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러시아 음악 기행 (1)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3월 9일 9:00 오전

INTERVIEW&REPORT

Moscow, Russia, Saint Basil’s cathedral

한·러 수교 30주년 기념

러시아 음악 기행

북풍이 스치니 음악이 울리네

 

기획·글 장혜선 기자

 

INTRO

수교 30주년을 기념하며

PART1_ FESTIVAL

소치겨울예술축제 현장 취재

유리 바시메트 인터뷰

PART2_ CONSERVATORY

세르게이 크라브첸코 인터뷰

피아니스트 김태형 모스크바 유학기

PART3_ VENUE

러시아 한국문화원 위명재 원장 인터뷰

모스크바 예술 공간

PART4_ PERFORMANCE

30주년 기념 공연 추천작

 


 

한국과 러시아, 문화 교류 30주년

오해와 이해 사이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 30주년을 맞았다. 한국과 미국의 수교 햇수는 19세기 중반의 조선부터 시작하는데, 왜 러시아와는 20세기 말인 1990년을 기점으로 할까.

한국과 러시아는 그간 체제가 급격히 변한 국가로 손꼽힌다. 유럽에 드리웠던 ‘철의 장막’으로 러시아는 우리에게 오랜 기간 비밀스러웠다. 비단 우리뿐이었을까. 러시아 역시 남한과 북한 사이에서 오묘했으리라. 서로를 향한 고정관념은 끈질기게 지속됐다. 서로를 오해하기도, 이해하기도 하며 양국은 기나긴 시간을 보냈다.

 

조금씩, 천천히, 활발해지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예술계가 활발해진 건 1945년, 해방 이후다. 그러나 국제 교류에 있어서는 오랫동안 소극적이었다. 특히 소련과는 더더욱 그러했다. 1960년대에는 냉전이 한창이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의 차이콥스키 콩쿠르 출전이 거부된 바 있다. 그래서일까. 1974년,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2위 했을 때 국내 분위기는 들떴다. 정명훈은 김포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화려한 카 퍼레이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며 한국 음악계는 전환기를 맞았다. 로스트로포비치·뮬로바 등 망명 연주자는 물론, 일리야 그루베르트 등 소련 국적 연주자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을 찾았다. 소련 체임버 앙상블로는 처음으로 유리 바시메트가 이끄는 모스크바 솔로이스츠가 내한했다.

정부 기관에서는 다양한 소련 예술 단체를 초청했다. 1988년 8월 막을 연 서울올림픽 문화축전에 볼쇼이 발레 단원이 참여했다. 소련 해체 후 1990년대에는 보다 본격적으로 원활한 교류가 이뤄졌다. 볼쇼이·마린스키 발레뿐 아니라 러시아 소도시 무용단도 심심찮게 보였다. 이탈리아 오페라가 익숙했던 한국에, 볼쇼이·키로프 오페라가 내한하며 러시아 오페라 양식을 소개했다. 1990년 한국인 성악가 최현수가 차이콥스키 콩쿠르 우승 소식을 알렸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기 전까지 90년대에 러시아 문화 유입은 막대하게 이루어졌다.

외환위기 때는 흥미롭게도 솔리스트, 특히 러시아 피아니스트들의 내한이 활발했다. 아슈케나지·리시차·키신 등이 한국을 찾았는데, 오케스트라보다 낮은 출연료가 영향을 줬을 테다.

2000년대에는 한국 경제가 다시 회복됐다. 그와 동시에 위축됐던 예술계에 다시 활기가 돌았다. 유리 시모노프/모스크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발레리 게르기예프/마린스키 오케스트라 등 러시아 메이저 오케스트라가 큰 인기를 끌었고, 유주노사할린스크 체임버 오케스트라나 블라디보스토크 팝스 오케스트라 등 다양한 도시의 오케스트라도 만나게 됐다.

최근 10년간 한국 공연예술계는 질적 성장을 이뤘다.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선 손열음이 2위, 조성진이 3위를 차지했다. 바이올린 부문에선 이지혜가 3위, 성악 부문에서는 서선영과 박종민이 1위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한국 연주자 다섯 명이 차이콥스키 콩쿠르 순위권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다. 2015년에는 무용수 김기민이 마린스키 발레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는 낭보를 전하기도 했다.

 

원활한 ‘러시아 시즌스’를 소망하며

그리하여 2020년. 이제는 서로를 더 적극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문재인 정부는 신북방정책을 내세웠고, 러시아는 2021년을 ‘러시아 시즌스(Russian Seasons)’로 선포했다.

