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만들어낸 새로운 즐거움, 뮤지컬 ‘프리실라’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4년 7월 1일 12:00 오전

뮤지컬 ‘프리실라’는 원작 영화에 새로운 에피소드와 화려한 의상을 더해 매력적인 작품으로 거듭났다.

뮤지컬 넘버와 함께라면 복합적인 내용의 묘미와 감동을 더욱 생생히 느낄 수 있다


▲ ⓒPaul Coltas


▲ ⓒPaul Coltas

요즘 세계 뮤지컬 공연가에서 가장 인기 높은 두 형식을 꼽으라면 답은 간단하다. 바로 무비컬과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의 신작 중 열에 여덟은 두 형식일 정도로 많은 무대가 등장하고 소비되고 있다. ‘향수’와 ‘복고’가 유행인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세 시간 남짓한 무대에서 낯선 이야기를 새로운 음악으로 소비해야 하는 부담 없이 익숙한 소재의 이야기나 음악을 무대로 다시 즐기는 즐거움이 요즘 관객들에게 크게 어필하는 것도 이유다.

우선 무비컬은 영화와 무대의 결합을 말한다. 이름 자체도 영화라는 의미의 무비(movie)와 뮤지컬(musical)을 합성한 것으로, ‘빌리 엘리엇(Billy Elliot)’ ‘보디가드(The Bodyguard)’ ‘원스(Once)’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막을 올리고 있는 ‘고스트(Ghost)’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주크박스 뮤지컬은 왕년의 인기 음악을 가져다 극적 구성을 덧입혀 작품을 구성하는 방식을 말하다. 아바의 음악으로 만든 ‘맘마미아!(Mamma Mia!)’, 퀸의 음악으로 꾸민 ‘위 윌 록 유(We Will Rock You)’, 프랭키 밸리와 포시즌스의 사연을 들려주는 ‘저지 보이스(Jersey Boys)’ 등이 흥행 사례다.

왕년의 인기 콘텐츠를 가져다가 현대의 뮤지컬 무대에서 다시 가공했다는 면은 엇비슷하지만 각각의 형식이 추구하는 재미는 조금씩 사정이 다르다. 무비컬은 2차원의 평면 위 스크린 영상이었던 원 소스를 무대라는 입체 공간으로 재구성하는 ‘보는’ 즐거움을 추구한다. 반면 주크박스 뮤지컬은 옛 인기 음악을 무대에서 라이브로 다시 들려줌으로써 기존 공연 애호가뿐 아니라 그 음악을 즐겨 들었던 대중음악 팬들도 공연장으로 불러 모을 수 있다는 ‘듣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무비컬은 ‘눈’이 즐거운 형식이고, 주크박스 뮤지컬은 ‘귀’가 행복한 장르가 되기 쉽다. 즉 무비컬에서는 특수 효과를 가미해 영상의 재미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냄으로써 관객에게 익숙하되 새로운 시각적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경우가 많은 반면, 주크박스 뮤지컬에서는 생동감 넘치는 라이브 연주로 왕년의 영광을 대형 스피커를 통해 재연해내는 청각의 즐거움을 주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 ⓒJoan Marcus

▲ ⓒJoan Marcus

화려한 이면 안의 휴머니즘, 영화 ‘프리실라’

예술에서는 발상의 전환, 새로운 사고와 인식이 진보를 이뤄내기 마련이다. 그래서 인기 장르나 형식도 적절히 뒤섞거나 새롭게 충돌시켜 오히려 흥미로운 형식적 실험을 추구하는 작품들이 늘 등장한다. 무비컬의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시에 주크박스의 묘미도 함께 추구하는 부류의 작품들이 바로 그런 사례들이다. 말 그대로 ‘일석이조’요, ‘꿩 먹고 알도 먹는’ 복합적인 흥행 전략이 돋보이는 극적 구성이라 부를 만하다.


▲ ⓒJoan Marcus

올여름 우리나라에서 막을 올릴 뮤지컬 ‘프리실라, 사막의 여왕(Priscilla, Queen of The Desert)’이 전형적인 사례다. 이 뮤지컬의 원작은 다름 아닌 스크린용 영화다. 바로 1994년 발표된 호주 영화 ‘사막의 여왕 프리실라의 모험(The Adventures of Priscilla, Queen of the Desert)’이다. 등장하는 배우들의 면면도 화제였는데, 주인공인 틱은 영화 ‘매트릭스’에서 스미스 요원으로 나왔던 호주 태생의 연기파 배우 휴고 위빙이, 그와 함께 사막 횡단을 감행하는 친구인 아담 역으로는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이었던 가이 피어스가 등장한다. 영화는 시드니에서 앨리스 스프링스까지 이어지는 사막 횡단 버스 여행 속에서 주인공인 틱이 친구들과 함께 겪게 되는 일련의 모험과 여정이 주요한 줄거리다. 로드 무비 형식의 이야기는 틱의 비밀을 하나씩 드러내며 흥미를 더해간다. 드래그 퀸(여장을 즐기는 남성 동성애자 혹은 여장 남자)인 그에겐 사실 부인이 있었고, 몇 년 동안이나 만나지 못했던 여덟 살짜리 아들 벤저민이 존재한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그것이다. 어린 아들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과 직업을 어떻게 설명할지가 두려웠던 주인공은 고민에 빠지지만, 극의 클라이맥스에서 의외로 아무 편견 없이 가족이자 아버지로 받아들여주는 아들과의 감동적인 대면은 이 영화 최고의 명장면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은 드래그 퀸의 이색 퍼포먼스로 포장된 화려한 이미지들이지만, 사실 진짜 재미는 성적 소수자에 대한 별난 묘사나 편견보다 보편적인 가족애 그리고 핏줄 찾기라는 휴머니즘의 감동이 따뜻하게 전개되며 관객들을 눈물짓게 만든다.


