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빈악파’ vs ‘말하는 노래’

실내악과 함께 새롭게 피어나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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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7월 1일 9:00 오전

THEME RECORD

디오테마 현악 4중주단·무지크파브리크가 전하는 악기와 목소리의 앙상블

 

베토벤 ‘합창’ 교향곡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기악곡 양식에 발을 들인 이후, 베토벤의 전례에 따라 목소리가 교향곡에 사용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노래 반주에 여러 악기들이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다 20세기에는 목소리가 실내악에 편성되는 경향을 보였는데, 이들은 노래와 그 반주의 구성이라기보다는 다른 악기와 동등한 하나의 파트를 맡은 앙상블 구성원에 가까웠다.

 

신빈악파, 그 시작점을 다시 돌아보다

필자가 디오티마 현악 4중주단의 연주를 처음 들은 것은 2008년 한 음악대학이 기획한 연주회에서였다. 그들은 20세기의 가장 급진적인 작곡가들이었던 크세나키스와 라헨만 등의 작품을 연주하여 청중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색다른 경험의 기회를 주었다. 이들은 다음 해에도 초청을 받아 뒤사팽과 하비 등의 작품을 연주했던 것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아있다. 그런데 이 단체가 나이브(Naïve)에서 처음으로 녹음한 작곡가는 19세기 초 영국계 프랑스 작곡가인 조지 온슬로우였다. 디오티마는 이 음반으로 출사표를 던지며 보다 폭넓게 인지도를 쌓으려고 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곧 네오스(Neos)에서 슈네벨의 작품을 녹음하여 본색을 드러냈으며, 다시 나이브로 돌아와 20세기 이후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녹음하고 있다. 지금은 정상급 현대음악 4중주단으로서 명성을 얻고 있다.

그들이 내놓은 ‘신빈악파’라는 주제는 그들의 다른 앨범들과 비교하면 오래되고 또한 식상해 보이기도 하지만, 디오티마는 여기에 인성(人聲)이 더해진 4중주곡이라는 신선한 제안을 더했다. 무조음악을 암시하는 작품으로 유명한 쇤베르크 현악 4중주 2번은 물론, 베베른 사후에 초연된 ‘고통은 언제나 위쪽을 바라본다’, 그리고 베르크 ‘서정 모음곡’이 그 주인공이다. ‘서정 모음곡’은 순수 기악작품이지만, 베르크가 마지막 6악장에 보들레르의 시 ‘심연에서 부르짖다’를 주석으로 달아놓은 악보가 1977년에 발견됐다. 베르크가 자신의 정부인 한나 푹스 로베틴(Hanna Fuchs-Robettin)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비밀리에 만든 악보였다. 이러한 프로그램이라면 충분히 흥미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그런데 상징적이고 서정적인 주제를 가진 이 작품들이, 이지적이고 차가우며 건조한 해석을 들려주었던 디오티마의 스타일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디오티마가 연주한 쇤베르크 현악 4중주 2번(1907~1908)을 듣는 순간, 두께를 알 수 없는 얼음장 위에 서 있는, 차갑고도 불안한 기분이 드는 것은 필자뿐만이 아닐 것이다. 악기간의 경쟁을 통해 낭만적인 긴장과 풍부한 음향을 들려준 뉴 비엔나 현악 4중주단의 연주를 들었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들의 지향점은 현대음악을 자주 연주했던 대선배인 라살 현악 4중주단으로 향해있다. 서로의 어울림으로 하모니를 만들기보다는, 각 악기가 자신의 소리를 냄으로써 구조적인 뼈대를 드러내는 라살 현악 4중주단의 연주는 분명 이 작품의 고전적인 해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디오티마는 라살보다 한 발 더 나아갔다. 자기 위주를 넘어 오히려 서로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타일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음악을 바라보는 지금의 관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어떠한 서사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기조로 모두를 맞추기보다는, 악보가 요구하는 소리들이 공존함으로써 음악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져가는 자율음악적 관점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소프라노 상드린 피오(그녀는 바로크 음악 분야에서 더욱 유명하다)는 라살 현악 4중주단과 함께 한 마가렛 프라이스나 뉴 비엔나 현악 4중주단과 함께 한 이블린 리어와 달리, 악기와 완전히 동등한 위치에서 융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역시 오늘날 목소리를 바라보는 현대음악의 관점을 대변한다.

이어지는 베베른의 ‘여섯 개의 바가텔’(1911~1913)도 마찬가지다(이 음반에서 성악이 없는 유일한 곡이다). 선율의 단편을 이어 붙여 선율을 구성하는 알반 베르크 현악 4중주단의 연주가 더욱 이해하기 쉽겠지만, 디오티마는 점 혹은 선들의 점멸로 해석한 에머슨 현악 4중주단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공중으로 흐트러트렸다. 1분 조금 넘는 짧은 작품인 ‘고통은 언제나 위쪽을 바라본다’(1913)에서는 이 작품이 갖고 있는 응축된 슬픔을 에머슨보다 강렬하게 보여준다. 콘트랄토 마리 니콜 르미외의 극적인 표현도 큰 공이다. 음반에 공간이 더 남아있기에 이 곡이 속한 ‘세 개의 작품’(1913)을 모두 수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지막 곡인 베르크의 ‘서정 모음곡’(1925~1926)은 남다른 응집력을 보여준다. ‘서정’이라는 제목이 그들의 해석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고, 알반 베르크 현악 4중주단의 절대적인 해석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디오티마는 여전히 건조한 음색으로 이지적인 모습을 유지한다. 반면에 르미외의 포근한 음색은 디오티마와 균열을 일으키는데, 그렇기에 더욱 한나를 향한 베르크의 애타는 속마음으로 들린다.

