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읽는 클래식 음악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20년 5월 18일 9:00 오전

SPECIAL 2

 

책으로 읽는 클래식 음악

객석 편집부 선정 음악 서적 31권

 

코로나19 사태로 공연장에서 음악을 만날 수 없는 나날이 계속되는 지금, 자신만의 공간에서 음악을 즐겨보자. 음악에 흥미를 돋우는 입문서부터 음악가들의 사유가 담긴 저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본 위대한 음악가들, 잔잔한 수필과 묵직한 역사까지, 다양한 입맛에 맞춘 클래식 음악 서적 31권을 선정하여 소개한다. 모두 소장할 수 있도록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책으로 선정했다. 듣는 음악에서 읽는 음악으로, 그리고 다시 듣는 음악으로. 음악을 즐기는 다양한 방법이 이 안에 담겼다.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음악평론가 진회숙, 번역가·출판사의 뒷이야기도 만나볼 수 있다. 공연장에서 여러 사람과 즐기던 음악을 글자와 그림으로 조용히 접하며 코로나 사태가 끝나기를 바라본다

기획·글 편집부

 

 

책 둘러보기‐무엇을 읽을까?

PART 1 클래식 음악 입문서 5

PART 2 음악가의 저서 11

PART 3 음악가 평전 10

PART 4 수필과 역사서 5

 

인터뷰‐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INTERVIEW 1 피아니스트 손열음

INTERVIEW 2 음악평론가 진회숙

INTERVIEW 3 번역가 홍은정·이석호

INTERVIEW 4 출판인 최재균·김동연


 

PART 1

클래식 음악, 어떻게 시작할까?

 

클래식 음악의 세계로 이끄는 힘은 단연 ‘흥미’다. 클래식 음악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다채로운 방법으로 전하는, 재미와 깊이를 모두 담은 친절한 클래식 입문서 5권을 소개한다

 

 

비하인드 클래식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유윤종

을유문화사

 

유윤종은 동아일보 문화전문기자로 재직 중이다. 음악 공간 무지크바움과 동아일보 출판국 등에서 클래식 음악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은 클래식 음악에 얽힌 스무 개의 화제를 들추어본다. 탄생 80여 년 만에 슈만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의 존재를 알린 것은 정말 요제프 요아힘의 유령이었을까?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에 담긴 수수께끼의 정체는 무엇일까?

특히 차이콥스키의 죽음과 얽힌 오랜 논쟁은 강한 궁금증을 낳는다. 콜레라에 걸려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그의 죽음 뒤에는 ‘황제 독살 지령설’ ‘비소 자살설’ 등이 따라다녔다. 소문으로 떠돌던 이야기는 여러 학자에 의해 다시 주목받았고, 성소수자였던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상트페테르부르크 법률 학교 동창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몰아넣었다는 설까지 등장했다.

타계 9일 전, 차이콥스키는 교향곡 6번 ‘비창’을 직접 지휘하며 초연했다. 오열하다 꺼지듯이 사라지는 느린 악장은 작품 끝에 삽입돼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는 듯하다. 이 작품이 그의 음악적 유서였을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과연 사실일까 여기에 숨겨진 음악적 암호는 무엇일까? 박찬미

 

 

음악과 미술로 떠나는 여행

클래식 인 더 가든

김강하

궁리

 

김강하는 클래식 전문 방송작가이자 음악해설가로 활발히 활동해온 음악칼럼니스트. KBS 클래식FM의 ‘FM 음반가이드’와 ‘힐링 클래식’, TBN한국교통방송의 ‘굿모닝 코리아’ ‘낭만이 있는 곳에’ 등 다수의 방송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정원 풍경을 담은 그림에서 출발해 클래식 음악에 다가가는 예술교양서다. 책은 세계 곳곳의 정원으로 안내한다. 그 시작은, 모네 ‘수련’ 연작의 배경이 된 프랑스 지베르니. 클로드 모네는 정원 사랑이 각별했다. 자신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백 마디 설명보다 자신이 직접 가꾼 정원을 보는 것이 낫다고 이야기할 정도였다. 특히 지베르니의 정원은 그의 나이 마흔세 살이었던 1883년부터 86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공들여 가꾼 것이었다. 잔잔한 수면 위로 수련이 고고하게 피어 있고 주변으로 갈대와 버드나무, 아이리스 등이 자라던 정원은 모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 주었다.

은은한 수련의 향기를 상상하노라면 들리브의 오페라 ‘라크메’ 중 ‘꽃의 이중창’이 들려온다. 오페라 ‘라크메’는 영국의 지배를 받는 19세기 말의 인도, 어느 브라마 사원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시작된다. ‘꽃의 이중창’은 백조와 푸른 연꽃이 있는 연못에 조각배를 띄워 연꽃을 따러 가는 여주인공 라크메와 하녀 말리카가 함께 부르는 여성 2중창이다. 우아하고 감미로운 선율, 서정적인 가사는 연못이 있는 정원의 정취를 전하는 동시에, 라크마의 숭고하고 고결한 이미지를 부각시키기도 한다. 박찬미

 

 

20세기를 가로지른 음악의 모험

메트로폴리스의 소리들

이희경

휴머니스트

 

이희경은 서울대에서 음악이론과 음악학 석사를, 베를린 예술대에서 리게티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21세기 현대음악과 동아시아·한국 작곡가들에 관심을 두고 연구하고 있다.

1913년 3월 31일, 쇤베르크의 현악 4중주 2번을 듣던 청중은 갑자기 소란을 일으키더니 급기야 주먹다짐을 벌였다. 1952년 8월 29일 뉴욕 작은 마을의 연주회장,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연주하기로 했던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튜더는 4분 33초 동안 초시계만 쳐다보고 있다가 자리를 떠 버렸다. 이 일화들은 무조음악의 불협화음과 상식을 뒤엎는 전복성이라는, 현대음악에 대한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다.

때로 현대음악 작곡가들은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거칠고 꼴사나운 소음’을 일으키는 말썽꾼 취급을 받곤 했지만, 그들은 낭만적인 선율만으로는 새로운 시대를 말할 수 없다고 믿었다. 이 책은 쇤베르크·아이슬러·거슈윈·케이지 등 음악과 소리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삶과 음악 세계를 20세기의 사회·정치·문화 흐름 속에서 입체적으로 그린다. 저자는 음악학자로서 현대음악이 낯설고 불편하게 들리는 이유와 배경을 차근차근 짚어 주며 좀 더 편안한 만남을 주선한다. 우리 시대의 소리와 관점을 담은 현대음악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다면 펼쳐보시길. 아는 만큼 들린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기대하게 하는 책이다. 박찬미

 

 

친절한 피아니스트의 음악 수업

클래식 수업

김주영

북라이프

 

김주영(1970~)은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칼럼니스트다. 다양한 매체에서 칼럼 연재를 하고 있으며, 다수의 공연과 라디오에서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는 연주 경험을 토대로 곡의 구성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는 피아니스트이자 칼럼니스트다. 첼로 소나타의 세계를 소개하는 장에서는, 함께 연주하는 피아니스트의 녹록지 않은 입장을 대변하기도 한다. 저음으로 내려가면 전달력이 떨어지는 첼로의 특성에 맞춰 ‘소리 큰 연주자’ 피아니스트가 순발력 있고 예민하게 음량을 조절해야 하는 임무를 수행한다는 설명과 함께.

책은 1월부터 12월까지 열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계절의 변화에 맞춰 그에 어울리는 음악 이야기를 풀어간다. 각 파트가 끝날 때마다 등장하는 ‘레슨(lesson)’ 코너에서는 ‘지휘자의 지휘봉’ ‘음악가와 음식’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피아노곡’ 등 클래식 음악에 더욱 흥미를 느낄 만한 정보들을 담고 있다. 그때그때 자신의 상황에 따라 필요한 부분을 펼쳐 음악을 들으며 보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방법이다. 박찬미

 

 

음악으로 채우는 당신의 하루

1일 1클래식 1기쁨

클레먼시 버턴힐

김재용 역

윌북

 

클레먼시 버턴힐(1981~)은 작가·방송 진행자·저널리스트·바이올리니스트 등 다양한 이력을 지녔다. BBC 라디오3 ‘브렉퍼스트’ 등 수많은 TV·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밀라노 스칼라 극장, 빈 무지크페라인에서 연주했다.

“하루 분량의 음악은 영혼을 지탱하는 한 가지 방식이다.”

저자는 음악 라디오를 진행하며 ‘클래식 음악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반복된 고민을 듣고, 자신의 보물 상자를 세상에 공개하기로 했다. 그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366개의 음악을 엄선해 리스트를 채웠다. 일 년 내내 그날의 계절감과 역사적 의미를 짚어가며 신중히 골라, 하루 한 곡을 추천한다. 자타가 공인하는 불후의 명곡은 물론 숨겨진 보석같은 곡까지 다채로움을 자랑한다. 다소 낯선 현대 작곡가의 음악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여성 작곡가의 음악도 조명했다.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하기 전, 이 책과 함께 10분간의 작은 여유를 누려보는 건 어떨까? ‘1일 1클래식 1기쁨’은 매일 한 곡의 클래식 음악을 소개하며, 그와 관련된 한 페이지 분량의 이야기를 전한다. 작곡가의 흥미진진한 비하인드 스토리나 해당 음악의 탄생 배경까지 유쾌한 목소리로 들려주어 금세 읽어낼 수 있다. 페이지마다 적힌 1년의 날짜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더욱 풍성해진 당신의 일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박찬미

 

클레먼시 버턴힐 ©media.wnyc.org

#책 속으로

#클레먼시 버턴힐

#1일 1클래식 1기쁨

#168쪽

#윌북

 

대지의 노래

5악장 ‘봄에 취한 자’

구스타프 말러

 

1907년 여름은 구스타프 말러에게 괴로운 시기였다. 그는 팽배한 반유대주의 분위기 속에서 빈 오페라 극장의 감독직을 사임해야만 했다. 네 살배기 딸은 성홍열과 디프테리아로 세상을 떠났고, 자신도 심장 질환을 진단받았다. 그는 몇 년 뒤 이 병으로 세상을 떠날 운명이었다. 말러는 제자이자 부지휘자였던 친구 브루노 발터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얻었다고 생각한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네. 갓난아이처럼 다시 걷는 법을 배워야만 했지.”

오늘 듣는 이 곡은 말러를 도약하게 해주었다. 그해 초 어느 친구가 그에게 독일어로 번역된 고대 중국 시집을 선물해주었다. 말러는, 창조의 열정에 사로잡혀 이 책에 들어 있는 시 몇 편을 가사로 곡을 쓰기 시작했다. 이 서사적 연가곡집은 그가 남긴 가장 위대한 ‘교향곡’으로 언급되곤 한다. 안타깝게도 말러는 이 곡이 연주되는 것을 듣지 못하고 1911년 오늘 세상을 떠났다.

 

세상살이가 한낱 커다란 꿈이거니

어찌하여 힘겹게 살아가는가.

그러니 종일토록 술에 취해

쓰러져 집 마당에 누워 있네

 

오늘 듣는 이 곡의 가사가 된 시를 쓴 이백은 어느 날 밤 호수에서 노를 젓던 중 물에 비친 달과 입을 맞추려 몸을 숙이다 물에 빠져 죽었다고 한다. 아마 지어낸 전설이겠지만 나는 그 광경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야기를 들은 이후 내게 있어서 말러의 이 곡은 달과 입 맞추는 음악이 되었다.

 

PART 2

음악가가 지은 책

 

음악가가 전하는 음악 이야기. 그들의 시선은 과거를 향하기도, 현재를 향하기도, 또 미래를 향하기도 한다. 그들의 깊은 언어는 음악만큼이나 매력적이다

 

벌거벗은 노래에 옷을 입히다

리트, 독일예술가곡

시와 하나 된 음악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홍은정 역

포노

 

20세기를 대표하는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1925~2012)는 평생을 리트에 헌신했다. DG·EMI와 수많은 음반을 작업했으며, 특히 슈베르트 ‘겨울나그네’는 40여 년간 7종의 음반을 남길 정도로 깊은 애정을 보였다. 저서로는 ‘독일 가곡 가사집’ ‘슈베르트와 가곡’ 등이 있다.

서정시를 토대로 한 예술가곡이 지금은 비록 팝 문화에 밀려나고 찾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우리의 감성을 깊이 자극할 수 있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런 예술이 세상 밖으로 밀려나도 괜찮겠는가?(136쪽)

“예술가곡이 음악 내에서 쇠퇴하게 된 이유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무조건적인 긍정을 요구하지 않는 그의 담담한 시선이 오히려 독일가곡에 대한 궁금증을 낳는다.

