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장과 중진, 젊은 배우들이 한 무대에!
연극 ‘햄릿’의 배우 16인
셰익스피어의 ‘햄릿’(극본 배삼식·연출 손진책)이 8월 13일까지 국립극장 해오름에 오른다.
2016년, 노장 배우 9명이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공연해 화제를 모았던 연극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
올해는 배우들의 남다른 배역이 공연 전부터 주목받았다. 노장 배우들이 조연, 심지어는 단역까지 자처한 것.
이들의 ‘양보’는 곧 젊은 배우들을 향한 ‘응원’과 ‘성장’의 동력이 되었다.
2022년, 한국 연극계의 가장 큰 이벤트로 남을 공연을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배우들을 만났다.
진행 허서현·임원빈 기자 사진 황필주(Studio79)·신시컴퍼니
PART 1 신·구 햄릿의 만남 | 유인촌·강필석 _김주연
PART 2 노장·중진 배우들이 말하는 ‘햄릿’ | 권성덕·전무송·정동환·김성녀·손봉숙 _허서현
PART 3 연극계 세 자매의 일침 | 박정자·손숙·윤석화 _허서현
PART 4 현장을 말하다 | 길해연·김수현·박건형·박지연 _허서현
[PART 1]
신·구 햄릿의 만남
삶도 연극도 대물림하며 흘러가는 것
유인촌 & 강필석
1985년, 당시 호암아트홀 개관공연이었던 ‘햄릿’에는 두 세대를 대표하는 햄릿이 함께 무대에 섰다. 우리나라 최초로 햄릿 역을 열연해 ‘영원한 햄릿’ ‘한국의 햄릿’이란 별명을 얻었던 김동원(1916~2006)이 클로디어스(햄릿의 숙부)가 되어 새로운 세대의 햄릿인 유인촌(1951~)과 호흡을 맞춘 것이다. 그리고 37년이 지난 2022년, 그간 6번이나 햄릿역을 맡으며 명실상부한 햄릿 대표배우로 각인된 유인촌이 이번엔 클로디어스가 되어 새로운 세대의 햄릿인 강필석(1978~)과 함께 무대에 섰다. 또 다른 두 세대의 햄릿, 유인촌과 강필석으로부터 서로에 대한 존경과 신뢰, 그리고 햄릿에 대한 각기 다른 시각을 들어보았다.
아, 이게 연극이구나!
사실 강필석은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무대 위에서 “셰익스피어 너무 싫어!”를 부르짖고 다닌 바 있다. 뮤지컬 ‘썸씽로튼’에서 당대 최고의 극작가 셰익스피어를 질투하는 라이벌 작가 닉 바텀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고 이 역할로 한국뮤지컬어워즈 남우주연상까지 받았다. 극 중 그토록 셰익스피어를 미워했던 그가 몇 달 뒤 이렇게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이 되어 무대에 서다니, 인생은 때로 연극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연극 ‘햄릿’에 대한 그의 동경과 애정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노장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2016년 ‘햄릿’ 공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인촌이 마지막으로 햄릿을 맡았던 바로 그 공연이다.
“선배님들이 무대에 나와서 대사를 시작하는 순간, 절로 압도되는 느낌이었어요. 등장만으로 엄청난 존재감을 지닌 선배님들이 연극 고유의 어조나 양식적인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펼치시는데, 순간 ‘아 저게 연극이구나! 영화나 다른 매체에서는 할 수 없는 무대 언어의 매력이 이런 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어요. 굉장히 오랜 기간 끊임없이 훈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경지인데, 그때 그 무대를 보면서 배우로서 반성도 많이 하고 연기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그토록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있었기에 이번에 햄릿 역 제안이 들어왔을 때 강필석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기회를 받아들였고, 그 후 두 달간 그 자체로 드라마틱했던 연습에 푹 빠져 살았다.
“지금도 첫 리딩 순간이 잊히지 않는데, 선배님들이 대사 몇 구절을 읽자마자 연습실이 엄청난 에너지로 가득 차서 ‘내가 과연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대사의 무게와 톤이 확 느껴져서 저도 모르게 이를 꽉 물고 대본을 들여다보곤 했어요. 그렇게 긴장하다 보니 연습 끝나고 집에 가면, 온몸이 얻어맞은 것처럼 아파서 어쩔 줄을 몰랐죠. 또 한편으론 선배님들을 보면서 정말 배운 게 많아요. 연기뿐만 아니라 연극을 대하는 태도 같은 거요. 예를 들면 박정자(1942~) 선생님은 극중극 ‘배우 1’로 등장하시는데, 매일 제일 먼저 준비하시고, 무대 뒤에서도 가방도 메어보고 모자도 써보면서 늘 새로운 해석을 시도하곤 하세요. 80세가 넘어서도 저렇게 설레는 모습으로, 아주 짧은 장면이라 할지라도 정성스럽게 자기 장면을 준비하시는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뒤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삶의 대물림을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것 같아 참 뜻깊게 느껴집니다.”
