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퍼포먼스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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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3월 5일 5:03 오후

ⓒTakahiko Iimura

 

 

 

 

 

 

 

퍼포먼스의 역사와 의미, 그리고 방향성에 대한 논의

‘퍼포먼스’는 흔히 음악·미술·무용 등 공연예술 분야에서 관중을 상대로 한 표현 활동을 나타낸다. 이 글의 저자 가브리엘레 클라인은 예술로서의 퍼포먼스가 어떤 변화를 거쳐 우리 일상으로 들어왔는지,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무엇인지를 세밀한 시각으로 들여다본다. 퍼포먼스란 무엇인가? 시대의 흐름과 함께 퍼포먼스가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2016년 국제적으로 중요한 이벤트였던 미국 대통령 선거의 후보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경쟁은 모든 미디어의 주목을 끌었다. 두 후보자의 설전은 뉴욕·미주리·라스베가스의 여러 대학 강의실에서 진행되었으며, 현장에는 진행자와 관중이 함께 자리했다. 또한, 수백만의 시청자들이 TV를 통해 이 과정을 지켜보았으며, 이 중 대다수가 후보들의 신뢰성을 검증하기 위한 여론조사에 참여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TV 논평·신문기사·블로그·트위터 등 여러 주변 요소(paratext)에서 과잉현상이 일어났다. 결과적으로 이 대선의 승자는 상대방에 의해서가 아닌, 이 과정을 지켜본 시청자, 즉 관중에 의해 결정되었다. 주장의 정당성, 사실의 개연성, 진실성은 거의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그들의 행동에서 비롯된 ‘열연’이 더 주목을 받았다. 이들의 ‘퍼포먼스’는 근거 있는 계몽적 담론보다 시청자의 감정에 호소했고, 결국 후보자에 대한 시청자의 ‘정서’가 두 후보에 대한 평가에 결정적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 방송 토론은 ‘포스트 트루스(Post-truth, 탈진실, 진실보다 감정이 대중에게 더 큰 호소력을 행사하는 것)’ 정치 세대 출현의 비극적 징후를 드러냈을 뿐 아니라 의사 결정을 위한 자료나 진실의 필요성에 관해 의구심을 가지게 했고, 궁극적으로 차기 대통령은 결국 표면적 수행성을 기준으로 결정되었다. 이것은 분명히 연극적 과장성과 미디어가 창조한 현실, 그리고 정치적 행동이 뒤섞인 ‘상연’이었다. 전례를 따른 전형적인 정치적 행사들은 사실상 그들의 퍼포먼스에 의해 통상적인 범위를 완전히 벗어났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단지 정치적 연출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퍼포먼스가 실패와 성공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일회적 특성을 지닌 방송토론은 유능한 발표 기량과 침착성을 요구하는데, 이는 퍼포먼스가 가진 특성을 보여주기에 적합했다. 방송토론은 관련 영역에서(이 경우, 정치 분야) 각각의 퍼포먼스를 합법화할 수 있는 체제와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관객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 증명은 제스처·표정·자세와 같은 신체적인 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일상적 문화에서의 퍼포먼스

문화 인류학자인 빅터 터너(Victor Turner)에 따르면, 퍼포먼스는 실제적인 행위 속에서 인식되는 문화적 경험으로 간주할 수 있다. 옷을 입는 방식이나 명절을 보내는 방식, 시위에 참여하는 방법, 성적 표현의 방식 등 퍼포먼스는 이미 우리의 일상적 삶에 깊이 내재된 필수 요소다. 한편, 퍼포먼스는 현대사회에서 미디어 또는 연출된 ‘수행성’을 반영한다. 스포츠·법원 청문회·정치협상·정당회의·주주 총회 등 다양한 대중 행사가 이에 해당하며, 공연예술의 한 장르로서 분류되기도 한다. 정치인·경영인·검사·변호사는 단지 ‘행동’할 뿐만 아니라 ‘성과’에 견주어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평가한다는 점에서 미디어의 스타나 대중매체 속 주인공과 흡사하다. 퍼포먼스는 결과·수익·성과 등의 의미 또한 내포하고 있는데, 이 개념은 광고 분야에서도 드러난다. 광고는 상품에 대한 기능과 특성, 그리고 실질적 능력을 ‘적극적인 퍼포먼스’ 메시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암묵적으로 소개한다.

