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 예술감독 에바 마리아 젠스, 알프스 산맥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고음악의 선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5월 28일 8:23 오전

BEHIND THE MUSIC SCENE 38 세계의 예술경영인을 만나다

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 예술감독 에바 마리아 젠스

알프스 산맥 한가운데서 들려오는 고음악의 선율

 

©Alexander Kofler

 

에바 마리아 젠스(1981~)는 독일 출신의 예술행정가이자 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 예술감독이다. 프라이부르크에서 독문학과 역사를 공부했고, 바젤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거쳐 2015년 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에 합류했다. 2023년부터 축제 예술감독으로 재직 중이며, 2026년 50주년 프로그램을 총괄한다.

 

 

 

호프부르크 왕궁 콘서트 ©Rupert Larl

 

알프스 산맥이 포근히 감싸 안은 도시, 인스부르크의 여름은 유난히 맑고 투명하다. 인 강(Inn River)을 따라 펼쳐진 구시가지의 지붕과 산맥은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이루고, 해가 저물면 산 내음을 머금은 서늘한 공기가 도시를 부드럽게 감싼다. 이곳에서 50년 동안 펼쳐온 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는 올해 7월 24일부터 8월 30일까지 바로크부터 중세 및 르네상스 음악을 당대의 연주 방식으로 재현한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를 이끄는 예술감독 에바 마리아 젠스. 그녀는 프로그램 기획부터 운영 전략까지 축제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올해 축제의 중심에는 초연 뒤 오랫동안 완전한 형태로는 전혀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17세기 이탈리아 작곡가 피에트로 안토니오 체스티(1623~1669)의 오페라 ‘일 포모 도로’(황금 사과)가 자리한다. 알프스의 도시에서 되살아나는 바로크 음악의 시간, 그 중심에서 축제를 이끄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간을 거슬러 부활한 고음악의 정수

올해로 50주년을 맞이한 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의 역사와 예술감독의 역할을 소개해 달라.

총감독 마르쿠스 루츠, 음악감독 오타비오 단토네와 함께 축제의 예술적 방향을 설정하고, 운영 전략을 발전시킨다. 이 특별한 축제에 참여하는 일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경험이며, 오늘날의 성공은 지난 50년 동안 함께해 온 많은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기반하고 있다. 축제는 1970년대 고음악 전문가들이 주도한 마스터클래스 시리즈인 ‘인스부르크 여름 아카데미’에서 출발했다. 20세기 중반 이전까지만 해도 바흐의 협주곡 같은 고음악은 현대 악기를 사용하는 대규모 오케스트라에 의해 연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후 원전연주 방식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이 등장하며, 바로크 작품을 가능한 한 초연 당시의 연주 방식에 가깝게 재현하는 시도가 본격화됐다. 이는 소규모 앙상블을 편성하고, 피아노 대신 하프시코드를, 금속현 대신 거트현을 사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축제는 1976년 출범해 1980년대에는 무대 오페라 제작으로 영역을 확장했고, 이후 오늘날과 같은 5주간의 축제로 자리 잡았다.

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 ©Mona Wibmer

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우선 17세기 바로크 오페라의 중심지였던 인스부르크의 풍부한 역사적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점, 그리고 철저히 당대의 악기와 편성으로 연주하는 원전 연주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또한, 특정 작곡가 한 명에 집중하는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여타 고음악 축제들과 달리 다양한 작곡가의 작품을 폭넓게 다룬다. 오페라와 콘서트, 성악 콩쿠르를 아우르는 다채로운 구성과 알프스의 장엄한 자연환경이 주는 특별한 경험 또한 우리만의 강점이다.

 

암브라스 성의 스페인 홀은 축제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다.

암브라스 성은 10세기 중세 성터 위에 16세기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된, 천 년의 세월을 품은 역사적 건축물이다. 성 안에 위치한 스페인 홀은 축제가 시작된 매우 각별한 장소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암브라스 성은 시내에서 차로 한 시간가량 달려야 도착하는데, 그래서인지 성에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상에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아름다운 정원을 지나 스페인 홀에서 음악을 듣는 시간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당대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을 갖게 한다.

암브라스 성 ©Felix Pirker

인스브루크에는 암브라스 성 외에도 티롤 주립극장, 리젠잘(Rie-sensaal), 그리고 하우스 데어 무지크(Haus der Musik) 등이 있다.

