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2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낯선 만남에서 낯익은 재회로
오케스트라 뒤 타악기가 무대 중심으로 이동했다. 2015년 12월 12일 IBK챔버홀에서 열린 서울시향의 ‘비바 퍼커션’ 얘기다. 아드리앵 페뤼숑·에드워드 최·김문홍·김미연으로 구성된 SPO퍼커션 그룹에 임수연의 피아노와 노겸세·박희송의 타악기가 가세했다.
첫 곡은 에드가르 바레즈의 ‘이온화’였다. 1933년 창단 당시 13인의 연주자가 37개 타악기를 연주했던 곡이다. 이번에는 절반 정도인 6인이 같은 수의 악기를 연주했다. 멜로디와 화음이 제거되고 사이렌 소리 같은 우연성 소음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피아노는 선율 악기보다는 클러스터를 연주하는 타악기로 작용했다. 미래주의, 20세기 도시의 느낌을 들을 수 있었다.
무대 전환에 많은 시간이 소요됐는데, 그 간극을 홍준식의 해설이 메웠다. 두 번째로 연주된 곡은 존 케이지의 ‘크레도 인 유에스’였다. 케이지가 작품을 썼을 때는 1942년, 진주만 공습 6개월 뒤였다. 말 그대로 우연성 음악이다. 라디오를 점멸할 때의 소리와 예측 불가한 주파수 잡음, 재즈·컨트리·블루그래스 등 다양한 음악이 컴퓨터에서 흘러 나왔다. 컴퓨터 외에 피아노와 빈 깡통이 연주에 사용됐다. 임수연은 “88개의 음 높이가 있는 타악기로 생각하고 연주하겠다”고 말했다.
무대에 네 명이 등장했다. 라디오 음성이 흐르고 주파수 잡음에 이어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도 흘러나왔다. 거기에 맞춰 깡통을 두드리며 연주가 계속됐다. 반복되는 피아노와 ‘끼익’ 하는 라디오 잡음, 깡통 소리가 이어졌다. 피아노 건반 위 몸통을 두드리기도 했다. 건반이 제시하는 리듬을 깡통이 이어받았고, 베토벤 ‘운명’이 계속됐다. 다양한 음악이 삽입됐다. 댄스 음악, 가요, 개그우먼의 라디오 진행, 드라마의 대사 등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피아노의 현을 누르고 치면서 프리페어드 피아노 효과를 내기도 했다. ‘운명’과 소음들은 계속 겹쳐졌다.
존 사타스의 ‘원 스터디 원 써머리’는 김미연의 독주였다. 김미연은 “클래식 음악에서 타악기의 역사는 길지 않다. 이 악기들이 100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림바 외에 악기 아닌 악기인 이른바 ‘정크퍼커션’이 앞에 놓였다. 악보에 피치가 다른 프라이팬 1·2·3 등이 지정돼 있다고 했다. 고전적인 타악기와 일렉트로닉, 정크 퍼커션의 결합이었다. 김미연은 “작곡할 때마다 같은 여행을 여러 번 다시 체험하는 거 같다“는 사타스의 말을 인용하며 연주를 시작했다. 마림바의 연주는 다이내믹했다. 가끔씩 향신료를 끼얹듯 정크 퍼커션을 연주했다. 2악장은 1악장에 비해 몽환적으로 느렸다. 중간에 빠른 비트의 일렉트릭 베이스와 퍼커션 음악에 맞춘 마림바의 연주가 이어졌다. 곡이 완전히 끝나기 전에는 다시 느려졌다.
휴식 시간 후 스티브 라이히의 ‘6중주’가 공연되었다. 지난 2015년 8월 7일 초연됐을 때 멤버 그대로였다. 황인수가 박희송으로 교체됐을 뿐이다. 더블베이스 활로 비브라폰을 그어서 내는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마림바 3대와 비브라폰 2대, 베이스드럼 2대, 크로탈(가믈란 음악의 작은 심벌즈), 탐탐, 피아노 2대와 신시사이저 2대를 연주했다. 규칙적인 마림바의 연주를 바탕으로 곡의 형체는 조금씩 색채와 그림자를 달리하며 무아지경으로 흘렀다. 초연 때와 대동소이한 연주였지만 훨씬 익숙해진 느낌이었다. ‘아르스 노바 시리즈’를 비롯해 동시대 음악을 연주하는 서울시향의 의미 있는 시도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낯선 만남을 낯익은 재회로 점차 바꿔줄 기획이다.
사진 서울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