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부터 런던 심포니(이하 LSO)의 새 음악감독으로 부임할 사이먼 래틀의 영국 복귀에 대해 LSO의 상주 공연장인 바비컨센터의 운영감독 니컬러스 케니언은 환영의 뜻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바비컨센터는 LSO가 신축 공연장으로 옮길 경우에 대비해 공연장의 기획 프로그램 보강과 런던 소재 빅 오케스트라의 프랜차이즈 유치의 득실을 재는 중이다.
현재 바비컨센터의 핵심 기획물로 각광받는 것이 해외 악단의 ‘상주 단체 제도’다. 공연만 하고 떠나는 형태가 아니라, 바비컨센터의 각종 시설을 이용해 교향곡과 실내악, 가족 이벤트를 비롯해 공연장 인근 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해외의 정기 방문 악단이 일주일에 걸쳐 수행하는 제도를 운영 중이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뉴욕 필·LA 필과 함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이하 GOL)가 ‘상주 단체 제도’에 참여 중이다. GOL이 음악감독 리카르도 샤이와 함께 10월 17일부터 23일까지 바비컨센터를 찾았다. 세 차례 오케스트라 공연과 일곱 차례 마스터클래스, 샤이와의 대화 등 여러 이벤트가 이어졌다. 2015/2016 시즌을 끝으로 GOL을 떠나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밀라노 라 스칼라에 전념하는 샤이의 이번 투어는 카펠마이스터로 GOL과 함께하는 마지막 영국 방문이었다.
2005년 GOL 부임 이후 샤이는 바흐 종교음악을 시작으로 베토벤·슈만·브람스 교향곡 전집, 말러·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을 소화했다. 부임 초기에는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가 중후함이 일품인 GOL 사운드와 상생을 이룰지 초보적인 의문도 제기됐다. ‘콘 브리오(생기 있고 활기차게)’로 독일 작품에 활력을 넣는 샤이가 GOL의 중후함과 갈등할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그러나 샤이는 정기연주회와 투어, 데카와 아첸투스에서 남긴 기록물을 통해 논란을 정리했다. 오히려 1980년대 서 베를린 도이치 심포니와 1990~2000년대 로열 콘세르트헤바우에서 축적된 샤이의 쇼스타코비치와 말러가 GOL에서 새롭게 개화했다. 최고 기량으로 자신의 임기를 마무리하겠다는 그의 의지는 이번 투어 프로그램에서도 읽혔다.
20·22·23일 공연은 전반부에 모차르트 기악 협주곡(피아노 협주곡 27번, 바이올린 협주곡 3번, 클라리넷 협주곡)을 마리아 주앙 피르스,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마르틴 프뢰스트가 연주하고 후반부 메인 프로그램엔 R. 슈트라우스의 주요 관현악이 배치됐다. 20일, ‘영웅의 생애’, 22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3일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은 GOL이 어떻게 샤이의 악기로 정립되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템포와 무드를 무시로 조절하는 샤이의 비팅에 정밀하게 반응하는 GOL의 순발력은 런던 소재 오케스트라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서로 함께하는 10년의 세월이 무엇인가에 대해 지휘자와 악단은 기능으로 웅변했다. 최고의 기량은 마지막 날, ‘틸 오일렌슈피겔’에서 만개했다. 시종일관, 샤이의 루바토에 악기군의 밸런스는 일체의 흐트러짐이 없이 즉흥적으로 응답했다. 다채로운 모양의 카드 섹션을 지켜보듯 일사불란함의 극치였다. 이대로 끝나지 않았으면 하는 즉흥과 우연이 가득한 피날레가 끝나고, 샤이는 수석들의 어깨를 일일이 어루만지며 특별한 밤을 만끽했다. 마지막 여행을 함께하기에 R. 슈트라우스는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었다. 이들의 공연에 ‘인디펜던트’ ‘텔레그래프’는 ★★★★★을, ‘가디언’ ‘파이낸셜 타임즈’가 ★★★★을 매겼다. 1953년생, 예순둘의 지휘자는 고향 밀라노의 라 스칼라로 향하고 이제 GOL은 1978년생, 안드리스 넬손스를 새 수장으로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