자신이 찾아낸 햄릿, 햄릿이 찾아준 나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리딩과 연습은 그 자체로 매번 새로운 경험이고 공부였지만, 특히 클로디어스를 맡은 유인촌과 함께하는 장면은 강필석에게 언제나 설렘과 떨림으로 다가왔다. 자신에게 평생 잊지 못할 ‘햄릿’의 기억을 안겨준 바로 그 주인공과 마주한 채, 그 역할을 연기한다는 것은 분명 배우로서 보기 드문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예전에 유인촌 선생님 무대를 볼 때 독보적이라고 느꼈지만, 이번에 함께 무대에 서보니 정말 압도적인 배우예요. 사실 선배님은 햄릿을 이미 여러 차례 하셨으니 제가 하는 걸 보면서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만족스럽지 않은 부분이 많았을 텐데, 한 번도 저한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제가 뭘 물어봐도 잘하고 있으니 너만의 햄릿을 하라면서 스스로 길을 찾게 도와주세요. 그러면서 살짝살짝 도움 되는 말을 한마디씩 던져주시는데, 그게 정말 꿀팁이에요. 후배에게 부담 주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길을 열어주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나중에 꼭 저런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사실 햄릿을 연기하면서 강필석을 가장 힘들게 하는 지점은 인물도 해석도 아닌 바로 체력이었다. 거대한 국립극장 해오름 무대를 3시간 동안 떠나지 않고 종횡무진으로 활약해야 하는 물리적 부담과 극의 거의 전 장면에 등장해 작품을 이끌어야 하는 심리적 부담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정말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역할이에요. 한 번에 작품 서너 개를 같이 하는 기분이랄까요. 극 중 분량도 엄청나고 대사가 역대급으로 길죠. 무엇보다 햄릿은 시종일관 마음이 편한 순간이 한 번도 없어요. 첫 장면부터 이미 감정이 확 올라간 상태에서 시작하는데, 마지막까지 숨 쉴 틈이 없죠. 하지만 또 그렇게 흥분된 상태로만 진행해서도 안 되고요. 그래서 어떻게 이 긴장과 감정을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쥐락펴락할 것인가, 이게 처음부터 지금까지 가장 어려운 숙제였고, 지금도 계속 풀어가고 있어요.”
말로는 육체적으로 너무 힘든 역할이라고 하면서도 막상 캐릭터에 관해 물으니 강필석은 눈을 반짝이며 자신이 찾아낸 햄릿의 다양한 면모에 대해 한참 설명을 이어 나갔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에게 ‘햄릿’은 “한 인물이 성장해가는 이야기”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자신과도 싸우고 외부의 적과도 싸우면서 결국 내면적으로 성장해가는 인물이 바로 햄릿인 것 같다고.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긴 연습 기간과 공연 기간 내내,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외부에서 쏟아지는 관심과 기대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무대에 선 강필석 역시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성장 서사를 써 내려간 또 하나의 햄릿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이 긴장과 감정을 유지하면서 에너지를 쥐락펴락할 것인가, 이게 처음부터 지금까지 가장 어려운 숙제였고, 지금도 계속 풀어가고 있어요.”
무대에서의 시선도, 삶에 따라 바뀌어
한편 1981년부터 2016년까지 햄릿을 6번이나 맡아온 유인촌에게 ‘햄릿’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 작품일 수밖에 없다. 한 작품을 하면서도 첫 무대와 마지막 무대에서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이 연극이다. 무려 40년의 세월 동안 같은 역할을 여러 번 맡아온 그에게 햄릿이란 인물은 매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고, 삶과 연기가 성숙해질수록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 역시 조금씩 변화를 갖게 되었다.
“처음 햄릿을 맡았을 때는 그야말로 지적인 햄릿, 우유부단한 ‘지식인 햄릿’의 이미지를 살리는 데 온 힘을 기울였었죠. 두 번째에는 철저한 복수를 위해 밀고 나가는 ‘행동파 햄릿’을 연기했어요. 그리고 세 번째가… 제 기억으론 ‘한복을 입은 햄릿’이었어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결로 연기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 식으로 시대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의 햄릿을 찾아내고 드러내기 위해 고민해왔습니다. 햄릿은 할 때마다 배우를 매우 고통스럽게 하는 역할인데, 그렇기 때문에 매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역할이기도 합니다.”
6번의 햄릿을 뒤로한 채, 이번에는 클로디어스로서 무대에 선다. 같은 작품이지만 당연히 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이번 무대는 그의 첫 클로디어스 도전이기도 한데, 그는 클로디어스로서 햄릿을 바라볼 때마다 37년 전, 고 김동원 선생의 모습이 떠오른다고 한다.
