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커리어를 시작한 젊은 연주자라도 일찌감치 자신의 장점을 잘 살린 영역이나 작품을 찾아내 완성된 이미지를 주는가 하면, 광활한 레퍼토리의 바다에서 아슬아슬한 모험을 펼치는 경우도 있다. 이틀에 걸친 독주회를 통해 폭넓은 레퍼토리는 물론 자신의 음악적 자산이 어느 정도의 부피와 밀도를 자랑하는지 보여준 다닐 트리포노프는 분명 후자에 속하는 연주자였다. 6월 11~12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글 김주영(피아니스트) 사진 마스트미디어
든든한 체력과 탐구 정신, 건반 위에서의 즉흥성까지 갖추고 있는 트리포노프의 등장은 새로운 ‘러시안 몬스터’의 출현이다. 이틀간의 피아노 독주회에서 그의 선곡은 거대한 클라이맥스를 향해가는 완만한 상승 곡선과 함께, 그 귀결에는 역시 러시아의 전통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11일, 첫날 오프닝은 ‘환상’이라는 부제로 불리는 스크랴빈의 소나타 2번이었다. 1악장의 서정은 다소 가볍고 밝은 세련미로 다가오면서 이색적인 분위기를 표출했다. 밝음의 상쇄 효과는 이어진 2악장의 자연스럽게 형성된 스케일을 통해 만들어졌는데, 빠른 음들의 돌출을 의식적으로 억제하여 묵직한 뒷맛으로 마무리하는 모습이었다. 리스트 소나타 B단조에서는 이지적인 접근 방법이 두드러졌다. 구조적으로는 겉과 안이 흡사한 모습으로 숨어있는 복합적 구성인 반면, 모티브의 사용법은 이와 달리 산만하여 일관된 논리를 잡아내기 힘든 이 곡에서 연주자는 프레이징을 구성하는 인토네이션의 정공법적인 구사와 세분화된 다이내믹으로 듣는 이들에게 깔끔한 조형을 선보였다. 숨 막히는 타건과 속도감 등 비르투오소적 면모를 드러냈으나, 기교의 모든 요소들이 여유로운 호흡과 함께 이루어져 쾌적했다. 후반에 연주된 쇼팽의 전주곡집은 트리포노프의 기질이 여과 없이 드러났다. 아기자기한 조형과 극적인 대비, 피아니스틱한 처리를 골고루 보여준 호연이었으나, 전곡의 조형이 부드럽고 매끈한 조형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빠른 속도의 악구를 결코 기교적 과시가 아닌 음악적 타당성을 갖고 몰아치며, 감성의 호소를 나타내기 위해 피아노의 현이 풀릴 정도의 과감한 스포르잔도를 구사하는 트리포노프의 해석은 작곡가의 섬세한 뉘앙스나 여백을 구사하기에 다소 극단적이라는 느낌이었다.
둘째 날인 12일의 첫 곡 역시 스크랴빈이었는데, 다른 소나타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둠의 정서가 강한 소나타 3번에서 트리포노프의 학구적 자세와 겸손함이 나타났다. 예를 들어 스크랴빈 최고의 권위자인 블라디미르 소프로니츠키와 트리포노프를 비교하자면, 건반을 누르는 동시에 배어 나오는 소프로니츠키의 농염한 퇴폐미는 트리포노프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억지로 그려내면 자칫 인공적이 될 수 있는 표현의 한계를 연주자는 특유의 현명함으로 절제하며, 자신의 색깔을 분명한 어조로 강조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해 기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차이콥스키의 사랑스런 소품들에서는 러시아인의 정체성이 생생했다. 트리포노프의 프레이징은 매우 자유롭고 홀가분했다. 선율선의 끊어질 듯 섬세한 이음새도 인상적이었지만, 일견 무덤덤하게 구사하는 페달링과 리듬의 자연스러움은 그가 이 작곡가를 악보 이전에 ‘러시아인의 귀’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다. 오케스트라적 음향의 다양한 색채를 구사해 색다른 즐거움을 준 스트라빈스키-아고스티의 ‘불새 모음곡’을 지나 후반부를 장식한 라흐마니노프의 ‘쇼팽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22는 이틀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호연이었다. 장엄한 주제와 그에 걸맞는 장대한 스물두 개의 변주가 마치 아름다운 다도해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을 연상시키며, 나열된 변주들 간의 통일성과 응집력을 보이는 데 어려움이 있는 이 난곡에서는 조리 있는 연출력이 빛을 발했다. 확신에 찬 타건이 외향적인 힘을 전달해주는 동시에 템포의 극명한 대비 설정, 세심하게 나뉜 페달링을 통한 명도의 조절 등으로 작품의 산만함을 훌륭히 극복해냈다. 무대에서 접하기 힘든 라흐마니노프의 대곡을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신선함을 맛볼 수 있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