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카르멘’의 테너 이용훈

돈 호세 역할로 관객의 환호를 끌어낸 그만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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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8년 12월 3일 9:00 오전

GAEKSUK EYE from NEWYORK _글 김동민(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음악감독)

오페라에는 유독 비극이 많다. 베르디 ‘일 트로바토레’에서는 만리코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출생의 비밀이 드러나고, 푸치니 ‘나비부인’의 초초산은 어린 핏줄을 남겨 둔 채 목숨을 끊는다. 베르디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와 푸치니 ‘라 보엠’의 미미도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지만, 죽음으로 세상과 이별을 고한다. 이들의 죽음이 자연스럽게 찾아온 운명과도 같았다면, 카르멘의 그것은 극한으로 치달은 분노로 발현된 것이었다. 파란만장한 삶으로 점철된 카르멘만큼이나 돈 호세의 인생도 그러했다. 우연히 알게 된 집시 여인으로 인해 롤러코스터처럼 요동치던 그는 끝까지 순정을 지킨 미카엘라의 모습과 중첩되어 극적으로 대비된다.

지난 11월 15일 공연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카르멘’의 이번 프로덕션에서는 돈 호세 역에 프랑스 출신의 대표 가수 로베르토 알라냐와 테너 이용훈이 더블 캐스팅되었다. 음색·음악성·발음·외모 등 다양한 중요 요소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오페라 무대에 서는 가수에게 가장 중요한 조건은 소리이다. 청중에게 명료하게 전해지지 않는 소리라면 극장장과 연출가는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최근 미카엘라 역으로 유럽 극장에서 주목을 받는 관쿤 유의 경우, 대표 아리아 ‘나는 이제 두렵지 않아’에서 고음부가 아닌 부분을 노래할 때 답답함이 느껴졌다. 에스카밀로 역할의 카일 케텔슨은 전반적으로 단단하고 안정감 있는 소리를 가진 인상적인 가수였으나, 종종 오케스트라보다 앞서 나가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오페라 ‘나비부인’의 핀커톤과 마찬가지로 순정을 바친 여인을 버린 변절자 돈 호세에게는 대개 커튼콜의 박수가 열광적이지 않다. 그러나 이날 공연이 끝난 후 이용훈이 무대로 등장할 때는 큰 함성이 쏟아졌다. 이용훈은 마치 오늘을 마지막으로 무대를 떠나는 사람처럼 뜨겁게 노래했고, 열정으로 연기했다. 11월 2일 자 ‘뉴욕타임스’지는 그의 목소리를 가리켜 메트 오페라 하우스를 울리기 충분했다고 평가했다. 메트 오페라가 ‘열정 있는 목소리’라고 칭송하며 그와 지속해서 계약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날 뉴욕에는 갑작스러운 눈 폭풍이 몰아쳤다. 강풍까지 동반되어 외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늦은 오후부터는 맨해튼 도심과 외곽을 연결하는 버스터미널이 폐쇄되었고, 눈 속에 갇혀 택시비만 250달러나 나온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15분 늦게 공연이 시작되었음에도 꽤 많은 좌석이 비어있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막 미카엘라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천으로 된 무대 장치가 양쪽으로 서서히 올라가며 장면이 전환되는 순간, 왼쪽에 걸린 대형 배너가 찢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결국 공연은 중단되었고, 곧 무대감독이 나와 관객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응급조치를 거쳐 다시 공연을 재개하는 일도 일어났다. 다행히 무대에 선 배역들과 오케스트라는 객석에서 느껴졌던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았고, 그 사이 관객들은 서서히 차올랐다. 올해 10월 말부터 11월 15일까지 열렸던 다섯 번의 공연에서의 돈 호세 역할은 모두 이용훈이 맡았고, 2019년 1월에 재개되는 나머지 9회 공연은 로베르토 알라냐가 이어받는다. 이 시기에 이용훈은 오페라 ‘아이다’의 라다메스 역할로 다시 등장한다. 메트 오페라 무대에 반복적으로 초청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메트 오페라 데뷔 8년을 맞이하는 그가 오늘도 호평을 이어가는 이유는 엄청난 수로 쏟아져 나오는 검증된 신인들의 화제성을 뛰어넘는 그만의 무언가가 있기 때문. 당분간 메트 오페라가 그를 놓아주는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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