“왕의 입장에 서 보니 햄릿이 또 다르게 보이는 지점이 있어요. 제가 처음 햄릿을 했을 때, 아주 오랫동안 햄릿으로 이름을 날렸던 김동원 선생님이 클로디어스 왕을 하셨거든요. 지금 무대에 서면서 그때 선생님과 저의 모습을 종종 떠올리게 됩니다. 저는 이번 공연이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게, 선배 배우들과 후배 배우들이 어우러져 한 무대에 서는 거잖아요.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뒤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삶의 대물림을 무대 위에서 구현하는 것 같아 참 뜻깊게 느껴집니다.”
후배 하나하나가 다 개성 있고 믿음직한 ‘젊은’ 동료처럼 느껴지지만, 특히 오랫동안 자신의 역할이었던 햄릿을 연기하는 강필석에게는 남다른 애정과 관심을 두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필석이는 끈질김이 남다른 배우예요. 처음에는 너무 긴장한 상태로 연습에 오니 성대에 결절도 빨리 오고, 그런 모습에 조금 불안하기도 했어요. 자기도 불안한지 자꾸 저한테 뭘 물어보려고 하는데, 힘들어도 너 스스로 찾으라 하고 지켜보고 있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 극복하더라고요. 자기 힘으로 부담감을 떨쳐내고, 리듬을 찾고,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 친구가 진짜 포기하지 않는 힘이 있구나,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끈질김이 있구나’ 싶어 든든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묵직한 여운과 본질적인 질문
클로디어스로서 유인촌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는 장면은 바로 극중극(유랑 배우들이 클로디어스에 의해 암살당한 선왕을 연기하는 상황극) 직후, 클로디어스가 홀로 기도하며 독백하는 장면이다. 사실 이는 극 중 클로디어스와 햄릿이 거의 유일하게 둘이서 무대에 서는 장면이기도 하고, 클로디어스의 복잡한 내면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여러모로 해석이 엇갈리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게 2막을 여는 첫 장면이라 더 어렵게 느껴지는 지점이 있어요. 앞에서부터 쭉 흘러오면 그 힘을 받아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잠시 쉬었다가 돌아온 관객을 빨리 무대로 집중시켜야 하는 장면이다 보니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하더라고요. 사실 대부분의 ‘햄릿’에서는 이 장면에서 클로디어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하려 하는데, 저는 그렇게는 안 하려고 합니다. 반성도 없고 오히려 나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며 신에게 대드는, 뼛속까지 뻔뻔하고 자기 확신에 차 있는 인물로 그려낼 생각입니다.”
사실 유인촌은 ‘햄릿’ 뿐만 아니라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과도 유난히 인연이 깊은 배우다. 공직생활 후 오랜만에 돌아온 연극무대에서도 셰익스피어의 작품인 ‘페리클레스’를 통해 관객들과 다시 만났고, 아들 남윤호(본명 유대식) 배우도 ‘페리클레스’와 ‘코리올라누스’에서 열연을 펼치며 셰익스피어와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고전 명작 중에도 시류를 타면서 공연이 되다, 안되다 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시대에 상관없이 꾸준히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단연 후자에 속한다. 한 해도 그의 작품이 오르지 않는 해는 찾기 어려울 정도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일단 스토리가 확실하고 사랑·복수·질투·욕망 같은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관객이 쉽게 따라갈 수 있고 또 공감하면서 볼 수 있죠. 그런 보편성 때문에 시대와 국적을 막론하고 그의 작품들이 널리 사랑받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그 안에서 묵직한 여운과 삶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다 보니 아무리 공연해도 질리지 않는 거죠.”
‘햄릿’에 대한 강필석의 동경과 애정은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노장 배우들이 총 출동하는 2016년 ‘햄릿’ 공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유인촌이 마지막으로 햄릿을 맡았던 바로 그 공연이다.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삶과 예술의 흐름
공연이 끝나면 무대는 사라지지만, 어떤 작품은 결코 잊히지도 지워지지도 않는다. 지금도 유인촌은 햄릿의 거의 모든 대사를 외우고 있다. 어느 장면을 이야기해도 햄릿 대사가 즉석에서 술술 흘러나올 정도다.
“햄릿의 대사는 나중에 다시 곱씹어볼수록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예전에 영국의 한 극장에서 ‘햄릿’을 본 적이 있어요. 햄릿이 오필리어에게 욕을 퍼부으면서 ‘수녀원으로 가라!’고 하는데, 여기서 햄릿이 오필리어를 꼭 껴안고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오필리어에게는 자기 얼굴을 안 보여주는데, 관객에게는 보이죠. 그때 햄릿이 입으로는 욕하면서도 얼굴에서는 가슴 저리게 사랑하는 표정이 드러나는 게 압권이었어요. 새삼 ‘햄릿의 모든 말들은 천 가지, 만 가지의 얼굴을 하고 있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하지만 그 모든 대사 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마지막 대사에요. ‘남은 것은 침묵뿐’. 언젠가 제 묘비에 이 대사를 쓸 겁니다.”