 

말하는 노래, 지금의 모습을 둘러보다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현대 음악 단체 중 하나인 무지크파브리크가 베르고(Wergo)에서 내놓은 에디션 시리즈는 현대음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오늘날의 거장들로서, 실연은 커녕 음반으로도 듣기 어려운 곡을 대거 수록했기 때문이다. 이 지면에서 소개할 음반은 그 첫 시리즈로, 영국의 현대 작곡가 조너선 하비를 비롯하여 대가의 반열에 오른 오스트리아의 베아트 푸러,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신선한 충격을 주는 그리스 출신의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아페르기스, 그리고 한국 작곡가 진은숙이 포함되어있다.

‘말하는 노래’라는 특이한 타이틀은 하비의 ‘말하는 노래’(2006~2007)에서 가져온 것으로, 한 음정에 머물지 않고 바로 다른 음으로 미끄러지듯 이탈하는 쇤베르크 ‘말하는 소리(Sprechstimme)’를 독주 악기인 오보에와 앙상블이 연주한다. 화려한 음색과 극적인 진행으로 좋은 효과를 이끌어내는 하비의 특징이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으며, 또한 독주와 앙상블의 밸런스가 뛰어난 녹음도 매우 만족스럽다.

푸러의 ‘레치타티보’(2004~2005)는 현대음악에 대한 탁월한 해석을 보여 온 잘로메 캄머가 목소리를 담당했다. 캄머의 목소리는 노래라기보다는 낭독에 가깝다. 빠르고 급하게 말하면서 기악적인 음향 효과를 담당하는 목소리로, 이 곡은 이 음반의 타이틀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일 것이다. 다양한 소음 음향이 점멸하는 푸러의 기악이 작게 녹음되고 목소리가 커서 앙상블의 일원이라기보다는 솔로로 부각된 것이 아쉽지만, 음악극 ‘열망’(1999~2001)과 ‘파마’(2004~2005) 등으로 연결되는 푸러의 연극적인 특징이 잘 나타난다.

반면에 아페르기스의 클라리넷과 앙상블을 위한 ‘바빌’(1996)은 다소 의외인데, 유일한 지난 세기에 작곡된 이 작품은 그의 잘 알려진 최근 작품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럼에도 현란한 클라리넷 독주와 앙상블의 뛰어난 연주는 이 곡의 매력을 한껏 살려놓았다.

진은숙 ‘칸타트릭스 소프라니카’(2004~2005)가 수록되어 있다는 것 또한 더할 나위 없는 이 음반의 매력이다. 진은숙은 이 곡을 작곡할 무렵 다양한 시대의 여러 양식을 혼합하는 시도를 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다양한 음소재들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예를 들면, 5악장에서는 하프시코드가 반주하는 이탈리아 초기 바로크의 아리아를 연상시키며 6악장에서는 경극을 묘사한다. 그리고 콤시 자매는 각 악장의 특색에 따라 목소리를 극단적으로 날카롭게 혹은 납작하게 내는 등 기악적으로 음색을 조정한다. 이렇게 각 악장의 개별적이고 분명한 개성들을 보면, 전체를 하나의 사이클로서 묶는 음악적 응집력과 통일성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이러한 특징은 ‘문자 퍼즐’(1991~1993)을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관현악은 ‘바이올린 협주곡’(2001)이나 ‘이중 협주곡’(2002)에서 보여주는 화려한 음색 단편의 연속과 점멸보다는, 선택된 음색 소재로 프레이즈를 구성하는 ‘로카나’(2008)에 가까운 모습을 띤다. 이러한 특징들을 고려하면, ‘칸타트릭스 소프라니카’는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07) 등 2000년대 후반에 새로운 양식으로 전환하는 길목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목소리와 기악이 어떠한 앙상블을 이루게 될까? 방향성을 말한다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요즘 작곡가들은 특정한 방향성 없이 다양하게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오늘날을 ‘파편화된 다양성의 시대’라고 부른다.

 

글 송주호(음악 칼럼니스트)

기고와 해설, 강의 등 다양한 접점으로 우리시대 음악으로서의 클래식을 나누고 있다. 서울시향 ‘콘미공’ 진행자, 화음쳄버오케스트라 자문위원, 현대음악앙상블 소리 프로그래머, 드림싱어즈 음악감독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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❶ 신빈악파 상드린 피오(소프라노)/마리 니콜 르미외(콘트랄토)/디오티마 현악 4중주단 Naïve V5240

❷ 말하는 노래 잘로메 캄머(목소리)/아누 콤시·피아 콤시(소프라노)/다비드 코르디에(카운터테너)/페터 룬델·베아트 푸러·사이언 에드워즈·스테판 아즈베스(지휘)/무지크파브리크 Wergo WER 685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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