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바딤 글루즈만

새로운 만남으로 한국 청중에게 말을 걸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11월 1일 12:00 오전

19세기와 20세기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바딤 글루즈만이 서울시향과 첫 호흡을 맞춘다

9월 25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있었다. 객원 지휘자는 바실리 시나이스키였고, 협연자는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글루즈만이었다. 그는 글라주노프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연주회 다음 날 샹젤리제 극장 부근에서 그를 만났다.

현재 매우 바쁜 연주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호텔·비행기·연습·연주회 사이에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웃음)나는 한 연주회를 마치면 그다음 연주회에 모두 집중할 따름이다. 나의 삶은 일종의 반복이고 순환이다. 연주 여행 사이에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노력을 기울이는 데 그것이 쉽지만은 않다. 연주자로 살면서 평범하면서도 정상적인 삶을 꾸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비행기·공항·호텔·연주회장을 오가는 연주자의 삶은 그 자체로 보면 전혀 흥미롭지 않다. 어떤 도시에 도착하고, 호텔로 이동하고, 오케스트라와 연습을 하고, 다시 호텔로 돌아와 연습을 하고, 연주회를 하는 게 전부다. 만일 연주회라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라면 이 모든 이동과 단조로운 반복을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이다. 물론 파리와 같은 아름다운 도시에선 때로는 영감을 받기도 하고, 남다른 특별함과 기쁨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연주회와 만나게 될 청중이다.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났지만,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이스라엘 국적을 취득했다. 어린 시절 받았던 음악교육에 대해 들려달라.

나는 열다섯 살 정도까지 리가에서 살았다. 내가 어렸을 적에 라트비아는 소비에트 체제에 속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고,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 당시에는 예술에 재능 있는 어린이들을 위한 특별 학교가 존재했고, 국가에서 이들의 미래를 결정하고 교육했다. 나는 소비에트 사회제도 전반에 대해서는 찬성하지 않는다. 이유는 너무나 비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제도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물론 어떤 이들은 어린이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는다는 비판을 할 수 있다. 내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일곱 살 무렵에 나는 몇몇 테스트를 거쳤다. 그들은 나에게 “너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다. 음악을 하고 싶은지, 혹은 달에 가고 싶은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웃음). 그들이 생각했던 이유는 내가 절대음감과 좋은 기억력을 지니고 있고, 손이 바이올린을 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결정이 내려진 순간 이후로 웃고 즐기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하며 프로페셔널이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러한 과정이 없었다면 아마도 오늘날의 나는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매우 높은 수준의 연주자들이 배출될 수 있는 것이다.

차이콥스키에서 글라주노프 그리고 소피아 구바이둘리나까지…. 러시아 작곡가들의 레퍼토리에 정통하다. 그들 가운데 당신이 특별히 더 가깝다고 느끼는 작곡가들은 누구인가?

(망설임)나는 당신의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답하고 싶다. 나에게는 아무런 친근감을 느끼지 못하는 작곡가들이 있다. 그 가운데 파가니니가 있다. 나는 파가니니의 작품과 그 어떤 교감도 할 수가 없다. 파가니니의 작품이 형편없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나의 개인적인 기운과 파가니니의 작품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이다. 나는 벨러 버르토크를 연주하지 않는데, 이유는 내가 버르토크를 잘 연주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학생 때부터 버르토크의 대부분의 바이올린 작품들을 공부했지만, 내가 그의 어떤 작품을 연주하면서 하나의 독자적인 예를 제시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후론 연주하지 않는다. 아무튼 음악의 세계는 무척이나 방대하기에 연주자는 자신에게 맞는 세계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음악이나 현대음악을 연주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청중·작곡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다.

현재 몇 곡의 협주곡을 가지고 순회 연주를 하고 있다. 협주곡을 연주할 때에 당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휘자의 자질은 무엇인가?

좋은, 또한 어려운 질문이다. 어제 함께 연주한 지휘자 바실리 시나이스키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함께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여러 번 같이 연주했기에 많은 대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래서 협주곡을 연주하면서 마치 실내악을 연주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간혹 처음으로 작업을 하는 지휘자와 기적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들어맞고, 음악을 연주하는 일이 진정한 기쁨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경우에는 청중도 우리의 기쁨을 느낀다. 이러한 기적은 음악적·인간적인 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아도 어떤 특별한 무엇인가가 전혀 생성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나와 지휘자 사이에 어떤 화학적인 반응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음악적으로 뛰어난 지휘자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인간은 다양하기 때문에 이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쩌면 이는 여자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일과도 같다. 아무리 아름다운 여성이어도 모두가 사랑을 느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과거에 한 번도 함께 연주해보지 않은 오케스트라와 연주하게 될 때에 흥분을 느낀다. KBS교향악단과는 이미 여러 차례 연주를 했지만, 서울시향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는 그들의 녹음을 들었고, 매우 훌륭한 오케스트라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지휘자 정명훈의 작업을 높이 평가한다.

당신에게 연주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망설임 없이)공감이다. 연주회 때 나는 무엇인가 내 안에서 끓어오르고, 그것이 넘치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마치 물이 끓어 넘치는 것과도 비슷하다. 그리고 그 넘치는 것은 청중으로부터 나에게 다시 되돌아온다. 물론 나는 과학적으로 그것을 입증할 수 없다. 그리고 꼭 50대50 같은 교환 방식도 결코 아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여성 작곡가 소피아 구바이둘리나는 정말로 멋진 말을 했다. 성공적인 연주회를 위해서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재능 있는 작곡가, 재능 있는 연주가, 그리고 재능 있는 청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바이둘리나가 말한 재능 있는 청중이란 열린 마음으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청중을 의미한다.

바딤 글루즈만 협연, 서울시향 연주회

11월 14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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