‘러시아 시즌스’는 러시아 정부에서 1년간 집중적으로 해외 문화 교류를 개최하는 행사다. 그동안 일본(2017), 이탈리아(2018), 독일(2019), 프랑스(2020)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다가오는 2021년에는 한반도에서 ‘러시아 시즌스’가 펼쳐질 예정이다. 지난해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문화포럼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문화부 장관은 2020~2021년 두 해를 ‘상호 문화교류의 해’로 지정하는 업무 협약을 맺었다.

2년간 펼쳐질 다양한 공연을 앞두고, 러시아 음악계를 재조명하는 지면을 준비했다. 러시아 문화 특구인 모스크바 주요 극장, 러시아 음악교육의 산실인 모스크바 음악원 교육 방식, 러시아 한국문화원의 비전을 찬찬히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2월에 열린 소치겨울예술축제의 뜨거운 현장 분위기도 함께 전한다.

한국과 러시아의 30년 세월을 두고 모스크바 음악원 세르게이 크라브첸코 교수는 “‘아직’ 30년 밖에 안 됐다”고 했다. 러시아 한국문화원 위명재 원장은 “서로가 서로를 잘 몰랐던 시절”이었다고. 이번 기사가 양국의 건강한 문화 교류를 위한 참고서가 되기를.

자, 그럼 페이지를 넘겨 러시아 예술 기행을 시작해보자.

장혜선

 


 

PART1_FESTIVAL

제13회 소치겨울예술축제 현장 취재

예술의 미래로

무엇이 이 축제를 이토록 성장시켰을까?

앞으로는 흑해, 뒤로는 캅카스산맥과 맞닿은 도시. 소치의 여름은 뜨겁고, 겨울은 따뜻하다. 덕분에 소치는 러시아 대표적 휴양지로 자리매김했다. 무엇보다 스탈린이 즐겨 찾던 휴양지로 알려져 있다. 스탈린 통치 기간 때 소치에는 고전 건축물이 들어섰다.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발전한 소치. 소치겨울예술축제가 열리는 겨울극장(Zimniy Teatr)도 스탈린 시기에 지어진 공연장이다.

 

지역과 함께 성장한 예술축제

제13회 소치겨울예술축제(2.12~23)가 개최됐다. 2008년 첫 문을 연 페스티벌은 소치가 러시아 문화 도시로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한국에서는 비올리스트로 잘 알려진 유리 바시메트(1953~)가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페스티벌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소치의 눈부신 자연 풍경을 사랑한 바시메트. 그는 소치를 대표하는 음악 페스티벌을 꿈꿨다. 당시 소치는 휴양지라는 인식이 강했기에, 그곳에 페스티벌을 유치하려는 바시메트를 바라보는 시선은 회의적이었다.

세 개의 공연으로 소담하게 시작한 소치겨울예술축제가 어느덧 13년을 맞았다. 그동안 소치에서는 2014년 동계올림픽과 2018년 피파 월드컵이 열렸다. 러시아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도시가 된 소치. 그래서인지 최근 몇 년간 인구가 증가했고, 축제의 인기는 해를 거듭할수록 높아졌다.

올해 특이점은 개막 전에 모스크바 오프닝 주간(1.24~2.10)을 가져 ‘유리 바시메트 페스티벌 오브 아트 인 모스크바’라는 명칭으로 모스크바 공연이 열렸다. 러시아 중심지의 관객을 소치로 이끌기 위한 전략으로 읽혔다. 기자는 2월 10일에 열린 모스크바 폐막 공연을 보기 위해 러시아행 비행기에 올랐다.

 

