에서 만난 이들은 연주자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공연은 언제나 성공이었고, 연주자들에 대한 예우도 극진했다. 그들의 연주료를 깎는다는 것은 그들의 품격을 깎아 내리는 것만큼이나 몰지각한 행동이었다. 한마디로 클래식 음악의 황금기였다.
외형은 황금기였지만 안타깝게도 내면이 꼭 그와 부합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때쯤부터 공연 후 열리곤 했던 연주자의 사인회는 아수라장이 되기 일쑤였다. 특히 당시 최고 인기를 누리던 한국인 연주자들의 사인회가 열리는 공연장 로비는 그 공연을 본 모든 인파가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홀마다 바리케이드가 준비됐던 때도 아니어서 관객들의 동선을 고려해 사인회 줄을 만들어 세워야 했는데(홀마다 로비의 생김새와 출입문 위치가 달라 관계자의 놀라운 창의력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질서 유지는 지방 공연장에서 더 어려웠다. 아마도 아티스트에 대한 갈증이 더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번은 스태프들이 연주자를 에워싸고 인파를 뚫어가며 사인회장까지 이동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도저히 인원을 통제할 수 없어 다시 되돌아 들어간 적이 있었다. 이에 격분한 관객들은 사나워졌고 서로 밀고 밀치며 실랑이하는 바람에 안전사고 위험까지 생기게 되었다. 결국 보다 못한 스태프가 질서 유지를 위해 신성한(?) 사인회 책상을 밟고 올라가 소리를 지르는 사태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여러분,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흥분을 가라앉힌 후 다시 사인회가 재개되기는 했지만 연주회 진행보다 더 힘든 사인회였다. 불과 몇 분 전까지 “브라보”를 외치던 점잖은 관객 분들은 누구이고, 연주자의 ‘사인’ 하나에 목숨 거는 여기 이분들은 또 누구란 말인가!
오래전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전국 순회공연 중에 있었던 일도 재미있다. 워낙 유명한 연주자였으니 열렬한 환영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지만, 그녀가 묵을 호텔에는 삼일절 시청에나 걸릴 법한 대형 태극기와 함께 ‘경축!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공연’ 이라는 대형 현수막이 호텔 전면을 가득 덮고 있었다. 정경화 측 스태프라는 말에 단번에 방값을 3분의 1로 깎아주던 호텔 측의 통 큰 배려도 기억에 남는다.
이튿날 연주자가 리허설을 위해 일찍 호텔을 나서려는데 한 관계자가 극구 떠나려는 연주자를 말렸다.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거였다. 홀의 상태도 살피고 리허설도 해야 한다며 빨리 가고 싶다고 말해도 “글쎄, 빨리 가게 해드릴 테니 조금만 더 기다리시라”라는 말만 이어졌다. 과연 잠시 기다리자 경찰 순찰차와 멋진 오토바이를 탄 교통 경찰관들이 도착했다. 연주자에게 멋진 거수경례를 붙인 경찰관들은 그녀를 태우고 막힌 도로를 ‘활짝’ 헤치며 콘서트홀로 향했다.
아마도 호텔에서 연주회장까지 ‘최단시간 도착 기록’은 이때 세워졌으리라. 최고의 연주자가 멋진 경례를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누구보다 빠르고 안락하게 콘서트홀에 도착할 권리도 존중되어야 하지만, 그래도 반주자는 태워가셨어야지요!
지금은 사인회에서 누가 통제하지 않아도 알아서 줄을 서고, 연주자가 콘서트홀에 간다고 경찰차를 불러주는 사람도 없지만, 가끔은 우직하고 촌스러웠던 그들의 무분별한(?) 애정이 그립다.
글 이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