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카트니는 슈토크하우젠의 음악에 주목했고, 이를 유려하고 아름다운 팝의 어법과 연결했다
폴 매카트니가 오는 5월 2일 처음으로 내한 공연을 갖는다. 예정된 스케줄대로라면 지난해 5월에 공연을 해야 했지만 아티스트의 건강상 이유로 취소되었고, 당시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표한 것으로 기억이 난다.
‘팝 뮤지션’으로서 매카트니에 대해서라면 할 말은 차고 넘친다. 비틀스 시절 그와 멤버들, 그리고 프로듀서 조지 마틴이 함께 만들어내던 천의무봉의 선율과 소리는 팝 음악이 무엇인지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비틀스 해체 이후에도 그는 성공적인 솔로 경력을 이어갔으며, 2013년 발표한 새 정규 음반 ‘New’는 이 뮤지션의 음악에 여전히 생생한 활기가 깃들어 있다는 걸 증명한 결과물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클래식 음악 작곡가’와 ‘일렉트로닉 뮤지션’으로서도 인상적인 족적을 남겼다. 여기서는 솔로 시절의 매카트니와 함께 ‘클래식 음악 작곡가’로서 매카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비틀스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비틀스와 현대음악
20세기 음악의 역사를 다룬 앨릭스 로스의 책 ‘나머지는 소음이다’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1967년의 어느 날 밤, 죄르지 리게티는 다름슈타트의 슐로스켈러에 여러 동료와 함께 앉아 있었다… 그때 비틀스의 새 음반인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스피커에서 울려나오기 시작했다. 그 음반의 수록곡 가운데 몇몇 곡은 다름슈타트에서 행하는 최신의, 그리고 가장 앞선 실험들과 놀랄 만큼 닮아 있었다.”
비틀스는 ‘Revolver’(1966)를 작업할 당시 다름슈타트의 ‘현대음악’을 접했고, 매카트니는 슈토크하우젠의 음악에서 목소리를 전자적으로 중첩하는 방식과 테이프 루핑 등의 음악적 기법에 주목했다. ‘Revolver’의 대미를 장식하는 최면적 명곡 ‘Tomorrow Never Knows’는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밴드의 대표작이자 팝 음악의 ‘시민 케인(미국 영화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1941년 작 영화)’이라 할 수 있을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에서는 이러한 기법을 더욱 세련되게 제시했으며, 동시에 그것을 유려하고 아름다운 팝의 어법과 결합시켰다. (역시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대미를 장식하는) ‘A Day in The Life’ 같은 곡에서 구체음악(소리를 녹음한 후 기계적으로 변형시켜 완성한 음악)의 흔적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The Beatles’, 이른바 ‘화이트 앨범’에서 가장 충격적 ‘음악적 콜라주’인 ‘Revolution 9’는 또 어떤가. 비틀스의 멤버들과 프로듀서 조지 마틴은 비치 보이스와 더불어 스튜디오를 단순한 녹음 장소가 아니라 하나의 ‘악기’로 사고한 최초의 대중음악 뮤지션 중 하나였고, 이 과정을 통해 대중음악은 ‘스튜디오 레코딩’을 자신의 핵심적 미학으로 정립할 수 있었다.
굳이 ‘현대음악’을 거론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비틀스는 자신들의 음악에 클래식 음악 스타일을 종종 끌어들였다. ‘Yesterday’나 ‘Eleanor Rigby’의 그 유명한 현악 편곡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매카트니의 아이디어였던 ‘Abbey Road’ B면의 그 유명한 ‘메들리’ 또한 20세기의 대중음악이 남긴 역사적 유산 중 하나일 테다.
솔로 시절의 매카트니
폴 매카트니의 솔로 시절에 대해 말하라면 ‘세련됨’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비틀스 시절에 시도하던 과격한 실험을 감행하거나 사운드의 표현 영역을 확장했다기보다는 그간 자신이 구축해온 스타일의 연장선상에 있는 ‘보편적’ 팝송을 발표했다. 빼어난 멜로디의, 듣기 좋고 즐기기 편한 노래들이라고 해도 좋겠다. 자기 음악에 사회적·정치적 메시지를 넣는 데 주저하지 않은 존 레넌과 자주 비교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누가 더 낫다거나, 누가 덜 위대한가를 따질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각기 다른 지점에서 꼭대기에 오른 두 명의 예술가가 있었을 뿐이지 않을까 싶다.
매카트니는 비틀스 해체 직전 발표한 첫 솔로 음반 ‘McCartney’(1970)를 통해 본격적인 솔로 커리어를 꾸리기 시작한다. 아내 린다 매카트니와 함께 ‘Ram’(1971)을 발표한 뒤에는 윙스(Wings)라는 그룹을 결성했다. 멤버가 자주 바뀌었지만, 매카트니는 1970년대 내내 윙스의 이름으로 음반을 발표한다(그래서 당시 매카트니가 발표한 음반은 모두 ‘윙스’ 아니면 ‘폴 매카트니&윙스’라는 크레딧을 달고 있다). 윙스뿐 아니라 매카트니의 경력에서도 가장 빛나는 순간일 ‘Band on the Run’(1973)이나 ‘Venus and Mars’(1975)가 이 시기에 발표됐다. 비평적으로는 다소 들쑥날쑥한 평가를 받았지만, 이 시기 윙스의 음반은 거의 대부분 상업적인 성공을 누렸다. ‘Live And Let Die’ ‘Silly Love Song’ ‘My Love’ ‘Listen To What The Man Said’ 등 모두의 기억에 남을 히트곡들이 이 시기에 나왔다.