유리 바시메트와 인큐베이팅

모스크바의 추위는 대단했다. 한국의 겨울이 유독 따뜻했기에 북풍을 맞으니 도리어 시원한 기분이었다. 폐막 공연은 모스크바 음악원 그랜드홀에서 열렸다. 이날 공연은 ‘시간-앞으로(Time-Forward)’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클라우디오 반델리의 지휘, 2018년에 내한한 러시아 국립 청소년 교향악단(Youth Symphony Orchestra of Russia)이 연주를 맡았다. 이들은 살아있는 다섯 작곡가 발레리 보로노프(1970~), 쿠즈마 보드로프(1980~), 알렉세이 슈마크(1976~), 아츠히코 곤다이(1965~), 알렉산드르 차이콥스키(1946~)의 작품을 연주했다. 특히 1부를 장식한 발레리 보로노프의 ‘타악기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헬리오스’, 쿠즈마 보드로프의 ‘미라지(Mirage)’는 세계 초연이었다. 다섯 명의 작곡가는 모두 무대에 올라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바시메트는 무대에 선 작곡가들에게 애정의 마음을 전했다. 무대에 선 작곡가들 역시 바시메트를 믿음직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대규모 페스티벌의 폐막 공연을 동시대 작품으로 채운 점은 퍽 인상 깊다. 아울러 실험적인 음향의 곡들을 연주하는 청소년 교향악단의 실력은 놀라웠다. 연주를 기획한 바시메트의 깊은 혜안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비올라의 선구자 역할을 해온 바시메트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는 비올라 발전을 위해 현대 작곡가들과 면밀히 소통하며 비올라 레퍼토리를 넓히지 않았는가. 그의 진보적인 발걸음은 소치겨울예술축제 운영에 있어서도 유연하게 작용하고 있었다. 다채로운 레퍼토리를 접하며 성장하는 러시아의 청소년 음악가들은 한국에 귀감이 될 만했다.

 

죽음과의 사투를 보여준 두 음악극

네 별을 떠나지마

두 시간 정도를 비행해 소치에 도착했다. 소치의 날씨는 모스크바에 비해 온화했다. 대개 소치를 ‘한국의 평창’으로 비유하던데, 제주도에 더 가까웠다. 살가운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야자수, 빛이 닿아 반짝이는 흑해를 응시하며 겨울극장으로 향했다.

12일, 소치겨울예술축제 공식 개막작이 올랐다. 이 페스티벌에서 2016년에 초연한 음악극 ‘네 별을 떠나지마(Don’t leave your planet)’가 개막 작품으로 선정됐다.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빅토르 크라머가 연출, 쿠즈마 보드로프가 작곡을 맡았다. 이 작품은 네 명의 영상디자이너 참여했을 정도로 생동하는 영상미가 돋보였다. 러시아 국민배우 콘스탄틴 하벤스키가 밀도 있게 극을 끌고 갔다. 유리 바시메트가 이끄는 모스크바 솔로이스츠는 무대 위에서 음악을 연주하기도, 함께 연기하기도 했다.

잘 알려진 ‘어린 왕자’를 단순히 러시아어로 번역한 작품은 아니었다. 이름 모를 행성에 불시착한 조종사를 어른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원작에 담긴 환상성은 극 안에 가득 찼다. 이 환상성은 시각적·음악적으로 구현돼 관객에게 몽환적인 감성을 선사했다. ‘죽음이 도처에 가득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영혼’이라는, 어린아이 같은 말투로 어린 왕자는 어른의 생각을 전했다. 원작을 뒤틀면서도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라는 메시지가 명료히 전달됐다.

반 고흐.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이어서 15일에 초연한 ‘반 고흐.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Van Gogh. Letters to His Brother)’도 흥미로운 음악극이었다. 체호프 모스크바 아트 시어터의 감독 마리나 브루스니키나가 연출을 맡았고, 배우 예브게니 미로노프가 무대에 올랐다. 이 작품도 바시메트와 모스크바 솔로이스츠가 함께했다. 반 고흐가 그의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를 미로노프는 덤덤히 읊었다. 타인에게 보내는 편지이지만, 사실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죽음을 예견한 고흐의 넘실거리는 감정이 때로는 슬프게, 때로는 초연하게 다가왔다. 미로노프는 “고흐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자신의 삶을 정당화하고 싶어서 무언가를 남기려고 애쓴 듯하다”고 말했다. 나를 유일하게 지지한다고 믿는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만큼 진솔한 것이 있을까. 배우의 감정이 변할 때마다 무대에 투사된 고흐의 그림이 함께 움직였다. 무대를 가득 채운 고흐의 작품에는 특유의 색채감이 선명히 묘사됐다.

 

