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안성수

직관적 접근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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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9년 7월 1일 9:06 오전

INTERVIEW

2016년, 안성수 이름 앞에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라는 굵직한 수식어가 붙었다. 그는 지금 어떠한 사명으로, 무엇을 일구고 있을까

 

 

현재 안성수를 규정짓는 것은 무엇일까. 꽤 긴 시간이다. 안성수 이름 앞에는 안무가나 교육자라는 직함이 존재했다. 2016년 12월, 안성수라는 세 글자 앞에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이라는 굵직한 수식어가 붙었다. 그간 안성수의 많은 작품을 대중과 평단은 호평해왔다. 클래식 음악과 한국춤을 감각적으로 재해석하는 안성수의 작업 방식은 주목을 받았다. 더욱이 안성수는 한 작품을 다양한 국가에 올리기 위하여 여러 방법을 고민했다. 해외 극장과 관계있는 기획자들을 초청해 공연하기도 했고, ‘투오넬라의 백조’는 핀란드 WHS와 협업해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킨 바 있다. 그리하여 2016년, 안성수가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으로 임명됐을 때 무용계에서는 환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성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직은 잠시 내려놓고, 현재 무용단에 몸과 마음을 쏟고 있다.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국립현대무용단 설립 목적을 힘주어 말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현대무용의 발전을 선도하고, 보다 많은 국민이 현대무용 작품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며, 국제 교류를 통해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 1대 홍승엽, 2대 안애순에 이어 3대 안성수 예술감독에 이르기까지 국립현대무용단은 다양한 실험을 모색하며 단체를 안정화시키고자 노력했다. 지금, 안성수 감독 시기에 이르면서 난해한 현대무용보다는, 관객이 직관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작품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안성수가 예술감독으로 부임한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우리 예술계는 애끓는 시기를 관통했다. 국정농단, 블랙리스트, 미투 등 문화 권력의 민낯이 드러난 시기였다. 고맙게도 이처럼 어지러운 상황에서 국립현대무용단은 차분히 안정되어가는 느낌이다. 대학에서 좋은 무용가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던 안성수. 국립현대무용단은 그에게 어떠한 새로운 사명을 주었고, 그는 지금 무엇을 일구고 있을까.

 

국립현대무용단이 이제는 꽤 정돈된 느낌이다. 무엇보다 일반 관객이 늘어난 것 같다.

사무국 직원들과 가장 노력하고 있는 지점이다. 컨템퍼러리 예술은 홀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관객에게 다가갔다. 사무국 직원들도 이런 내 생각과 비슷했고, 다 같이 노력해서 이뤄낸 결과다.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다양한 ‘오픈-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다행히 요즘 젊은이들은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다. 예전에는 현대무용 공연이 열리면 무용 관계자만 가득했는데, 근래 관객은 장르 상관없이 공연을 즐기는 것 같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이러한 흐름과 잘 맞았다.

 

일반 관객이 많아졌다고 직접적으로 느낀 적이 있나.

어느 순간부터 공연장에 낯선 얼굴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하더라. 그때부터 뭔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취임 후 지금까지 해온 무용단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점과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가. 참고로 2016년 신임감독 기자간담회에서는 국제 교류에 힘쓰고 싶다고 말했다.

‘혼합’은 한국의 미를 세계에 알리고 싶어서 만든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획만 4년, 제작은 2년이 걸렸다. ‘혼합’에 출연하는 여성 무용수 네 명은 모두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혼합’을 2016년 프랑스 샤요국립극장에서 초연한 후 국립현대무용단 레퍼토리로 가져올 수 있어서 뜻깊었다. 국립현대무용단 외부 안무가 초청 프로그램은 ‘픽업스테이지’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다. 7월에는 스페인 안무가 마르코스 모라우를 초청해 신작 ‘쌍쌍’을 제작해 선보인다. ‘픽업스테이지’ 작품도 해외로 많이 진출하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앞으로 해외 무용 관계자들이 무용단 공연을 많이 보러 와서 좋은 일이 생기길 바란다.

