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줄리앙 샤바, 바다에 선 한 인간의 파멸과 공동체의 잔혹함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6년 6월 8일 11: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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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가 줄리앙 샤바

바다에 선 한 인간의 파멸과 공동체의 잔혹함

국립오페라단의 한국 초연작 ‘피터 그라임스’를 시적 무대로 풀어 낼
그의 연출 노트를 미리 살펴보다

©Magali Dougados

 

 

 

 

 

 

 

 

 

2024년 5월, 국립오페라단(단장 겸 예술감독 박혜진) ‘죽음의 도시’에서 1982년생 스위스 연출가 줄리앙 샤바가 한국 관객에게 건넨 첫인사는 강렬했다. 그가 창조한 물 빠진 색채와 상실의 우울함을 시각화한 무대는 코른골트의 불협화음 속에서 아름다운 꿈의 잔상을 길어 올렸다.

그로부터 2년 뒤, 20세기 영국 오페라의 정수이자 올해로 서거 50주년을 맞은 벤저민 브리튼의 ‘피터 그라임스’(1945)로 줄리앙 샤바가 다시 서울을 찾는다. 국립오페라단이 처음으로 선보이는 이 작품의 제작을 이끄는 그의 시선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다. “‘피터 그라임스’를 한국에서 선보이게 되어 무척 영광스럽습니다. 동시에 이 작품이 지닌 보편적인 비극성이 새로운 문화적 맥락 안에서도 깊이 전해질 수 있도록, 연출가로서 큰 책임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고독한 인간, 그리고 바다라는 거대한 적대자

줄리앙 샤바의 작품 이력은 흥미롭다. 그는 페테르 외트뵈시(1944~2024)의 ‘황금용’, 제럴드 베리(1952~)의 ‘진지함의 중요성’ 등 광기와 부조리, 복잡한 인간 심리가 얽힌 현대 오페라에서 탁월한 감각을 보여 왔다. 그에게 오페라는 어린 시절부터 접해온 “또 하나의 모국어”이자, 인간 내면의 가장 깊숙한 불안을 비추는 거울이다.

전작 ‘죽음의 도시’가 상실의 고통에 갇힌 한 남자의 내밀한 환상을 다뤘다면, ‘피터 그라임스’는 한 인간의 붕괴를 넘어 그를 둘러싼 공동체의 잔혹함으로 시선을 확장한다. 어부 피터 그라임스는 가해자와 희생자의 경계 위에서 서서히 무너져가고, 마을 사람들은 그를 철저히 배척한다. 샤바는 이 팽팽한 긴장을 오늘날 사회의 풍경과 맞닿게 만든다.

“이 작품은 개인의 비극과 사회적 비판, 그리고 신화적 차원의 서사를 함께 품고 있습니다. 결국 관객은 규범이 한 개인을 어떻게 짓눌러버리는지, 그 잔혹한 공동체의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특히 이번 프로덕션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합창단의 존재감이다. 이번 무대에서 합창은 단순한 군중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기능한다.

“합창을 단순한 사회적 집단 이상의 존재로 그리고자 했습니다. 합창은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는 풍경이자 유기적인 생명체이며, 바다와도 같은 힘으로 기능합니다. 그들은 목격자이면서 재판관이고, 때로는 자연 그 자체가 되기도 합니다.”

샤바의 무대에서 이러한 시각적 언어는 곧 인물의 심리를 대변한다. ‘죽음의 도시’에서 영혼의 퇴색을 ‘물 빠진 색채’로 표현했던 그가 이번 작품을 위해 선택한 색은 ‘시간에 침식된 녹’이다. 무대는 해체된 배의 거대한 파편들로 구성되는데, 소금기에 절어 닳아버린 녹슨 표면은 오랜 생존의 흔적이자 침식의 시간을 드러낸다.

“이 부서진 잔해들은 단순히 죽은 공간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피난처가 되고, 노동의 공간이 되며, 동시에 그라임스의 내면세계를 상징하죠. 천천히 무너져가면서도 끝내 살아남으려는 세계의 모습이 무대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음악의 리얼리즘과 무대의 시적 환상이 만날 때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지휘자 알렉산더 조엘(1971~)과의 음악적 시너지다. 조엘은 브리튼의 스코어를 “정교하게 맞물려 움직이는 거대한 교향악적 장치”라고 설명하며, 북해의 차가운 파도 소리를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핵심적인 적대자로 해석했다.