피셔 디스카우는 베를린 태생의 뼛속 깊은 독일인이다. 음악학자로 10여 권의 책을 썼다. 지휘·반주·미술 등 다방면의 예술 활동을 선보였으나, 그를 대표하는 것은 단연 ‘독일가곡’이다. 공식적으로 소화한 리트만 해도 3천여 곡에 이르고, 출시한 음반만 해도 400장이 넘는다. 가곡 작곡가들의 전기와 가사집까지 펴내며 다각도로 독일 가곡에 헌신한 그는 그야말로 ‘독일가곡의 완벽한 교과서’다.

이 책은 피셔 디스카우가 자신의 길을 회고하며 정리한 마지막 기록이다. 독일예술가곡의 시작에서 지금까지, 신 독일 악파와 신 빈 악파를 비롯해 15인의 작곡가를 각각 탐구한다. 저자의 목표는 완벽함에 있지 않다. 그보다 우리가 소홀히 대해왔던 음악 장르를 새롭게 되살리는 것에 가치를 두고, 이를 반드시 지켜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묻는다. “이런 예술이 세상 밖으로 밀려나도 괜찮겠는가?” 이미라

 

 

언제 어디서나 도움이 되는

젊은 음악가를 위한 슈만의 조언

로베르트 슈만/

스티븐 이설리스

편집 및 해설

정세진 역

 

‘음악가들의 음악가’로 불리는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1958~). 슈만이 태어난 츠비카우 시에서 수여하는 슈만 상(2000)을 받은 그가 200년 전 슈만의 글을 재구성해 해설을 덧붙였다.

KBS 클래식FM ‘노래의 날개 위에’ 진행자이자 아나운서인 정세진이 번역했다. 그녀는 “강물에 몸을 던져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자 했던 슈만(1810~1856)을 잊게 하는, 명확하고 단호한 그의 목소리가 담겨있다”고 한다. 또한 “‘어린이 정경’, 그 아련한 피아노 선율 같은 다정한 목소리도 담겨 있다”며 “무언가를 제대로 이룬 사람의 이야기엔 시간을 관통하는 보편성이 있다”고 전한다.

슈만의 재능은 작곡뿐 아니라 글쓰기에서도 빛을 발했다. 인용된 글은 피아노 작품집 ‘어린이를 위한 앨범’(1849)을 발표할 무렵 작성된 것이다. 특히 젊은 음악가들에게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진심 어린 조언을 전한다.

열정으로 가득한 젊은 음악가을 향한 “열정 없이는 예술에서 그 어떤 위대한 것도 이룰 수 없다”는 슈만의 말은 더욱 힘을 실어준다. 그러나 열정만 앞서고 성실한 하루를 보내는 데 소홀해질 즈음 다음의 말을 새겨보자. “부지런하게 연구하고 끈기를 갖는다면, 당신은 더 높은 곳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이에 스티븐 이설리스는 “한 사람을 음악가로 성장시키는 것은 끊임없는 불만족”이라고 덧붙인다. 그러나 당신이 만약 재능으로 인해 좌절하는 젊은 음악가라면, 슈만이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는 “아마도 천재만이 천재를 완벽하게 이해할 것”이다. 다시, 스티븐 이설리스의 첨언. “나머지 우린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박서정

 

 

옆집의 클래식 음악가

클래식 음악의

괴짜들(전2권)

스티븐 이설리스

고정아 역

애덤 스토어 그림

비룡소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1958~)가 어린이를 위해 쓴 클래식 음악 입문서.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을 ‘슈퍼맨’ 바흐, ‘장난스러운 멋쟁이’ 모차르트, ‘불같은 성미의 영웅’ 베토벤처럼 친근하게 소개한다.

헨델·바흐·하이든·모차르트·베토벤 등 클래식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의 숨겨진 일화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쉽고 친근하게 소개하는 책이다. 음악책이지만 그림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 흥미로운 화보들이 풍부하다. 그림을 그린 애덤 스토어는 영국 노리치 미술 대학과 브라이턴 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전공했다.

저자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흥미진진하게 펼쳐 나가는 음악가들의 모습을 통해 독자들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흥미를 키우기를 바랐다. 예컨대 슈만은 피아노 연주 실력을 높이려고 손가락 힘을 키우는 기계를 만들었다가 오히려 손을 다치고 말았다는 일화가 있다. 수염이 덥수룩한 브람스는 속마음은 따뜻했으나 고슴도치 같이 까칠하게 굴었으며, 공들여 작곡한 곡을 끊임없이 고치고 또 고쳐서 완벽한 작품을 만들려고 애썼다. 괴짜 같은 음악가들의 열정과 생애를 살펴보다 보면, 클래식 음악이 한층 가깝게 느껴진다. 박서정

 

 

현재진행형의 삶

기억과 회상

예브게니 키신

김진성 역

정원출판사

 

구소련 출신으로 단숨에 전 세계 클래식 음악의 중심에 서기까지,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1971~)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질문에 답을 내놓은 자서전이다.

예브게니 키신은 6세에 모스크바 그네신 음악학교에서 음악 인생의 유일한 스승, 안나 파블로브나 칸토르를 사사했다. 청중은 키신의 짧은 프로필에 실리지 않은 뒷이야기를 낱낱이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키신은 음악이 아닌 것으로는 자신을 설명하지 않는 편이었다. 많은 부분이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가 지천명을 앞두고 지금껏 쏟아진 수많은 질문에 대한 응답을 글로써 내놓았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종종 같은 종류의 질문들을 받곤 했다. 그래서 이 모든 질문들에 대한 답으로 한 권의 책을 쓰면서, 동시에 독자들이 흥미 있어 할지 모를 다른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자서전은 이러한 서문으로 시작되며, ‘어린 시절’ ‘청년 시절’ ‘여러 가지 것들’이라는 부제 하에 세 부분으로 나뉜다.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성공하기까지 그가 겪어온 삶의 경험과 음악적 이야기들이 담담한 어조로 쓰여 있다. 박서정

 

 

피아니스트의 삶과 사유

이제 당신의 손을 보여줘요

알렉상드르 타로

백선희 역

풍월당

 

알렉상드르 타로(1968~)는 파리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에 피아노를 시작했고, 열네 살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했다. 바로크부터 현대음악까지 폭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지금까지 서른 장이 넘는 음반을 냈다.

나는 한 남자, 한 여자를 위해 연주한다. 나의 피아노 소리는 어떤 특별한 사람을 향해 펼쳐지며, 독주회는 은밀히 헌정된다. 오후, 아니면 무대로 들어서기 몇 분 전에 그 인물이 정해진다. 어느 한 사람을 생각한다는 사실 자체가 내게 푸근함을 안겨준다.(193쪽)

공연 직전, 타로가 대기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타인’으로 인식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피아노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자신의 몸을 먼저 언급한다. 어릴 때 겪었던 불면증이 남긴 흔적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복용한 알약들의 이름은 마치 시처럼 이어진다. 이러한 시적 묘사들은 책 전체에서 아름답게 빛난다. 무명 시절, 미술관 지하에서 무성영화에 반주를 했던 에피소드는 단편 소설처럼 느껴지고, 세상을 떠난 선생님의 장례식에서 그가 읽은 추도사는 짧은 시를 연상케 한다. 유머도 가득하다. 타로는 공연 중 들리는 기침 소리를 분석하고 분류하는 우아한 유머를 구사한다.

이 순간들은 결국 타로가 콘서트 피아니스트로서 겪고 관찰한 일들, 즉 그가 살아가는 세계에 관한 묘사로 확대된다. 일류 피아니스트가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들이 책 안에 가득하다. 그는 과거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자신의 조상을 찾듯이 피아노의 역사를 언급하고, 이를 통해 피아니스트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를 추적한다.

책은 확고한 주제의식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종착한다. 그 주제는 바로 콘서트 피아니스트의 삶. 타로는 다양한 소재를 자유롭게 이어 나가며 풍부한 사색을 담은 에세이를 창조해냈다. 이 에세이는 피아니스트의 내면을 가장 풍부하게 담아낸 기록 중 하나로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장혜선

 

겨울 나그네 완전 해석

겨울 나그네

이언 보스트리지

장호연 역

바다출판사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1964~)는 역사와 철학을 전공한 독특한 이력의 성악가다. 역사·사회·문화적 측면에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24곡을 낱낱이 파헤친다.

슈베르트의 노래들로 무대를 꾸밀 때 ‘겨울 나그네’는 몹시 매력적인 예가 된다. 이 작품은 조성(먼 조성과 가까운 조성, 장조와 단조)을 잘 배치하여 큰 효과를 거둔다. 예컨대 조성 관계를 통해 기나긴 여행에서 노래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나타낼 수 있다.(292쪽)

‘겨울 나그네’는 보스트리지의 글과 노래를 통해 19세기 초 독일, 겨울에 길을 나서는 나그네의 여정을 상상하게 하는 책이다.

이언 보스트리지는 각국의 콘서트홀에서 100차례 이상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부른 세계적인 성악가다. 그는 대학에서 역사와 철학을 전공했고,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권유로 29세에 전업 성악가가 되었다.

독특한 이력은 이 책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저자는 노랫말이 된 시어와 시적 정서를 강화하는 음악을 해석하는 데 뮐러뿐 아니라 괴테·토마스 만 같은 당대 작가들의 작품, 도깨비불이나 빙하 같은 현상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인식까지 들어가며 ‘겨울 나그네’의 세계를 재현한다.

24곡을 책 전체에 걸쳐 치밀하게 해부하여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당시의 모든 것을 눈에 보일 듯, 귀에 들릴 듯 가까이서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슈베르트의 시대와는 다른 시간, 다른 장소에서 연가곡을 들으면서도 나그네에 공감하고 음악을 새롭게 들으며 거기에 몰두한다. 박서정

 

 

단순한 음악 속의 비

음악 없는 말

필립 글래스

이석호 역

프란츠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 필립 글래스(1937~)가 자신의 음악세계를 구성하는 지나온 삶의 시간과 공간, 사람들을 담담히 회고한다.

영화감독 박찬욱은 필립 글래스에 대해 “우리 시대의 모차르트”라고 극찬했다. 필립 글래스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2013)의 음악 작업을 했다. 패턴·음정·박자 등을 반복하는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가로 알려진 필립 글래스의 작품은 반복이 많이 나와 어지럽기도 하다. 자서전에서 그는 자신의 음악을 스스럼없이 해설한다.

내 음악에 대한 가장 흔한 오해 중 하나는 그저 시종 반복되기만 한다는 것이다. 사실은 결코 그렇지가 않다. 만약 그저 반복적인 음악이라면 도저히 들어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내 음악을 들어줄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는 것은 바로 변화다. (…) 「병진행하는 음악」이나 다른 여러 초기작을 들어 보면 알겠지만, 그것들이 흥미로운 점은 하나같이 있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다는 데 있다.(320쪽)

담담하게 써내려간 자서전을 통해 필립 글래스의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미술·영화 등에 대한 식견과 삶의 경험을 알 수 있다. 전위적인 오페라와 교향곡의 작곡가이자, 영화음악·대중음악 작업에도 활발한 경계 없는 예술가를 깊이 이해하게 된다. 박서정

 

 

갈등을 허무는 음악 우정

평행과 역설

에드워드 사이드·

다니엘 바렌보임

노승림 역

마티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는 서구인들이 말하는 동양의 이미지가 편견과 왜곡에서 비롯된 허상임을 체계적으로 비판한 ‘오리엔탈리즘’(1978)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다니엘 바렌보임(1942~)은 베를린 도이치 슈타츠오퍼 음악감독·베를린 슈타츠카펠레 상임지휘자로 활동 중이다.

우리는 모든 관심을 공유하는 친구였다. 이스라엘 사람이었던 다니엘과 팔레스타인 사람인 내가 오슬로 평화 협정의 진행 상황을 서로 다른 기대와, 적어도 처음에는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바라보고 있었다는 점은 우리의 우정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했다.(14쪽)

나치를 피해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뒤 이스라엘 출신의 정착한 바렌보임과 이스라엘의 건국으로 고향 땅을 떠나야 했던 팔레스타인 출신의 사이드는 완전히 상반된 인생 여정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태어난 고국의 역사에 대해 서로 동의하지 못한다’고 실토할 정도다. 하지만 다니엘 바렌보임과 에드워드 사이드는 1990년대 초 런던의 한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만나 아름다운 우정을 쌓아나갔다.