 

국립현대무용단이 꽤 오랜 시간 동안 평단의 지적을 받은 것은 ‘예술감독의 사유화’에 관해서다. 역량 있는 안무가들이 역대 예술감독이 됐고, 그런 예술감독의 안무작이 레퍼토리로 자주 오르다 보니, 그것이 과연 ‘국립’을 온전히 대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딱 한 가지만 이야기하고 싶다. 앞으로 국립현대무용단의 방향성은 안무가 양성에 있다고 본다. 나 역시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안무가는 쉽게 만들어질 수 없다. 학교에서는 안무의 툴, 즉 도구사용법만 알려줄 뿐이다. 후임 예술감독이 누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무용단의 미래는 안무가 양성에 달렸다.

 

안성수에게는 교육자의 정체성도 강하지 않은가. 무용단에 있으면서 무용교육자로서 새로운 자극도 생겼을 것 같다.

한국에 안무가가 필요하다는 걸 더욱 느꼈다. 단순히 흐름만 따라가는 안무가가 아니라, 본인의 것을 할 수 있는 안무가가 필요하다.

 

국내 무용단 운영에 있어서 예술감독과 단장을 분리하자는 주장도 있다. 예술적인 부분과 행정적인 부분을 나눠서 담당하자는 의견인데, 직접 해보니 어떤가.

국립현대무용단은 분리가 잘 되어 있다. 사무국장 아래 경영, 홍보, 기획 팀장이 있다. 나는 일의 방향만 제시한다. 만약 나와 직원들이 잘 안 맞았다면 힘들겠지만, 현재 각자의 일을 잘 해내고 있다. 나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분명히 알고 있다.

 

오는 12월에 진행할 ‘어린이·청소년 무용 레퍼토리 개발 프로젝트’는 2022년까지 중장기 프로젝트로 계획하고 있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는 지속적으로 청소년을 위한 레퍼토리를 발굴했고, 청소년극의 새로운 정의를 찾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국립현대무용단의 이러한 시도도 무척 반갑다.

모든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 세대 관객 발굴이다. 해외에서는 이미 활발히 행해지고 있다. 독일 주요 극장만 보더라도 낮에는 어린이 무용극이 매일 오른다. 국립현대무용단이 이제는 안정되어 가고 있어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전 안애순 예술감독님 시기에도 ‘어린왕자’를 올린 바 있다. 나 역시 지속적으로 어린이 관객 개발 프로그램을 이어가고 싶다.

 

어린이·청소년 레퍼토리 개발을 위해 지난해부터 워크숍과 포럼 등 단계적 노력을 거쳤다고.

워크숍은 어린이 프로그램이 왜 중요하고, 어떻게 접근하는가에 대한 교육이었다. 어린이 무용에 관심 있는 안무가들이 워크숍에 참여했다. 그중 고블린파티의 이경구 안무가가 12월 공연에 선정됐다. 이경구 안무가는 이탈리아의 비주얼 아티스트 그룹 TPO와 협업할 예정이다. 재밌는 그림이 나올 것 같다.

 

오는 11월에는 예술감독 신작 ‘검은 돌: 모래의 기억’을 올릴 예정이다. 이제는 어떠한 음악을 쓸지가 먼저 궁금하다.

2017년에 우연히 한 무용극을 봤는데 라예송 작곡가의 음악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전통악기로 만들어지는 컨템퍼러리 음악에 영감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제전악 – 장미의 잔상’을 함께했다. 이어서 문화비축기지에서 라예송 작곡가와 ‘순례: 나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올렸다. 연습도 많이 못 하고 짧게 한 공연이었는데 그 공연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 신작도 함께하게 됐다.

 

작업은 어느 정도 되어가고 있나.

80프로 정도. 1월부터 음악에 맞는 움직임을 총 15개 구성했다. 현재 무용수들은 움직임을 몸에 다 익힌 상태이다. 이제 라예송 작곡가와 연결하는 부분을 만들어야 한다. ‘검은 돌: 모래의 기억’은 10월에 브라질에서 초연 후, 11월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2015년 인터뷰에서 “스스로 생각하는 ‘안성수 표 춤’”을 정의해달라고 물었다. 당시 답변이 기억나는가.