티롤 주립극장에서는 주로 오페라를 공연하며,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이었던 인스브루크 왕궁 내 리젠잘 홀은 화려한 샹들리에가 시선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공간이다. 현대적인 건축물인 하우스 데어 무지크는 축제의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 이곳 무대 뒤편의 창 너머로는 황궁의 모습이 보여 과거와 현재가 한 장면 안에서 연결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인스브루크의 아담한 도시 규모 덕분에 관광객들이 여러 공연장을 쉽게 이동할 수 있다는 점도 축제의 큰 장점이다.

 

잊혀진 명작 ‘일 포모도로’의 귀환

50주년 프로그램을 구성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예술적 방향성은 무엇인가. 올해의 핵심작으로 체스티의 ‘일 포모 도로’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폭넓은 고음악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시즌에는 ‘우리는 무엇을 기념하는가’라는 주제 아래 예술가들을 향한 헌정과 오마주를 담았고, 젊은 예술가들이 무대에 설 기회도 대폭 마련했다. 체스티는 17세기 인스부르크에서 활동했던 중요한 작곡가다. 따라서 축제의 50주년을 기념하는 시기에 그의 오페라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특히 ‘일 포모 도로’는 1668년 빈에서의 초연 이후 오랫동안 완전한 형태로는 공연되기 어려웠고, 한때 ‘공연 불가능한 작품’이라 불리기도 했다. 초연 당시에도 방대한 규모(공연 시간 약 8시간) 때문에 이틀에 걸쳐 공연되었을 정도다. 47개의 배역과 합창, 발레가 포함된 것은 물론 장면 전환만 20회가 넘는다. 게다가 전체 5막 중 3·5막의 음악 일부가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지만, 우리는 이 작품을 무대에 되살리는 도전을 감행했다.

유실된 악보를 복원하고, 대작을 무대에 올리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음악감독 오타비오 단토네가 체스티의 다른 작품들을 바탕으로 사라진 부분을 재구성하여 3·5막의 음악을 보완하고, 작품을 실제 무대에 올리기 위해 약 2년 전부터 제작 준비에 들어갔다. 신화적 배경이 계속 등장하는 화려한 바로크 무대 장치를 구현하기 위해 대규모 무대 경험을 갖춘 연출가 파비오 체레사를 섭외했다. 연주는 단토네가 이끄는 앙상블이자, 축제의 상주악단인 아카데미아 비잔티나가 맡는다.

임선혜 ©EMK Entertainment

소프라노 임선혜의 ‘일 트리온포’(8.22) 출연 소식도 반갑다.

임선혜는 고음악 분야에서 매우 정평이 나 있는 소프라노다. 이번 공연을 지휘하는 르네 야콥스(1946~)가 그녀를 직접 추천했다(르네 야콥스는 1991년부터 2009년까지 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를 이끌며 바로크 오페라 부흥을 이끈 핵심 인물이다). 임선혜는 르네 야콥스가 헨델의 ‘일 트리온포’를 지휘할 때마다 벨레차 역을 맡고 있다.

 

 

전통과 현대가 만나고, 다음 세대가 성장하는 무대

고음악에 현대적 요소를 결합하여 색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대표적으로 ‘메이드 인 티롤’(8.28)이 있다. 인스브루크와 티롤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몇몇의 음악가들이 참여하는데, 이번 공연에는 서로 다른 음악적 접근을 보여주는 세 팀이 참여한다. 먼저 젊은 고음악 단체인 카디널 포인트 앙상블이 전통적인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이어지는 무대에서는 피어할브피 앙상블이 하인리히 비버의 ‘로젠크란츠 소나타’를 현대음악적 관점에서 재해석한다. 마지막으로 류트 연주자 데이비드 버그뮐러가 전자음악을 결합한 무대를 펼친다. 이는 고음악이 과거의 음악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과 아이디어가 만들어지는 살아 있는 전통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청소년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신진 예술가 발굴을 위한 노력도 인상적이다.

