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 민코프스키&크리스티안 베주이덴호우트 바로크, 움트다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3월 9일 9:00 오전

바로크, 움트다

 

지휘자 마르크 민코프스키 &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베주이덴호우트

각각 내한공연과 신보 발매로 찾아온 바로크의 황태자

 

마르크 민코프스키 ©Georges Gobet

1980년대 CD 붐으로 시대악기 연주가 전성기를 맞으면서, 1세대 스타급 지휘자들은 르네상스와 바로크 레퍼토리 밖으로 뛰쳐나갔다. 원전음악의 선구자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1929~2016)는 90년대 이후 낭만주의 전도사로 변신해 신세대 팬들에겐 브루크너와 브람스 등의 낭만파 해석가로 더 친숙하다. 어느새 노장이 된 존 엘리엇 가디너(1943~)와 필리프 헤레베허(1947~)도 대형 오케스트라 지휘가 어색하지 않다. 사조를 넘나드는 제너럴리스트의 시대. 마르크 민코프스키(1962~)와 크리스티안 베주이덴호우트(1979~) 역시 본령인 바로크와 고전에 기반을 두고 영역을 확장한 대표적 사례다.

세 번째로 한국을 찾는 민코프스키는 오는 3월 28일 서울시향을 객원 지휘한다. 베주이덴호우트는 이달 예정됐던 첫 내한공연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취소됐지만, 기다려왔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앨범(HMF)이 발매되면서 아쉬움을 달래게 됐다.

(*베주이덴호우트는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와 내한해 3월 14·15일 아트센터 인천에서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12번,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2번·3번 등을 연주하려고 하였으나 취소되었다.)

 

크리스티안 베주이덴호우드

민코프스키, 바로크의 총아

민코프스키는 시대악기 연주 2세대와 3세대 중간쯤 위치하는 ‘이단아’ 같은 존재다. 프랑스 파리 태생이지만 폴란드에서 이주한 아버지와 미국계 어머니 피를 물려받으며 그가 표현하듯이 “자연스럽게 코즈모폴리턴 기질”을 지니게 됐다.

바수니스트 출신이란 점도 이채롭다. 처음부터 지휘를 배우거나 건반악기나 현악기를 거치는 이른바 ‘주류 코스’를 벗어나 있다. 지휘봉을 잡는 과정도 그러했다. 십대에 본격적으로 바순을 익힌 그는 파리 음악원 재학 당시 실력을 인정받아 헤레베허가 이끄는 라 샤펠 루아얄, 윌리엄 크리스티(1944~)의 레자르 플로리상 등 프랑스 최고의 시대악기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했다. 그러다 지휘자를 꿈꾸며 독학과 짧은 미국 유학을 거친 뒤 1982년 분신과 같은 ‘루브르의 음악가들’을 조직했다. 그의 나이 19세. 초창기 연주에 감탄한 에라토(Erato) 레이블의 예술감독 및 프로듀서 미셸 가르신이 후원을 자처하며 지휘 활동에 날개를 달았다.

민코프스키는 1988년부터 에라토를 통해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작품을 발굴해냈고, 1995년부터는 독일의 고음악 전문 레이블 아르히프(Archiv)로 옮겨 예비 거장의 길을 닦았다. 2000년대 초까지 그는 헨델·륄리·라모의 오라토리오와 오페라에 주력했다. 특히 라모(1683~1764)의 진보적인 악곡은 전위적인 민코프스키의 음악성과 가장 잘 맞아떨어졌다. 하여 라모의 음악극 ‘플라테’(Erato)와 ‘다르다뉘’(Archiv)는 그를 단숨에 프랑스 바로크의 총아로 만들었다.

 

확장된 레퍼토리로 내한

앞서 전위적이라고 표현할 만큼 민코프스키 해석의 특징은 기성세대와 큰 차이를 보였다. 빠른 템포와 날카로운 악센트, 낙차가 큰 다이내믹은 대번 알아챌 만큼 강렬하다. 관악기 연주자답게 목관과 금관의 선명한 사운드도 귀에 꽂힌다. 또 시대악기 연주에서 통상 억제하는 현의 비브라토를 그는 폭넓게 허용한다. 결과적으로 민코프스키가 직조한 음악은 구조가 탄탄하고 때깔이 곱다. 다만 속도감과 해석에서 호불호는 있을 수 있다.

민코프스키는 원전에 충실한 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고전·낭만파 작곡가로 눈길을 돌렸다. 높아진 위상만큼 연주와 레코딩 기회가 늘어난 덕분이었다. 처음엔 모차르트와 베를리오즈, 오펜바흐 등을 녹음하면서 팬들을 놀라게 했다. 이는 그러나 잠깐의 외도가 아니었다. 2000년대 중반 프랑스의 나이브(Naive) 레이블로 이적한 뒤에는 비중을 더 늘려 바로크에 능통한 일반 지휘자로 자리매김했다. 2013년엔 앙상블 ‘루브르의 음악가들’을 기용해 바그너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Naive)을 지휘·녹음했다. 마치 자신이 더는 특정 장르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사실을 선언하는 듯했다. 현대 악단의 헤비급 스케일 대신 차가운 북구의 냉기를 담은 사운드는 바그너가 놀랄 만하다.