고립된 그라임스의 내면은 다조성과 불협화음의 날카로운 충돌, 공격적인 금관 사운드로 표현되고, 샤바의 무대는 그에 맞서 시적인 이미지로 응답한다. “음악의 불협화음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더 단순하고 순수한 꿈의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던 그의 연출 철학이 브리튼의 정교한 음악 안에서 다시 한번 구현되는 셈이다. 특히 장면과 장면을 연결하는 여섯 개의 ‘바다 간주곡’과 파사칼리아가 흐를 때, 무대는 “신화적이고 시적인 차원으로 이동하며, 합창은 새로운 형태로 변화하고 인물들의 몸은 사회적 억압으로부터 잠시 해방”된다.

줄리앙 샤바의 ‘피터 그라임스’는 냉혹한 사회적 현실성과 시적 표류 사이에 세워져 있다. 무너져가는 인간과 끝없이 출렁이는 바다, 그리고 그 사이를 배회하는 군중의 시선까지, 샤바는 이 비극적 풍경을 압도적인 시각적 이미지로 길어 올린다.

홍예원 기자

 

줄리앙 샤바(1982~) 페테르 외트뵈시의 ‘황금용’, 제럴드 베리의 ‘진지함의 중요성’ 등 십여 편의 오페라·연극을 연출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스위스 단체 누벨 오페라 프리부르(NOF)의 예술감독을 역임했으며, 2024년에는 국립오페라단 ‘죽음의 도시’로 한국 무대에 첫선을 보였다. 현재 마그데부르크 극장의 총감독으로 재직 중이다.

PERFORMANCE INFORMATION
국립오페라단 ‘피터 그라임스’
6월 18~21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알렉산더 조엘(지휘)/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국립합창단·위너오페라합창단/줄리앙 샤바(연출)/테너 크리스토퍼 벤트리스·김재석(피터 그라임스), 소프라노 문수진·오예은(엘렌 올포드), 바리톤 양준모·이동환(볼스트로드) 외

 


 

ABOUT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

‘피터 그라임스’로 다시 만나는
20세기 영국 음악의 얼굴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 작곡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국내에서는 흔히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의 작곡가라거나, 2006년 국내 초연 이래 이따금씩 공연 소식이 들려오던 ‘전쟁 레퀴엠’(함신익/대전시향)을 통한 인지도만 존재하는 수준이었다. 1997년 국내에 오페라 ‘도요새의 강’(국립오페라단 번안), ‘앨버트 헤링’(예술의전당·전국문예회관연합회 공동제작)이 이미 올랐다는 사실도 널리 알려지진 않은 편이다.

하지만 2020년대에 접어들며 서울시향이 ‘피터 그라임스’ 중 네 개의 ‘바다 간주곡’, 바이올린 협주곡, ‘일뤼미나시옹’을 무대에 세우고, 국립오페라단이 2024년 ‘한여름 밤의 꿈’ 국내 초연에 이어 올해 ‘피터 그라임스’ 국내 초연을 발표하는 등 점차 국내에서도 그의 작품이 오르는 빈도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이러한 추세 가운데, 올해로 서거 50주년을 맞은 브리튼의 생애를 간단히 짚어본다.

떡잎부터 남달랐던 어린 시절

벤저민 브리튼은 1913년 11월 22일 서퍽주 로웨스터프의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른 나이에도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던 그는 5세부터 피아노를, 10세에 비올라를 배웠으며, 작곡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1927년 브리튼은 비올라 스승이었던 오드리 알스턴에 의해 프랭크 브리지(1879~1941)를 만나게 된다. 브리튼은 노퍽&노리치 페스티벌의 한 콘서트에서 우연히 들었던 그의 교향시 ‘바다’에 깊은 감명을 받은 상태였다. 브리튼은 당시 14세에 불과했으나 브리지는 그가 퍽 인상적이었는지 런던으로 직접 초대해 레슨을 받도록 했다. 브리지가 브리튼의 작풍에 실질적으로 끼친 영향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지만, 이 시기부터 브리튼의 작곡 실력이 점점 꽃피기 시작한다.