 


예술로서의 퍼포먼스

ⓒJean-Louis Fernandez

 

 

 

 

 

 

 

 

 

 

공연예술로의 퍼포먼스는 1960년대 이후부터 사회적 공간에서 이목을 끌며 무대 상연이 가능한 예술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때 퍼포먼스 개념은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한 경계를 형성하게 되는데, 대중문화와 예술, 작업과정과 예술작품, 창작자와 창작품, 역할과 배우, 예술가와 관객, 그리고 여러 다양한 장르들 사이에서 모호한 경계를 넘나든다. 연극 무대·오페라 극장· 미술관 등 기존의 예술 공간을 떠나, 예술 자체의 공간과 위치를 탐색하고 일상생활에서 그 의미를 모색한다. 이미 1920년대의 ‘다다이즘’이 퍼포먼스 예술의 초기 형태로 분류될 수 있다 하더라도, 서양 예술사에서는 196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퍼포먼스 아트’ ‘행위예술’과 같은 상징적인 예술 형식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때의 새로운 구조적 패러다임은 ‘언어’인데 음성·표정·제스처 등 몸짓 언어가 관객으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다.

 


1960년대, 퍼포먼스의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다

퍼포먼스의 형태를 발전시킨 백남준

 

 

 

 

 

 

 

 

 

 

 

 

 

 

 

 

 

 

 

 

 

앨런 캐프로, 볼프 포스텔, 요셉 보이스, 오노 요코, 백남준 등 조형 예술가들과 오스트리아 빈의 행위예술가들은 예술의 시장화에 대항하여 해프닝, 플럭서스, 또는 신체 예술 등의 전위 예술 운동에 앞장서 퍼포먼스의 형태를 발전시켰다. 이러한 행위예술과 더불어 내구성·일시성·동시성 등 ‘시간적 요소’와 현장에 존재하는 예술가의 ‘신체적 참여’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퍼포먼스의 등장은 시각 예술의 위치전환을 일으키게 되는데, 예를 들면, 작품의 ‘전시’가 설치미술과 같은 ‘과정 중심의 예술 행위’가 되고, 작업실·전시장·박물관은 극장과 같은 상연의 공간이 되었다. 또한, 전시를 보러 온 방문객은 관객으로 전환했고 예술작품의 창작 과정과 그 전체적 이미지는 하나의 공연 이벤트가 되었다. 특히 1960년대에는 페미니스트 퍼포먼스가 성행했는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발리 엑스포트, 오노 요코 등 여러 여성 예술가들이 자신의 신체를 공연의 수단으로 사용하며, 정치적 작품 연출에 중요한 방향성을 제시했다.

페터 슈타인과 페터 차덱 등 1960년대 현대 독일의 연출가들 역시 실험적인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독일연극학자 한스 티스 레만이 그의 책에서 모방적 표현에 회의감을 나타냈고, 그로 인해 부르주아의 구상주의적 연극은 ‘탈 드라마극’으로 모습을 달리했다. 다시 말해 반복적으로 재현 가능한 문학 작품 중심의 연극에서 벗어나, 실제 연기자와 관객 사이에서 일어나는 과정 중심의 ‘상황 극장’으로 전환되었다.

 


1990년대 변화하는 퍼포먼스

‘쉬쉬팝’의 퍼포먼스는 관객의 참여를 중요한 원동력으로 삼는다 ⓒSheShePop

 

 

 

 

 

 

 

 

 

1990년 이래 퍼포먼스 예술에서는 다양한 공동 작업이 눈에 띈다. 연기자의 고유한 일대기를 내용으로 한 자전적 퍼포먼스를 전달하는 갑 스쿼드(Gob Squad),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 쉬쉬팝(SheShePop), 그리고 관객의 참여를 중심으로 공연을 이끌어가는 리그나(Ligna)가 대표적이다. 또한 제롬 벨, 자비에르 르 로아, 보리스 샤마츠, 토마스 레멘과 같은 안무가들에 의해 대표되는 유럽의 개념적 춤(Konzepttanz)이 표현에 미학적 비평을 더하면서 퍼포먼스는 이전에 공산 체제였던 동유럽 국가에서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냉전 체제의 종말 이후 중국·쿠바와 같은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퍼포먼스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발전하게 되었다.

