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7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
긴장과 무아지경, 내면을 깨우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리는 공연은 잘 알고 있는 특정 오디오의 성향을 미리 짐작하고 음악을 듣는 것 같다. 과장 없는 목질의 어쿠스틱 속에서 특유의 음향을 듣는 쾌감이 함께한다.
서울시향 실내악 시리즈의 하나로 열린 ‘퍼커션 나이트’는 평소에 듣기 어려운 타악기를 위한 곡들로 프로그램을 짰다. 첫 곡인 벨러 버르토크의 두 대의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소나타는 1937년 작품이다. 연주하기 까다로운 곡으로 이름 높다.
무대 위 두 대의 피아노는 조재혁과 임수연이 연주했다. 팀파니·베이스 드럼·심벌즈·트라이앵글·작은북·탐탐·실로폰 등 타악기는 서울시향 SPO퍼커션그룹의 일원인 에드워드 최와 아드리앵 페뤼숑이 담당했다.
곡은 천천히 흐르다 갑자기 두 차례 강주로 청중을 놀라게 했다. 이윽고 점차 고조되는 곡의 분위기는 밤에서 아침, 그리고 한낮으로 이행되는 듯 확연했다. 조재혁과 임수연의 연주는 확신에 차 있었다. 날카롭게 빛나는 타악기의 파쇄음이 과감하고 긴박하게 곡을 진행시켰다.
실제로 공연을 감상하면서 타악기와 피아노 사이 공간감이 입체적으로 전달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버르토크의 이 작품에는 피아노끼리의 호흡, 타악기끼리의 호흡, 그리고 피아노와 타악기의 호흡이라는 세 가지 소통의 다리가 놓여 있는 듯했다. 그 사이 끊임없이 에너지 교환이 진행되고 네 연주자는 서로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느린 2악장에서는 집중력이 떨어지기도 했으나 3악장에서는 발랄하게 연주하다 조용히 끝을 맺었다.
2부에서는 스티브 라이히의 ‘6중주’가 연주됐다. 아드리앵 페뤼숑·에드워드 최·김문홍·김미연 등 SPO퍼커션그룹과 객원단원인 황인수·노겸세가 연주했다. 마림바 3대, 비브라폰 2대, 베이스 드럼 2개, 크로탈(가믈란 음악의 작은 심벌즈), 탐탐, 신시사이저 등 다양한 악기들이 연주됐다. ‘빠르게-보통 빠르기로-느리게-보통 빠르기로-빠르게’로 아치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 곡에서, 활로 비브라폰을 긋기도 하며 차분하고 담담하게 여러 가지 리듬이 정돈된 앙상블을 이루었다. 리더 격인 페뤼숑의 활약을 기대했는데, 그가 신시사이저를 맡아 건반에 치중한 점은 아쉬웠다.
스티브 라이히는 가나에 가서 말라리아에 걸려가며 음악적 체험을 했는데, 아프리카 특유의 역동적인 타악기들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드러밍’ 같은 그의 대표작도 그 영향권에 자리한다. 이번 ‘6중주’ 역시 연주자들이 주어진 패턴을 더해가며 전체를 만들어간다는 면에서 ‘드러밍’을 연상케 했다. 패턴을 더해가는 규칙적인 타악기들의 연주는 리듬의 궤도를 운행하는 기차 같았다. 듣는 이를 무아지경으로 몰고 갔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 선명하게 울리는 타악기들의 음색은 오랜만이었다. 사람들의 내면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깨우는 것 같기도 했다. 20세기 이후 늘어난 타악기 레퍼토리들을 감상할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한다.
사진 서울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