책에 담긴 이들의 대담은 만날 수 없던 두 문화의 화해다. 두 거장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역사, 정체성과 민족주의, 바그너와 나치즘, 문학과 음악에 관해 빛나는 통찰을 풀어 놓는다. 문학과 음악이라는 다른 영역에서 같은 지점을 바라보면서도(평행)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책과 오슬로 협정에 관한 어긋난 견해(역설)를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리고 이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선다. 이들이 함께 창단한 서동시집 오케스트라는 상징적인 결실이기도 하다. 배제와 억압이 빚는 폭력이 여전히 만연한 오늘, 더 큰 ‘전체’를 향해 내딛는 이들의 대담은 우리 안의 평행과 역설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박찬미

 

 

미래를 향한 거장의 외침

젊은 예술가에게

기돈 크레머

홍은정·이석호 역

포노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1947~)는 독일 바흐주간 페스티벌과 베를린 필하모니를 통해 데뷔한 후 오스트리아에서 창단한 크레메라타 무지카에서 장장 30년 동안 예술감독을 지냈다. 1997년 크레메라타 발티카를 창설해 전 세계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몇 년 전, ‘BBC 뮤직 매거진’이 1,000명의 현역 바이올리니스트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살아 있는 가장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1위로 꼽힌 주인공, 기돈 크레머. 연주자라면 다른 무엇보다 ‘음악’ 자체에 헌신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이 담긴 책이다. 크레머는 국내에 나와 있는 수십 종의 음반으로 잘 알려진 바이올리니스트이지만, 이 책으로 인해 맛깔스런 글솜씨의 에세이스트로도 인식된다.

가상의 젊은 피아니스트 아우렐리아와 현대 음악계의 모든 폐해를 가진 오케스트라를 상정해 젊은 예술가에겐 조언을 전하고, 동시에 현실을 꼬집는다. 1부는 가상의 젊은 피아니스트인 아우렐리아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들을 모았고, 현대 음악계의 모든 폐해를 가진 오케스트라(일명 ‘무능력자 연합 오케스트라’)를 상정해 현실을 반어적으로 꼬집은 2부가 이어진다. 미래의 연주자들에게 전하는 당부는 ‘연주자의 십계명’이라 이름 붙인 3부에서도 계속된다. 박찬미

 

 

일본 문학의 두 거장, 오자와 세이지를 만나다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오자와 세이지·

무라카미 하루키

권영주 역

비채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

오에 겐자부로·

오자와 세이지

정회성 역

포노

 

오자와 세이지(1935~)는 뉴욕 필하모닉 부지휘자·보스턴 심포니의 음악 감독·빈 국립 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을 역임했다. 무라카미 하루키(1949~)는 ‘노르웨이의 숲’ ‘1Q84’ 등으로 하루키 신드롬을 낳은 주인공이다. 오에 겐자부로(1935~)는 ‘사육’ 등을 출간하고 일본 작가로는 두 번째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자타공인 음악 애호가인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오자와 세이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글을 쓸 때 리듬을 중시한다는 소설가와, 음악 안의 자음과 모음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지휘자의 만남. 클래식 명곡을 중심으로 두 거장 사이에 흐르는 대담은 솔직 담백하다. 2010년, 무라카미의 자택.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은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여러 피아니스트와 지휘자, 악단의 조합으로 한참을 들으며 대화를 주고받는다. “여기 말이죠. 여백을 슥 뒀잖아요? 이거, 굴드가 아까 여백을 둔 곳하고 같은 데거든요.” 미츠코 우치다의 연주를 듣던 오자와의 말이다. “루돌프 제르킨은 피아노를 이렇게 정신없이 치는 사람이 아닐 텐데요. 이 시대엔 이런 연주가 유행이었을까요?” 솔직한 아마추어 무라카미는 음악 애호가인 독자들이 궁금해할 법한 질문을 적재적소에 던지며, 동시에 자신의 음악관을 피력한다.

오랜 세월 동안 명성 있는 악단과 인연을 맺어온 오자와 세이지에게서 역사적 음악가들의 에피소드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또한 책의 소소한 재미다.

오자와의 보다 깊은 예술론은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에서 만날 수 있다. 오에 겐자부로와의 대담으로, 당대 최고의 소설가와 인문학적 통찰을 나눈다는 점이 흥미롭다. 두 사람은 1935년에 태어난 동갑내기다. 이제 여든을 훌쩍 넘긴 두 거장은 제국주의 시기, 2차 세계대전과 전후의 혼란기, 경제 발전기를 거쳐 온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예술의 가치를 깊이 있게 논한다. 다음 페이지에서 ‘예술은 개인적이어야 한다’는 이들의 대화를 소개한다. 박찬미

 

 

 

오자와 세이지 ©Michiharu Okubo, Decca

#책 속으로

#오자와 세이지·오에 겐자부로

#문학과 음악이 이야기한다

#25~84쪽

#포노

 

오자와 음악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것입니다. 물론 어딘가에 가서 지휘를 한다거나 청중과 오케스트라가 없으면 음악회를 열 수 없는 점 등을 무시해선 안 되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요. 저도 순전히 개인적인 이유로 음악을 시작했어요.

오에 저는 일본에 없는 소설을 쓰자는 생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눈을 떠 보니 오자와 씨 말씀대로 아주 가까운 곳, 그러니까 바로 제 곁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가 있더군요. 그때부터 아이는 제 삶과 일의 에너지원이었습니다. (…) 아무튼 저는 소통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통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개성이 뭔지 생각할 줄 안다고 봅니다. 오자와 씨도 말씀하셨지요. 음악적 재능은 개개인의 개성에서 나오는 것이라고요.

오자와 회사도, 소사이어티도, 조직도, 심지어 국가도 중요하지만, 저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어요.

오에 국가란 무언가 다른 수준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힘을 지닌 쪽으로 나아가야 해요. (…) 한 사람의 개인으로 똑바로 서는 건 다른 개인에게 디렉션이 있는 음을 전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겁니다. 그런 디렉션은 당연히 맞은편에 사람이 서 있어야만 제구실을 하겠지요. 다른 개인이 있어야 방향을 알고 거리를 파악해서 힘껏 공을 던질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요컨대 개인으로 서는 것 자체를 에고이즘이라든가 개인 중심주의로 볼 게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원칙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지요. 개인이 혼자 설 수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는 인식이 필요해요. (…) 국가와 사회부터 생각할 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개인과 일대일로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오자와 아까 21세기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했는데, 새로운 시대인 만큼 일본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할 거라고 생각해요. ‘새로운 개인’이라고 말해도 되겠지요. 그러니까 한 개인으로서 책임을 지는 사람, 개인으로서 자긍심을 지닌 사람, 이런 사람들이 많아져서 일본이 지금과 다른 나라, 다른 사회가 되지 않겠나 싶은 겁니다. 막연하게나마 그렇게 될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정말로 모든 젊은이가 ‘새로운 개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야 머지않아 세상을 떠나니까 자연스레 새로운 사람들이 등장하겠지만, 스스로 노력해서 ‘새로운 개인’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책 속으로

#기돈크레머

#젊은 예술가에게

#117~120쪽

#포노

 

기돈 크레머 ©Kass Kara

지금까지도 내게 이런 부탁을 해오는 사람들이 있다. “저와 함께 연주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럼 제 경력에 크게 도움이 될 거 같은데…….”

너무 무의미하고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왜 그러냐고 대답은 너무 단순하다. 자기 목소리는 타인을 통해 얻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명한 이름에 매달리려는 시도나 동료 뒤에 숨고 싶은 바람은 진정한 예술가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려는 건 스스로에게 실패를 선언하는 것과 같다.

방금 떠오른 생각인데, 작곡가들 역시 인정과 명성을 갈망한다(유명한 예술가의 연주로 자신도 유명해질 수 있다고 믿는 작곡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동료 작곡가의 스타일이나 어법 혹은 표현을 가져다쓰거나 빌려오는 게 과연 자신에게 이로운 일일까 그러한 행동의 배후에는 ‘네 자리에 내가……’라는 사고가 자리하고 있다. 이런 식의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사고를 하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난 이런 이들을 많이 보아왔고, 무대 위에서는 바로 내 등 뒤에서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

젊은 연주자는 반드시 자기 확신, 스스로의 힘과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때 대가의 도움은 많은 이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이들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는다. 충분히 받을 만한 것 같은데도 기회가 한 번도 주어지지 않는 이들도 많다. (…)

난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믿는다. 자기 자신, 자기만의 특징, 자기만의 길을 찾아내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장 우선시되어야 할 과제이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자신은 학교 덕분이 아니라 학교를 다녔음에도 인생에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예술은 편안하게 기댈 만한 것이 있는 곳에서는 시작될 수 없다. 외부에 의존해서 자기 계발을 하거나 (정당한 방식이든 아니든) 이미 ‘출세’하고 인정받은 사람들의 꽁무니를 좇으려는 곳에서도 시작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그저 화려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야 진정한 예술을 찾을 수 있다.

그 깊은 ‘층’은 요행으로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인맥이나 여론의 조작, 타인의 질투를 받을 만큼 성공한 이들의 호의로 얻어질 수도 없다. 또 성공한 이들을 모방한다거나 피상적인 모습으로 승부를 걸고 유혹한다고 해서 그 깊이에 이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정한 오르페우스가 되고자 한다면 사랑을 찾아 나서고 그 길에서 요구되는 것들을 견뎌내야만 하며, 자신에게 유일한 길잡이이자 순수함과 가치의 척도인 에우리디케를 간절히 원해야 한다.

 

 

 

#책 속으로

#필립 글래스

#음악 없는 말

#88~89쪽

#프란츠

 

필립 글래스

그날도 설레는 마음으로 박스를 뜯었고, 쇤베르크 박스 세트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아버지는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얘야, 대체 이게 다 뭐냐 가게 망하는 꼴을 보려고 작정한 거냐 ”

나는 현대음악의 새로운 걸작이에요, 그러니까 반드시 들여놓고 팔아야 할 물건이라고요, 하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한참 동안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았다. 세상물정 모르는 막내아들의 돌발 행동에 어지간히 놀랐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4년 동안 장사를 도우며 배운 녀석이 그토록 멍청한 짓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납득하지 못했다. 마침내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좋다, 그러면 이렇게 하자. 일단은 매대에 진열해 두어라. 마지막 세트가 나가면 그때 내게 알려 다오.”

이후 나는 7년 동안 고향에 갈 때마다 가게에 들러 쇤베르크 세트부터 체크했다. 마침내 줄리아드를 거의 마칠 무렵이 되어서야 마지막 세트가 팔려 나갔다. 빈자리가 생긴 것을 보고 의기양양해져서 아버지께 달려갔다.

“쇤베르크가…… 다 팔렸나 봐요, 아버지!”

그런 경우에도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아버지는 차분하게 이렇게 말했다.

“그래, 얘야, 그래서 무슨 교훈을 얻었니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아버지의 말을 기다렸다.

“시간만 넉넉하면 세상에 팔지 못할 물건은 없는 법이다.”

그것은 바로 먼 훗날 오넷 콜맨이 해 준 말이기도 했다.

“음악계와 음악 비즈니스는 완전히 다른 거라네.”

우리는 그런 식으로 배웠다. 아버지는 형과 내게 무척이나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쇤베르크 세트의 경우에서 보듯 모든 교훈을 쉽게 얻은 것은 아니었다.

유럽 예술 음악이 가진 소리의 세계는 어린 시절부터 내 안의 한 부분을 단단히 차지했다. 특히 실내악이 그러했다. 하지만 그런 영향이 내 음악의 표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은 거의 50년의 세월이 흘러 소나타나 무반주 현악곡을 쓰면서부터다. 크로노스 사중주단을 위해 쓴 현악 사중주가 몇 곡 있고 교향곡도 적잖이 쓰기는 했지만, 사십 대부터 육십 대 사이에 쓴 그러한 작품은 과거에 대해 진 빚이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런데 칠십 대가 되어 쓰는 요즘 곡에서는 과거의 영향이 느껴진다. 어찌 이리되었는지 우습다면 우스운 이야기지만, 어쨌든 사실이 그렇다.

 

 

PART 3

위대한 음악가를 찾아서

 

예술가의 삶은 음악과 함께 흐른다. 그들을 둘러싼 삶과 사랑, 그리고 수많은 목소리가 사람 냄새나는 예술가의 세계를 그린다

 

살아있는 전설, 마르타의 삶과 음악

마르타 아르헤리치

-삶과 사랑, 그리고 피아노

올리미에 벨라미

이세진 역

현암사

 

올리미에 벨라미(1961~)는 프랑스 태생의 클래식 음악 전문 기자다. 해박한 배경지식과 자료조사, 인터뷰를 통해 써낸 ‘마르타 아르헤리치’는 뜨거운 호응과 함께 15개국에서 번역·출간됐다.

‘마르타 아르헤리치-삶과 사랑, 그리고 피아노’는 20~21세기의 클래식 음악사를 관통하며 수많은 역사적 발자취를 남기고 있는 마르타 아르헤리치(1941~)에 관한 최초의 전기다.

“너 피아노 못 치지”라는 친구의 말에 발끈해, 한 번도 쳐보지 않은 피아노를 연주해 보였던 어린 마르타는 그로부터 13년 후인 1957년, 부소니 콩쿠르와 제네바 콩쿠르를 동시에 석권하고, 다시 8년 뒤인 24세에 쇼팽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며 ‘살아있는 피아노의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마르타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음악적 취향이 확고했고 그 취향은 평생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일곱 살 때 악보에 이렇게 적었다. “바흐는 음악의 아버지, 베토벤은 음악의 신.” 지금도 그녀는 이 글에서 쉼표 하나 바꾸지 않을 것이다.(43쪽)

그는 연주를 곧잘 취소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 불안정한 성격마저도 예술의 한 부분으로 인정받을 만큼 매력적이다.