민코프스키의 이번 내한은 흔치 않은 시대악기 연주 거장의 객원 지휘란 점에서, 또 그가 새롭게 도전하는 레퍼토리란 점에서 의미가 있다. 프로그램은 리스트의 교향시 ‘프로메테우스’(1850), 하이든 교향곡 59번(1768), 베토벤 발레음악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1801). 베토벤과 리스트는 아직 녹음이 없으며 실연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다. 새 음악감독을 선임하고 다시 비상하는 서울시향과의 궁합이 어떨지도 몹시 기대된다.

 

마르크 민코프스키/서울시향

3월 28일 오후 5시 롯데콘서트홀

리스트 교향시 ‘프로메테우스’

하이든 교향곡 59번

베토벤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5번

파블로 헤라스 카사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

크리스티안 베주이덴호우트

(포르테피아노, 콘라트 그라프 모델)

Harmonia Mundi HMM9024111

 

 

진화된 건반 주자 베주이덴호우트

베주이덴호우트는 이민자 출신이고 악기를 비교적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는 점에서 민코스프스키와 공통점이 있다. 그는 1979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북동쪽의 던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남아공 주류 백인사회를 구성하는 네덜란드계 이민자 집단을 뜻하는 아프리카너(Afrikaner)이다. 그의 성이 네덜란드 식인 이유다. 어머니 역시 독일계. 그래서 어려서부터 영어뿐 아니라 남아공 공용어인 아프리칸스(Afrikaans), 독일어를 함께 쓰며 자랐다.

양친은 음악 애호가였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음악을 몸에 익혔다. 하지만 처음부터 음악가의 꿈을 갖고 악기를 배우진 않았다. “남동생, 여동생이 피아노를 쳤던 데 비해 전 듣는 데만 열중했습니다. 집에 음반이 꽤 많았는데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클래식 음악에 빠졌던 것 같아요.”

베주이덴호우트가 피아노를 배운 건 9세 때 가족이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한 뒤였다. 초기엔 애를 먹었다. 좋아하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의 차이랄까. “엄격한 선생님 밑에서 음악을 강요받는 상황이 힘들었다”는 그는 처음 피아노 의자에 앉은 지 3년이 지나서야 음악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는 곧 미국의 저명한 이스트만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의 화려한 교수진은 배움에 대한 갈증을 일으켰다. 특히 바로크 음악에 심취해 하프시코드와 피아노의 전신인 포르테피아노에 빠져들었다. 류트 연주자이자 음악학자 폴 오데트와 포르테피아노의 명인 맬컴 빌슨 교수의 영향이 컸다.

박사학위를 밟으면서 도전한 2001년 벨기에 브뤼헤 고음악 콩쿠르에서 우승하며 베주이덴호우트는 세계 음악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2007년 이 콩쿠르에서 리코디스트 정윤태와 전현호가 각각 2위, 3위를 차지했다)

2008년 프랑스 아르모니아 문디(HMF) 레이블과 전속 계약하면서 15년간 이룬 성과를 보면, 그가 현역 포르테피아노 연주자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는 존재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서로 다른 모델의 포르테피아노로 모차르트부터 멘델스존 협주곡, 슈만과 슈베르트의 가곡을 망라한다.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집(HMF)에선 하프시코드를 치며 이자벨 파우스트와 호흡을 맞췄다. 그런가 하면 공연장에서는 현대 피아노 앞에 앉아 베토벤 협주곡을 연주하기도 한다. 그래서 베주이덴호우트는 자신을 소개할 때 늘 “하프시코드, 포르테피아노, 피아노를 함께 연주하는 건반 주자”라고 표현한다. 파울 바두라 스코다(1927~2019)를 필두로 맬컴 빌슨(1935~)·로버트 레빈(1947~)·안드레아스 슈타이어(1955~) 등 수많은 건반 주자가 사랑받지만, 베주이덴호우트는 그중에서도 가장 진화한 타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악기 제작자 안톤 발터

 

시대악기 사용법도 연주만큼 중요

베주이덴호우트가 현대 피아노로 공연장에서만 연주하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에 도전했다. 이번 달 발매된 2번과 5번은 전체 3장 가운데 1집이다.

피아니스트들은 포르테피아노를 연주할 때, 보통 하이든·모차르트·초기 베토벤 작품은 모차르트가 생전 사용한 포르테피아노(1800년대 안톤 발터 제작)를, 베토벤 후기와 낭만파 초기 작품은 베토벤이 말년에 썼다는 피아노(1820년대 콘라트 그라프 제작)를, 그 이후의 작품은 쇼팽의 애기(愛器)였다는 프랑스 에라르가 제작한 악기를 사용한다. 포르테피아노로 베토벤 전집을 녹음한 로버트 레빈(Archiv)과 스티븐 루빈(L’Oiseau-Lyre)은 작곡 시기에 따라 악기 모델을 다르게 사용했다.

