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DP무용단의 신작 공연 현장 밀착 취재. 실험적인, 춤이었기에 가능한, 그들의 15년
LDP무용단이 김판선의 ‘12MHz’와 신창호의 ‘그레잉(Graying)’을 4월 4일과 5일 LG아트센터에서 초연했다. 이번 신작 무대는 LG아트센터 기획 공연으로, 국내 민간 무용 단체가 상업 극장의 기획 공연에 초청된 드문 사례다. LDP무용단이 15년 동안 개척한 역사와 정체성을 확인하는 자리. 백스테이지로 찾아간 날은 그들이 마지막 공연을 앞둔 시간이었다. LDP무용단의 역사와 활동을 잠깐 소개할까 한다.
L 실험적인(Laboratory), 15년
LDP무용단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 무용수들이 2001년에 창단했다. 신창호·김판선·차진엽·김성훈 등 LDP무용단의 초기 단원은 현재 현대무용계의 중추로 불린다. LDP무용단이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무용계에는 ‘판에 박힌’ 무대가 ‘고착화’돼 있던 것이 사실. 과감한 탈피를 꿈꾼 LDP무용단은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늘 새로운 것을 창작의 소재로 삼았고, 시간이 흘러 이러한 가치는 LDP만의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LDP무용단은 외국인 안무가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했고, 이 점은 단원들의 해외 활동에 가교로 작용했다. 신창호는 스위스 상트 갈렌 무용단, 차진엽은 영국 호페시 섹터 컴퍼니에서 활동했고, 김판선은 프랑스 에마누엘 가트 컴퍼니, 김성훈은 영국 아크람 칸 컴퍼니에서 활약 중이다.
LDP무용단이 15년간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은 민주적인 운영 방식 덕분이다. 무용단과 관련한 모든 일은 약 30명 단원들의 투표와 토론으로 결정된다. 대표 선출 역시 마찬가지. 지난 6년간 LDP무용단을 이끌어온 신창호의 바통을 이어받아 김동규가 올해 신임 대표로 선출됐다. 신작 안무가도 단원들의 지원을 받아 자체적인 투표로 정한다. ‘실험적인’ 무대를 위해 단원 개개인의 의견을 안무에 적극 반영, 안무가와 단원이 동등한 입장에서 작업하는 이들의 공연은 신선한 사고와 탄탄한 기교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D 댄스(Dance), 새로운 춤바람
LDP무용단에 지금 새바람이 불고 있다. 서른 명의 단원들은 각자의 실력과 개성을 바탕으로 LDP무용단의 관객층을 두텁게 했고, 류진욱·이선태·안남근·윤나라·임샛별은 ‘댄싱9’의 주역으로 떠오르며 불가능이라 예상했던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이끌었다. 이번 신작 공연이 여러모로 뜻깊은 이유는 LDP무용단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LDP무용단의 초기 도약을 이끈 신창호·김판선의 작품을 후배 무용수들이 초연해 두 세대가 ‘공존’하는 장을 보여줬다.
P 프로젝트(Project), 그들의 시간들
“의상실이요? 의상실 없는데…. 의상들 다 모아서 걸어놓을까요?”
의상 촬영을 원하는 기자의 말에 대표 김동규가 답했고,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대기실에는 무대의상과 양말, 신발이 사방에 널려 있는데 사이사이에 보물처럼 숨어 있는 과자와 꽃바구니가 눈에 띈다. 팬들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담긴 선물을 보니 LDP무용단의 대중적 인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여자 대기실과 남자 대기실에서 사뭇 다른 장면이 포착됐다. 펜을 들고 심각하게 아이라인을 그리는 여성 무용수들과 달리, 샤워를 끝낸 남성 무용수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자신들이 실린 공연 팸플릿을 쳐다보다 이내 지루한지 휴대폰으로 음악을 틀고는 ‘떼창’을 부른다. 같은 시간. 분장을 끝낸 여성 무용수들은 통증 완화를 위해 몸 곳곳에 테이프를 붙인다. 준비를 끝낸 무용수들이 하나 둘 복도에 모이고, 테라 밴드며 전동 마사지기, 야구공 등 각자의 도구를 꺼내 스트레칭을 한다.
이윽고 ‘그레잉’의 무대 리허설이 시작됐다. 신창호가 짚어주는 박자에 맞춰 여섯 명의 무용수들이 “허이차, 허이차~” 소리 내어 춤을 춘다. LDP무용단의 대표작 ‘노 코멘트(No Comment)’의 트레이드마크인 남성 군무의 연장선이라 해도 좋을 만큼 ‘그레잉’에도 리드미컬한 군무가 등장하는데, 무대 연습은 군무 위주로만 짧게 진행됐다. 각 무용수의 에너지가 모이자 ‘흥’은 배가된다. LDP무용단은 친밀도가 높기 때문에 작업을 진행하는 속도가 빠르다. 게다가 단원 모두 안무가라 LDP 무용수들은 참 ‘말’이 많다. 춤에 대한 애정 어린 조언과 진솔한 수다가 끊이지 않는다.
“그 부분 출 때마다 내 심장이 쪼그라들 것 같아.”
신창호의 말에 무용수들은 더 ‘오버 액션’을 한다. “아니, 이걸 왜 못해?” 서로의 동작을 흉내 내다 발차기로 마무리 짓는 장난기 가득한 모습이다. 신창호와 무용수들 사이는 ‘안무가와 단원’보다는 ‘형과 아우’에 가까워 보였다.
‘그레잉’과 ‘12MHz’는 오브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표현의 확장을 시도한 작품이다. 두 신작의 오브제 설정은 의도와 구조 면에서 짜임새가 탄탄했다. ‘그레잉’은 스크린과 비디오를 활용해 무용과 영상이 공존하도록 연출, 무대 위에는 거대한 원형 구조물이 설치됐다. ‘12MHz’는 열두 명의 무용수가 소리에서 나오는 고유의 주파수를 몸으로 표현하는데, 무대에 설치한 열두 개의 스피커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시각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12MHz’의 연습이 시작되자 줄지은 스피커가 천장에서 내려왔다. 열두 개의 스피커 뒷면에는 번호가 붙어 있는데 백스테이지에서만 보이는 이 비밀스러운 숫자는 컴컴한 조명 속에서 열두 명의 무용수들이 자신의 스피커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각각 번호를 표시해놓은 것이다. 모차르트의 ‘레퀴엠’과 전자음악을 함께 사용하는 ‘12MHz’는 작품의 절정에서 모차르트의 ‘레퀴엠’이 찬란하게 타오르는데, 무용수들이 연습 시간에 절반 이상을 이 장면에 할애한 만큼 공연에서도 공들인 흔적이 묻어났다.
“자, ‘12MHz’ 무대 연습 끝났습니다!”
숨 고르는 무용수들의 뒷모습에서 열기가 느껴진다. 불덩이 같은 뜨거움이 곳곳에 퍼져 있다. 무대 위에 대자로 누워버린 무용수들의 땀방울에서 이들이 일궈온 15년을 엿볼 수 있었다.
사진 이규열(라이트하우스 픽쳐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