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THE MUSIC SCENE 33
세계의 예술경영인을 만나다
카메라타 잘츠부르크 대표
안드레아스 브로이니히
안드레아스 브로이니히(1984~)는 베를린, 그루노블 그리고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2015~2021년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법률 고문과 부대표로 일했고, 2021년부터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대표를 맡고 있다.
자유와 신뢰로 빚는 모차르트 사운드

©Ebihara
잘츠부르크는 유럽의 음악과 역사, 자연이 공존하는 문화도시다. 잘츠부르크 음악 페스티벌부터 대학 모차르테움, 잘츠부르크 현대미술관,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중세 구시가지와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전통의 중심에, 잘츠부르크를 대표하는 앙상블 중 하나인 ‘카메라타 잘츠부르크’가 있다.
카메라타 잘츠부르크는 1952년 창단 이래,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사운드’라 불리는 독창적 음향으로 확고한 정체성을 구축해 왔다. 창립자 베른하르트 파움가르트너(1887~1971)가 강조한 실내악적 철학 즉, 각 연주자가 개성을 살리면서도 서로 긴밀히 호흡하는 방식은 오늘날까지 이들의 핵심 정신이다. 모차르트의 고향을 대표하는 앙상블답게 밝고 투명한 음색, 생동감 있는 흐름, 자연스러운 균형감이 연주 스타일과 레퍼토리 선택 속에 깊숙이 배어 있다. 11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재닌 얀센과 함께 한국을 찾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사운드’와 멘델스존·베토벤·슈베르트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내한을 앞두고 대표 안드레아스 브로이니히를 인터뷰 화면으로 마주했다. 법조인 출신답게 차분하고 이성적이었지만, 음악과 단원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뒤편 벽면에는 단원들의 사진이 빼곡히 걸려 있었는데, 각기 다른 얼굴들이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큰 그림처럼 보였다.
구조 속에서 이루는 자유와 신뢰
법학을 전공했다. 음악계에서 일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며, 법학을 전공한 경력이 예술 조직에서 일할 때 어떻게 긍정적으로 발휘되나?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부르거나 바이올린 연주하는 걸 좋아했다. 가족들이 법조계에 있어 자연스럽게 변호사가 되었지만, 늘 음악 안에서 창의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2015년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법률 자문가 및 부대표로 일하며 본격적으로 음악과 연을 맺게 되었다. 법학은 구조를 효과적으로 분석하고 설계하는 안목을 길러준다. 예술적 창의성은 자유가 필요하지만, 그 자유는 구조 속에서 실현된다. 토론 과정에서도 사람과 의견을 분리해 사고할 수 있다. 우리 앙상블은 민주적 구조하에 음악가들이 의사 결정을 한다.
2021년 대표직을 맡았을 때는 전 세계 공연 예술계가 팬데믹으로 힘겨울 때였다.
취임 첫 주, 잘츠부르크에서 두 번을 공연했고 바로 다음 주 다시 봉쇄가 시작됐다. 오스트리아는 당시 유럽에서 유일하게 봉쇄를 시행한 나라였고, 상황은 불확실했다. 많은 이들이 공연 취소를 주장했지만, 나는 “할 수 있는 공연은 반드시 한다”고 말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음악은 필요 없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공연이 성사되었고, 좌석이 매진되며 사람들이 음악을 절실히 원했음을 확인했다. 재정적으로 힘들었지만, 용기를 내 해낼 수 있었다.
본인의 리더십 키워드를 세 가지 뽑아본다면?
‘존중’ ‘의사소통’ 그리고 ‘신뢰’다. 리더십은 권력이 아닌 관계 맺기다. 사람들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해야 한다. 모든 구성원이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도록 서로 신뢰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수하더라도 계속 시도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직무상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프로그래밍과 재원 조성, 다음이 인사, 마지막이 마케팅이다.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대략 이 순서를 따르는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좋은 프로그램이 없다면, 효과적 마케팅도 할 수 없다. 이제는 창의적이고, 전략적으로 대중에게 접근해야 한다. 민간단체이기 때문에 재정 확보도 중요하고, 인사는 팀 전체를 아우르는 핵심 과제다. 소홀히 할 수 있는 영역은 없다.
프로그램 결정 절차는?
예술위원회는 두 명의 악장과 네 명의 단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주 회의를 통해 팀 전체가 충분히 논의하며, 가장 적합한 방향을 찾아간다.
팬데믹, 디지털 전환, 관객 감소 등 다양한 공연계 위기 중 먼저 대응해야 할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여러 위기가 몰려오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수준 높은 공연이다. 좋은 공연을 선보인다면 어떤 위기도 극복할 수 있다. 새로운 기술 역시 어디까지나 가치를 더하는 보조 수단일 뿐이다.