폭넓은 레퍼토리를 수용하다

오프닝 갈라 콘서트

13일에는 ‘오프닝 갈라 콘서트’가 열렸다. 1부는 모스크바 솔로이스츠, 2부는 바시메트가 최근 몇 년간 애정으로 이끌고 있는 러시아 국립 청소년 교향악단이 올랐다. 모스크바에서의 폐막 공연과 마찬가지로 현대 작곡가들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동시대 작곡가 마이클 니만(1944~)과 쿠즈마 보드로프(1980~)의 곡이 무대에 올랐다. 더불어 바흐·생상스·쇼송·차이콥스키·쇼스타코비치 작품이 함께 배치돼, 서양 음악사를 한 흐름에 살필 수 있었다. 특히 쿠즈마 보드로프가 작곡한 ‘차이니스 보이스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소품’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동양의 음악 어법, 창법에 관한 서양 작곡가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마지막 무대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이 장식했다. 그는 쇼송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시’, 생상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 op.28을 연주했다.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음색이 특징인 그의 연주를 오랜만에 들으니 반가웠다. 클라라 주미 강은 함께 호흡을 맞춘 청소년 교향악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리허설을 할 때 원하는 부분을 말하면 이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어요. 실력이 뛰어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어릴 때 사라 장을 보며 꿈을 키웠어요. 청소년 시기, 위대한 연주자들과 가까이에서 영감을 주고받는 경험은 나중에 큰 힘이 될 거예요.”(클라라 주미 강)

월드뮤직을 향한 페스티벌의 관심은 14일 공연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소나 자바테가 이끄는 앙상블이 에스닉 콘서트(Ethnic Concert)를 선보였다. 소나 자바테는 아프리카 서쪽 지역의 전통 악기인 코라(Kora)를 능숙히 다루며 노래했다. 21현의 코라는 아프리카에서 보통 남자들에 의해 앉아서 연주된다고 한다. 소나 자바테는 코라를 들고 남성 멤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기량으로 노래를 불렀다. 이러한 모습만으로도 아프리카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객석을 채운 러시아 관객은 그와 함께 손뼉 치고, 노래하고, 리듬을 타며 무대를 오롯이 즐겼다.

소치에서의 마지막 밤(2.16)에는 아서 피타가 안무한 ‘더 마더(The Mother)’를 봤다. 아동문학 대가 안데르센의 어머니를 소재로 삼았다. 작품은 죽음을 낭만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시종일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끌고 가며, 동화에서 나오는 행복한 결말은 없다. 무용수 나탈리 오시포바는 역동적인 힘으로 작품에 몰입했다. 가엾고 작은 생명체를 바라보는 희생적인 어머니의 사랑, 그 심오한 감정을 풀어내는 오시포바의 움직임. 감정이 미묘하게 변할 때마다 무대 양쪽에 위치한 연주자 프랭크 문과 데이비드 프라이스는 관객에게 짜릿한 음악적 전율을 선사했다.

 

작곡가 마스터클래스 현장

 

다음 세대를 위한 발걸음

이외에도 다양한 부대행사가 열렸다. 대부분의 행사는 젊은 예술가에게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15일에는 작곡가 마스터클래스를 참관했다. 작곡 전공생들은 일곱 명의 작곡가에게 자신의 작품을 들려준 후 자유롭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작곡가 오스카 비안치, 알렉산드르 차이콥스키, 발레리 보로노프, 쿠즈마 보드로프, 알렉세이 슈마크, 크쥐시토프 메이어, 파트릭 데 클레르크는 학생들과 함께 수평적인 분위기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했다. 악기의 편성, 가사와 음의 조화, 주제의 접근 등 현대음악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오스카 비안치는 “현대 작품에서도 스토리에 대한 부분이 연주자와 공유가 돼야 한다. 음향적으로 늘어놓기만 한다면 그건 그냥 보여주기 식 음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15일 다른 세션에서는 ‘젊은 음악 경영자를 양성해야 하는 이유’ ‘젊은 관객을 극장으로 흡수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콘퍼런스가 네 시간 동안 열렸다. 콘퍼런스에 참여한 박준식 대표(제이삭 뉴욕)는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젊은 음악 경영자를 개발하는 일은 모든 나라에서 필요해요. 어느 음악계에나 관객 개발을 위해 애를 쓰는데, 가장 중요한 건 필드에서 이를 이끄는 매니저가 양성되어야지 지금의 감각에 맞는 공연을 만들 수 있겠죠.”

흥미로운 점은 국제적인 음악 경영인이 되기 위해서는 ‘음악에 관한 기초 지식이 필요한지’에 대한 토론이었다. 이를 두고 클래식 음악매니지먼트 아스코나스 홀트의 게탕 르 디브리는 “아스코나스 홀트에서도 법학이나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 많습니다. 예술경영은 현장에서 배우는 일이기에 음악적 교육이 필수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의견을 더했다. 소치겨울예술축제에서 내년에는 젊은 기획자를 초청하는 콘퍼런스를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취재를 통해 소치겨울예술축제가 짧은 시간 동안 러시아를 대표하는 페스티벌로 성장한 이유를 확인했다. 축제의 방향성은 미래 음악계로 적확히 뻗어 있었다. 그렇기에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페스티벌이다.  장혜선