6번의 햄릿과 클로디어스까지 연기한 유인촌은 더 이상 ‘햄릿’에는 아무런 미련이 없다고 하면서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작품으로 ‘리어왕’과 톨스토이의 ‘홀스토메르’를 꼽았다.
“리어 역은 전에 한 번 해본 적 있긴 한데 그때는 너무 젊었고, 지금이 딱 리어를 할 나이인 것 같아요. 사실 리어도 햄릿만큼이나 대사가 많고 에너지도 많이 필요해서 너무 늙고 기운 빠지면 하기 힘든 역할이거든요. 그리고 이 나이가 되어 다시 읽어보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많이 보여요. 나름 내가 생각해 본 리어가 있는데, 나만의 해석이 들어간 리어왕을 한번 해보려고 해요. 그리고 ‘홀스토메르’는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은 작품이라 꼭 다시 한번 올릴 생각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나이 있는 배우들이 더 자주 무대에 섰으면 좋겠어요. 희곡의 언어는 사실 그 자체로 일상적인 언어가 아니에요. 그걸 소화할 수 있을 정도의 인생 경험과 무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자꾸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 기회가 갈수록 적어져서 아쉽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이렇게 선후배들이 모여 정통연극을 공연한다는 게 생각할수록 귀한 기회인 것 같아요.”
실제로 이번 ‘햄릿’ 공연은 출연진의 이름만 나열해도 따로 홍보가 필요 없을 만큼 전무후무한 캐스팅으로 주목받고 있다. 권성덕(1940~)·전무송(1941~)·박정자(1942~)·손숙(1944~)·정동환(1949~)·김성녀(1950~)·윤석화(1956~)·손봉숙(1956~)·길해연(1964~) 등 쟁쟁한 선배 배우로부터 강필석(1978~)·박지연(1988~)·박건형(1977~)·김수현(1970~) 등 실력있는 후배 배우들이 총출연한다. 선후배간의 데뷔 연도만 따져도 무려 50년이나 차이 나는 어마어마한 간극을 딛고, 우리 연극과 뮤지컬 무대를 책임져온 배우들이 이렇게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연극적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수차례 오필리어·레어티즈·호레이쇼를 맡았던 배우들이 후배들에게 자기 역할을 물려주고 뒤에서 그들을 받쳐주는 이번 공연은 그 자체로 무대 위에서 이어지는 역사,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세대를 이어가는 삶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두 세대의 햄릿을 대표하는 두 배우가 있다. 수백 년을 이어온 이 우울한 덴마크 왕자의 이야기가 계속되는 한, 이들의 이름 또한 우리 연극사의 한 지점을 장식하며 오랫동안 이어질 것이다.
글 김주연(연극평론가)
INTERVIEW
연출가 손진책
‘햄릿’은 인류의 자산이자
배우에게 연극의
나이를 알려주는 증표다
“2016년 공연된 ‘햄릿’은 이해랑 선생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공연이었다. 고인을 위한 잔치를 베푼다는 의미가 강해 고민 없이 즐겁게 만들었다면, 이번 ‘햄릿’은 이 시대 인간의 내면을 통해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에 초점을 맞춰 약 400백년 전에 쓰였을 ‘햄릿’과 오늘날의 ‘햄릿’ 사이 간극을 최대한 줄여보고자 했다.
2016년 ‘햄릿’의 마지막 장면이 파격적인 연출(마지막 장면에서 배우가 빈 객석을 바라보고 암전되었고, 관객이 빈 객석을 경유해 퇴장하도록 연출)이었다고 하지만, 혁신적인 연출과 전통적인 연출의 구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선배 연출가와 배우들이 축적해둔 것이 전통이라면, 그것이 오늘날의 자양분과 생명수로서 다시 우리를 보게 하는 것이다. 창작이란 본질적으로 진보적이고 현대적일 수밖에 없다.
‘햄릿’과 같은 작품은 인류 공동 문화재산이자 희곡계의 모나리자와 같은 작품이다. 400년 동안 꾸준히 수많은 연출자와 배우들에 의해 재해석 됐지만, 여전히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고 연극을 탐구하는 정신이 어디까지 깊고 넓어야 하는지를 은연중에 가르쳐주는 작품이다. ‘햄릿’이 갖는 주제는 ‘사느냐 죽느냐’이다. 결국 인간이 목숨을 잃을지언정, 진실에 따라 살 것인가, 아니면 진실을 외면하고 목숨을 간신히 부지할 것이냐는 삶의 근원적인 질문이다. 우리에겐 영원하고 통시적인 주제이고. 셰익스피어 이후 모든 희곡의 깊이를 새롭게 보게 하고 끝없이 가게 하는 원동력이 됐기에, 한국의 연극 역시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많은 것을 선도해 나갔다고 생각한다.