과거와 현재 사이, 음악이 살아 숨 쉰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2020) ©Marco Borrelli
잘츠부르크는 베른하르트 파움가르트너·산도르 베그·로저 노링턴·루이 랑그레와 같은 음악감독이 거쳐 갔다.
이들의 예술적 스타일은, 오늘날 앙상블의 정체성을 이루고 있다. 우리 앙상블은 어떤 작품을 연주하더라도, 실내악적으로 연주한다. 창립자 베른하르트 파움가르트너(1952~1971년 재직)의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는 창단 당시 “모든 연주는 세심한 준비를 거치며 높은 양식적 인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책임 하에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서 ‘양식적 인식’이란, 음악이 작곡된 시대와 장르, 작곡가의 의도와 음악적 문법을 깊이 이해하고 연주하려는 태도를 뜻한다. 이는 대편성 낭만주의 작품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이후 실내악 연주자 출신인 산도르 베그가 음악감독(1978~1997년 재직)을 맡으며 이 전통은 강화됐다. 로저 노링턴의 시기(1997~2006년 재직)에는 역사주의적 해석이 더해졌다. 작곡 당시의 연주 관행, 악기와 스타일을 충실히 반영했다. 이처럼 우리는 각 시대별 음악감독의 색채와 더불어 실내악 특유의 섬세한 밀도를 가진 능동적 연주로 고유한 정체성을 만들어왔다. 지금은 두 명의 콘서트마스터 그레고리 아스와 조반니 구초와 함께 음색을 풍부하게 만들어 나가는 중이다.
모든 곡을 실내악처럼 접근한다는 점에서, 리허설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하다.
연주자가 누군가의 지시를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며 참여하는 태도는 중요하다. 고전주의 시대처럼 악장이 연주를 리드하고, 대규모 현악 5중주처럼 모든 단원이 의견을 낸다. 각자 자유롭게 연주하고, 그에 맞는 책임도 진다.
상임 지휘자가 없는데, 객원 지휘자 혹은 솔리스트가 있을 땐 어떻게 소통하나?
단원들은 서로 눈을 맞추고 직접 대화하며 음악을 만든다. 애초에 ‘앙상블’이라는 단어 자체가 공동체를 뜻한다. 솔리스트와 단원은 동등하고, 무대 위에서 자유롭게 호흡하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자율성과 생동감이, 특별함을 만든다.
고전·낭만·현대음악의 레퍼토리 구성 비율이 궁금하다.
고전주의 음악이 전체의 40~50%를 차지하며, 우리의 음악적 본질이라 할 수 있다. 최근엔 멘델스존·브람스를 중심으로 한 낭만주의 음악을 30% 정도 연주한다. 바로크와 현대음악은 10~20%로, 시즌마다 비중이 다르다. 올해는 오스트리아 초연과 세계 초연곡을 각각 한 곡씩 무대에 올렸고, 예년보다 바로크 음악의 비율도 높였다. 다양한 레퍼토리 중심에는 언제나 모차르트가 있지만, 우리는 이에 머무르지 않고 폭넓은 레퍼토리를 탐구한 뒤 다시 그에게 돌아가는 방식을 택한다. ‘집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 과정에서, 모차르트에 대한 신선한 감각이 생긴다.
현대음악을 비롯한 여러 레퍼토리가 모차르트 연주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흥미롭게 들린다.
현대음악은 모차르트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혀준다. 특히, 한 프로그램 안에서 함께 연주하면, 모차르트의 음악이 전혀 다르게 들리기도 한다. 현대음악은 매우 집중해서 들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연주자와 관객의 청각이 새롭게 깨어난다. 마치 막혔던 코가 스프레이로 뚫리듯 감각이 트이는 순간이다. 이렇게 확장된 감각이 모차르트에도 영향을 주는 것이다.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아는 것만큼, 어디로 이어졌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처럼 상근단원 없이 공연과 프로젝트별로 편성을 꾸리는 운영 방식은 연주자들의 음악적 동기에 어떤 영향을 주나?
세계 각지에서 앙상블이나 솔리스트, 교육자 등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쌓은 경험을, 단원들이 이곳으로 가져온다.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연주할 때 늘 살아 있는 소리가 만들어진다. 단순한 직장이 아니라, ‘내가 함께 만든 앙상블’이라는 책임감과 자부심도 있다. 이 주체성이 우리만의 특별함이다. 2027년이면 창단 75주년을 맞지만, 여전히 단원들은 스타트업 회사의 직원처럼 온 힘을 다해 연주한다.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연주를 관객들이 어떻게 느끼면 좋을까?
