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HLY FOCUS
발레라는 오래된 보석을 세공하는 뛰어난 예술가, 프렐조카주의 새로운 움직임을 만날 시간이다
6번째 내한공연으로 앙줄랭 프렐조카주(1957~)는 국내 발레·현대무용 애호가 모두를 충족시키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안무가임을 스스로 증명한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17세부터 시작한 발레를 통해 탄탄하게 다져진 드라마를 아름답게 끌고 가는 그만의 방식이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프레스코화(La Fresque, 2016)’는 국내 관객에게 충분한 호감을 불러일으켰던 2014년 ‘백설공주’(현대카드 컬처프로젝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와 파드되 모음 공연이었던 2016년 ‘프렐조카주 갈라’(서울세계무용축제,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이후 그가 들고 온 굵직한 최근작이다. 거기다 명말청초 포송령에 의해 수집되고 지어진 ‘요재지이(聊齋志異)’라는 기담집에서 이야기를 뽑았다 하니 우리에겐 더욱 문화적으로 친숙한 이야기로 기대되는 공연이다.
‘요재지이’에 수록된 ‘벽화’의 줄거리는 이렇다. 여행자 주효렴과 맹룡담이 어느 날 오래된 절에 머물게 되고, 벽에 그려진 5명의 긴 머리 여인에 반한 나머지 주효렴은 자신도 모르게 그림 속 세계로 빨려 들어가 한 여인과 사랑하고 결혼하게 되지만, 쫓기는 신세가 되면서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다분히 환상적이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중심인 이 3백 년도 넘은 중국의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앙줄랭은 어떻게 무대 위의 살아있는 춤으로 그려낼까.
최고의 예술가들이 만든 시너지
그는 가장 먼저 이미지적이고 서사적인 전자음악의 귀재 니콜라 고댕을 선택했다. 이 선택은 작품을 청각으로부터 오는 서사성을 갖추는 동시에 현대적인 분위기로 에워싸는 데 성공했다. 콘스탄스 귀세의 시노그래피와 비디오는 무용수들의 실제 긴 생머리와 튀니지 출신 의상 디자이너 아제딘 알라이아의 의상에 포함된 긴 가발과 더불어 머리카락을 이미지로 극대화하며 관객을 과거의 벽화 속으로 순간 이동시킨다.
이 강력하면서도 매우 세심한 예술가들과의 시너지는 음악으로부터 힘을 얻은 앙줄랭의 박진감 넘치는 동작과 더불어 살아난다. 어릴 때 스스로 찾아가 발레를 배우고 여러 장애물에도 발레를 지켜간 그는 발레의 극적인 특성도 흡수했지만, 발레 동작에 대한 각별한 감성과 애정을 잘 간직하고 있다. 그의 현대적인 작품인 ‘그리고 천년의 평화’(2010)와 ‘엠티 무브스’(2014) 같은 작품과 보다 발레에 기반을 둔 수작으로 꼽히는 ‘르 파르크’(1994)나 ‘백설공주’(2008)를 비교해 보면, 후자의 발레 기반의 안무작에서 그의 동작들은 관객의 마음을 녹여내는 각별한 능력을 보여준다. 발레 동작의 원형을 많이 건드리지 않으면서 불필요한 군더더기를 제거하여 보다 부드럽고 찬란한 것으로 세공해내는 그만의 능력이 담겼다.
매우 가볍고 무심한 듯 미끄러지면서 에워싸는 곡선적인 동작의 시퀀스는 ‘프레스코화’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중국풍을 의식한 듯한 여자주인공의 곡선적이고 물결 같은 동작이나 사랑의 듀엣 군무에서 보이는 매우 섬세하고 따뜻한 표정은 현대발레 안무가들이 추구하는 ‘직선성’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동작들로 복고적이고 따뜻한 감성을 자극하기에 적합하다. 그와 동시에 앙줄랭 안무의 미덕은 매우 서정적이지만 이내 과해져 신파로 흐르거나 발레식의 낭만적이고 동화적인 감성으로는 빠져들지 않는 데 있다. 그는 지속적으로 심리성을 증발시켜 동작을 청아한 상태로 유지하는 길을 선택하면서 한발 한발 이어지는 그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간다. 이런 차분하면서 조심스러우리만치 섬세한 결정들은 그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긴장감으로 연결된다. 그의 이런 장기(長技)는 이 작품에서 니콜라 음악의 비트와 속도, 때론 음향에 가까운 사라짐과 더불어 다양한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보여준다.
여전히 독창적이고 세련된
앙줄랭은 지난 35년간 간 50여 편의 작품을 만든 다작가이기도 한 동시에 대부분의 작품이 성공적으로 주목받은 행운의 안무가다. 2006년부터는 엑상프로방스에 그를 위해 건축된 3개의 연습실과 300여 석의 극장을 갖춘 파빌론 누아르 국립안무센터의 상임안무가로 더욱 안정적인 조건에서 작업하며 쉴 새 없이 작품을 어어가고 있다. 올해 슈베르트 ‘겨울 나그네’에 안무한 작품을 발표했으며, 발레에 기반한 작품과 현대적인 작품 사이를 적절히 진동하며 균형감 있게 작업을 하고 있다. 그가 현대적인 작업을 할 때 보이는 조금은 무모하고 거친 어법들은 때론 관객도 당혹스럽게 만들 정도로 조절되지 않는 것이지만, 그가 현대인의 동심이나 판타지를 파고들어 이야기를 시작하면 춤은 총체예술의 품격을 갖추는 동시에 시적인 상상력과 감성을 매우 수려하게 뿜어내며 현대의 어둠과 불안마저 화려한 모습으로 무대로 되돌린다. 그는 현대라는 것에 밀려 소홀하게 대접받는 발레의 사랑이고, 발레는 그의 사랑이다.
글 이지현(춤비평가) 사진 LG아트센터
프렐조카주 발레 ‘프레스코화’
11월 1~3일 LG아트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