2016년 유인촌이 햄릿을 맡아 노련한 햄릿을 선보였다. 당시 그가 “왜 햄릿이 60세면 안 되냐?”고 질문했고, 다시 초점을 맞추어 새로 작업했었다. 한국 배우 중에는 유인촌이 가장 많이 햄릿 역을 맡아왔기에 그동안의 공연을 통해 축적된 자양분이 녹아 나와 그의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강필석의 햄릿은 그도 40대니, 햄릿을 할 수 있는 나이의 배우라고 생각한다. 영국에서도 햄릿 역은 보통 40대에 맡는다. 강필석은 적절한 시기에 햄릿을 맡았다. 이것이 앞으로 그의 연극 인생에 활로가 될 것이고, 좋은 레퍼런스가 될 것이다.”
정리 임원빈 기자
[PART 2]
노장 & 중진 배우 5인의 회고와 조언
권성덕·전무송·정동환·김성녀·손봉숙
내가 처음 만난 햄릿, 물려주고 싶은 햄릿
연극 ‘햄릿’에 관해 묻자 중진 배우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셰익스피어의 연극은 무엇보다 대사가 중요하다”라고. 더불어 햄릿이 되기 위해,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육체와 정신을 모두 수련해야 한다고.
이들은 각자 지난날 자기의 햄릿에 대해 회고해주었지만 한 자리에 모으니 이것이 곧, 우리나라 연극사의 일면이 된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신시컴퍼니
권성덕 무덤파기2, 사제
“이번 공연이 오래 기억에 남겠지.
내 인생의 마지막 햄릿 무대일 테니까.”
나는 극단 가교의 창단 멤버였어요. 당시 명동 국립극장(지금의 명동예술극장)에서 레어티즈(오필리어의 오빠. 햄릿과 죽음의 결투를 벌인다)역으로 올랐죠. 아주 젊었을 때예요. 고전 그대로 한 공연은 아니었고, 연출이 조금 달랐죠. 오래된 일들이라 다 잊어버리고 기억에 남는 게 있겠어요? 이번 공연이 기억에 남겠지…. 공연을 준비하면서 ‘내가 정말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어쩌면 내 인생의 마지막 공연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영어권의 햄릿들은 정말 대사를 잘 전달하더라고요. To be or Not to be. That is a question!
극단 가교 1965년 창단된 동인제 극단이다.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의 젊은 연극인들을 주축으로 각 대학의 연극영화학과 졸업생이 만들었다.
전무송 유령(햄릿의 죽은 아버지)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섣불리 ‘누구처럼’ 햄릿을 하려고 하지 마라.”
오래전 번안극 ‘하멸 태자’의 햄릿 역으로 뉴욕 라마마 극장에 올랐었죠. 당시 들었던 박수와 환호가 아직 귀에 쟁쟁하네요. 햄릿 공연은 네 번째인데, 연출가의 의도에 따라 이번엔 선왕에 대한 표현을 조율하느라 무척 노력했는데, 결과가 어떨지…. 한번들 꼭 공연을 보시고 평가를 해주길 바라는 바입니다. 햄릿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의 꿈이죠. 하지만 실현하기 위해서는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섣불리 생각하지 말고, 심혈을 기울여서. 발성, 발음에 대한 훈련도 쌓아야 하죠. 그리고 연극에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연출, 다른 연기자들, 앙상블에 대한 마음가짐을 잘 가져야 하죠.
하멸 태자 극단 드라마센터 출신들이 모여 만든 ‘햄릿’의 번안 연극(연출 안민수). 뉴욕 오프오프 브로드웨이에 위치한 라마마 극장에서 공연됐다. 전무송은 그 공연으로 1977년 뉴욕 OB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정동환 폴로니우스(레어티즈와 오필리어의 아버지), 무덤파기1
“이제 햄릿의 깊이를 알 정도가 됐으려나!”
6년 전,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으로 ‘햄릿’에 임했을 때가 세 번째 햄릿 공연이었죠. 당시 배역은 클로디어스 왕이었는데, 그제야 비로소 이 작품에 대한 깊이를 이해하면서 연기했던 것 같아요. 처음 햄릿 역을 맡은 건 아마 1978년도쯤인가. 그 후로 ‘하멸 태자’에서는 클로디어스 역을 맡았는데 그때는 ‘무덤파기 같은 장면은 간단하게 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어요. 죽음에 대한 생각이 깊지 못했고, 햄릿이 담고 있는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던 거죠. 지금은 그 한 장면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정도는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해랑(1916~1989) 배우이자 연출가. 한국 근대 연출사에서 제2세대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동국대 연극영화과 교수, 8·9대 국회의원,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의 연극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이해랑연극상’은 매년 단 한 명에게 주어진다. 올해 제32회 이해랑연극상은 연극 개막일인 7월 13일, 배우 남명렬이 수상했다.
김성녀 거투르드(햄릿의 어머니)
“무대를 지키는 연극쟁이로서, 내실 있는 작업에 함께 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죠.”