연주의 본질은 결국 감정의 전달에 있다. 단순한 기쁨일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감정 그 자체가 중요하다. 이는 ‘왜 이 음악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벨라루스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예술의 목적은 인간 안에 인간다움을 축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음악을 통해 전하려는 것도 같다. 음악은 감정을 일깨우는 통로이며, 그 감정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
전 세계와 다음 세대로 향하다
1~2월의 모차르트 주간, 7~8월의 잘츠부르크 음악 페스티벌을 비롯하여 세계 주요 무대를 정기적으로 찾는다. 올해 11월엔 재닌 얀센과, 내년 6월에는 임윤찬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해외 공연 횟수가 많은 듯한데.
우리는 잘츠부르크를 대표하는 연주단체로, ‘잘츠부르크 모차르트 사운드’를 세계에 전하는 문화 외교사절단이다. 음악은 춤과 더불어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모두가 이해하는 장르다. 물론 해외 투어는 재정적으로나 환경적으로 큰 도전이다. 하지만 음악을 통해 서로 만나는 경험은, 모든 어려움을 넘어설 충분한 이유가 된다.
예술적 프로그램 기획과 재정적 판단은 어떻게 맞물리나?
단순히 예술적 판단에 관여하는 것뿐 아니라 프로그램이 시장에서 대중적 호응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지도 점검한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라도 판매 가능성이 없거나 관객을 끌지 못한다면 연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프로그램은 가장 핵심적인 요소다. 초기에는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구상하지만, 결국 ‘이 프로그램이 시장에서 통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현실성을 따져보게 된다.
재정과 연간 공연 운영 방식이 궁금하다.
연간 예산은 약 350만 유로(약 52억 원)이다. 20%는 공공 보조금, 10~15%는 기업 후원이나 개인 기부로 충당되며, 나머지는 티켓 수입·공연 출연료로 마련된다. 연간 약 80회의 공연을 하는데, 그중 20회가 자체 기획으로 진행되며 대부분은 유럽 중심의 초청 공연이다. 공연 수입과 초청 공연 수입이 전체의 60%를 차지하는 만큼, 시장성과 프로그램의 연결을 현실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더욱 필요하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해준다면?
크게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가족들을 위한 공연이고, 하나는 학교로 찾아가는 공연이다. ‘파파게노가 학교에 간다’라는 프로그램으로, 한 학급을 대상으로 일 년에 4번 정도 찾아간다. 올해는 50여 회의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 예정이다. 주로 초등학교를 방문했지만, 최근엔 고등학교까지 확장해 독재나 혁명 같은 정치적 주제를 음악과 연결해 토론하기도 한다. 음악 교육은 젊은 세대에게 경청의 경험을 줄 수 있다. 음악을 함께 만드는 과정은 집단 속에서 조화를 이루고 공동의 성취를 경험하게 한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세상이 더 살만해지지 않을까.
앞으로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비전은?
2027년이면 창단 75주년을 맞는다. 모차르트를 비롯한 고전음악, 그리고 새로운 음악을 앞으로도 꾸준히 소개하고 싶다. 누군가는 ‘고전주의 음악은 이미 200년이 지난 빛바랜 음악이며, 지루하게 반복되고 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음악은 구시대의 유물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예술이고 따라서 영원하다. 아이들이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음악에 눈을 반짝이며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음악이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 수 있다. 현세대가 아름다운 음악을 누린 것처럼, 다음 세대도 계속 누리길 바란다. 다른 예술 장르와의 융합을 통해, 음악을 창의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계속 시도해 나갈 것이다.
‘고전’은 결코 낡은 유산이 아니다. 그는 음악이 시간을 초월하고, 현재와 미래를 잇는 예술이라 말한다. 수백 년 전 탄생한 작품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감동을 주며, 앞으로도 새로운 세대의 삶 속에서 살아 숨 쉴 것이라 믿는다. 카메라타 잘츠부르크가 지켜온 ‘모차르트 사운드’는 바로 이 믿음을 바탕으로,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가 될 것이다.
글 박선민(음악 칼럼니스트·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객원교수) 사진 카메라타 잘츠부르크
PERFORMANCE INFORMATION
카메라타 잘츠부르크(협연 재닌 얀센)
11월 4·5일 롯데콘서트홀
4일 | 멘델스존 ‘이국으로부터의 귀향’, 바이올린 협주곡, 베토벤 교향곡 7번
5일 | 모차르트 교향곡 10번,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슈베르트 교향곡 5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