책은 마르타의 고향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작해 빈, 바르샤바, 브뤼셀 등 그가 일생동안 발 디딘 도시를 따라가는데, 그 속에 오가는 이야기가 너무나 솔직하다. 무대 위의 완벽함 뒤로 펼쳐지는 격정적이고 불안정한 삶과 사랑 이야기가 어깨에 늘어뜨린 그녀의 풍성한 머리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인간으로서, 사랑받기 위한 한 여성으로서, 성이 다른 세 아이의 엄마이자 제한할 수 없는 신념의 예술가로서. 생생한 증언들이 그의 삶을 이야기 한다. 이미라

 

 

구스타프 말러, 위대한 세기말의 거장

구스타프 말러 1·2

옌스 말테 피셔

이정하 역

을유문화사

 

뮌헨대학 극장학과 교수 출신인 옌스 말테 피셔(1943~)는 ‘쥐트도이체 차이퉁’ ‘메르쿠어’지에 정기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위대한 목소리들’(1993), ‘리하르트 바그너의 음악에 나타나는 유대 민족성’(2000) 등이 있다.

“언젠가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 말러(1860~1911)의 말은 일종의 예언이 되었다. 말러 탄생 100주년이었던 1960년에 본격적으로 타오르기 시작한 말러 열풍이 한때의 유행에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것.

1, 2권을 합쳐 총 1814쪽에 달하는 말러 평전은 마치 그의 교향곡을 처음 마주할 때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깊은 호흡과 집중력, 그리고 체력과 도전정신을 요하기 때문. 그렇다면 장대한 교향곡의 마침표와 함께 마주했던 전율 또한 책의 마지막 머리에서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말러의 생김새에만 무려 30페이지를 투자했다. 그만큼 치밀하다. 말러의 서신, 그의 아내와 여자친구, 동료가 남긴 기록을 촘촘히 교차시키며 그의 실제 모습에 근접해 간다. 음악계의 권력 게임에 노련한 정치적 인물이자 강인한 체력을 지녔던 말러, 이제 그를 만나볼 시간이다. 이미라

 

 

지휘자 29인이 만난 말러

말러를 찾아서

볼프강 샤우플러

홍은정 역

포노

 

독일의 음악학자·저널리스트 볼프강 샤우플러(1963~)는 빈에서 음악학을 공부했다. 오스트리아 방송공사 저널리스트,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이사회 대변인, 음악 드라마투르그로 활동했으며, 2006년부터 유니버설 에디션 홍보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말러에 관한 세계 정상급 지휘자 29인의 인터뷰. 말러 생전부터 그의 악보를 출간해온 유니버설 에디션이 엮은 것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말러가 재평가받게 된 과정을 설명한다. 타계한 아바도·불레즈·마젤·길렌·얀손스의 생전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블롬슈테트·하이팅크·메타·샤이·파파노·래틀·두다멜 등 하나만도 벅찬 이름들이 말러라는 거대한 그릇에 담겼다. 이들은 앞 다투어 말러와의 인연을 늘어놓는 한편, 음악관과 ‘말러가 20세기의 재앙을 예측했는가 ’라는 질문 앞에서는 충돌하기도 한다.

바렌보임은 반항심으로 말러 지휘를 시작했고, 샤이에게는 새로운 언어의 우주로, 두다멜에게는 특별한 존재로, 래틀에게는 지휘자가 된 동기로 말러가 존재했다. 반면 하이팅크에게는 늘 두려운 존재였다. 그러나 결국 이들은 ‘말러의 음악은 내면적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용한다’는 공통의 목소리를 낸다. 말러의 음악만큼이나 지휘자들의 답변이 다채롭다. 이미라

 

 

만들어진 ‘위대한 지휘자’

거장 신화

노먼 레브레히트

김재용 역

펜타그램

 

노먼 레브레히트(1948~)는 영향력 있는 음악평론가로 손꼽힌다. ‘위대한 지휘자’는 논쟁적인 글쓰기로 알려진 그의 대표작으로, 출간 이후 오랫동안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카라얀이 나치에게서 얻은 또 하나의 통치 방법은 바로 분열과 정복이었다. 그는 히틀러가 교묘하게 괴벨스와 괴링을 경쟁하게 하고 또 이 두 사람을 힘러와 적대시하게 만든 방법을 관찰한 것만으로, 최고의 자리에서 생존하는 기술을 습득했다. 카라얀은 언제나 두 곳 이상의 음반사나 여러 오케스트라와 동시에 작업을 했다.(254쪽)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클래식 음악의 종말을 전제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중은 클래식 음악을 외면하고, 오케스트라는 생존에 급급하며, 음악회 관객과 음반 판매가 감소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나아가 클래식 음악가 쇠퇴를 가져온 것이 바로 한 세기에 걸쳐 진행된 ‘위대한 지휘자’ 신화라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위대한 지휘자란 “비음악적인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져 상업적 필요에 의해 유지되는 존재”다. 그렇다고 이 책의 의도가 특정 지휘자를 ‘저격’하는 데 있지는 않다. 저자는 이 책의 목표를 “지휘의 메커니즘을 파고들어서 지휘라는 무한히 매혹적인 전문 분야의 사회적, 심리적, 정치적, 경제적 역학을 규명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작곡가 궁전의 겸손한 하인이었던 지휘자가 어떻게 음악의 운명을 좌우하는 주인으로 신분이 상승해 오늘날의 거장 이미지를 만들어 냈으며, 권력의 정점에서 어떻게 멸종으로 가는 길을 닦아 왔는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단계적으로 세밀하게 분석한다. 구스타프 말러에서 카라얀, 클라우디오 아바도에 이르는 지휘자들의 음악성과 인간성,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들어 독자를 설득한다. 박서정

 

 

그는 정말 괴짜였을까?

나는 결코 괴짜가 아니다

브뤼노 몽생종

임동현 역

모노폴리

 

브뤼노 몽생종(1943~)은 영상작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 클래식 음악계의 거장들에 관한 영상물 제작자로 명성이 높다. 굴드의 ‘최후의 퓨리탄’ ‘선의 대위법’을 번역·출판했다.

수많은 기행(奇行)으로 명성이 높았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 그가 남긴 온갖 일화는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된다. 청중 앞에서의 연주를 그만두고 리코딩에만 전념한 것, 낮은 의자를 갖고 다니며 피아노를 연주한 것, 한여름에도 장갑을 끼고 다닌 것. 이 모든 건 굴드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수많은 이슈를 몰고 다닌 괴짜 피아니스트는 이 책을 통해 항변한다. “나는 결코 괴짜가 아니다.”

저자 브뤼노 몽생종은 1973년부터 81년에 걸쳐, 굴드의 영상작품을 제작했다. 이 책 외에도 굴드를 다룬 두 권의 서적을 프랑스어로 번역해 출판하며 프랑스에서 굴드 소개의 일인자로 알려져 있다.

책은 크게 1·2부로 나뉜다. 1부는 굴드의 생전 인터뷰, 2부는 가상의 기자회견이 펼쳐진다. 가장 최근 인터뷰는 캐나다 일간지 ‘스타 오브 토론토’의 1959년 3월 28일자에서 데니스 브레이스웨이트가 정리한 것. 가장 최후의 발언은 굴드 사망 후 발견된, 미국 저널리스트 데이빗 듀발의 질문에 대한 답이다. 굴드는 도발적인 질문에도 냉정히 대답한다. 책의 절반 가까이는 가상 기자회견이다. 그의 실제 인터뷰, 몽생종이 그와 함께 만든 영화 등을 소재로 열 명의 저널리스트가 굴드와 영상으로 좌담을 한다.

괴짜로 불렸지만, 그의 생활은 사실 특별하지 않았다. 독특한 행동들은 모두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이 책은 미디어에 의해 과장된 굴드의 진면모를 속속들이 밝힌다. 장혜선

 

 

가곡 너머의 슈베르트

프란츠 슈베르트

한스 요아힘 힌리히센

홍은정 역

프란츠

 

취리히 대학교 음악학 교수인 한스 요아힘 힌리히센(1952~)은 국제 프란츠 슈베르트 연구소에서 수여하는 ‘프란츠 슈베르트 대상’(1994)을 받았다. 현재 ‘슈베르트 전망(Schubert: Perspektiven)’의 공동 편집인으로 활동 중이다.

소시민적 안락함을 추구한 예술가라는 슈베르트(1797~1828)에 대한 오랜 편견을 벗기고, 가곡 작곡가라는 명성에 가려진 그의 기악 유산을 조명한다. 소수 귀족 중심이 아닌, 시민 계급이 주도한 가정 중심의 음악 문화가 자리 잡은 시기, 음악 영재 출신의 슈베르트는 최초의 프리랜서 작곡가로 활동했다. 언뜻 그의 삶은 너무나 평범해 전기의 소재로 부적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저자는 슈베르트에 대해 “통찰력으로 들여다보면, 밋밋해 보이는 인생 뒤에 감춰진 개성 강한 예술가의 삶을 발견하게”된다고 말한다. 창작 환경부터 작품 구성까지 대단히 구조적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슈베르트를 중심으로 맺어진 여러 문화예술 사교모임의 구성원들은 그의 작품을 열광적으로 옹호했는데, 저자는 “안정적인 교사직을 과감히 포기할 때에도, 그는 틀림없이 이 네트워크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보호막이 되어주리라고 확신했을 것”이라며 슈베르트가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될 사회 활동 분야를 개척했다고 봤다. 그가 태어난 빈에서 시작하는 여정은 가곡과 교향곡, 실내악곡을 거쳐 마지막 기대를 품은 피아노 3중주 D929 악보에 가닿는다. 박서정

 

 

베토벤, 그 이름 하나면 충분하다

베토벤

최은규

아르테

 

최은규(1970~)는 음악이론과 서양음악학을 섭렵한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 칼럼니스트다. 부천 필에서 10년간 활동했고, 현재 KBS 1FM ‘FM 실황음악’ 진행, ‘연합뉴스’ 객원기자, 공연 해설 등을 선보이고 있다.

무너질 수도 있었던 베토벤을 끝내 일으켜 세운 것은 ‘성공’이 아니라 ‘예술’이었다. 그가 예술을 따랐기에 결과적으로 외적인 성공도 함께 얻을 수 있었다. (237쪽)

수 세기 동안 이어진 베토벤 신드롬이 올해 250주년을 맞아 그 기세를 몰아간다. 베토벤의 음악은 지금도 여전히 전 세계 무대에서 가장 많이 연주된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매일매일 젊어진다. 당신은 연주를 하면 할수록 그 끝에 닿는 것이 불가능함을 알게 될 것이다”는 지휘자 카라얀의 말은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그 음악의 현재성을 보여준다.

베토벤은 불우한 유년시절과 청각 장애를 딛고 불후의 명곡을 써낸 불굴의 의지로 표상된다. 이 같은 모습은 그의 천재성에 초점을 맞춰온 기존의 수많은 평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최은규는 신화 속 베토벤보다 ‘인간 베토벤’에 초점을 맞춘다. 250년 전의 인물, 위대한 영웅이자 천재와의 닿을 수 없는 거리가 조금은 좁혀진 느낌이다. 건강 이상으로 연주자에서 평론가로 전향한 저자의 경험이 베토벤의 삶과 맞닿으며, 더욱 현실감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수백 년이라는 시차가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미라

 

 

인류를 울린 베토벤의 외침

베토벤의 생애

로맹 롤랑

이휘영 역

문예출판사

 

로맹 롤랑(1866~1944)은 프랑스 문학가·사상가로 소르본 대학에서 음악사를 가르쳤다. 그의 글은 당대 사회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191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자서전 ‘내면의 여로’를 집필하던 중 파리 해방을 앞두고 별세했다.

프랑스 중부의 작은 도시에서 출생한 저자 로맹 롤랑. 파리로 이사 온 그는 셰익스피어와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고, 베토벤과 바그너의 음악에 빠졌다. 20대 초반에 롤랑은 톨스토이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에는 문학의 길을 걷고자 했던 한 청년의 진심이 담겨있다. 그런 청년에게 톨스토이는 답장을 썼다.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 참다운 작가’라는 회신을 받고, 롤랑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악성 베토벤을 존경했다. 잡지 ‘반월수첩’에 발표한 ‘베토벤의 생애’는 초기에 집필한 베토벤 전기다. 이후 1904~1912년까지 8년에 걸쳐 베토벤을 소재로 쓴 대하소설 ‘장 크리스토프’를 연재했다. 그리고 1915년, 이 작품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롤랑은 ‘베토벤의 생애’를 학문을 위해서 쓴 게 아니라고 밝혔다. 베토벤이라는 구원자를 묘사하면서, 그 모습을 변용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세계가 ‘베토벤의 생애’를 붙잡았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당시 프랑스 사람들은 정신 해방을 원했고, 그 해방의 말들을 베토벤의 음악에서 발견한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운명 이상의 것이 있다!” 베토벤의 위대한 외침은 인류의 마음을 울렸다. 베토벤은 청각을 잃은 고통 속에서 살았으나, 스스로 불행한 사람들에게 의지가 되고자 했다. 자신의 운명과 결탁해 패배로부터 하나의 승리를 만들었다. 이 책은 고독한 승리는 한 인간의 것에 그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들의 것이기도 하다. 장혜선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모차르트, 사회적 초상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박미애 역

포노

 

노르베르트 엘리아스(1897~1990)는 의학과 철학, 심리학을 망라한 현대 사회학계의 거장이다. ‘궁정 사회’ ‘문명화 과정’ 등의 저서를 남겼고, 레스터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했다.