 

러시아 대표 음악축제

백야축제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매해 열리는 한 여름의 백야축제.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건재하고 있는 러시아 대표 축제다. 주요 무대인 마린스키 극장과 콘서트홀에서 클래식 음악·오페라·발레 공연이 펼쳐진다. 보통 7월 초에 개최된다. wnfestival.com

트레몰로음악예술축제 2008년부터 러시아 톨리아티에서 개최된 축제. 지휘자 파비오 마스트란젤로가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매년 여름, 콘서트홀이 아닌 강변에서 개최되는 것이 독특한 특징이다. 관객은 자유롭게 물가를 산책하며 음악을 즐긴다. volgaclassic.ru

트랜스시베리아예술축제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이 음악감독으로 있다. 바딤 레핀의 고향인 노보시비르스크에서 열린다. 푸틴 대통령이 지원하는 러시아 주요 음악제 중 하나다. 현재 러시아 도시뿐 아니라 프랑스·일본·이스라엘 등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transsiberianfestival.com

마린스키극동축제 한 여름에 개최되는 마린스키극동축제는 2016년 처음 시작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마린스키 극장 연해주 무대에서 열린다.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를 예술감독으로 하며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를 주축으로 펼쳐진다. prim.mariinsky.ru/kr/far_east_festival

 

INTERVIEW

소치겨울예술축제 해외자문위원

파트릭 데 클레르크

소치겨울예술축제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방향성이 있나? 이 페스티벌의 시작은 오직 세 개의 공연이었다. 13년이 지난 지금에야 큰 성공을 거뒀다. 이제는 관객이 가득하다. 우리는 계속 ‘무엇을 해야 할까’ 자문했다. 예술가들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관객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러한 물음으로 지금껏 끌고 왔다. 점차 신뢰도가 높아지며 이 페스티벌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매해 다양한 프로그램이 배치된다. 프로그램 라인업에 있어서 가장 염두에 두는 건? 개막과 폐막은 교향악 프로그램을 짠다. 중간중간 민속음악·현대음악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추구한다. 작곡가와 연주자들의 커리어에 있어서 우리 축제가 좋은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이 축제는 다양한 만남의 장을 추구하는 듯하다. 먼 거리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축제에 모이고 있다. 유럽은 물론, 아시아 사람들이 소치겨울예술축제를 찾는다. 러시아의 젊은 기획자들에게도 관심을 받고 있는 축제다. 소치가 음악인들의 교류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

러시아 내 다른 지역의 관객을 모으기 위한 전략도 모색하고 있나? 현재 60프로는 소치 주민이고, 40프로는 다른 곳에서 온다. 이번에 모스크바에서 오프닝 주간을 가진 건 중요한 일이다. 이 축제가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모든 것이 멋지게 진행됐다. 러시아 문화를 응집하기 위해 우리는 더 열심히 움직일 것이다.

 

소치겨울예술축제에서 만난

예술감독

유리 바시메트

오케스트라와 실내악의 반주 악기로만 여겨지던 비올라는 바시메트에 의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었다. 그는 훌륭한 비올리스트로만 머무르지 않고, 모스크바 솔로이스츠 리더,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로 젊은 러시아 음악인의 구심점이 되어주었다. 2008년부터는 소치겨울예술축제 예술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다음은 소치에서 만난 바시메트와의 일문일답.

페스티벌 개최 도시로 소치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시작은 우연이었다. 나와 모스크바 솔로이스츠는 여러 도시를 돌아다니며 투어를 했다. 그중 한 곳이 소치였다. 공연 후 소치 지역 관계자들이 나에게 다가와 소치 공연이 매우 성공적이었다며, 다음에도 연주해줄 수 있는지 물었다. 이듬해 세 개의 공연으로 페스티벌을 열었고 반응은 뜨거웠다. 이후 페스티벌을 더 구체적으로 기획하기 시작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영향으로 소치겨울예술축제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올림픽 때문에 더 주목받은 건 맞지만, 그전부터 사무국은 어려운 시간을 겪으며 페스티벌 발전을 위해 힘썼다. 조금씩 천천히 성장한 페스티벌이다.

성장 비결에 대한 팁을 준다면. 함께 일하는 능력 있는 동료들! 우리는 환상의 팀이다.

지역 주민을 위한 페스티벌인가? 타 지역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가? 시베리아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도 페스티벌을 보기 위해 소치를 많이 방문한다. 점점 해외 관중도 늘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스위스나 영국 등 다양한 나라 관객이 소치겨울예술축제를 찾았다.

