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감히 영국을 그저 거대한 음악시장에 불과한 변방으로 치부할까. BBC 심포니는 작금에 이르러 독일·오스트리아와 같이 ‘음악 생산자’의 주축을 이루는 영국의 위대한 힘을 음악으로 증명했다. 여기에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영국 작곡가의 작품으로만 꾸며진 프로그램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세계 제일의 명연이었다. 10월 8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글 유혁준(음악 칼럼니스트) 사진 크레디아
런던 심포니·런던 필에 이어 런던에서 세 번째로 탄생한 BBC 심포니는 이른바 ‘런던 빅5’ 오케스트라 가운데 왠지 우리에게는 무색무취하고 무뚝뚝한 영국 신사 같은 이미지였다. 하지만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은 10월 8일 예술의전당을 찾은 BBC 심포니의 실연을 대하고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베스트가 아닌 1.5군의 진용으로 마치 점령군처럼 내한해, 그저 그런 레퍼토리를 컴퓨터처럼 완벽한 기교로 자랑하듯 연주하지만 음악은 사라지고 소리만 남았던 소위 ‘최정상’오케스트라를 숱하게 보아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BBC 심포니의 1진 정예 멤버가 연주하는,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세계 제일의 명연이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50주년을 축하하는 버킹엄 궁전 야외 공연에서 마음씨 좋은 아저씨 같은 인상으로 BBC 심포니를 지휘했던 앤드루 데이비스가 11년이 지나 칠순의 노구를 이끌고 무대로 등장했다. 그들에게는 제2의 국가와도 같은 ‘위풍당당 행진곡’의 우렁찬 팡파르가 터져 나왔다. 갑자기 탄광촌 광부들의 밴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브래스트 오프(Brassed Off)’의 잔상이 스쳤다. 금관 파트의 찬란한 금빛 울림은 영국 어디서나 개미 군단처럼 퍼져 있는 밴드를 기본으로 하는 탄탄한 저변의 결과물이었다.
월턴의 비올라 협주곡은 리처드 용재 오닐이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이다. 영국 정통 악단과 함께하는 용재 오닐의 비올라는 1악장, 현악기의 트레몰로를 타고 아스라이 흩뿌리는 아라베스크는 가히 일품이었다. 재현부에서 팀파니의 야릇한 두드림을 배경으로 독주 비올라가 꿈틀댈 때 전율이 전해졌다. 촛불이 꺼지듯 사그라지는 3악장 코다에 대한 아쉬움에서였을까. 용재 오닐이 선택한 앙코르는 ‘섬집아기’였다. 가녀린 단선율로 그려지는 그의 애틋한 사모곡은 기어이 객석을 울렸다. 무엇보다 현악기를 위한 어떠한 곡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비브라토는 그가 이 동요를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알게 했다.
후반부, BBC 심포니는 더욱 일취월장했다. 브리튼의 ‘네 개의 바다 간주곡’은 각각의 풍경들이 적나라하게 떠오르는 마력을 뿜었다. ‘새벽’에서 부풀어오르는 금관의 매력은 ‘달빛’에서 저현 악기의 율동 속에 마림바와 하프의 통통 튀는 효과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졌다. ‘폭풍’의 몰아치는 음파는 압권이었다. 엘가로 시작해 엘가로 마무리하기 위해 ‘수수께끼 변주곡’의 주제가 그윽하게 흘러나왔다. ‘사랑의 인사’로 우리나라에서도 스타덤에 오른 부인 캐럴라인의 이름을 딴 제1변주는 우아하고 산뜻했다. 그런데 음악이 전개될수록 희화화된 곡 본연의 외적인 이미지는 사라지고 마치 첼로 협주곡처럼 어둑어둑한 영국 하늘의 짙게 내려앉은 구름이 연상되는 것은 왜일까. 이는 온전히 지휘자와 BBC 심포니의 공이었다. 곡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님로드’에서 들려준 소름 끼치는 메사 디 보체의 테크닉을 뒤에 업은 비장미는 삶의 회환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게 만들고 있었다. 투티에서 작렬하는 소리 폭풍은 드넓은 콘서트홀을 바닥부터 휩쓸고 지나갔다. 제14변주가 마감됐을 때 청중은 말러·브루크너의 피날레 악장에서 느껴지는 악흥보다 더한 음악의 감동을 받았을 터였다. 누가 감히 영국을 그저 거대한 음악시장에 불과한 변방으로 치부할까. BBC 심포니는 작금에 이르러 독일·오스트리아와 같이 ‘음악 생산자’의 주축을 이루는 영국의 위대한 힘을 음악으로 증명하고 갔다. 오로지 영국 작곡가의 작품으로만 꾸며진 프로그램은 그 자존심의 정점에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무엇보다 최선을 다했다.힘을 음악으로 증명하고 갔다. 오로지 영국 작곡가의 작품으로만 꾸며진 프로그램은 그 자존심의 정점에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무엇보다 최선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