모차르트를 이야기하면 ‘타고난 천재’니 ‘천부적인 작곡 능력’이니 하는 말들이 쉽게 나온다. 그러나 이는 생각이 좀 모자란 표현 방식이다. 한 인간이 모차르트의 음악처럼 그렇게 예술적인 것에 대한 천부적 소질을 유전자 속에 가지고 태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84쪽)

클래식 음악에서 ‘천재’를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그는 지금까지도 가장 축복받은 재능의 상징이다. 당연히 ‘타고난 것’이라 여겼던 그의 천재성을 다른 관점으로 바라본 이가 있다.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는 모차르트를 ‘만들어진 천재’라 말하며 타고난 천재에 대한 신화적 환상을 부순다. 저자는 “어떤 사람이 한 서랍에는 예술가적 특성을, 다른 서랍에는 인간적 면모를 넣어 두지는 않는다”고 덧붙인다. 모차르트를 둘러싼 겹겹의 사회적 환경을 폭넓게 서술하며, 그의 천재성과 인간성을 분리해 생각하는 편협한 사고방식을 깨뜨리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면 모차르트가 지닌 음악적 탁월함은 생물학적인 것이 아닌, 그가 살아내야 했던 환경과 시대에 적응하고 저항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음을 이해하게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시대의 영웅 앞에는 늘 가혹한 운명이 함께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운명이 그들의 이름을 역사에 아로새겼다. 모차르트의 운명은 ‘천재’보다는 ‘시대’에 방점이 찍혀야 하지 않을까. 이미라

 

 

역사적이고, 사회적이었던 베르디

베르디 오페라, 이탈리아를 노래하다

전수연

책세상

 

‘베르디언’을 자처하는 전수연은 프랑스 정치사학자다. 역사학자의 시선으로 베르디의 삶과 작품에 대해 애정 어린 비평을 한다.

바그너와 베르디는 민족주의 바이러스가 창궐하던 19세기가 낳은 음악가들이다. (…) 그 둘의 재능은 상대적으로 늦게 국민국가 만들기 작업에 몰두하고 있던 19세기 독일과 이탈리아의 정치적 문화적 발걸음에 밀착되어 있다. 겨우 20년 정도의 시간적 거리지만 모차르트의 죽음과 바그너, 베르디의 등장 사이에는 유럽 근대사를 전과 후로 가르는 거대한 강이 흐른다. 혁명이 있었고 나폴레옹이 등장한 것이다. ‘태초에 나폴레옹이 있었다’지 않는가!(24쪽)

사랑하는 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베르디언’을 자처하는 저자 전수연이 베르디(1813~1901)의 삶과 작품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비평했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리골레토’ ‘아이다’ 등은 오늘날 여전히 세계 주요 오페라 극장에서 공연될 만큼 그는 오페라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그의 작품은 동시대 관객들에게도 큰 인기를 끌었는데, 여기에는 이탈리아 독립·통일 운동(리소르지멘토, 1815~1870) 시기 ‘국민국가 만들기’에 몰두했던 정치·문화적 배경이 자리한다. 저자는 역사학자의 시선에서 베르디의 개인적·정치적·음악적 삶을 엮어낸다.

베르디에게 첫 성공을 안긴 오페라 ‘나부코’(1842)는 이스라엘을 침략했다가 멸망하는 바빌론 왕국의 이야기가 웅장한 음악에 담겨있다. ‘에르나니’(1844)와 ‘레냐노 전투’(1849)와 함께 애국심과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리소르지멘토 오페라의 대표 격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이처럼 혁명과 민족주의로 점철된 19세기 유럽에서 만들어진 베르디의 오페라 작품을 살펴보다 보면, 오페라란 장르가 당대 대중과 호흡하며 그 가치를 인정받아왔음을 알게 된다. 박서정

 

구스타프 말러 ©Wikipedia

 

#책 속으로

#옌스 말테 피셔

#구스타프 말러 1

#563~565쪽

#을유문화사

그는 관현악단 연주자들의 열의 없는 주먹구구식 형태가 그와 같은 생활 형편과도 관계가 있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미 깨닫고 있었지만, 막상 작업에 임해서 연주자들이 음악에 대한 적극적인 참여도 부족하고, 자신들이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해 그다지 감격하지도 않으며, 심지어 낯짝 두껍게도 방해까지 하는 꼴을 보게 되면 자제력을 완전히 일어버릴 때도 있었다. 대부분의 관현악단 연주자들은 (많은 성악가들도 그랬지만) 말러 앞에서 벌벌 떨었고 위협을 느꼈다. (…)

연주자가 잘못 연주하고 성악가가 잘못 노래하거나 자기가 끼어들어 와야 할 지점에서 정확히 들어오지 못하면, 말러는 지휘봉을 레이피어 검처럼 죄인에게 겨누며 그쪽으로 목을 쑥 내밀었고,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오른 눈초리를 한 채 당사자 쪽으로 고개를 고정시키고서 몇 초 동안 이 자세로 굳은 듯이 서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휘봉을 들지 않은 왼손으로는 계속 지휘를 해 나갔다. 가수들의 노래에 음악적으로 동의할 수 없으면, 지휘대 위에서 이내 부산한 손짓, 발짓이 시작되었다. 어깨를 잔뜩 위로 움츠렸다가, 그게 뭐냐고 묻는 얼굴 표정을 지었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가, 결국 이 모든 것이 아무런 소용이 없을 때는 체념한 듯 어깨를 축 늘어뜨렸고, 박자 젓는 모양도 지친 듯 축축 늘어졌다. 이것은 그 가수에게 ‘당신이 선택한 이 템포는 음악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끔찍한 재앙이지만, 그렇다고 공연을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내가 지금 양보해 주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 두기 위한 몸짓이었다. 그런 일을 저지른 ‘범죄자’는 그 막이 끝난 다음이나 공연이 완전히 끝난 다음에 자신의 탈의실로 노발대발한 말러의 전언을 적은 쪽지를 전달받을 각오를 하고 있어야 했다.

 

 

 

 

글렌 굴드

#책 속으로

#브뤼노 몽생종

#나는 결코 괴짜가 아니다

#17쪽

#모노폴리

 

나는 내 독특한, 괴짜 같은 행동이라고 불리는 것들로 인해 사람들이 내 연주의 진지한 면을 볼 수 없게 방해받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절대로 내 자신이 괴짜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나는 언제나 장갑을 한두 개쯤 지니고 있으며 때로는 연주를 위해 구두를 벗기도 한다. 또한 콘서트 도중에 청중들이 내가 코로 피아노를 치고 있다고 느낄 정도로, 연주에 심취한 상태에 이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것은 절대로 독특한 괴짜 행동이 아니다. 지극히 주관적인 집중 상태가, 결과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눈에 그런 식으로 보이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감정이 아주 흥분되어 있는 밤에는 내 자신이 신처럼 연주할 수 있다고 느낀다. 그리고 사실,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러나 다른 날 밤에는 내 자신이 그저 단순히 콘서트의 마지막까지 버텨낼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런 상태를 설명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어쨌든 피아노를 치고 있을 때는 나 자신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쏟아 붓게 된다. 하지만 나는 이런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다. 만약 지네에게 그 많은 관절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 묻는다면, 지네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몸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릴 것이다.

 

 

 

#책 속으로

로맹 롤랑 ©Wikipedia

 

#로맹 롤랑

#베토벤의 생애

#91~96쪽

#문예출판사

 

오오, 너희들 – 나를 원망 많고 허황하고 사람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거나 또 남에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아, 그게 얼마나 부당한 것인가! 내가 그렇게 보이는 숨은 이유를 너희들은 모른다! 내 마음과 정신은 어렸을 적부터 착한 것을 좋아하는 부드러운 감정으로 쏠렸다. 위대한 행위를 이루어 보고자 하는 마음까지 나는 늘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만이라도 해 보라, 6년 이래 내 처지가 얼마나 처참했는가를! 주책없는 의사들 때문에 병세는 더해졌고 행여나 나아질까 하던 희망은 헛되기만 해 결국 병이 오래가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

필경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죽음을 맞으리라 – 나의 예술적 천분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가져 보기 전에 죽음이 닥쳐온다면, 나의 운명이 너무나 가혹해서 죽음이 그렇게 일찍 오는 것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이고, 다만 좀더 늦게 와 주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 허나 그래도 나는 만족하리라. 죽음은 나를 끝없는 고뇌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이 아니겠는가? – 오고 싶은 때에 언제든지 오라, 나는 너(죽음)를 용감히 맞으리라 – 그러면 잘들 있거라. 내가 죽은 뒤에도 나를 잊어 버리지 말아 다오. 살아 있는 동안에 나는 너희들을 항상 생각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너희들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노력했으니까. 너희들이 나를 생각해주는 게 마땅할 만도 하지 않으냐? 부디 행복하기 바란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 하일리겐슈타트, 1802년 10월 6일.

 

 

PART 4

음악 수필과 역사

 

운율을 머금은 우리의 사유는 묵직한 역사 위로 켜켜이 쌓여간다. 과거에서 현대로, 일상이 역사로, 그 움직임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겨본다

 

 

사유의 미덕

술과 아내 그리고 예술

이강숙

창비

 

이강숙(1936~)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 미시간주립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버지니아 커먼웰스대 조교수, 서울대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으로 재직했다. 저서로 ‘음악의 이해’ ‘음악의 방법’ ‘한국음악학’ 등이 있다.

음악의 손짓은 참으로 아름답다. 사람을 울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삭막한 세상은 울음을 용납하지 않는다. 남자의 눈에 고이는 핑 도는 눈물의 순간성을 귀중히 여기던 시대도 있었다던데, 요즈음 세상은 울음을 용납하지 않는다.(95쪽)

원로 음악학자 이강숙의 문체는 간결하다. 단문 중심의 글쓰기에는 속도감이 느껴진다. 쉽게 읽어지는 그의 에세이는, 그의 사유에서 얻어진 미덕일 테다. 이 책은 이강숙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일 때 세상에 나왔다. 음악가이자 음악평론가, 교육자로서 느낀 것들, 무엇보다 술과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생각한 바를 진솔하게 담았다. 그의 글에는 허세가 없고,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하다.

1부에서는 초등학교 때의 추억, 문학 열병을 앓던 청년기, 술에 빠져 사는 이야기를 그리는데 소설가 못지않은 구수한 입담이 펼쳐진다. 2부는 음악의 본질에 대한 사색과 음악의 불멸에 대한 동경을 보여준다. 3부와 4부는 한국의 교육 현실과 음악 풍토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을 담은 글들로 이루어졌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요즈음 세상은 울음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 음악을 들으면 기뻐지기도 하고, 슬퍼지기도 한다. 그런데 울음을 터뜨리면 세상이 비웃는다고 저자는 한탄한다. 장혜선

 

 

음악 책을 사유한 책

장정일의 악서총람

장정일

책세상

 

장정일(1962~)은 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처음 시를 발표한 이래 여러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를 해왔다.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극작가로 활동을 시작, 1988년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김수영 문학상 받았다.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로 필화 사건을 겪은 바 있다.

재즈나 고전 음악 애호가들은 나치가 특정한 음악가와 음악을 탄압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모든 취미가 그렇듯이, 음악 취미 역시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상식을 풍부히 해주었던 것이다.(23쪽)

대체로 건조하고 때로는 격정적이다. 그야말로 은밀하고 아름다운 장정일의 독서일기. 이 책은 오로지 음악에 초점을 맞췄다. 직간접적으로 음악을 이야기하는 악서(樂書) 174권에 대한 리뷰 116편으로 한 권의 책을 구성했다. 음악 애호가로 잘 알려진 장정일은 팝·재즈·가요·국악·록·클래식 음악 등 다양한 장르에 대한 생각을 펼친다. 형식이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첨예한 글쓰기가 특징이다. 음악가와 문학가가 등장해 음악을 매개로 어우러지며, 나치의 음악 선전 등 음악과 권력의 맥락을 짚어내는 글들도 여럿 수록됐다.