‘영 바로크’ 마스터클래스 ©Wibmer

18세 미만의 젊은 연주자들이 참여하는 ‘영 바로크’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다. 음대생이 아닌 일반 학생들에게 고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인데, 참가자들은 닷새 동안 인스부르크에 머물며 연습과 연주를 병행하고 공연을 관람한다. 흥미로운 점은 첫해에 현대 바이올린으로 참여했던 한 학생이 이듬해에는 바로크 바이올린을 가지고 축제를 다시 찾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젊은 성악가들의 등용문인 체스티 콩쿠르가 있다. 예술감독 알레산드로 드 마치의 주도로 2010년 출범한 이 콩쿠르는 최근 몇 년 사이 바로크 오페라 성악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대회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콩쿠르를 통해 배출된 인재들에게 축제 오페라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하며 고음악의 미래를 가꾸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와 축제의 가치

대규모 오페라 제작은 상당한 비용과 위험이 따를 텐데, 축제의 예산 구조는 어떠한가?

우리의 존재 이유가 곧 고음악을 연주하기 위함이기에, 조금은 미친 도전이라 할지라도 계속해 나가고 있다. 예산은 대부분 인스브루크 시와 티롤주에서 지원받는다. 전체 규모는 약 350만 유로(한화 약 50억 원) 정도다. 축제 재정의 상당 부분이 공공 지원에서 나오지만, 예술적 자율성은 철저히 보장된다. 오페라는 비용이 많이 드는 장르인 만큼 설정된 예산 범위 안에서 의상을 재활용하거나 효율적인 무대 연출을 고민하며 현실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축제가 지역 사회나 도시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가?

전체 관객의 약 60%는 지역 주민이다. 나머지 약 40%는 매해 약 1만 2천 장 정도가 팔리는데, 97%에 달하는 매진율을 기록한다. 2025년 기준으로 예술가들의 숙박만 약 3천 9백 건이 발생했을 정도로 지역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오페라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은 6주가량 머물기도 한다). 특히 경제 파급 효과 계수는 약 2.8에 달하는데, 이는 공공 보조금으로 1유로를 지원받을 때마다 약 2.8유로가 지역 경제로 환원된다는 의미다. 인스브루크의 유일한 여름 클래식 음악 축제로서, 도시의 음악적 유산 위에 생동감 넘치는 현재의 문화를 쌓아 올리며 강력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다.

‘사계’ 공연(2019) ©Rupert Larl

글루크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2025)

 

 

 

 

 

 

 

 

축제 속에서 발견한 음악과 삶

예술감독으로서 특별히 애정을 느끼는 고음악 작품은 무엇인가?

너무 많아서 하나를 고르기 어렵지만, 바흐의 ‘마태 수난곡’ 중 마지막 합창인 ‘우리는 눈물 속에 잠겨 앉는다’의 선율은 들을 때마다 온몸에 전율이 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

시내 중심의 호프가르텐 공원을 좋아한다. 활기차면서도 특유의 고요함이 공존하는 공원의 잔디 위에 누워 음악을 듣는 순간에는 삶이 정말 평화롭게 느껴진다.

축제와 함께하는 시간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궁금하다.

관광객들이 휴가를 즐기러 오는 아름다운 도시에서 특별한 기회를 얻었고, 그 과정에서 소중한 인연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성악 콩쿠르를 운영하며 인내심에 대해 배웠으며, 조직을 이끌 때 생기는 다양한 도전들은 나를 지속적으로 성장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이 축제를 200%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달라.

축제에 이틀 이상 머물며 도시 구석구석에서 열리는 작은 콘서트에 가보길 권한다. ‘콘체르토 모빌레(Concerto Mobile)’나 ‘무지카 몬타나(Musica Montana)’ 같은 프로그램도 좋고, 알프스 산 위의 작은 산장에서 열리는 음악회도 좋다. 산장에서 음악을 듣다가 옆자리에서 만난 사람을 오페라 극장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치는 경험은 축제 기간에만 누릴 수 있는 묘미다. 그렇게 하루 이틀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덧 ‘축제의 버블’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사계’ 공연(2019) ©Rupert Larl

글루크 ‘아울리스의 이피게니아’(2025)

알프스 산맥에 둘러싸인 인스브루크는 단순한 관광 도시를 넘어 역사와 음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암브라스 성의 스페인 홀에서 울려 퍼지는 선율, 왕궁과 극장을 오가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연들, 그리고 알프스의 상쾌한 공기가 어우러지면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음악 무대가 된다. 올여름 인스브루크를 찾을 예정이라면 고음악의 울림과 자연의 정취에 평온하게 몸을 맡겨보길 바란다.
박선민(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객원교수) 사진 인스부르크 고음악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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