1980년 매카트니는 ‘McCartney II’를 발표하기 전에 윙스 활동을 중단했고(존 레넌의 사망으로 인한 충격도 원인 중 하나였다), 이후로는 매카트니의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1980년대 스티비 원더와 발표한 ‘Ebony And Ivory’, 마이클 잭슨과 함께한 ‘Say Say Say’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히트 싱글이다. 1990년대에도 매카트니는 꾸준히 음반을 발표했으며, 2000년대에는 ‘Chaos And Creation In The Backyard’(2005), ‘Memory Almost Full’(2007) 같은 인상적인 결과물을 내놓았다. 최근 발표한 ‘New’(2013)는 초기 비틀스 시절의 생생한 활력을 성공적으로 끌어오면서 매카트니의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매카트니와 클래식 음악: 낭만주의적 장엄함과 세련된 ‘팝’ 멜로디
다른 한편으로, 매카트니는 ‘순수한’ 클래식 음악 자체에도 꾸준한 관심을 기울여왔다. 영화 사운드트랙인 ‘The Family Way’(1967), ‘퍼시 스릴링턴’이라는 가명으로 ‘Ram’의 수록곡을 새로 편곡한 ‘연주 음반’인 ‘Thrillington’(1977)을 먼저 언급할 수 있겠지만 이 음반들은 아무래도 클래식 음악이라기보다는 ‘팝’의 영역에 가까운 결과물이다.
그렇게 보자면 매카트니 최초의 ‘클래식 음악 음반’은 1991년에 발표한 ‘Liverpool Oratorio’일 것이다. 작곡가 칼 데이비스와 함께 만든 이 음반은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150주년을 기념해 위촉된 곡으로, 폴 매카트니가 클래식 음악에 도전한다는 것 외에도 키리 테 카나와 등 정상급 성악가가 참여해 큰 화제가 되었다. 음반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평자들에게는 미적지근한 반응을 얻었는데, 실제로 음반을 들어보면 그런 평가가 아예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매카트니의 반자전적 이야기를 배경으로 깔고 있는 이 ‘오라토리오’ 음반은 매카트니 특유의 유려하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반짝이지만, 별다른 정보 없이 들을 경우 ‘클래시컬한 영화음악’에 더 가깝다. 무척이나 ‘전통적’이고 평범하며, 실은 조금 길다는 느낌도 든다.
6년 뒤 매카트니는 두 번째 ‘정통’ 클래식 음악 음반인 ‘Standing Stone’(1997)를 발표했다. 매카트니 자신이 쓴 장시에 기반을 두고 작곡한 ‘교향시’라고 할 수 있는데, ‘클래식 음악 전문’이 아닌 입장에서 섣불리 평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Liverpool Oratorio’에 비해서는 좀 더 단단하고 집중력이 느껴지는 음악이다. 물론 여전히 ‘팝 음악’으로 듣는다 해도 크게 무리 없는 순간이 나온다. 그래서 ‘크로스오버 경향의 팝-오케스트라 음반’이라고 감안하고 듣는 쪽이 훨씬 편하다.
▲ McCartney(1970)·Ram(1971)·Band On The Run(1973)·Venus And Mars(1975)·McCartney II(1980)·Chaos And Creation In The Backyard(2005)·Memory Almost Full(2007)·NEW(2013)
이런 평가가 지나치게 박한 걸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다만 이런 생각도 해볼 수는 있을 것이다. 비틀스 시절의 ‘클래시컬한’ 시도가 빛난 까닭은 그게 어디까지나 대중음악 자체의 표현 영역을 확장한다는 의미에서 이루어진 실험이자 시도였기 때문은 아닐까. ‘클래식 음악 작곡가 폴 매카트니’의 음악은 ‘클래식’이라는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어떤 ‘전형적 인상’에 많이 의지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2006년 발표해 클래식 브릿 어워즈에서 베스트 음반 부문을 수상한 ‘Ecce Cor Meum’나 최근작인 ‘Ocean’s Kingdom’(2011)도 개인적으로는 비슷하게 들린다. 신낭만주의 계열의 화려하고 장엄한 오케스트라와 합창 사운드 속에서 유려한 팝 멜로디가 빛나고 몇몇 부분은 짜릿한 감흥을 주지만, 역시 내게는 팝 뮤지션 폴 매카트니 쪽이 더 편안하다.
그런 의미에서 폴 매카트니가 발표한 가장 뛰어난 ‘클래식 음악’ 음반은 1999년의 ‘Working Classical’이라고 생각한다.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마 마르 현악 4중주단과 함께 그의 솔로 음반에서 발췌한 곡들을 재편곡한 이 음반은 훨씬 편안하면서 덜 강박적으로 들리며, 음반 전체에 아름다운 서정이 우아하게 흐른다. 어떤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음반에 슬쩍 끼워 넣어도 잘 모를 것 같다. 이런 느낌이 ‘대중음악평론가’의 편견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음반의 오프닝을 장식하는 ‘Junk’의 우아하고 고즈넉한 서정이야말로 ‘매카트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싶다.
▲ The Family Way(1967)·Thrillington(1977)·Liverpool Oratorio(1991)·Standing Stone(1997)·Ecce Cor Meum(2006)·Oceans Kingdom(2011)·Working Classical(1999)
물론 우리가 무대에서 만나게 될 사람은 팝 음악의 거장, 대중음악의 역사를 바꾼 밴드 비틀스의 핵심이던 뮤지션 폴 매카트니다. 다시 찾아오는 ‘팝의 살아 있는 역사’가 노래하는 모습을 한국 땅에서 목도하게 될 이들의 기대와 기쁨은 그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처음이자, 어쩌면 마지막 공연이다. 매카트니와 함께, 그리고 관객과 함께 ‘Hey Jude’를 합창하는 기분은 무척이나 각별하지 않을까.
사진 유니버설 뮤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