한국 문단에 파장을 일으킨 문제적 작가이면서, 개성 넘치는 서평가인 저자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난다. 장정일은 음악을 즐겨 듣는 ‘음악적 인간’으로서의 쾌락을 보여주는 한편, 음악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는 ‘사회적 비평가’로서의 책무를 다한다. 개인적 음악 취향을 드러내는 사적인 독서 일기이자, 음악의 사회적 맥락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함께 보여주는 책이다. 장혜선

 

 

음악 안에 담긴 법률

클래식 법정

조병선

뮤진트리

 

조병선(1959~)은 성당 부속 유치원에서 교회음악을, 초등학교 시절 기악부를 하며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성균관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고, 공연장에서 일하는 지인의 배려로 공연장을 자유롭게 출입했다. 청주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음악은 음표의 단순한 소리를 넘어 영혼을 다루는 예술이기 때문에 표절로는 우리를 감동시킬 수 없다. 슈니트케의 폴리스타일리즘이 아닌 이상, 비교적 충분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악상이 표현되는 클래식 음악에서는 표절로는 제대로 된 논리적 구성을 이루어낼 수가 없다.(183쪽)

법과 음악. 연결고리가 없을 것 같은 두 주제가 어우러져 책이 됐다. KBS 클래식 FM ‘당신의 밤과 음악’에서 1년 동안 ‘클래식 법정’이라는 코너로 진행된 이야기를 한 권으로 묶었다. 형법학 박사인 조병선은 음악가들이 사생활에서 겪어야 했던 송사와 그 사건이 음악에 미친 영향, 음악 안에 담긴 사회상과 법률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이를 위해 저자는 음악가들이 살았던 시대의 법과 그들이 연루된 소송사건, 법정 기록을 면밀히 조사했다.

의외로 많은 음악가들이 법정 다툼을 벌였다. 어떤 음악가들은 오랜 세월 동안 긴 싸움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는 그들의 음악에도 짙은 그림자를 드리워 작품세계에 결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대다수 작곡가들이 살았던 유럽은 일찍이 로마법을 근간으로 한 사법체계가 확립됐지만, 기독교가 권력을 쥐고 있어 종교법에 옥죄이다시피 살아야 했다.

그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평생 예술가로서의 독립성을 확보하고자 고군분투했던 음악가들. 주옥같은 음악이 이런 고난의 산물이라는 것을 알고 나면 귀에 감기던 선율이 달리 들리게 된다. 장혜선

 

 

음악의 역사, 세계사의 일부

클래식을 뒤흔든 세계사

니시하라 미노루

정향재 역

북뱅

 

니시하라 미노루(1962~)는 음악사회사를 전공했으며, 토호가쿠엔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음악 작품이 탄생하게 된 사회적 배경을 다각적으로 연구한다. 독일 낭만파 음악, 브람스의 생애와 작품, 슈만의 피아노 작품 연구에 관심이 있다.

음악 작품은 늘 유행이라고 하는 요인에 좌우되었는데 유행이 문화를 주도하는 사회가 되면서 창작되는 음악의 종류와 질도 완전히 변질되고, 소비에 적합한 음악이 생산되는 구조가 되어 버렸다.(5쪽)

세계사의 결정적 순간마다 클래식 음악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음악의 역사는 세계사의 일부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음악과 작품의 양식은 세상의 미의 규범을 반영하는데, 그 미의 규범은 각 시대가 요구하는 상황과 관련 있다. 거기에 정치와 경제적 요소가 더해지면, 그 사회는 더욱 극적으로 예술 활동에 영향을 준다. 책에선 종교개혁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잘 알려진 음악 작품이 어떤 배경으로 탄생했는지를 소개한다. 읽다 보면 익히 들어왔던 음악들이 만들어지던 시대와 맞물린다는 걸 알게 된다.

베토벤의 경우 유복한 후원자들의 지원을 받았다. 후원자 리스트를 살펴보면 시기별로 합스부르크가와 깊이 관여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시기별로 다양한 후원을 받다가 오스트리아가 경제 공황으로 힘들어지자, 유럽 국가에서 정치에 깊이 관여한 인물을 후원자로 두었다. 그 외에도 많은 음악가가 살롱에 출입하며 상당액의 헌정료를 받았다. 피아노 제작자도, 악보출판업자도 사회의 부가 집중된 곳으로 옮겨 다녔다. 이 책이 대상으로 하는 시대는 1550~1920년까지. 굳이 이 시대를 조명한 것은 유럽 근대가 형성되고, 그 가치관이 해체될 때까지의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음악과 유럽의 관계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장혜선

 

 

피아니스트의 음악 편지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손열음

중앙북스

 

다수의 국제 콩쿠르에서 실력을 입증한 피아니스트 손열음(1986~)은 하노버를 중심으로 세계무대를 활보한다. 공연·음반·방송·칼럼, 그리고 평창대관령국제음악제 예술감독으로 대중과 만나고 있다.

“손열음이 대단한 건 뜨거운 걸 냉정하게 읽어내서야. 그래야 진짜 뜨거운 게 나오지.” 드라마 ‘밀회’ 속 오혜원(김희애 분)의 대사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는 바로 이 대사 속 주인공,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첫 음악 에세이다.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그는 책과 음악밖에 모르던 아이였다. 열한 살에 나간 영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최연소 2위에 입상하고 이듬해 금호영재콘서트로 국내 데뷔한 그는 이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실력을 입증하며 세계무대로 비상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로 훌쩍 성장한 손열음이 음악칼럼니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것은 2010년, ‘중앙SUNDAY’에 매월 한 편씩 글을 기고하면서부터다.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흘러 50여 편의 글이 쌓였고, 이를 다시 책으로 엮어냈다. 글에는 손열음의 시각으로 본 명곡과 거장, 우리 시대의 음악, 그리고 개인적인 고백과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매력적인 글이다. 이미라

 

손열음 ©anwoongchul

#책 속으로

#손열음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

#88~89쪽

#중앙북스

 

꿈꾸기를 대놓고 좋아한 이 남자는 독일의 작곡가 로베르트 알렉산더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1856)이다. 꿈 속에서 그는 진취적이고 외향적인 플로레스탄도 되었다가, 내성적이고 시적인 오이제비우스도 되었다가, 이 둘에 실존하던 동료 음악가들을 합세해 만든 ‘다윗동맹’의 일원이 되기도 한다. 이 동맹은 작은 양치기 다윗이 블레셋의 거대 군대를 무찌른 구약성서의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적은 수의 음악가들이지만 진지한 음악을 방패삼아 겉치레와 기교에 치중하는 음악 경향에 맞서 싸우자던, 반 현실 반 가상의 모임이었다.

실제로 슈만은 스스로 창간한 ‘음악신보’에 여러 ‘블레셋’ 음악가들을 통렬히 비판하는 글들을 기고했다. 하지만 그가 남을 까내리는 것만 좋아하던 비평가는 결코 아니었다. 프레데릭 쇼팽과 요하네스 브람스 등은 그의 호평 하나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었으니 말이다. (…)

음악가로 명성을 날린 후로도 평생 펜을 놓지 않은 그는 대외적인 기고 활동 외에도 수십 개나 되는 ‘지침서’를 개인적으로 남겼다. “좋은 목소리는 신이 내린 가장 큰 축복이다” “합창단에서 노래할 때엔 내성을 부르는 것이 음악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 “포도가 나쁘면 와인도 나빠질 수밖에 없다” “천재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다른 천재뿐이다” “오래된 것을 공경하되 늘 새로운 것을 환영하라” 등 그는 다양하고도 기발한 이 메시지들을 통해 세상의 아름다움을 나누고 또 간직하고자 했다.

 

 

INTERVIEW 1 음악가의 말

©anwoongchul

피아니스트 손열음

 

슈만을 닮다

 

 

음악과 글, 이 두 가지 영역은 ‘언어’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언어는 같은 재료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매우 다른 결과물을 낳는다.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의 저자,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두 언어에는 독특한 맛이 있다.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달까. 연주와 글쓰기, 방송 진행과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그에게서 낯설지 않은 음악가의 모습이 겹쳐진다.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하고, 음악과 문학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었던 사람, 로베르트 슈만. 손열음의 언어는 슈만과 닮았다.

현재 하노버에 머물고 있는 손열음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근 슈만 음반을 발매하고, 전국 투어 리사이틀을 준비하고 있는 그와 음악과 글, 이 두 가지 언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음악과 글 모두 같은 재료를 어떻게 맛깔스럽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손열음의 음악과 글에는 자꾸 듣고 읽게 만드는 독특한 ‘맛’이 있는데, 그 비결은 뭘까?

음악을 듣는 것과 연주하는 것 모두 상대적인 감각이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 것 중 하나를 찾아본다면 아마 ‘호기심’일 것 같다. 호기심이 정말 많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어느 하나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옮겨간다. 그런 연속적인 호기심이 낳는 느낌이 내 음악과 글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다. ‘다음은 뭘까?’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것. 호기심은 나를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이다. 음악을 할 때도 궁금하고 재밌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이 감정을 듣는 사람도 함께 느낀다면 내 음악 역시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2015년 봄,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가 나온 지도 벌써 5년이 됐다.

2010년, 처음 ‘중앙SUNDAY’에 글을 쓰기 시작할 때 2회를 제안받았었다. 그게 6회, 9회로 점점 늘어나며 결국 5년의 연재로 이어졌다. 그렇게 글이 쌓였고, 책까지 나오게 됐다. 처음에는 내가 글을 쓴다는 느낌이었는데, 나중에는 그 글 때문에 더 공부하게 되고,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부분에도 호기심이 생겼다.

책 속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초반에 썼던 글 중 슈만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2010년에 썼으니 이제 딱 10년 정도 되었는데, 아직도 어제 쓴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123쪽으로)

어릴 적부터 피아노와 책. 이 두 가지에 빠져 살았었다고.

그때는 책을 보거나 나가 놀거나, 둘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요즘처럼 컴퓨터나 인터넷이 발달했던 시기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보며 보냈다. 궁금한 것이 참 많았는데, 그 호기심을 책으로 해소했던 것 같다. 글자 자체를 좋아하기도 했고.

가장 책을 많이 접했던 시기는 언제였나?

글을 읽기 시작한 대여섯 살 때부터, 초등학교 3~4학년, 그리고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독서량이 꽤 많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서도 관심은 쭉 이어졌고. 콩쿠르에 나갈 때도 항상 책과 음반을 가지고 다녔다. 역사, 고전, 20세기 초반 작품은 지금도 좋아하는 장르다.

기억 속에서 가장 어려웠던 책은 무엇인가?

중학교 1학년 때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읽었는데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아 2년 후인 3학년 때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렇게 두 번이나 읽은 책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다시 읽으면서 헤르만 헤세와 토마스 만에 빠지게 되었던 것 같다. 토마스 만은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작가다.

토마스 만의 어떤 작품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하나 추천해 준다면?

단편들을 추천하고 싶다. 장편도 좋지만, 시대의 호흡이 짧아진 만큼 단편들을 찾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각각 나름의 의외성이 담겨있고, 그것이 또 묘하게 잘 어우러진다.

평창대관령음악제(MPYC) 예술감독으로 보여준 여러 활동 중 프로그램북의 변화가 특히 눈에 띈다. 처음부터 끝까지 손열음의 손이 닿지 않은 부분이 없는데, 프로그램북에 대한 기획과 변화, 이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나?

우선 내가 ‘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출간물이든 잘 만들지 못할 거라면 아예 만들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전의 프로그램북은 비주얼적으로 요즘 트렌드와 맞지 않았고, 모든 글을 한 사람이 썼기 때문에 하나의 시각에만 편중되어 있었다. 내가 만들고 싶었던 것은 ‘상호작용적’인 책이었다. 관객 인터뷰를 넣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만 음악제를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관객도 함께 만드는 것임을 전하고 싶었다.

 

슈만을 말하다


 

슈만 환상곡과 ‘크라이슬레리아나’를 좋아한다는 손열음은 5월 슈만 ‘아라베스크’ op.18, 환상곡 op.17, ‘크라이슬레리아나’ op.16, 그리고 ‘어린이 정경’ op.15까지 전국투어로 올 슈만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구상한 때는 2010년. 그동안 머리 속에 맴돌던 슈만의 음악이 올해 슈만 음반(Onyx)을 발매하며 자연스럽게 연주로 연결됐다. 게다가 올해는 슈만 탄생 210주년이기도 하다. 음반에는 ‘어린이 정경’을 제외한 나머지 세 작품이 들어있다.

이 네 작품이 쓰인 시기(1836~1839)는 슈만이 클라라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수많은 장애물을 넘어야 했던, 인생의 특별한 시기였다. 각 작품을 바라보는 손열음의 시각이 궁금하다.