이해랑 탄생 100주년 기념 공연에서, 남자 역인 호레이쇼 역(햄릿의 친구)을 맡았죠. 햄릿을 6번이나 하신 유인촌 선생이 “햄릿에서 가장 어려운 역할은 호레이쇼와 거투르드”라고 하시던데, 이번에는 거투르드네요.(웃음) 그때는 남자 역을 어떻게 잘 표현할 수 있을까에 치중했다면, 지금은 인물 하나하나가 보이고, 이를 관통하는 시각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래서인지 더 어렵네요. 햄릿은 삶과 죽음, 인생을 다뤄요. 가볍고 쉽게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죠.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단단한 마음과 정신력으로 이 작품이 줄 고난을 잘 이겨내게끔 준비해야 해요. 깊고, 아주 넓게.
젠더 프리 캐스팅 배우의 성별과 상관없이 배역을 정하는 캐스팅. 2018년 미셸 테리가 연극 ‘햄릿’ ‘뜻대로 하세요’를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꾸렸고, 한국에서는 2001년 ‘에쿠우스’에서 다이사트 박사 역의 배우 박정자가 최초의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알려져 있다.
손봉숙 배우4
“육체와 정신을 성장시켜 ‘끝까지 살아남겠다’는 게 좋은 배우의 마인드 아닌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유난히 대학 때부터 다룰 일이 많았어요. 처음 맡은 햄릿 배역은 거투르드 역이었죠. ‘햄릿’이 워낙 어려운 작품이라, 처음부터 이해하는 데에 열성을 기울였어요. 이번에는 드라마투르그 박철호 씨가 틈틈이 배우들에게 깊이를 더 느낄 수 있게 잘 도와줘서, 고맙게 느껴요. 현장에서 선생님들이 너무나도 힘차게 연습하는 모습도 봅니다. 감동도 받고, 반성도 해요. ‘나는 저 나이에 저만큼 할 수 있을까’ 하면서. ‘햄릿’은 자기 관리를 잘해야 해요. 자신을 가꿔놓아야 하죠. 육체와 정신을 얼마나 잘 성장시키는가, 그래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가 배우에게 제일 필요한 마인드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1959년에 설립, 현재 우리나라에 가장 오래된 연극영화과다. 배우 박근형이 1기 졸업생이며, 박원숙·권성덕·박인환·백윤식·유인촌·송영창·배종옥·손현주 등 한국연극과 영화사를 빛낸 배우들을 대거 배출했다.
[PART 3]
연극계 대표 여배우 3인방
손숙·박정자·윤석화
지금 우리 연극계에 전하는 애정과 일침
후배 배우들의 성장을 위한 조언을 구하자, 핀잔이 먼저 돌아온다. “요새 애들이 우리보다 더 잘해요!”. 이내 말맛이 살아있는 답변이 술술 나온다. 이 배우들은 인터뷰만으로도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듣는 이를 웃겼다, 울렸다가 한다. 적나라한 현실 직시에 흠칫하게 했다가, “요새 대리 기사들이 다 후배 연극배우라더라”며 말하는 모습에서는 후배들을 대하는 걱정과 뚝뚝 묻어나는 애정도 느껴졌다.
세 배우의 연기 인생을 평균내어 보니 50년이다. 이들은 각각 이름 없이 ‘배우 1,2,3’으로만 나오지만, 극의 전환을 이끄는 장면을 주도한다. 햄릿의 아버지가 암살당한 상황을 햄릿과 암살자인 왕비(선왕이 죽은 후 시동생과 결혼), 그의 숙부 앞에서 재현하며 극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실제 무대에서 보면 작은 역할이라도 세 배우의 강렬한 개성과 카리스마에 소름이 끼친다.
배우로서의 연기 성장에 도움을 받은 것이 있으셨나요.
손 숙 책은 나한테 굉장히 소중한 자산이었어요. 사실 연극은 아날로그 매체잖아요. 요즘에 접하기 힘든 아날로그적인 생각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가장 좋은 방법은 남의 작품을 많이 보는 거죠.
박정자 나는 공연을 많이 보는 사람이에요. 중요한 건 장르에 구애받지 않아요. 아무리 색다른 젊은 사람들의 모습이어도. TV 프로그램 ‘스트릿우먼파이터’였나요? 그걸 보면서도 가슴이 뛰었고. ‘내가 저렇게 치열하게 살았던 적이 있나?’ 싶어요. 물론 나도 치열할 때가 있었겠죠. 지금도 그럴 테고. 하지만 여전히 무대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는 사람들을 보면서, 기운을 얻어요.
윤석화 저는 문학과 미술, 그리고 음악을 들으면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최근에 피아니스트 임윤찬 군의 연주를 들었는데, 또 다른 연주자들을 들어보면 같은 곡이어도 조금씩 달라요. 그걸 보며 나도 연기자로서 나의 몸을 빌려 얼마나 다양한 연주를 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하는 거죠.
