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통해 많은 이를 감동시킨 번스타인. 음악을 넘어 삶을 성찰하게 하는 그의 가르침을 마주하다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통해 많은 이를 감동시킨 번스타인. 음악을 넘어 삶을 성찰하게 하는 그의 가르침을 마주하다
“음악 선생이 제자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뭘까요? 자신의 감정을 충실히 따를 수 있고 독려하고 영감을 주는 거예요. 음악에서뿐 아니라 삶에서도 마찬가지죠.”
지난 4월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를 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이다. 영화는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인 시모어 번스타인의 인생을 그린다. 전국 단 20개 스크린에만 걸렸지만, 삶을 성찰하게 만드는 노장의 이야기는 음악인뿐 아니라 대중의 큰 공감을 얻으며 3개월이 넘도록 장기 상영됐다. 영화 속 번스타인의 한마디, 한마디는 70여 년을 쌓아온 그의 교육 경험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1927년 뉴욕에서 태어난 시모어 번스타인은 클리포드 커즌·나디아 불랑제 등 당대 거장들을 사사한 촉망받는 피아니스트였다. 시카고 심포니와 빌라 로부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 초연으로 데뷔 무대를 가진 그는 록펠러 재단과 미 국무부의 후원으로 세계 각지에서 연주 활동을 펼쳤다.
15세부터 레슨을 했을 정도로 번스타인은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는 동안에도 자신이 연주하러 간 도시마다 마스터클래스를 열었고, 여유가 생길 때마다 악보를 사서 학생들에게 나눠 주었다. 열정 가득했던 그는 결국 50세가 되던 해, 음악 교육에 평생을 헌신하기로 마음먹고 은퇴 무대를 가졌다. 이후 뉴욕의 작은 원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에만 집중했다. 자신의 교육 사례를 틈틈이 집필해 3권의 피아노 교육서를 남겼으며, 올해 89세의 나이임에도 뉴욕대의 교수로 활발히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그간 매체를 통해서만 접할 수 있었던 시모어 번스타인의 음악 철학을 현장에서 마주할 자리가 지난 6월 29일 마련됐다. 두근거림을 안고 한국피아노학회의 2016 아시아 국제 피아노 아카데미·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열린 그의 마스터클래스 현장을 찾았다.
참가자를 배려한 색다른 진행
“마스터클래스는 참가자에겐 아주 ‘잔혹한’ 경험이에요.(웃음) 선생님이 첫 번째 참가자를 가르칠 때, 나머지 사람들은 뒤에서 자신이 연주할 곡의 도입부만을 걱정하거든요. 선생님의 조언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요. 끔찍한 일이죠. 저는 여러분에게 그런 ‘벌’을 주고 싶지 않아요. 모든 참가자가 연주를 끝낸 후에야 마스터클래스를 시작할 겁니다. 청중은 리사이틀을 감상한다고 생각하고 끝날 때마다 박수를 쳐주세요.”
이날 두 명의 참가자는 모두 쇼팽의 작품을 들고 왔다. 박진형(연세대 2학년)은 쇼팽의 녹턴 Op.48-1 C단조를 연주했다. 그는 섬세한 터치로 차분한 도입부와 감정적인 패시지가 많은 후반부의 대조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이어 민준아(선화예중 3학년)가 쇼팽 연습곡 Op.10-12·8을 선보였다. 질주하는 듯한 힘과 숙련된 테크닉이 잘 조화된 연주였다. 다만 감정보다 손가락이 앞선 점이 조금 아쉬웠다. 청중 사이에 앉은 시모어는 박자에 맞춰 발을 까딱거리기도 하고, 악보를 체크해가며 자유롭게 연주를 감상했다.
“어떻게 연주한 것 같으냐”는 번스타인의 질문에 박진형은 “녹턴은 본래 차분한 장르인데 오늘 연주는 감정 표현이 과했다”, 민준아는 “Op.10-8을 너무 빠르게 친 것 같아 아쉽다”고 자평했다. “잘 친 것 같으냐”는 물음에 두 사람은 침묵으로 대답했다. 두 사람을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던 번스타인이 말했다.
“한국에서 인터뷰를 하면 꼭 나오는 질문이 ‘한국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예요. 그럴 때마다 저는 ‘세계에서 가장 로맨틱한 민족’이라 답합니다. 두 사람의 연주를 듣고 이 대답에 확신을 가지게 됐네요. 스스로 ‘잘했다’고 평가하는 것을 부끄러워 마세요. 저도 연주가 만족스러울 땐 당당하게 잘 쳤다고 말합니다.(웃음) 자신감을 가지세요!”
번스타인이 전하는 쇼팽의 비밀
번스타인은 악상 기호와 같은 세밀한 부분을 꼼꼼히 체크해 질문을 던졌고, 이를 통해 악보 너머의 추상적인 개념인 음악, 즉 숲을 보게 했다. 마스터클래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쇼팽의 악상 기호를 토대로 한 번스타인의 새로운 해석이다. 참석자 모두를 놀라게 한 그의 이야기 가운데 4가지를 추려 ‘객석’ 독자들에게 공유한다.