베주이덴호우트는 직접 쓴 음반 내지의 해설에서 자신도 원래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2번에는 안톤 발터 모델을, 5번에는 콘라트 그라프 모델을 사용하려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험 녹음 결과 피아노 음색의 차이가 감상할 때 집중력을 흐트러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풍부하고 화려한 음향의 후자만 사용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악기의 음색과 터치감이 앞서 말한 다른 두 녹음보다 풍부하다. 기왕에 포르테피아노로 감상하는 작품이기에 사운드 과잉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베토벤 협주곡을 굳이 포르테피아노로 듣는 이유, 즉 현의 작은 장력이 주는   청량감, 목질의 터치감, 정교한 아티큘레이션, 관현악과 앙상블 효과가 잘 살아있다. 바로크와 낭만파를 오가며 실력을 입증한 지휘자 파블로 에라스-카사도(1977~)와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박진감 넘치는 관현악도 신뢰할 만하다.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당초 내한 프로그램에 포함됐다. 멀지 않은 장래에 베주이덴호우트의 연주를 실연으로 감상할 기회가 다시 생기기를 바란다.  글 이재준(음악 칼럼니스트)

* Kristian Bezuidenhout는 국립국어원 외래원 표기법에 의하면 ‘크리스티안 베자위던하우트’로 표기한다(네덜란드/2020.2 기준). 하지만 현재 국내 다수의 보도자료가 ‘크리스티안 베주이덴호우트’로 표기된 바, 보편적인 용례를 따르기로 한다.

악기 제작자 콘라트 그라프

 

 

 

 

 

 

 

 

 

 

영화 속 바로크

17세기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직전의 르네상스와 달리, 균형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는 호소력이나 표현력이 중심이 되었다. 그래서 바로크 음악은 단순한 음률이 아니라, 리듬·멜로디·하모니·음정이 뒤섞인 정서적 이야기를 내포한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바로크 음악을 영상에 녹여낸 영화가 많다. 대개 영화 속에서 바로크 시대의 음악은 어둡고 눅눅한 화면과 함께 사용되곤 한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는 연쇄살인을 그린 영화 ‘세븐’(1995)에서 정서적 압박을 배가시킨다. 헨델의 ‘사라방드’는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1975)과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984),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블루’(1993) 등에서 사용되었는데, 비통한 영상 위로 비극적인 음률이 덧입혀지면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 낸다. 박찬욱의 ‘친절한 금자씨’(2005)는 비발디의 음악으로 복수와 구원, 속죄의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봉준호의 ‘기생충’(2019)은 바로크 음악과 바로크적인 스코어를 뒤섞어 사용하는데, 파티 장면에 사용된 헨델 ‘로델린다’는 중산층의 허위의식과 가난한 자의 비극을 유연하게 비튼다. ‘존 윅-리로드’(2017)에서 사용된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은 액션 장면을 더욱 비장하게 만든다.

바로크 음악이 비극적 정서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19)의 마지막 장면에서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비발디의 ‘여름’은 주인공의 추억과 그 격정을 관객과 함께 나누게 한다. 이 영화를 통해 바로크 음악이 가진 정서적 스토리와 영상이라는 또 다른 텍스트가 서로의 목소리가 되는 극적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바로크 시대의 역사적 배경을 보고 싶다면, 거세 가수 카스트라토의 비극적 삶을 그린 제라르 코르비오의 ‘파리넬리’(1994)를 권한다.  글 최재훈(영화평론가)

※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리뷰는 176페이지에 이어집니다.

 

 

클라이브 웅거 해밀턴(김형수 역) ‘클래식, 바로크 시대와의 만남’(2012/포노, 160쪽)

오페라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바로크 음악은 웅장하면서도 극적인 음악 양식이 특징이다. 성악에서 기악곡으로, 교회음악에서 세속음악으로 점차 발전했고, 이때부터 독주자의 출현, 대가적 기교와 더불어 소나타·모음곡·협주곡 등 새로운 장르가 탄생했다. 특히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가 바흐·헨델·비발디를 비롯해 알비노니·파헬벨·스카를라티·몬테베르디·가브리엘리는 마법처럼 매혹적인 음악을 빚어냈다. 하프시코드 연주자 출신의 음악학자 클라이브 웅거 해밀턴이 쓴 책 ‘클래식, 바로크 시대와의 만남’을 통해 바로크 시대의 여러 음악 양식뿐만 아니라 당시 역사·문화·정치적 배경이 음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두루 살펴볼 수 있다. 함께 수록된 두 장의 음반에는 인기곡부터 쉽게 접하지 못했던 희귀곡도 담겨 있다. 바로크라는 찬란한 시대와 만나보자. 글 박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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