오랜 세월 무대 위 배우로 살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이 있다면요.
손 숙 일단 이 일을 좋아해야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좋아하지 않으면 못 해요. 끈기도 있어야겠죠. 나라는 사람을 생각해보면, 연극 외에 다른 데 눈을 별로 돌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윤석화 저도 연극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존경하는 선생님을 찾아가 엉엉 울면서 넋두리하면, 선생님은 아무 말도 없이 다 듣고서는 별다른 위로도 없이 딱 한 마디 하셨죠. “그러니까 오래 해”. 처음에는 그 말이 섭섭했다가, 다음부터는 ‘그래, 내가 얼마나 오래 하는지 보여주자’라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웃음)
박정자 그런데 우리 이거, 직업이 맞아?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손 숙 생계가 안 되니까, 직업은 아니지. 어쩌다 돈이 생길 수야 있지만 세 끼 밥 먹는다는 게….
박정자 그렇죠? 하지만 우리가 하루에 세 끼 안 먹고 두 끼만 먹고도 살 수 있잖아요. 매사에 이런 식의 삶에 적응해야 하는 것 같아요. 요즘의 경제 논리로는, 연극배우로 못 살아요. 그래도 지금 가진 삶에 만족할 수 있다면, 연극배우는 가장 행복할 거예요.
무대에 오르신 세월 동안, 한국 연극계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윤석화 양적 성장이 있었죠. 젊은 연극인들에 의해 실험적인 공연들도 많이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좋은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손 숙 공연장도 늘었습니다. 예전에는 서울뿐이었고 그나마도 적었는데 이제는 지방 어디를 가도 공연장이 있습니다. 연극 저변을 넓히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겠죠.
박정자 식구가 많이 는 거죠. 그만큼 대학에서 배우를 많이 양산했고, 힘들고 어려운 길임에도 이 일에 의지를 갖고 들어서는 젊은이들이 참 많아요. 그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가슴이 싸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우리가 느끼지 못한 시간을 이들은 가져볼 수 있지 않겠나’ 싶기도 하고….
연극계가 이룬 수적 성장 이면에는, 부작용도 있었을 텐데요.
윤석화 어느 시대나 완벽하게 좋다고 말할 순 없죠. 지금의 연극계에는 다양한 시도는 생겼지만, 뿌리를 내리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양은 많아졌지만, 이제는 질적으로도 성장해야죠.
손 숙 호흡이 짧달까. 무언가 하나를 붙들고 늘어지는 치열함이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궁핍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지만, 사람을 예술로 향하게 하는 힘이 있기도 하거든요.
박정자 일본의 경우는 많은 관객 수로 인해 더 좋은 환경에서 연극이 상연되죠. 자꾸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는 왜 그만큼 해내고 있지 못한 걸까. 얼마 전엔 슬픈 일도 있었어요. 극장 이동을 위해 운전기사를 구하려고 했었는데, 그 기사들이 다 연극배우, 뮤지컬 배우라더군요. 요즘 많은 후배 배우가 대리 기사나 배달 일을 하죠. 얼마나 속상하고 아픈지.
말씀하신 대로 팬데믹으로 연극계도 오랜 시간 힘들었습니다.
윤석화 무척 외롭겠지만, 또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침묵의 시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보내야 합니다. 이게 예술가의 숙명 같기도 해요. 코로나가 예술가의 정신까지 빼앗아 갈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 창작의 열정을 표현할 수 있는 무대가 없다는 문제가 있죠. 팬데믹이 끝났다고, 저절로 기회가 다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기회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얘기일까요? 앞으로 연극계의 발전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일까요.
손 숙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는 풍토도 문제에요. 받은 예산만큼만, 딱 그것에 맞춰 연극을 제작해서 올리죠. 예전에는 큰 작품에 많이 도전했는데, 오히려 지금은 연극이 쪼그라들었어요. 정부의 지원 방식이 바뀌어야 할 것 같아요. 후원을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을지 유도해준다든가 하는.
윤석화 누군가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해요. 욕을 먹더라도, 정말 신념 있게. 정부의 지원은 엄청나게 늘었는데, 좋은 작품이 엄청나게 나왔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나눠먹기식이면 안 됩니다. 예술은 균일할 수 없어요. 좋은 작품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지원받은 작품의 높은 예술성을 보며 떨어진 사람도 ‘나도 다음에는 저만큼 잘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하게끔 말이죠. 처음에는 조금의 부작용이 있더라도 면밀하게 소통해서 변화해 나가야 합니다.
글 허서현 기자 사진 신시컴퍼니
[PART 4]
후배 배우들이 전하는 마음
길해연·김수현·박건형·박지연
연극의 현실을 돌아보다
선배들의 삶과 연기가 살아있는 교과서가 된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연극을 둘러싼 현실을 돌아보고, 고민도 나눈 시간이었다. 선배들의 비호를 받으며 한층 더 성장하고 성숙한 후배들은 지금의 연극계에 어떤 희망과 바람을 품고 있을까.