1930년 런던 왕립 음악원(RCM)에 장학생으로 입학한 그는, 이후 설리번 상, 어니스트 패러 상 등을 받았다. 브리튼은 재학 중 피아노 교수였던 존 아일랜드(1879~1962)를 포함한 교수진과 원만한 관계는 아니었지만, 이 시기에 발표한 ‘신포니에타’(Op.1)와 오보에 4중주 ‘환상곡’(Op.2), 합창 변주곡 ‘소년이 태어났다’(Op.3)는 그의 이름을 점차 주목받도록 만들었다. 1933년에 학업을 마친 후, 브리튼은 창작 활동 외에도 극장·영화음악 작곡가로도 활동한다.

 

평생의 동반자를 만나다

제77회 올드버러 페스티벌 (6.12~28)

1937년은 브리튼의 인생에 큰 전환점이 된 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브리튼의 평생의 동반자가 된 테너 피터 피어스(1910~1986)를 만났다. 1939년 브리튼과 피어스는 잠시 영국을 떠나 미국에서 지내게 되는데, 이 시기에 연가곡 ‘일뤼미나시옹’(1940), 바이올린 협주곡(1940), 레퀴엠 교향곡(1940), 오페라 ‘폴 버니언’(1941) 등이 완성된다. 그는 1942년까지 미국에 머물렀지만, 결국 고향을 향한 그리움으로 인해 영국으로 돌아온다. 당시에 브리튼이 읽은 조지 크랩의 시집 ‘더 버러’의 배경은 브리튼의 향수를 크게 자극했는데, 이 내용은 3년 후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1945)로 탄생하게 된다.

고국으로 돌아온 둘은 서퍽에서 생활했고, 브리튼에게 큰 성공을 가져다 준 ‘피터 그라임스’를 발표한 시기에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1946)이 완성됐으며 이후에도 오페라 ‘루크레티아의 능욕’(1946)과 ‘앨버트 헤링’(1947)을 발표한다. 이 시기 즈음 브리튼과 피어스는 서퍽의 작은 해안 마을 올드버러에서 축제를 개최하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그렇게 1948년 6월에 시작된 올드버러 페스티벌은 소박한 규모였으나, 몇 년 지나지 않아 규모가 크게 확장됐으며, 1967년에는 맥아 제조 공장을 개조한 스네이프 몰팅스 콘서트홀을 세우기에 이른다. 그 사이 브리튼은 오페라 ‘빌리 버드’(1951) ‘나사의 회전’(1954) ‘한여름 밤의 꿈’(1960)과 ‘전쟁 레퀴엠’(1962)을 비롯해 꾸준히 작품을 발표했으며, 작곡가로서 그의 명성은 정점을 찍는다.

올드버러 페스티벌(2025) ©Britten Pears Arts

노스 오페라 ‘나사의 회전’ ©Tristram Kenton

지속적으로 빛날 그의 이름

1970년에 이르러 브리튼은 건강 문제로 수술을 받아야 했다. 그는 오페라 ‘베니스에서의 죽음’(1973)을 완성한 후 수술에 들어가는데, 비록 수술은 잘 이루어졌으나 후유증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모든 활동을 중지해야 했다. 그럼에도 작곡을 손에서 놓지 않았으며, 1976년에는 ‘환영의 송가’를 최후의 작품으로 내놓았다. 그해 올드버러의 브리튼 남작으로 종신 귀족 작위를 받았고, 12월에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는 그를 사원 내에 안치하려 했지만, 브리튼은 올드버러에서 피어스 사후에 나란히 묻히고 싶다는 뜻을 일전부터 밝혔다. 그의 뜻에 따라 그는 올드버러의 성 베드로와 성 바울 교회의 공동묘지에 안장되며, 10년 후 피어스도 그 뒤를 따른다.

브리튼은 관현악·성악·실내악 등 많은 장르 중에서도 특히 오페라 분야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으며, 특히 피어스와 그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올드버러 페스티벌은 2026년 제77회를 맞아 브리튼 서거 50주년을 기리는 프로그램을 선보이며, 세계적인 음악 축제로서의 꾸준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브리튼과 동반자 피어스의 묘

브리튼의 유년 시절 생가 ©Hel-hama

최성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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