▲ ⓒJoan Marcus

영화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세계영화계에 알린 기념비적 성과를 수립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로 일컬어지는 성적 소수자들은 사실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이며, 그들의 삶이나 사연에 대한 관심을 특정한 성적 성향의 사람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확장시킨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손꼽히게 됐다. 선풍적인 흥행은 언론이나 평단으로부터도 긍정적인 반향을 이끌어냈고, 결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의상디자인상을 거머쥐는 성과를 이뤄낸다.

 

보는 재미에 듣는 재미를 더해 전 세계를 사로잡은 뮤지컬

영화 ‘사막의 여왕, 프리실라의 모험’을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프리실라, 사막의 여왕’은 영화가 제작된 지 12년 만인 2006년에 처음 등장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예전의 인기 한국 영화를 소재로 다룬 창작 뮤지컬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는 것과 빗대어 이해할 만하다. 특히 뮤지컬은 영화를 만들었던 호주 제작진이 직접 참여해 작품의 일관된 메시지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나 에피소드를 더해 뮤지컬만의 매력을 더하는 진일보한 작품으로 진화됐다. 익숙하면서도 재미있고 새로워야 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SMU)의 흥행 공식이 적절히 반영된 콘텐츠의 성공적인 진화를 이뤄냈다고 평가할 만하다.

오히려 무대라서 더 재미있어진 부분도 있다. 드래그 퀸 퍼포먼스 특유의 화려함이 그렇다. 영화에서도 큰 평가를 받았던 의상은 무대에서 더욱 흥미롭게 재연된다. 여기에 360도를 LED로 치장한 버스 세트, 갖가지 화려한 비주얼 특수 효과 등이 추가되면서 무대만의 재미는 한층 배가됐다. 일반적으로 드래그 퀸 퍼포먼스에서는 배우가 직접 노래를 부르기보다 립싱크를 활용한다는 점에 착안, 무대 위의 여장남자들도 우스꽝스레 과장되거나 특유의 쾌활한 분위기를 담은 무대 매너를 선보이며 한바탕 축제 같은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원 제목에서도 등장하는 퀸(queen)이라는 용어는 본래의 ‘여왕’이라는 의미보다 여장 남성 동성애자 퍼포머를 일컫는 드래그 퀸에서 파생된 것이다. 무대는 이러한 의미에 어울리게 이색적이고 화려한 모양새를 마음껏 뽐내는 듯한 다양한 이미지를 선보인다.


▲ ⓒJoan Marcus

여기에 백미를 이루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뮤지컬로 각색되어지면서 프리실라는 새로운 음악을 만드는 대신 잘 알려진 왕년의 대중음악들을 극 안에 녹여 담아내는 주크박스 뮤지컬의 컴필레이션 쇼 같은 특성을 강조하게 됐다. 덕분에 무대에서는 티나 터너의 ‘What’s Love Got To Do With It’, 펫 샵 보이스의 ‘Go West’, 바나나라마의 ‘Venus’, 주디스 콜린스의 ‘Both Sides Now’, 신디 로퍼의 ‘Girls Just Wanna Have Fun’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가수들에 의해 리메이크 됐던 ‘I Will Survive’ 등 주옥같은 명곡들을 감상할 수 있다. 그것도 그냥 서서 노래만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온갖 형형색색의 의상과 무대 효과가 더해져 장관을 이뤄낸다. 예를 들어 나팔바지의 깃을 잔뜩 벌려 패션쇼에서나 봄 직한 재미난 의상을 입은 출연진이 흥겹게 어깨춤을 추며 등장하는 등 무대는 한 편의 버라이어티 쇼를 연상케 하며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발하고 이색적인 장식들이 비주얼 효과에 덧붙여 재연되다 보니 마치 브라질의 길거리 퍼레이드 축제에라도 온 것처럼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가 객석으로 전달된다.

국경과 언어, 도시와 지방 등 환경과 조건을 초월한 전 지구적 흥행에는 물론 이 작품이 지니고 있는 보편타당한 가치관과 인간애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누린 적이 있는 비슷한 소재의 작품들처럼, 처음에는 이색적인 배경의 성 정체성을 지닌 등장인물이 신기하다가 마침내 극의 마지막에서는 그 이채로움 이면의 인간적인 매력을 발견하고 감동받는 데 진짜 묘미가 담겨 있는 셈이다. 물론 대형 무대에 다양한 볼거리, 친숙하지만 다시 새롭게 편곡된 유명 원곡들의 히트 음악들이 가져다주는 복합적인 흥밋거리도 이런 묘미와 감동을 상승시켜주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굳이 말하자면, 세 시간 공연을 통해 입장권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은 전천후 대중음악으로 꾸며진 종합 선물세트를 선물 받은 느낌이다.

실제로 해외 공연장을 찾아보면, 어깨를 들썩이며 환호하고 즐기는 다양한 연령의 관객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영국에서는 아예 파티 차림을 하고 ‘즐기러’ 무대를 찾는 관객들도 많다. 덕분에 요즘 젊은 세대들의 표현을 빌리면 ‘불금’에 더 표를 구하기 힘든 작품이라는 재미난 평가도 받게 됐다. 우리 관객들에겐 어떻게 다가갈지 올여름 극장가에서의 만남이 사뭇 기대되고 기다려진다.


▲ ⓒJoan Marcus

▲ ⓒPeter Knutson

▲ ⓒLondon Production
Back to site top
Transla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