기억 안 난다.(웃음)

 

“음악을 시각화하는 것”이라고 답을 주었다. 여전히 그렇게 답할 것인가.

그렇다. 나는 여전히 음악을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구성적으로 짜임새가 탄탄한 클래식 음악에 기대어 작품을 만드는 안무가들이 많은 편이다. 예컨대 아네 테레사 더 케이르스마커르가 그러하다. 2015년 로사스 무용단 내한 공연 ‘드러밍’을 보고 느낀 점인데, 스티브 라이히 음악에 맞춰 무용수들이 구조적으로 춤을 춘다. 그런데 음악적 형식 안에서 무용수의 몸이 한정되는 것 같아서 답답했다.

나 역시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서 공연을 올렸는데, 왜 저렇게 음악에 춤을 맞추냐는 말을 들어서 황당했다. 사실 서양 컨서바토리에서는 클래식 음악에 춤을 맞추는 교육을 하니까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이다. 아마 ‘드러밍’은 아네 테레사의 초기작이어서 더욱 그렇게 느꼈을 것 같다. 얼마 전 프랑스에서 아네 테레사가 바흐의 음악을 쓴 새로운 작품을 봤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2018년 ‘스윙’ 연습 장면 ©BAKI

안성수의 작품을 보면 속도감이 느껴진다. ‘스윙’의 경우는 3분 단위로 음악에 맞춰 움직임을 입혔다.

개인적인 취향이다. 사람들이 현대무용을 안 보러 오는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내렸다. 안무가는 뭔가를 계속 전달하려고 하는데, 관객이 흐름을 잘 못 쫓아간다. 이해가 어려우니 관객이 점점 현대무용을 피한다. 장면 전환이 빨라지면 관객이 더 잘 따라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관객의 해석은 안무가 의도와 달라도 괜찮다.

 

7월에는 국립오페라단 ‘마하고니 도시의 번영과 몰락’의 연출과 안무를 맡는다. 20세기 오페라가 국내에서는 자주 공연되지 않아서 모처럼 기대되는 작품인데.

작곡가에 대한 관심으로 시작했다. 쿠르트 바일의 음악이 아니었다면 오페라 연출은 거절했을 것이다. 작품의 내용보다는 쿠르트 바일의 음악이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쿠르트 바일은 브레히트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르게 음악을 썼다. 독일에서 자주 공연되는 작품인데, 해외 프로덕션은 늘 너무 직설적이다. 브레히트나 쿠르트 바일은 원하지 않았을 것 같은 장면들이 들어가 있더라. 이번 작품은 원작자들의 의도를 중시하고 싶다.

 

이번 오페라 연출에서 관객은 무엇을 가장 주목하면 좋을까.

사실 내용 면에선 너무 진부한 이야기이다. 마하고니는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도시다. 작품의 시대를 17세기로 변경했다. 20세기 오페라인데 배경이 17세기이니 관객은 조금 의아할 수도 있다. 현실에서 생각해보면 결국 정치인이나 귀족이 그런 만행을 한다. 그래서 시대를 프랑스 혁명 전으로 정했다. 특히 르네상스와 로코코 시대를 떠올리는 의상이 아주 예쁠 것이다.(웃음)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는.

작곡가는 항상 관심이 많다. 바로크 이후 슈만과 브람스, 19세기 말~20세기 초 작곡가에 관심이 가는 편이다. 처음 공부를 영화로 시작했기 때문에, 기회가 된다면 영화 제작에도 참여해보고 싶다.

장혜선 기자 사진 박진호(Studio BoB)·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 하반기 공연정보

‘쌍쌍’ 7월 19~21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스윙’ 8월 30일~9월 1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검은 돌: 모래의 기억’ 11월 1~3일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

어린이·청소년 무용 레퍼토리 개발 프로젝트 12월 7~17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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