탈 드라마극으로써 퍼포먼스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다른 접근을 시도한다. 특정 공간을 공연 그 자체인 ‘수행적 실천’으로 간주하고, 새내기 공연 예술작품이 작업의 시작과 동시에 이미 예술로 정의되고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위치를 점유한다. 이는 곧 중앙 중심의 전통적 부르주아 무대와 극장의 관습을 조롱했고, 연기자와 관객, 원문과 해석, 자신과 역할에 대한 관계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원본의 재연에서 벗어나 현장의 관객을 극에 포함하여 일상이 극의 문맥에 반영되고, 주제화될 수 있도록 했다. 극장은 더 이상 부르주아를 위한 곳이 아닌, 사실에 따른 직접적·즉각적 경험과 진실성이 표현되는 ‘발화의 장’인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가 제안한 것처럼, 관객은 이제 수동적인 소비자로의 고전적 역할을 잃게 되며,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퍼포먼스의 일부로 편입되어 참여하고 작품을 감상, 해석하는 ‘해방된 관람객’이 되는 것이다.

 


공연 예술의 정치성

현대 연극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리미니 프로토콜’의 도시 연작 프로젝트 ⓒSandra Then

 

 

 

 

 

 

 

 

 

 

 

 

 

공동 작업, 배우와 관객의 상호작용, 전통극장 거부 등 예술의 상업화 현상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는 사색적·반성적 예술형태로, 현대예술의 기본 조건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공연작품의 맥락에 적용한다. 공연예술 이론가 바즈 커쇼와 페기 펠란은 퍼포먼스를 ‘정치적인 예술’로 분류했는데, 퍼포먼스가 자유 이념을 설명하기보다는, 자유와 해방이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펠란에 따르면, 퍼포먼스는 객체화에 대한 저항을 표현하고, 경제적으로 비실용적인 것이기 때문에 재생산의 과정에 통합될 수 없는 ‘순간적인’ 예술로 정의된다. 이러한 사회 비판적 잠재성은 푸시 라이엇, 피멘과 같은 정치적 운동가들에게 유용한 표현수단이 된다.

한편, 이렇게 일시적이고 찰나에 집중된 현대사회에서 퍼포먼스가 그 자체로 정치의 구성 수단이 되며, 관객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통제 불가능한 강력한 미디어의 출현과 배포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면, 공연 예술은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

 


21세기의 퍼포먼스가 가야 할 길

ⓒSandra Then

 

 

 

 

 

 

 

 

 

 

 

 

21세기 퍼포먼스는 사회적 질서, 문화적 관습과 상징, 소외된 자에 대한 언급과 억압한 자에 대한 비판 등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제를 중심으로 사회의 연극성과 내면성에 직면하고 있다. 하지만 예술의 자율성이 상실되고 상업화되는 상황 속에서 예술로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따라서 공연 예술은 해학과 진지함, 그리고 가상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경계를 탐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어떠한 대안적 매체로서 와해된 행동과 혼란스러운 질서들을 자세히 보여주고 표현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신체와 존재, 기운과 진실성, 그리고 사건과 이벤트는 성공적인 자기 상연의 기준이 되었고, 신자유주의의 법칙은 항상 새로운 것의 지속적인 생산을 요구한다. 다만, 퍼포먼스는 이러한 사회현상에 걸맞은 재현성을 갖고 있지 않고, 전위예술로써 고유한 원리를 탐구하고 경험했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한 비판적, 미학적 상대자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퍼포먼스는 유동성, 순간성, 그리고 영구적 자기 재발견과 같은 국제 사회의 새로운 가치와 함께 걸어가야 한다. 따라서 무용과 같은 공연예술이 현대의 일시적 예술 형태로써 비판적인 잠재력을 발휘하고 예술적 미래상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프랑스 철학자 기 드보르가 제시한 ‘장관을 이루는 사회’로부터 벗어나, 이와 구별되는 미학적 전략을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규정에 대한 거부는 정체·지루함·비생산성의 연출 혹은 부재 등의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다. 이것은 앞서 말했듯 예술적 퍼포먼스가 특정한 사회적·예술적 맥락과 연관되었을 때, 얼마나 사회 비판적이고 저항적이며, 예술적으로 혁신적인지를 보여준다. 즉, 퍼포먼스는 해석적 맥락과 각각의 특정 상황에서 비로소 행위예술로서 인정받게 된다.

 

글 가브리엘레 클라인(Dr. Gabriele Klein)
사회학자이자 문화학자로, 함부르크 대학교 운동과학 및 MA 퍼포먼스 스터디과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 김수진
독일 함부르크에서 활동하는 프리랜서 무용수이자 안무가이다. 현재 함부르크 대학교에서 가브리엘레 클라인 교수의 지도아래 ‘문화, 미디어 및 사회’ 연구부의 박사 과정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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