 

변화를 맞은 페스티벌

이번 해에는 소치 개막 전, 모스크바 오프닝 주간을 가졌다. 올해 페스티벌의 특이점은 소치가 아닌 모스크바에서도 공연한다는 점이다. 밀도 높은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모스크바는 차이콥스키 콘서트홀, 자랴지에 콘서트홀, 모스크바 음악원 등 주요 공연장마다 특유의 관객층이 있다. 그래서 모스크바에서는 한 공연장만 지향하지 않았다. 반면 소치에서는 겨울극장을 중심으로 주요 작품을 펼친다.

1월 24일, 당신의 생일 때 이번 모스크바 주간이 개막했다. 오랫동안 무대와 무대 밖의 경계가 내 삶에 지워져 있었다. 보통 새해와 생일은 무대에서 맞는 편이다.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는 장

2016년에 초연한 음악극 ‘네 별을 떠나지마’는 몇 년 동안 지속적으로 작품을 발전시켰다. 올해도 개막작으로 선정됐는데.(*작품에 대한 간단한 리뷰는 136쪽) 이전까지 소치에서는 보기 드문 공연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소치겨울예술축제는 다양한 초연 무대를 제공해왔다. 올해도 여러 초연작을 선보였다. 작곡가 발레리 보로노프의 ‘타악기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헬리오스’, 쿠즈마 보드로프의 ‘미라지(Mirage)’를 세계 초연했다.

신진 작곡가들에게는 희망이 되는 페스티벌이겠다. 사실 모든 초연에는 어려움이 있다. 우리가 위촉하는 작품이 걸작이 될지, 그저 한 번만 연주되는 작품이 될지 모르지만, 기회를 준다면 각 작곡가들이 이뤄낼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그들을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다음 세대가 어떻게 숨을 쉬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생각, 음악 언어, 말하고 싶은 것들 말이다.

그동안 많은 작곡가들이 당신을 위해 비올라 현대곡을 헌정하기도 했다. 현대음악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동시대 음악에서 행해지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다.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에게도 많은 곡이 헌정됐다. 그는 첼로 레퍼토리뿐 아니라, 첼로라는 악기 자체를 개발한 연주자였다.

‘예술축제(Arts Festival)’라는 명칭처럼, 음악과 컬래버레이션 한 다채로운 예술 작품들을 만났다. 감각이 확장되는 느낌이었다. 현대는 이전과는 다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다. 이제 어린아이들에게 다섯 시간 동안 극장에 앉아서 오페라를 듣도록 강요하면 안 된다. 여러 장르가 복합되면 내레이터 시간이 줄어든다. ‘네 별을 떠나지마’는 1시간 20분 정도의 음악극이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예술을 동시에 즐기며, 그 시간 동안 극장에 있던 관객은 풍성한 마음으로 공연장을 떠날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청중에게 세 시간 분량의 오페라를 듣게 하는 건 힘겨운 일일 테다.

당신은 1986년 모스크바 솔로이스츠를 창단했다. 소치겨울예술축제에서도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모스크바 솔로이스츠가 함께하고 있다. 이 앙상블은 당신에게 어떠한 음악적 영향을 주었나? 모스크바 솔로이스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이며, 가족이기도 하다. 우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걷고 있다. 이들과 함께하니 늘 다음이 기대된다.

한국 비올리스트들이 현재 유럽 주요 악단에서 활약하고 있다. 아무래도 비올리스트가 솔리스트로 활동할 가능성이 적다 보니 오케스트라 입단을 택하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 비올리스트들은 젊은 시절 어떤 경험을 쌓아야 할까? 지속적인 콩쿠르 도전도 중요한 경험이 될 것이다. 연주자의 길을 걸을 수 있는 좋은 연결점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비올리스트들의 실력은 뛰어나더라. 2013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유리 바시메트 콩쿠르에서 입상한 이화윤과 이유라의 기량에 놀랐다.

(*제7회 유리 바시에트 콩쿠르에서 비올리스트 이화윤이 한국인 최초로 대상을 받았다. 대상에 이은 1등상은 이유라가 수상했다.)

2021년은 한국이 ‘러시아 시즌스’ 국가로 선정돼 다양한 문화 교류가 펼쳐질 예정이다. 당신에게 한국은 어떠한 나라인가? 서울은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는 도시다. 한반도에 더욱 평화가 가득하길.  장혜선

‘반 고흐.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 공연이 끝난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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