일단 슈만이라는 작곡가를 굉장히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의 모든 작품을 똑같이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장르 중 피아노 작품을 훨씬 좋아하고, 또 그중에서도 op.10~20 사이의 곡을 좋아한다. 대부분 슈만 인생의 격동기에 탄생한 것들이다. 가장 많은 에너지를 지녔을 때지만, 동시에 감성적으로 가장 많이 억눌렸던 때이기도 하다. 또 작곡가로서는 막 데뷔한 시기라 신선한 작법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전무후무한 독특한 언어로 가득하다. 물론 낭만주의 시대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시기였다곤 하지만, 특히 슈만은 어떤 사조에서도 벗어나 자기만의 언어로 작품을 만들어 갔다. 그 절정이 이 작품들에 녹아 있다.

연주를 준비하며 찾아본 책은 없는가.

따로 책을 찾아보진 않았고, 헨리 출판사에서 나온 악보 첫 페이지의 서문(preface)을 읽어봤다. ‘크라이슬레리아나’ ‘판타지’ ‘유모레스크’ 모두 꽤 꼼꼼하게 잘 나와 있다,

평소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하나로 꼭 슈만을 언급했다. 그가 특히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이유는 무엇인가?

개인적인 언어로 곡을 썼다는 점. 그의 음악은 ‘나에게만 하는 이야기’ 같다. 남에게는 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를 나에게만 해주는 느낌이랄까. 베토벤의 음악이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라면 슈만은 그와 정반대이다. 수신인이 한 명인 일기나 편지 같은 느낌.

슈만은 음악적으로 자신만의 언어를 창조했고, 훌륭한 필체를 지닌 작가였다. 서로 닮았기 때문에 더 끌린 것이 아닐지.

직접 만나지 않았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느끼는 슈만은 서로 다른 에너지, 양쪽으로 극단적인 에너지가 혼재하는 사람이다. 예측할 수 없는 불안정함을 지녔고. 고르지 않은 표면처럼 감정선이 들쑥날쑥하다. 내게도 본질적으로 그런 면이 있는 것 같다. 그의 음악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감정들이 연주할 때 굉장히 편하고 쉽게 이해된다. 글쓰기에 있어서 슈만은 ‘음악신보’를 창간했고, 사명감 있는 글쓰기로 시대를 선도했다. 생전에 쓴 평론이나 다른 글을 봐도 통찰력이 느껴진다. 그의 글을 참 좋아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의 음악가가 존재한다. 손열음이 생각하는 음악가와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음악가는 어떤 모습일까?

시대가 요구하는 예술가는 잘 모르겠다.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부분이다. 예술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시류에 휩쓸려 간다거나 그때그때의 가치에 너무 부합하려 애쓰지 않는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려고 하는 예술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늘 변화를 추구하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또 어떤 변화를 꿈꾸나.

무언가를 추구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변화하는 연주자이고 싶긴 하다. 가만히 있으면 재미없으니까. 음악의 본질도 흘러가는 것에 있지 않나. 어딘가에 박제되어있는 건 음악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게도 피아노는 오래 할 수 있는 악기니까, 그걸 생각하면 내가 변하는 것처럼 내 음악도 변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그렇다. 자연스럽게.

글 이미라 기자 사진 예스엠아트

 

 

손열음 피아노 독주회

슈만 ‘아라베스크’ ‘어린이 정경’ ‘크라이슬레리아나’, 환상곡 op.17

 

5월 12일 오후 7시 30분 천안예술의전당 대공연장

5월 13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5월 30일 오후 7시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6월 3일 오후 8시 울산 현대예술관 대공연장

 

 

INTERVIEW 2 저술가의 말

음악평론가 진회숙

 

하고 싶은 말

음악과 글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진회숙은 언젠가 “소리를 글로 서술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했다. 음악 그 자체를 이야기하기에는 추상적이니까. 그는 음악의 느낌을 전하기 위한 여러 묘안을 냈다. 영화와 음악을 함께 음미하도록 하거나, 명화에 숨어 있는 음악적 코드를 찾아냈다. 음악에 대한 추억 서린 일화도 함께 풀어내며 그동안 20여권의 ‘예술 에세이’를 써왔다. 그런 진회숙은 스스로를 ‘음악평론가’보다는 ‘글쟁이’라 칭한다.

이화여대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서울대에서는 국악이론을 공부한 그는 1988년 ‘객석’이 공모한 예술평론상 국악 부문을 수상하며 음악평론가로 등단했다. 그는 독자가 자신의 책을 읽고 나서 한 번이라도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했다고 한다.

 

밥벌이가 되어준 글쓰기


 

닮고 싶었던 롤 모델이 있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쓴 아놀드 하우저(1892~1978)를 닮고 싶다. 물론 그 발끝에도 못 따라가지만.

클래식 음악(양악)과 국악을 함께 전공한 이력은, 실질적으로 음악 평론가로서의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됐나.

서양음악에 최적화된 감수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국악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음악에 대한 감수성은 언어와 같이 오랜 세월에 걸쳐 체화되는 것인데 국악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어서 한계를 느꼈다. 그 한계는 앞으로도 영원히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악을 공부한 경험이 음악평론가로서의 지평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된 건 사실이다. 국악과 서양음악은 서로를 비교하거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음악 언어라는 걸 알게 된 것이 성과라면 성과이다.

그간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음악프로그램 구성작가, 월간지 편집위원, 음악 강연자, 음악서적 작가 등. 이중 음악평론가로서 많은 질문을 던지게 했던 작업이 궁금하다. 이 경험들이 책을 집필할 때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도.

가장 애정을 가진 작업은 책을 쓰는 것이다. 나는 스스로를 음악평론가라기보다는 글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구성작가나 편집자, 강연자로서 활동한 경험이 책을 쓰는 데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나에게 가장 많은,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하는 사색을 통해서, 책의 내용을 논리적으로 혹은 감성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 중에서, 글쓰기와 관련된 많은 영향을 받는다.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책을 쓸 수 있는 원천적인 힘은 무엇인가.

밥벌이이기 때문이다. 원천적인 힘이라는 말은 너무 거창하다. 그냥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다. 이보다 더 그럴듯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한 번 책을 구상하면 발간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편인지.

책의 내용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몇 개월 걸리는 것도 있고 몇 년 걸리는 것도 있다. ‘무대 위의 문학 오페라’(2016) 같은 경우는 구상부터 출판까지 5년 정도 걸렸다. 물론 그 5년 동안 계속 이 책만 붙들고 있던 건 아니다. 글을 몰아서 쓰는 편인데, 몇 주간 그렇게 하다가 몇 개월 쉬기도 하고, 그러다 다시 시작하기 때문에 책 한 권 쓰는데 대략 어느 정도 기간이 걸리는지 계산하기 힘들다.

그동안 ‘교양서’나 ‘입문서’에 많은 공을 들였다.

내 책들을 교양서와 입문서라고 정의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물론 전문적인 학문서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나는 학자가 아니다. 따라서 음악전공자를 위한 전문서적을 쓸 자격도, 능력도 없다. 그런 것은 학문은 연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나는 애초부터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책을 쓰는 글쟁이로 자리매김을 한 사람이다.

음악가에 대한 전기나 묵직한 서적을 써서 ‘스페셜리스트’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진회숙은 대부분 여러 지식을 한 손에 넣을 수 있는 책을 작업해 온 것 같다.

글쟁이로서 어떤 음악이나 음악 현상을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글, 말하자면 이미 존재하는 정보를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글은 쓰고 싶지 않다. 그런 책은 세상에 차고도 넘친다. 굳이 나까지 보태지 않아도 된다. 이미 있는 정보를 취합해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간 책을 쓰고 싶다. 음악가의 전기는 그럴 여지가 없어서 재미가 없다. 평전이라면 모를까. ‘음악사를 움직인 100인’(2013)이라는 책을 쓰기는 했지만, 나의 본령은 아니다.

 

책을 쓴다는, 피를 말리는 작업


 

학생 시절, 음대생 운동권이었다고. 성악 특기를 살려 ‘공장의 불빛’ 테이프 녹음과 마당극 ‘삼천리 벽폐수야’에도 참여했다고 들었다. 사회에 참여하는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을 것 같은데, ‘음악’과 ‘사회’를 키워드로 책을 구상한 적은 없는지.

쓰고 싶지만 능력이 안 돼서 못 쓰고 있다. 이런 주제로 글을 쓰려면 아놀드 하우저 정도의 지식과 통찰력, 내공이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나에겐 그런 능력이 없다.

클래식 음악은 ‘듣는’, 책은 ‘읽는’ 매체이다. 이 간극을 좁히기 위해 그간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보면서 즐기는 클래식 감상실’(2007)에서는 DVD 60여 편을 골라 소개했다. 최근에 발간한 ‘클래식 노트’(2015)는 활자로 정리된 음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듣고 느끼는 음악을 전하기 위해 ‘유튜브’와 ‘QR코드’를 활용했다.

처음 책을 쓸 때 미술책과 달리 음악을 보여줄 수 없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져 이제는 책을 읽으면서 바로 음악을 듣는 게 가능해졌다. 변화된 세상에 감사한다.

영화와 음악을 접목한 책들도 많이 발간했다. 영화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둔 이유는.

음악과 영화를 접목하면 스토리텔링이 훨씬 수월하다. 어떤 영화에 어떤 음악이 배경으로 쓰였다는 것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영화의 배경이나 줄거리, 장면이 가진 의미를 음악으로 풀어내는 것은 매우 크리에이티브 한 작업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작업을 즐긴다.

‘우리 기쁜 젊은 날’(2018)은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글이다. 음악과 예술을 주제로 하지 않은 첫 저술인데. ‘음악’이 아닌 ‘나’를 꺼내보는 작업이 어렵지는 않았나.

어떤 책이든 책을 쓰는 것은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다른 책에 비해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다른 책을 쓰는 것만큼, 그 정도의 무게로 어려웠다. 어렵다기보다는 느낌이 달랐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자신을 드러내 보이는 일이다 보니 음악책을 쓸 때와는 달리 매 순간 실존적인 고민이 필요했다.

 

자아실현의 지난한 과정


 

‘우리 기쁜 젊은 날’을 발간한 후 앞으로는 음악평론가가 아닌 작가로 살고 싶다고 했다. 여행기를 쓰고 싶다고 들었는데, ‘여행작가 진회숙’의 글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

열심히 쓰고 있는 중이다. 올해 말이면 아주 재밌는 영국 여행기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것들, 혹은 이 시대에 남기고 싶은 것들이 있을 텐데.

나에게 글쓰기는 자아실현의 지난한 과정이다. 대중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어서 쓰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쓰는 것이다. 이 시대에 뭔가 남기고 싶다는 거창한 꿈은 없다.

음악평론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먼저 그 길을 걸은 선배로서 애정 어린 조언을 한다면.

음악평론가는 음악에 대한 감수성이 있어야 하고, 그것을 적절한 언어로 풀어내는 글 솜씨가 있어야 한다. 간단한 것 같지만 어려운 일이다. 글 솜씨는 하루아침에 생성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수 십 년에 걸쳐서 수많은 습작과 독서를 통해 서서히 습득된다. 이런 축적된 경험이 부족하면 사실 글쓰기를 업으로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폭넓은 경험과 독서를 통해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를 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

글 장혜선 기자

 

 

진회숙의 저서

 

클래식 오딧세이 | 2002 | 청아출판사•나비야 청산가자 | 2003 |

청아출판사•영화로 만나는 클래식 | 2005 | 청아출판사•보면서 즐기는 클래식 감상실 | 2007 | 웅진지식하우스•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 2008 | 세종서적•나를 위로하는 클래식 이야기 | 2009 | 21세기북스•예술에 살고 예술에 죽다 | 2009 | 청아출판사•초등학생을 위한 국악의 모든 것 | 2011 | 주니어김영사•진회숙의 스토리 클래식 |

2011 | 아트북스•영화는 클래식을 타고 | 2011 | 21세기북스•음악사를 움직인 100인 | 2013 | 청아출판사•영화와 클래식 | 2013 | 청아출판사•클래식 오디세이 | 2014 | 청아출판사•클래식 노트 | 2015 | 샘터사•365 클래식 | 2016 | 청아출판사•무대 위의 문학 오페라 | 2016 | 니케북스•우리 기쁜 젊은 날 | 2018 | 삼인•클래식, 스크린에 흐르다 |2018 | 청아출판사

 

INTERVIEW 3 옮긴이의 말

번역가 홍은정

 

번역가는 공부하는 사람이다

 

 

고등학생 때까지 피아노를 공부했지만, 독어독문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홍은정에게 음악은 마음속 꺼지지 않는 불씨였고, 다시 베를린 훔볼트대학에서 음악학을 공부하게 했다. 이후 그는 예술의전당 교육사업팀과 한국예술영재교육연구원에서 근무하며 클래식 음악과의 접점을 넓히다 번역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대표 역서는 ‘음악가의 탄생’(2008) ‘피아노를 듣는 시간’(2013) ‘젊은 예술가에게’(2017) 등.

