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활과 지휘봉을 함께 들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6년 9월 1일 12:00 오전

넓은 스펙트럼과 깊은 감수성, 통영에서 만나는 그만의 음악세계


▲ ⓒMarco Borggreve

지난 6월 건강상의 이유로 내한을 취소했던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Leonidas Kavakos). 그가 다시 한국을 찾는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오는 9월 9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TIMF앙상블과 함께 공연을 연다. 특히 이번 공연에서 카바코스는 연주자뿐 아니라 지휘자로서 무대에 오른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3번, 하이든 교향곡 83번 그리고 베토벤 교향곡 4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그리스 태생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는 1985년 시벨리우스 콩쿠르, 1988년 파가니니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해왔고, 2016/2017 시즌에는 뉴욕 필하모닉의 상주 아티스트로서 활동할 예정이다. 발매하는 음반들도 좋은 평을 얻었다. 그는 1991년 발매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음반으로 그라모폰상을 수상했고, 멘델스존 협주곡과 피아노 3중주를 담은 음반으로 2009년 에코 클래식상을 수상했다. 카바코스는 지휘자로서 활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로저 노링턴의 후임으로 잘츠부르크 카메라타의 음악감독을 역임했고, 객원 지휘자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라 스칼라 필하모닉·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등을 이끌어왔다.

지휘봉과 활을 번갈아 잡으며 스펙트럼을 확산해나가는 카바코스. 전 세계를 다니며 자신만의 감수성을 선보이고 있는 그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동안 한국에서 솔리스트로서의 모습만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TIMF앙상블의 지휘자로서 무대에 오른다.

10여 년 전부터 여러 번 한국 무대를 찾았다. 그때마다 클래식 음악을 많이 알고 또 사랑하는 관객을 만날 수 있었다. 클래식 음악에 대한 한국 관객들의 열정은 정말 대단하다.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준 한국의 청중에게 이번 공연을 선물하고 싶다. 연주자이자 지휘자로서 아름다운 음악과 작곡가의 영혼을 선사하고자 한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는 지휘자로서 작품 본연의 색채를 드러내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작곡가의 의도와 음악적 구조를 아는 것이 바로 작품과 소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TIMF앙상블과 함께 지금까지와는 다른 완전히 새로운 음악을 연주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을 통해 청중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기쁨! 공연에서 선보일 세 작품에는 모두 굉장한 생기와 발랄함이 담겨 있다. 심지어 매우 느린 악장이 있는 베토벤 교향곡 4번조차 그렇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과 베토벤의 작품은 완벽히 고전적인 형태와 흐름을 갖고 있다. 두 작품 사이에 연주하는 하이든 교향곡 83번은 감동을 배가하는 역할을 한다. 이 흐름에 따라 연주를 감상하면 마치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포크 음악을 연주했던 할아버지와 엄격한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럽게 음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가족을 통해 받은 음악적 유산은 무엇인가?

우리 집안에는 클래식 음악과 포크 음악의 조화라는 전통이 흐르고 있다. 할아버지가 하시는 즉흥 연주를 보며 음악에 대한 직감을 배울 수 있었다. 또 나의 위대한 스승이기도 했던 아버지를 통해 연주자이기 이전 좋은 사람이 되는 것에 대해 늘 생각할 수 있었다. 이는 내가 무엇을 연주하고 있는지, 사람들에게 어떠한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지 알아가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두 사람은 내가 음악의 기초를 닦아나가는 데 지대한 도움을 주었다.

연주자로 성장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으로 인디애나 음대의 스승 요세프 긴골트를 꼽았다. 그렇다면 지휘자로서의 롤 모델은 누구인가?

피아니스트 페렌츠 라도시(Ferenc Rados)라고 말하고 싶다. 라도시는 지금까지도 나에게 영감을 준다. 지휘뿐 아니라 연주를 할 때에도 그렇다. 라도시 외에도 나는 지금껏 수많은 위대한 지휘자와 함께 연주를 하는 특권을 누려왔다. 그런 행복한 시간을 선사해준 모든 지휘자에게 감사한다.

지난 4월 고난도 기교와 깊은 감성이 돋보이는 음반 ‘비르투오소(Decca)’를 발매했다.

레퍼토리 구성에 신경을 썼다. 파가니니부터 스트라빈스키와 차이콥스키까지, 바이올린 음악에 많은 영향을 미친 연주자와 작곡가들의 작품을 최대한 다양하게 담았다. 바이올린의 한계를 보여주는 작품이자 지금껏 거의 녹음된 적이 없는 곡을 선택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시대적 특성과 유럽 문화의 다양한 빛깔을 나타내는 레퍼토리를 한 장의 음반에 녹여냈다는 것에 매우 만족한다.

당신의 스트라디바리우스가 궁금하다. 1692년산 팰머스를 거쳐 지금은 1724년산 애버게이브니를 사용한다.

모든 악기는 저마다의 고유한 음색을 갖고 있는데, 이는 연주자가 작품을 해석하는 데 많은 영감을 준다. 내가 사용해온 팰머스와 애버게이브니 모두 그러하다. 두 악기 모두 음악적인 상상력을 펼쳐가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지금 사용하는 애버게이브니는 강력한 힘과 엄청나게 다채로운 빛깔을 지닌 악기다. 이 악기는 나에게 감탄스러울 만큼 놀라운 자유를 선사한다.

얼마 전부터 바이올린 제작을 후원하고 그 악기를 종종 연주회에서 사용하고 있다.

스트라디바리가 환갑이 넘었을 때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의 악기가 조금 더 성숙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스트라디바리의 악기조차 성숙해질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모던 악기도 시간이 지나고 점점 더 발전한다면 그 진가를 발휘할 것이다. 모던 악기가 지닌 잠재력은 정말 대단하다. 그 악기들이 표현해내는 놀라운 수준의 소리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다.

앞으로 도전하고픈 레퍼토리 혹은 새로운 영역이 있는가?

교육, 지휘 등 지금껏 도전해온 많은 분야의 일들을 계속해나갈 예정이다. 현재 매년 정기적으로 아테네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있다. 이 외에도 나에게 주어지는 많은 일을 해보고 싶다. 우리는 오랜 기간 계획을 세워 어떠한 일을 해나가는 세계 속에 있기도 하지만, 즉흥적으로 무엇인가를 하는 삶 속에 살고 있기도 하다. 도전해보고 싶은 새로운 일들은 지금껏 종종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앞으로도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 도전할 생각이다.

사진 통영국제음악재단

음반으로 만나는 레오니다스 카바코스

‘비르투오소’
Decca 4789377 (DDD)

사라사테와 파가니니 등 바이올린의 불꽃 튀는 기교를 즐길 수 있는 곡들로 구성된 이 음반에서 카바코스는 뛰어난 기교는 물론, 그의 장기인 감성적 표현과 즉흥적 성격을 두루 선보인다. 스트라빈스키 ‘페트루슈카’에선 강렬한 리듬의 악센트를 강조하고 사라사테 ‘바스크 카프리스’에선 절묘한 강약 조절을 통해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타레가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이나 파가니니 ‘신이여 왕을 구하소서’ 등 고난도 작품에서도 주선율의 매력을 한껏 살려낸 편안한 연주는 듣는 이의 귀를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음반 마지막 트랙을 장식하는 ‘유모레스크’의 감각적이고 달콤한 연주야말로 카바코스의 진정한 매력을 잘 드러낸다. 최은규(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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