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음악도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마련해준 베이스 연광철의 국내 첫 마스터클래스는 어떤 분위기였을까
어느 책에선가 ‘멘토’에 대해 쓴 글 중 공감되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멘토는 그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나를 촉구하는 존재다. 인격적으로 완벽한 존재이기보다 나보다 앞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도반이자 선각자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 그리고 구태의연함에 안주하는 이에게 멘토는 찾아오지 않는다. 광활한 바다에 몸을 싣고 인생의 항해를 떠날 때 멘토는 슬며시 찾아와 그의 눈이 되어주고 귀가 되어준다.’
8월 8일부터 9일까지 이틀에 걸쳐 진행된 베이스 연광철의 성악 마스터클래스는 젊은 참가자들의 멘토로서 연광철의 따뜻하고 자상한 인품과 성악가로서 예술성이 돋보인 자리였다. 그는 젊은 음악도들을 향해 오직 자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주문했다. 또한 그 노래 안에 담긴 메시지에 대한 이해와 자신만의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잘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노래하라고 말했다.
취재가 예정된 8월 9일 오전, 재능문화센터에서는 테너 우성우와 메조소프라노 임수정의 마스터클래스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우성우는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6번 ‘홍수’를 노래했다. 우성우는 노래하기 전 이 작품을 관객에게 설명하며 어두우면서도 슬픈 멜로디가 돋보이는 이 곡을 연습하며 힘들었던 심경을 솔직히 드러냈다. 연광철은 그런 그에게 사랑에 실패한 슬픈 눈빛의 한 사나이가 보리수가 있는 마을을 떠나는 장면을 떠올려보라고 주문했다. 어디론가 정처 없이 냇물을 따라 걸어가며 물레방앗간으로 향할 때 떠오른 아가씨와의 추억과 아쉬움을 노래 속에 담담히 표현해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언어. 특히 독일어는 마지막 단어가 굉장히 중요해서 호흡을 마지막 단어에 중심을 두고 끝까지 당차게 끌고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래를 마치 시각적으로 곡선을 그리듯 목소리로 그 길을 따라가며 불어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은 마스터클래스를 청강하는 청중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단어 음절 사이사이를 레가토로 부른다고 생각하면서 단어마다 너무 무게를 두지 않고 부드럽게 불러보세요. 단어, 발음, 호흡 모두 놓치지 않도록 집중해야 합니다. 무게 잡는 소리가 아니라 음절을 일정하게 편안하게 부르는 연습을 많이 하도록 하세요.”
‘겨울나그네’의 표현에서 가장 중요한 ‘피아노(P)’ 표현에 대한 강의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피아노는 작게 부르는 게 아니라 고유의 느낌을 여리게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니 피아노와 포르테는 단순히 작고 크게 연주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세고 여리게 연주하라는 걸 의미한다는 것이다. 소리란 여려도 클 수 있고 세도 충분히 여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를 때 여리게 부르더라도 훨씬 밀도 있는 소리를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음 곡은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 중 ‘얼마나 아름다운가’였다. 이 곡은 네모리노라는 순진한 청년을 얼마나 잘 표현하느냐가 중요한데 연광철은 앞서 부른 독일어보다 이탈리아어로 부를 때 훨씬 노래가 자연스럽고 편안했다고 칭찬했다. 우성우는 “파바로티가 부른 영상과 노래를 많이 들었다며 그래서 그런지 노래 부를 때 훨씬 자신감 있었다”고 재치있게 답했다.
연광철은 이 곡에서 표정과 표현의 중요성 못지않게 악보를 제대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노래를 할 때 악보를 뚫어지게 봐야 합니다. 내가 어느 부분에서 무엇을 보여줄지, 어떤 것을 표현해야 할지 생각해야 해요. 그러니 어느 한 부분도 아무 이유 없이 불러선 안 됩니다.”
그러고는 그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남이 낸 소리를 흉내 내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섬세하게 집중해서 오직 자신만의 소리를 내야 해요. 음 하나하나에 영혼을 실으세요. 그리고 자신의 소리를 믿으세요.”
밀도 있는 소리가 주는 여운
이어진 시간은 메조소프라노 임수정의 무대였다. 그녀는 마스네의 오페라 ‘돈키호테’ 중 ‘여자가 스무 살이 되면’과 모차르트 오페라 ‘티도의 자비’ 중 ‘떠나겠소. 하지만 나의 사랑이여’를 노래했다.
임수정은 7년 전 소프라노에서 메조소프라노로 바꾼 성악가로 연광철은 오히려 소프라노처럼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소리를 자연스럽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며 메조소프라노처럼 노래하려고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 것과 스페인어의 정확한 발음 공부도 열심히 할 것을 주문했다.
“성악에서 발음은 아주 중요한데, 발음을 불필요하게 과장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말하듯 발음하면서 노래하듯 사라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너무 예쁘게 부르려고 하지 말고 소리에 무게를 잡지 말고 편하게 밀도 있는 소리를 내도록 노력해보세요.”
다음 곡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티도의 자비’ 중 ‘떠나겠소. 하지만 나의 사랑이여’였다. 세스토의 아리아에서 세스토 역은 극 중 남자지만 이 곡은 종종 메조소프라노가 부르기도 한다.
“여성이 남성 역할을 맡는 경우, 본인이 여자라고 해서 남자 역할을 노래하기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불필요한 소리를 내는 것이 가장 위험합니다. 메조의 포지션으로 낮은 음은 확실히 낮게, 높은 음은 확실히 높게 부르도록 해보세요.”
이 곡에서도 그는 정확한 발음과 템포. 그리고 자연스러운 표현을 강조했다. 소리는 과하게 모으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편하게 부르되 밀도 있는 소리를 내도록 노래하라고 주문했다.
인터미션 후 오후에는 바리톤 박세진의 베르디 오페라 ‘일 코르사로’ 중 ‘드디어 이 해적이 백 명의 사랑스런 아가씨들’과 코른골드 오페라 ‘죽음의 도시’ 중 ‘나의 갈망이여, 나의 망상이여’, 소프라노 장선혜의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중 ‘신이시여 평화를 주소서’, 샤펜티어 오페라 ‘루이제’ 중 ‘그날 이후’의 작품을 가지고 마스터클래스가 이어졌다.
이들에게 역시 음악적인 기교보다는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는 법을 함께 고민하고 각자에게 맞는 가장 적절한 표현법에 대해 조언하는 방식으로 마스터클래스는 진행되었다. 연광철은 마스터클래스 내내 자신이 부를 노래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주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언어와 발음의 특성은 무엇인지 음악의 기본기에 대해 강조했다. 그의 가르침은 음악의 정수를 향해 있었다.
“악보를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이 작품이 어떻게 쓰인 것인지 도서관으로 박물관으로 향해보세요. 메시지가 무엇인지 이해했다면 그것을 가장 자연스러운 언어로 물 흐르듯 자기만의 색깔로 노래하세요. 자신의 소리를 믿으세요. 혼신을 다해 자신의 영혼을 노래 속에 담는다면 반드시 그 메시지는 전해질 것입니다.”
사진 심규태(HAR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