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첫 내한 공연에서 독주를, 2011년 두 번째 내한 공연에서 서울시향과 협연을 선보였던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이번에는 자신이 이끄는 현악 4중주단과 함께 국내 무대를 찾는다
먼저 시벨리우스 현악 4중주 Op.56을 듣는다. 1악장, 바이올린이 말을 건네면 첼로가 화답하듯 어우러져 ‘친근한 목소리(Voices Intimae)’라는 제목이 붙었다. 마지막 악장, 강철로 된 네 마리의 말이 일제히 질주하는 것만 같다. 역동적인 움직임에 햇빛이 반사돼 눈이 부시다. 다음은 쇤베르크의 현악 4중주 1번, 초기작이라 조성 음악이지만 쇤베르크의 정체성이 혼재해 있다. 세련되면서도 절제된 연주다.
음반의 주인공은 테츨라프 현악 4중주단.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가 이끄는 현악 4중주단으로, 1994년에 결성됐다.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는 함부르크 출신이다. 여섯 살 때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열네 살 때 데뷔 무대를 가졌다. 뤼베크 음대와 신시내티 음악원에서 공부한 테츨라프의 레퍼토리는 바흐·베토벤·브람스 등 바로크·고전·낭만음악에서 베르크·리게티·쇤베르크·쇼스타코비치 등 20세기 음악까지 폭이 넓다. 테츨라프의 경력을 살펴보면 별다른 콩쿠르 입상 경력 없이도 무명 시절부터 재능을 인정받아 거장 지휘자들이 협연 무대에 세웠다는 점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크리스토프 폰 도흐나니가 지휘하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베를린 페스티벌 무대에 섰고, 뮌헨에서 세르주 첼리비다케가 지휘하는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미하일 길렌의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도 테츨라프와 협주곡을 연주했다. 오로지 실력 하나로 쌓아온 그의 커리어는 탄탄하다.
테츨라프는 실내악 활동도 활발하다. 피아니스트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와 라르스 포그트, 첼리스트인 여동생 타냐 테츨라프 등과의 듀오 및 트리오 활동은 무대와 음반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테츨라프는 버진 클래식스와 EMI 클래식스에서 다수의 음반을 발표했다.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 녹음(Virgin Classics), 다우스고르/덴마크 국립 오케스트라의 시벨리우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작품 전집(Virgin Classics)은 황금 디아파종상을 수상했다.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은 길렌 지휘로 원전판을, 진먼 지휘로 통상판을 녹음해 두 종을 내놨다. 안스네스와의 버르토크 바이올린 소나타집(Virgin Classics), 안스네스·타냐와 함께 연주한 슈만의 트리오집(EMI Classics)은 각각 2005년과 2012년 그라모폰상 베스트 실내악 음반상을 수상했다.
안스네스와 테츨라프 남매가 함께한 슈만 피아노 트리오 음반은 슈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줬다. 따스하고도 예민한 안스네스의 피아노와 주고받는 테츨라프 남매의 연주는 복잡한 패시지도 능숙하게 처리했다.
포그트와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집과 슈만 바이올린 소나타집(Ondine)은 그라모폰지 에디터스 초이스와 이달의 음반으로 꼽혔다. 그가 실내악에서 거둔 성과는 그야말로 대단하다.
라르스 포그트는 테츨라프를 소울메이트라 부를 정도로 그와 연주하는 것을 좋아한다. 테츨라프는 매년 포그트가 주재하는 슈파눙겐 페스티벌에 참여한다. 포그트는 테츨라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에너제틱하고 놀라운 사람이죠. 버르토크 바이올린 소나타를 연주할 땐 세상에 이렇게 와일드한 연주자가 있나 생각될 만큼 힘이 넘치지만, 그러면서도 감성적인 연주자예요. 미국 연주자들이 비브라토를 잔뜩 매겨 몸을 떨 때 테츨라프는 내부의 에너지를 그냥 보여줄 뿐이죠. 테츨라프 쪽이 훨씬 강렬합니다.”
따로 또 같이, 조화와 균형이 만드는 환상 호흡
크리스티안 테츨라프는 2010년 첫 내한 공연을 가졌다. LG아트센터에서 3시간에 걸쳐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파르티타 전곡을 연주하며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두 번째 내한 공연은 2011년 6월. 휴 울프가 지휘한 서울시향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다. 강철같이 견고하고 중후하며 아름다웠던 그의 해석은 지금도 회자된다. 독주와 협연 무대를 보여줬던 테츨라프가 이번에는 실내악 무대로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세 번째 내한 공연을 갖는다. 10월 2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에서 테츨라프 현악 4중주단 연주를 선보인다.
테츨라프 현악 4중주단의 제2바이올린을 담당하는 엘리자베트 쿠퍼라트는 밤베르크 심포니의 악장을 지냈다. 현재 하노버 국립음대 바이올린 교수다. 비올리스트 한나 바인마이스터는 잘츠부르크 출신으로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콩쿠르·자크 티보 콩쿠르 등 다수의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모두 연주하는 그녀는 현재 취리히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고 있다.
동생인 첼리스트 타냐 테츨라프는 하인리히 시프에게 배우고 뮌헨 ARD 콩쿠르 3위에 입상했다. 유럽·미국·호주·일본 등 세계 무대에서 활발하게 연주 활동을 하고 있으며, 현재 파보 예르비가 지휘하는 도이치 카머필하모닉의 첼로 수석이기도 하다.
어느덧 창단 20주년을 맞는 테츨라프 현악 4중주단은 에머슨이나 하겐 등 상설 현악 4중주단과는 달리 솔로 활동을 병행한다. 각자의 내공이 조화와 균형을 이루는 이들의 특·장점은 생동감이다. 네 명의 연주자가 각자 솔로 커리어를 유지하다가 비정기적으로 연주 활동을 하지만, 실연 무대에서는 집중도 높은 연주를 선보여 찬사를 끌어낸다. 뉴욕 카네기홀을 비롯해 런던 위그모어홀·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빈 무지크페라인·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등 세계 유명 공연장과 각종 페스티벌의 초청이 이어지고 있다.
크리스티안 테츨라프의 세 번째 내한 공연이자 테츨라프 현악 4중주단의 첫 내한 공연은 독일 레퍼토리들로 꾸며진다. 공연은 모차르트 현악 4중주 15번으로 시작한다. 하이든에게 헌정한 ‘하이든 세트’ 중 두 번째 곡이자 유일한 단조곡인 이곡은 1악장과 4악장의 엄숙한 분위기가 일품이다. 1973년생 독일의 작곡가 외르크 비트만의 현악 4중주 3번 ‘사냥 4중주’는 슈만의 피아노 작품 ‘나비’에서 영감을 받아 연주자들의 고함, 활 휘두르는 소리까지 악보에 담아낸 작품이다.
공연의 ‘메인 디시’는 베토벤 현악 4중주 15번이 될 예정이다. 이 곡은 베토벤의 곡 가운데 인간성이 가장 깊이 스며있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다시 태어난 베토벤이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서려 있다. 베토벤이 교향곡과 관현악곡에서 외향적인 늠름한 기상을 떨쳤다면, 그 이면에 위치한 촛불 같은 내성과 정서는 실내악과 독주곡을 통해 표출됐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실력으로 확고한 신뢰를 쌓아온 이름 테츨라프, 올가을 그 이름에 또 한 번 기대를 걸어본다.
테츨라프 현악 4중주단 내한 공연
10월 2일 오후 8시 LG아트센터
모차르트 현악 4중주 15번, 외르크 비트만 현악 4중주 3번 ‘사냥 4중주’,
베토벤 현악 4중주 15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