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 굴지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가운데 지난 5월부터 빈 폴크스오퍼 오케스트라 종신 부악장으로 활동 중인 유희승을 만났다
지난 글로벌 시대를 맞아 많은 한국 출신 음악가들이 유럽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성악 분야는 함부르크 슈타츠오퍼의 소프라노 권해선과 이하영, 베를린 도이치 오퍼의 테너 강요셉 등이 독일 정상급 극장의 전속 주역 가수로 활동 중이다. 오페라 합창단원까지 보태면 숫자는 더욱 늘어난다. 하지만 성악 분야에 비해 기악, 특히 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인 경우는 드문 편이다.
유학을 마친 뒤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교향악단 단원으로 활동 중인 한국인 연주자는 독일의 경우 30명이 채 안 된다. 그것도 대부분 현악 파트이고 그중에서도 바이올린이 가장 많다. 가까운 일본은 우리보다 서양음악을 훨씬 먼저 받아들이긴 했지만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경우를 보면 악장 세 명 중 한 명이 일본인 가시모토 다이신이다. 악장뿐만 아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파트까지 합하면 단원 네 명이 일본인이지만 한국인은 한 명도 없다. 악장은 오케스트라의 얼굴이자 단원의 대표라는 점에서 평단원과는 여러모로 차원이 다르다. 다행히 최근 한국 연주자들도 유럽 굴지의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5월부터 오스트리아 빈 폴크스오퍼(Volksoper Wien) 오케스트라에서 종신 부악장으로 활동 중인 바이올리니스트 유희승이다. 빈 폴크스오퍼는 제1차세계대전 발발 전까지는 빈 슈타츠오퍼에 버금가는 오페라극장이었지만 1929년부터는 오페레타를 전문으로 공연하는 극장으로 자리 잡았다. 객석 수는 1,473석. 무대 규모도 그리 크지 않기 때문에 오페레타와 더불어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주로 공연한다. 9월부터 6월까지 시즌 중에는 거의 매일같이 공연이 열린다. 빈 슈타츠오퍼·부르크테아터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리아 국립극장 소속이다.
빈 슈타츠오퍼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고 있기 때문에 폴크스오퍼 오케스트라는 오페라극장 소속 오케스트라로는 빈 필 다음가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오페레타 하이라이트와 왈츠로 꾸미는 신년음악회 프로그램으로 20년 전부터 매년 일본을 방문하고 있다. 올해 초엔 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섰다. 오프 시즌을 맞아 자신이 제1바이올린 주자로 있는 리히텐탈 콰르텟을 이끌고 서울·인천·대구에서 순회공연차 내한한 유희승을 만났다. 다음은 유희승과의 일문일답.
처음부터 오페라에 관심이 많았는지 궁금하다.
빈 국립음대에서 만난 라이너 퀴흘 교수는 스무 살 때부터 줄곧 빈 필하모닉 악장으로 있다. 빈 필은 빈 슈타츠오퍼 오케스트라를 겸하기 때문에 단원 모두가 오페라에 대한 이해가 깊다.
예원학교 3학년 때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바이올린을 하는 친오빠가 빈 유학을 먼저 시작했다. 서울에서는 선생님이 악보에 적어준 메모를 보고 연습해가면 되는데 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주도적으로 음악을 만들어가야 한다. 과제곡도 학생이 직접 고른다. 선택은 자유이지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에 대한 자기만의 논리가 있어야 한다. 빈 필 악장으로 전 세계를 누비느라 바쁜 선생님인지라 레슨을 몰아서 할 때도 많았다. 크리스마스 때도 레슨을 받았다. 큐흘 교수님은 오케스트라 생활을 오래 해오다 보니 협주곡에서도 오케스트라 협연자와의 호흡과 앙상블을 강조했다. 독주 악기도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주곡을 만들어가는 하나의 악기라는 의미다.
어릴 때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나.
부모님이 음악을 전공하시진 않았지만 어렸을 때 집에 늘 클래식 음악이 흘렀다. 텔레비전에서 요제프 수크의 연주를 보고 막연하게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다. 세 살 때부터 스즈키 메소드로 꼬마 바이올린을 배웠다. 놀이 삼아 시작한 것이라서 쉽게 흥미를 느낀 것 같다.
빈 폴크스오퍼 오케스트라 동료 단원 중에 한국인도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인은 없다. 일본인이 있는데 바이올린과 비올라 파트를 합쳐 모두 네 명이다.
‘종신 단원’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해달라.
일단 종신 단원이 되면 정년이 보장된다는 의미다. 지휘자가 바뀌어도 도중에 내보낼 수 없다. 정년이 따로 없는 미국과는 달리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대부분 65세가 정년이다. 이때까지 중도에 그만두지 않고 오래 연주하는 단원들이 많다. 악장은 모두 3명인데 부악장은 평소엔 악장을 보좌하고 악장이 피치 못할 사정으로 빠질 때는 악장 역할을 대신한다.