글 허서현 기자 사진 신시컴퍼니
김수현 호레이쇼(햄릿의 친구)
선생님들 정도 되면 그간의 노하우로도 눈감고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예상과 전혀 달랐습니다. 마치 뭔가를 해내고 싶어 열정을 미친 듯이 쏟는 젊은이들의 모습 같았거든요. 그렇게 해오셨기 때문에 지금의 이 멋진 모습이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배우는 무대가 있어야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배우에게 주는 지원보다는,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는 지원이 배우에게 더 필요하지 않을까요. 복지를 경제적인 것에만 국한하지 않는다면, 코로나처럼 무대가 없는 시기에 배우들에게 재교육의 기회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박건형 레어티즈(오필리어의 오빠)
권성덕 선생님께서 커튼콜을 하실 때 지팡이를 짚고 나오시는데, 배우들이 그 시간을 묵묵히 바라봅니다. 그 기다림이 지금의 선생님들을 존재하게 한 게 아닐까 싶어요. 늘 빨리 무언가를 이루고만 싶어 했던 나에게 뚝심이란 걸 느끼게 해준 뭉클한 장면입니다.
우리가 바이러스를 정복하진 못 할 겁니다. 끝까지 싸워야만 하겠지만, 바이러스 또한 우리를 쉽게 무너뜨리진 못할 것이고요. 전무후무한 이번 공연을 기획하고 제작한 것처럼, 좋은 제작자들이 많아지는 것이 강력한 백신이 될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박지연 오필리어(햄릿의 연인)
일하는 방식이 세대로 나눠지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사람에 따른 차이가 아닐까요. 사람마다 좋은 점, 그리고 변화해야 하는 점도 다 다릅니다. 공연이라는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가치관이 다르더라도 서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나아가길 바랄 뿐입니다.
이번 공연을 통해 다른 공연에서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낍니다. 선배들이 매번 용기와 지혜를 나눠주시죠. 선생님들은 예전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시고 추억하시곤 했습니다.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무대 위에서의 세월이 선생님들의 목소리, 얼굴, 몸짓에 켜켜이 쌓여있음을 느꼈고요. 저도 선생님들처럼 ‘나만의 길’을 걷고 싶습니다. 나의 주름에, 걸음에, 눈동자에 무대 위에서의 날들이 쌓이길 바랄 뿐입니다.
INTERVIEW
한국연극인복지재단
이사장에게 묻다
길해연 배우2,
루시아누스(극중극에서 공작의 조카)
지난 2년여의 팬데믹 동안, 배우들 복지에 대한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시급했을 것 같다.
그동안 사회적 사건이 발생하면 극장은 전기·소방·대피로 확보 등 안전 점검 대상 1순위였다. 그러나 코로나는 상황이 완전 달랐다. 손바닥 뒤집듯이 쉽게 공연이 취소되거나 연기되었고, 굳게 닫힌 극장을 바라봐야만 했다.
재단 측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한 것은.
일의 터전이 사라졌지만 어떤 대안도 없었다.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이 닥치지 않으리라 확신할 수 없다. 특수 상황에 맞는 안전 강화가 이뤄지도록 대응 매뉴얼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창립된 지 17년이다. 예술계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고, 또 앞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2005년 창립 당시 공연예술인 다수가 열악한 제작 환경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었다. 이에 재단은 2007년, 연극계 아젠다로 예술인복지법 제정을 추진했고, 수많은 포럼과 토론으로 법안 상정을 위한 목소리를 높였다. 2011년 법이 통과되면서, 이후 한국예술인복지재단도 설립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후 다양한 사업과 정책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 제작환경은 2005년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최저임금은 여전히 우리와 거리가 먼 이야기다. 예술인의 기본권 보장이 없다면, 문제는 반복되고 갈증은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 ‘햄릿’ 공연에도 함께한다. 노장부터 젊은 배우까지, 세대 통합의 무대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연극계에서도 세대 통합을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이 있는지.
소외되는 세대가 없도록 귀 기울여야 한다. 30대 중후반부터 50대에 이르는 세대는 경험을 쌓고 공연예술계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한 가정의 가장이고, 아이의 부모일 수 있는 나이다. 이들이 무너지면 예술계를 지탱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들을 위한 안정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앞으로 재단에서 추구하고 싶은 사업의 방향은.
연극인이기 때문에 늘 배고파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복지 강화뿐 아니라 기본 권리에 초점을 두고 정책이 다시 설정되길 바란다. 기본임금이 보장되는 것이 중요하다. 배우 대부분이 작품으로만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이 다시 무대에 돌아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순수 기부금으로만 운영되고 있어 신규 사업 시작이 쉽지는 않지만, 연극인이 있어야 할 곳이 무대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