크레셴도와 데크레셴도
점점 세게, 점점 작게 연주하라는 말. 기호는 ‘’
“쇼팽에게 크레셴도는 다이내믹 기호가 아니었어요. 오히려 ‘템포’에 관계된 기호였죠. 느린 듯 시작해서 점점 빠르게 몰아가세요. 음색을 조금 더 깊고 넓게 가지고요. 데크레셴도는 반대겠죠? 예를 들어, 발라드 1번의 도입부를 보면 데크레셴도와 디미누엔도(점점 여리게)가 동시에 적혀 있어요. 같은 뜻이라면, 기호를 왜 두 개나 썼을까요? 이상하지 않나요? 결국 쇼팽에게 데크레셴도는 점점 머무르면서 나아가라는, 즉 ‘느려지라’는 의미였어요. 디미누엔도를 따라 작아지고요.”
디미누엔도
점점 여리게 연주하라는 말. 줄여서 ‘dim.’으로 표시한다
“따라 하세요. ‘디미누엔도는 포르테(f, 세게)다.’ 여러분은 지금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겠죠? 대부분의 사람은 디미누엔도가 보이면 급격히 소리를 줄여요. 그러나 음악적 효과를 높이려면, 디미누엔도가 보인 순간 김을 뿜는 주전자처럼 끓어오르세요! 작아지는 건 그 다음부터 시작해도 충분해요. 더욱 극적인 패시지가 완성되죠.”
페달 기호
오른쪽 페달인 댐퍼 페달의 밟기와 떼기를 지시하는 기호. ‘Ped.’는 밟기, ‘*’는 떼기를 의미한다
“쇼팽의 페달 기호는 아직까지도 논란거리에요. 호로비츠는 죽기 전날까지 ‘쇼팽의 페달은 미쳤다’며 머리 페라이어와 토론했죠. 알프레드 코르토는 심지어 악보에 페달 마크를 그려 넣기도 했고요. 성경 말씀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자기가 고친 거나 다름없죠.(웃음) 이렇듯 피아니스트들은 쇼팽의 페달 기호를 무조건적으로 따르지 않아요. 쇼팽은 페달을 밟는 곳만 알렸고(Ped), 언제 떼야 할 진 명시하지 않았거든요. 현재의 ‘*’ 표기는 출판사에서 넣었어요. 쇼팽은 우리가 느끼기에 과할 정도로 페달을 많이 사용했어요. 페달은 다음 페달 표시가 나올 때까지 밟아주세요. 조금은 긴 듯한 울림, 이것이 그가 원한 사운드예요.”
소프트 페달
음을 약하게 해주는 페달. 피아노의 페달 가운데 왼쪽에 있다
“피아니스트들은 종종 소프트 페달 사용을 꺼립니다. ‘소프트 페달 없이 소프트한 소리를 내야 진짜’라는 자존심에서죠. 쇼팽 역시 기계적인 느낌이 든다는 이유로 이 페달을 싫어했는데, 사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답니다. 자, 피아노 안의 현을 한번 살펴볼까요.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건반에 연결된 2~3개의 현을 때려 소리가 나죠. 소프트 페달을 밟으면 해머가 현 하나만큼 옆으로 이동해 1~2개의 현만 때려요. 그렇다면, 남은 현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옆 현에서 전달되는 진동으로 인해 ‘불쌍하게’ 떨고 있죠.(웃음) 바로 이 떨림에서 오묘한 잔향이 탄생합니다. 쇼팽은 이 잔향을 아주 좋아했어요. 결국 소리의 크기가 아니라 아름다움을 위해 소프트 페달을 사용한 거죠. 그러니 소프트 페달을 밟을 땐, 음색의 표현에 좀 더 집중하세요.”
“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나요?”
마스터클래스를 끝낸 번스타인은 참가자들과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늘 연주한 ‘음악’이 아닌, 피아니스트로서 ‘삶’에 대한 것이었다.
“가정해봅시다. 데뷔 무대 다음날 엄청난 혹평을 받았어요. 혹은 몇 달을 준비한 콩쿠르의 1차 예선에서 탈락했어요. 당연히 믿고 싶지 않죠.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가야 할까요? 답은 ‘내가 왜 피아노를 쳐야 하는지’를 알아야 얻을 수 있어요. 성공해야겠다는 강박을 버리세요.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아닙니다.”
번스타인은 참가자들에게 “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피아노를 사랑하기 때문”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당신이 사랑하는 피아노로 사람들을 감동시켜라”고 격려했다.
“삶의 가장 큰 목적은 ‘나눔’에 있어요. 연주자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죠.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나누어 주기 위해선 먼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요. 어떻게 본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거울을 들여다보고 외쳐요. “잘생겼다!”(웃음) 그리곤 피아노 앞에 앉아 내면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내가 피아노로부터 무엇을 끌어낼 수 있을까, 또 이것들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항상 질문하는 거죠. 피아노를 치는 이유가 곧 삶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음악과 삶을 떼어놓지 마세요. 먼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더 나은 음악가가 될 수 있고, 비로소 남에게 아름다움을 나눠줄 수 있으니까요.”
마스터클래스를 마치고, 이화여대 교정을 거닐며 그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번스타인은 음악 이전에 ‘음악을 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었고, 그렇게 만들어낸 음악으로 그 너머의 삶을 생각하게끔 만들었다. 오늘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긴 이들은 앞으로 인생을 담은 음악을 연주하고, 음악을 닮은 인생을 살아가리라. 아흔 노장의 연륜이 묻어난 시간. 이날의 마스터클래스는 따뜻했다.
사진 심규태(H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