오디션 과정은 어떠한가.
처음엔 평단원 오디션에 두 차례 도전했다가 최종 단계에서 떨어졌다. 출산휴가를 떠난 단원 대신에 2011년 말부터 객원 단원으로 1년 반 정도 있었다. 부악장 오디션 공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는데 서류 심사에 합격해 초대장을 받았다. 45명 중 5명이 파이널까지 올라갔다. 마지막 과제곡인 오페라 서곡을 연주하기도 전에 즉석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합격 후 1년간의 수습 기간을 거치는데 7개월 만에 종신 계약서에 사인했다. 수습 기간 중에는 단원들이 함께 연주하면서 앙상블 능력이나 친화력 등을 평가하는데 이 기간 동안 몸이 아파도 참고 연주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1년이 지난 다음 수습 기간을 더 연장하기도 한다.
거의 매일 저녁 공연이 있어서 바쁘겠다.
일주일에 하루 쉰다. 몸이 갑자기 아플 경우, 공연 개막 3시간 전에만 미리 알려주면 다른 단원이 투입된다. 그 대신 그 단원이 쉴 때 내가 연주해야 한다. 매일 저녁 다른 레퍼토리를 상연하기 때문에 연주 있는 날, 처음 접하는 곡은 아침부터 계속 연습이다. 1년에 35개 레퍼토리를 300회가량 공연한다고 보면 된다. 하루 두 차례 공연할 때도 있다. 단원은 모두 95명인데 이 중 3분의 2 이상이 매일 저녁 연주한다. 바로크 시대에서 20세기까지 레퍼토리가 매우 다양하다. 오페레타는 주역 가수의 노래를 독주 바이올린이 함께 연주하는 경우가 많아 항상 긴장된다. 남녀 주인공의 2중창은 악장와 부악장이 듀오로 함께 연주한다.
오페라 반주 외에 단독 공연은 없나.
플라시도 도밍고·브린 터펠 등 유명 성악가들의 갈라 콘서트에서 함께 연주한다. 차이콥스키나 말러의 교향곡 중 하이라이트를 엮은 음악으로 발레를 상연하기도 하는데 어려운 솔로 부분만 모아놓은 것이라 하루 저녁에 협주곡 몇 곡 연주한 것같이 힘들 때도 있다. 최근에는 쇤베르크·말러·클림트·젬린스키 등 세기말 빈을 배경으로 한 발레 기획 공연에도 참여했다.
오페라극장 전속 오케스트라 특유의 경험이나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들려달라.
수십 년 넘은 악보를 쓰기 때문에 넘길 때 조심해야 한다. 선배 단원들이 악보에 연필로 남긴 메모를 읽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다. 음악가의 애환을 노래한 가사가 마음에 들면 옆에다 그대로 적어둔 사람도 있다. 매일 저녁 작품이나 성악가는 물론 지휘자, 악장도 매번 바뀌기 때문에 어느 누구와 함께 연주해도 문제가 없어야 한다. 그만큼 순발력과 적응력이 뛰어나야 한다. 오페레타는 레치타티보가 없기 때문에 연극처럼 대사로 처리하는 부분이 많은데 이때는 무대 위쪽을 쳐다보며 구경하기도 한다. 하도 많이 듣다 보니 합창을 따라 부르는 단원도 있다. 금관 파트는 쉬는 부분이 많아 공연 도중에 휴게실 가서 음료수 마시다가 자기 파트 연주할 때쯤 되어 다시 들어오기도 한다. 자막 덕분에 대부분의 오페라와 오페레타를 원어인 이탈리아어 또는 독일어로 공연하는데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은 지금까지도 독일어 번역으로 부른다. 원래 프랑스어 대본이기 때문에 가수가 펑크라도 내는 날이면 대타를 구하기 힘들다.
레퍼토리가 다양하겠지만 폴크스오퍼를 대표하는 작품도 있겠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박쥐’가 단연 인기다. 연말에는 슈타츠오퍼에서도 ‘박쥐’를 상연한다. 다음으로 레하르의 ‘즐거운 과부’, 모차르트의 ‘마술피리’ 순이다.”
신년음악회로 일본 순회공연을 하면 그때는 극장이 쉬는가.
단원 중 절반은 해외 공연을 떠나고 나머지는 계속 연주한다. 이때는 모든 단원이 주 7일 근무다.
시즌 중에는 정말 바쁘겠다.
남들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휴가를 즐기지만 오페라극장에서는 그때가 더 바쁘다. 대신 시즌과 비시즌이 확실하기 때문에 7·8월 두 달은 푹 쉰다. 매년 여름 국내에서 크고 작은 음악회에 출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