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강력한 연주자의 재발견
지난 2월 1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쳐진 서울시향의 공연 타이틀은 ‘도밍고 인도얀의 영웅의 생애’라기보다는 ‘김수연의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이 되었어야 했다. 그날 공연에서 단연 빛난 곳은 R.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가 아니라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여러 무대에서 검증된 바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연의 기품 있는 톤과 고상한 음악성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이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녀의 개성이 주로 모차르트나 바흐의 음악에서 빛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 서울시향과의 협연 무대에서 김수연 바이올린 연주가 지닌 또 다른 장점이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통해 드러나는 순간, 김수연을 단지 모차르트나 바흐에만 어울리는 바이올리니스트로 한정 짓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판단인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오케스트라와 함께 협연하는 협주곡의 경우 연주자의 쇼맨십이나 유난히 큰 소리 등이 연주 수준에 대한 판단을 흐려놓기 쉽다. 이번 무대에서 서울시향과 협연한 김수연의 연주는 겉으로 드러난 힘이나 쇼맨십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 어떤 과장된 제스처나 불필요한 힘의 과시 없이도 브람스가 그려낸 음표 하나하나는 가슴속을 파고들며 마음을 울렸다. 그녀의 연주를 통해 ‘진정으로 내면의 힘을 지닌 음악가는 결코 겉으로 그 힘을 과시하거나 나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김수연의 브람스 연주는 전설적인 여류 바이올리니스트 지네트 느뵈의 명연주를 연상케 하는 강력한 힘이 있으면서도, 톤 자체는 결코 굵거나 거칠지 않았다. 대단히 섬세한, 그러나 매우 강력한 연주였다. 지속음 하나에서도 미세한 강약의 변화와 톤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그녀의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 누구라도 그 연주에 빠져들지 않고는 배길 수 없을 만큼 감각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면 대단히 굵고 힘찬 소리로 연주해야 한다는 통념을 뒤집었을 뿐 아니라, 브람스의 음악이 얼마나 섬세한 감성을 담고 있는 곡인지를 드러냈다.
이날 공연의 지휘를 맡은 도밍고 인도얀은 오페라 지휘자로서 능력을 발휘하여 협연자가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도록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공연 초반 서울시향의 저음 현악기군이 지휘봉에 다소 느리게 반응하여 템포가 쳐질 위험이 있었음에도 인도얀의 날렵하고 속도감 있는 지휘 덕분에 리듬이 살아났다. 3악장 후반에 오케스트라와 다소 호흡이 안 맞기도 했으나 전반적으로 인도얀의 지휘는 오케스트라와 협연자로 조화를 이루면서도 오케스트라의 멜로디 라인을 살려 성악적 느낌을 한껏 표현해 인상적이었다.
R. 슈트라우스의 ‘영웅의 생애’에서도 부분적으로 오페라를 연상케 하는 성악적 선율 표현이 돋보였으나, 곡의 각 부분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났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한 예로 ‘영웅의 반려자’ 부분에서 영웅의 반려자를 나타내는 바이올린 솔로와 영웅 자신을 나타내는 오케스트라 저음 악기간의 대화풍 악절에서 각 선율의 개성이 뚜렷하지 않아 지루하게 느껴졌다. 전반적으로 서울시향의 관악기 그룹의 인토네이션이 다소 높아 연주 효과가 떨어뜨린 점도 있었으나, ‘영웅의 적들’에서의 개성 넘치는 클라리넷 솔로와 영웅적인 느낌을 살려낸 팀파니 연주, 교향시 말미의 훌륭한 호른 솔로 등이 빛났다.
사진 서울시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