번역 작업을 시작한 계기

여러 문화예술 기관을 거치며 국내 클래식 음악의 저변이 확대됐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좀 더 다양한 음악책들이 나왔으면 했다. 처음 음악책을 번역하게 된 건 한 선배 덕분이었다. 그에게 의뢰가 들어온 책을 함께 번역할 기회를 얻은 것이다. 어린이를 위한 음악사와 음악사전이었는데, 내용이 어렵진 않았지만 독자의 눈높이에 맞게,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특별히 어투에 신경을 써야 했다. 처음 하는 번역이었던 터라, 음악용어나 외래어 등의 한글 표기가 쉽지 않았지만, 공동 작업을 하며 공부가 됐다. 다 끝내고 보니 번역 일이 재밌더라. 한국에 소개되면 좋겠다 싶은 책이 있어서, 기획서를 직접 작성해 출판사를 찾아갔다. 그렇게 내 첫 번역서 ‘음악가의 탄생’(2008, 심산출판사)이 세상에 나왔다.

번역의 과정

번역할 책은 번역가가 출판사에 직접 제안할 수도 있고, 출판사가 번역가에게 의뢰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 번역가는 어떤 책들이 출판 시장에 나오는지, 그 책의 현지 반응이 어떤지 꾸준히 지켜봐야 하고, 책을 구해서 미리 내용도 살펴봐야 한다. 해당 책의 저작권에 대해서도 알아보는 게 좋다. 이미 저작권 계약이 끝난 책이라면, 제안해도 소용이 없으니까. 후자의 경우, 에이전시가 외국 출판사로부터 책에 관한 정보를 받고 여러 통로로 국내 출판사들에 소식을 전하는 걸로 안다. 그럼 국내 출판사 측에서 원서를 결정하고 번역가를 찾는 식이다.

음악 전문 출판사인 포노는 꾸준히 ‘음악의 말’과 ‘거장이 만난 거장’이라는 시리즈를 내고 있는데, 그 범주에 맞는 책들을 직접 발굴한다. 나도 최근에 바그너가 쓴 베토벤 글들을 모아 책으로 엮는 작업에 함께했다(출간 예정). 먼저 포노에서 자료를 전달해 주었고, 거기에 내가 찾아낸 다른 자료를 추가했다. 그 덕에 책이 훨씬 풍성해졌다. 출판사와 번역가 간의 지속적인 소통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야 보다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음악가와 음악학자가 쓴 글의 차이

알프레트 브렌델 ‘피아노를 듣는 시간’(2013),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리트, 독일예술가곡’(2015), 기돈 크레머 ‘젊은 예술가에게’(2017) 등 연주자가 쓴 책을 다수 번역했다. 본업이 글쓰기가 아니라서 표현이나 문체가 세련되지 못한 구석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들의 글에는 구체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생생함과 진실함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학자나 평론가의 책과 뚜렷한 차이가 느껴지는 건 아니다. 책마다 저자 개인의 성향, 문체의 차이가 두드러지니 그를 잘 살려서 번역하는 게 중요하다.

번역가에게 필요한 자질

무엇보다 끈기가 있어야 한다. 혼자 몇 시간이고 활자와 씨름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음악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하고 악보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악보를 보면서 음악을 들어야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다른 분야도 꾸준히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야 음악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철학이나 심리학 용어들, 음향이나 녹음과 관련한 물리 이론, 소리의 감각 기관을 설명하는 의학적 메커니즘, 음악사와 직결된 사회·정치적 사건 등을 적절하게 번역할 수 있다. 번역가는 항상 공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글 박찬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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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이석호

 

중요한 건 우리말

 

 

‘사계’가 듣고 싶었는데, ‘모차르트의 비발디 주세요!’하고 외치고 말았다. 귀여운 실수를 하면서도 용돈을 음반에 쏟던 소년은 ‘그라모폰 코리아’ 편집기자와 EMI의 마케터를 거쳐 음악전문 번역가로 성장했다. 포노 출판사에서 발간되는 ‘그 삶과 음악’ 시리즈의 ‘바그너’(2012), ‘스트라빈스키’(2014), ‘드보르자크’(2015), ‘푸치니’(2017) 등과 ‘왜 말러인가’(2010)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2016) 등을 국내에 번역해 소개했다.

번역 작업을 시작한 무렵의 이야기

‘그라모폰 코리아’는 영국 잡지의 원고를 받아 지역화하는 방식으로 제작되는 잡지였다. 당연히 번역이 업무의 필수요소였다. 번역 능력을 기르는 훈련을 한 셈이다. 외부 번역자들의 원고를 받아 문장을 다듬는 것도 요긴한 공부였다.

2009년쯤 출판사 ‘모요사’에서 노먼 레브레히트의 ‘왜 말러인가’의 번역을 의뢰해왔다. 잡지에서의 경험이 있으니, 고민 않고 덤볐다. 그런데 서너 페이지에 결판이 나는 잡지 기사와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단행본 글은 차이가 있었다. 잡지 글은 약속된 형식이 있어서 예측이 쉬운 반면, 단행본은 저자가 널찍하게 깔아놓은 판 위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저자의 논지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번역 작업의 핵심

훌륭한 번역과 그렇지 못한 번역을 가르는 것은 우리말 능력이다. 하나의 영어 단어나 표현에 대응되는 우리말 표현이 많게는 수십 가지다. 그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가 관건. 목침보다 두꺼운 국어대사전을 옆에 두고 들춰보며, 가능한 여러 표현을 최대한 빼놓지 않고 끼워보려 애쓰는 편이다. 그 과정에서 참신한 표현이 나온다.

왕성한 지적 호기심도 번역 작업에 값진 자산이 된다. 다종다기한 정보를 모두 머릿속에 채운 뒤에 번역에 들어가면 참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때그때 필요해지면 찾아봐야 한다. 인터넷 검색도 부지기수로 해야 하고, 책들도 살펴야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백과사전을 보느냐고 하겠지만, 몇 년 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과 그로브 음악사전을 한 질씩 구입해 잘 쓰고 있다. 인터넷에서 나오지 않는 정보를 백과사전에서 찾은 경험을 몇 차례 했다.

‘경계의 음악’ ©facebook.com/bomnalbook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인내심. 때로 골머리를 싸매도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는 구절이 있다. 그럴 땐 일단 내버려 둔다. 이어지는 내용을 번역하다 생각이 정리되기도 하고, 번역과는 전혀 무관한 기회에 묘안이 떠오르는 경우도 생긴다. 당면한 문제를 당장 해결해야 한다는 조급증이 있으면 어려운 일이다.

관심을 두고 있는 음악가 혹은 음악학자

독설과 촌철살인으로 유명했던 음악평론가 헤럴드 숀버그(1915~2003)의 책에 흥미가 많다. 그의 글은 시원시원하다. 에두르지 않는 직설적인 표현과 예리한 비판으로 음악 평론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인물이다. 음악학자 리처드 타루스킨이 쓴 다섯 권짜리 음악 통사(Oxford History of Western Music)도 언젠가 반드시 도전해 보고 싶은 ‘나의 에베레스트’다. 다섯 권 도합 4,000쪽이 넘는 대작이다.

번역한 책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세 권만 꼽자면, 코플런드의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2016)와 가디언 편집장 앨런 러스브리저의 ‘다시, 피아노’(2016), 영문학자 겸 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경계의 음악’(2019). 코플런드의 책을 읽으면서는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모호하게만 감지하고 있던 내용이나 개념이 시원하게 정리되는 기분. ‘다시, 피아노’는 무엇보다 읽는 재미가 그만인 책이다. 문장에 위트가 있다. 또 나도 늦깎이 피아노 레슨을 받은 경험이 있어 저자의 고충과 희열에 십분 공감했다. 마지막으로 ‘경계의 음악’에서는 비판적인 음악 듣기, 깊이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는 자세 등을 배웠다. 사이드의 글은 문장이 쉽지 않고 내용도 심오해서 지금까지 옮긴 책 가운데 가장 큰 도전이었지만 예술을 대하는 저자의 자세에서 값진 삶의 교훈을 배웠다. 글 박찬미 기자

 

 

INTERVIEW 4 출판인의 말

포노 최재균

프란츠 김동연

 

책이 나오기까지

 

포노 최재균

프란츠 김동연

책 만드는 사람은 책만 만들지 않는다.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을 탄생시키는 이들도 책 만드는 사람이다. 그 일을 부지런히 이어가는 두 사람. 객석 편집부 서가에 포노의 책들은 ‘빼곡히’ 꽂혀 있고, 프란츠의 책은 ‘소중히’ 꽂혀 있다. 이 책이 꽂히기까지, 책 만드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음악전문 출판사. 먼저 그 시작에 대해 말해보자.

최재균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대학원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사진 월간지 ‘포토넷’의 기자로 입사해 편집장을 거쳐 현재 포토넷 대표를 맡고 있다. 월간 ‘포토넷’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운영이 어려워져 2010년 7월호(통권 134호)를 끝으로 휴간에 들어갔다. 이후 자연스레 단행본 출간으로 넘어왔다. 사진집 ‘윤미네 집-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2010)는 현재 24쇄를 찍은 스테디셀러이다. 어려웠던 회사 살림을 피게 하는 데 도움을 준 책이다. 포노는 포토넷의 자매 출판사로 음악서적을 전문으로 한다. 나는 음악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입문은 오래 전에 마친 애호가이다. 국내 음악책들은 입문용과 전문서로 양분돼 입문서 다음에 볼 책이 없었다. 그래서 ‘내가 읽고 싶은 음악책’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입문 다음의 단계의 독자를 고려한 책을 만들고 있다. 그래서 책을 만들 적에 내가 그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면 책 만들기를 고민해본다.

김동연 한국과 프랑스에서 바이올린을 공부했다. 레슨하면서 바이올린 교본의 필요성을 느껴 ‘한 권으로 끝내는 취미 바이올린’(세광음악출판사)을 시작으로 몇 권의 악보집을 출간했다. 나는 세상에 없는 무엇인가를 기획하고 계획하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교본 기획안을 여러 출판사에 보내곤 했다. 새로운 책을 선뜻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아예 출판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출판 업무를 배웠고 2015년 프란츠를 설립했다. 2017년 첫 책으로 바이올린 교본 ‘바이올린을 위한 밤의 노래’를 냈다.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책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첫 단행본으로 파스칼 키냐르의 ‘음악혐오’를 냈다.

음악책 출판계에도 유행이 있는가?

최재균 2015년 조성진의 쇼팽 콩쿠르 우승을 분기점으로 본다. 그 전에 시공사·을유문화사·현암사나 민음사에서 음악책들이 드물게 나왔는데, 2015년부터 여러 곳에서 음악서적들을 출간하는 것 같다. 멀리서 보면 산등성이의 봉홧불이 하나둘 켜지는 것처럼 듬성듬성 중요한 책들이 나오고 있는 셈이다. 이를 토대로 음악책 출판 환경이 점점 넓어지는 것 같다. 좋은 현상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자리가 커져야 내가 설 자리도 생기는 게 아닌가 싶다.

출간 전 기획 단계에서 시장 조사도 하나.

최재균 인터넷에 많은 정보가 있어서 유심히 살펴보면 어떤 책이 잘 될지, 독자의 수요 성향을 알 수 있다. 다만 책이 팔려야하는데, 음악서적은 애초부터 높은 판매를 기대할 수 없는 장르다. 많이 팔리지 않는 운명을 갖고 태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오히려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만드는 데에 더욱 집중하게 한다. 음악책을 만들 때마다 바흐가 떠오르곤 한다. 그는 매번 새 곡을 썼다. 새 곡만큼이나 기존 곡들은 사라지고, 또 사라지곤 했다. 그래도 바흐는 다시 쓰고, 또 쓰며 일상을 꾸려갔다. 우리도 책을 만들어 밥을 벌어야 한다.

프란츠에서 나온 연필과 지우개에는 ‘Franz’ 로고가 새겨 있다. 출판 업무 외에 다른 무엇을 하는지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

김동연 프란츠를 통해 음악을 다양한 감각으로 경험하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시도를 한다. 음악을 생활에서 즐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택한 게 굿즈였다. 작곡가 얼굴이 새겨진 접착테이프, 고풍스러운 연필과 지우개, 자 등을 만들었다. 현재 첼리스트가 앉는 의자, 악보를 놓는 보면대 같은 연주자를 위한 가구 사업도 구상 중이다.(옆의 최대표가 ‘에릭 사티가 말한 가구음악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2018년 저자가 되어 ‘클래식 음악 연표’를 발행한 적이 있다. 그것으로 저술과 출판업은 전혀 다르다는 걸 느꼈다. 출판에 쏟아야 할 에너지를 그 책에 너무 쏟은 해였다.

포토넷과 포노, 사진과 음악. 뭔가 그럴 듯한 한쌍이면서도 생소하기도 하다.

최재균 세기 말 여러 분야 예술가들이 장르를 가로지르며 예술을 했던 것처럼 사진계의 선배 중에는 전문가 수준으로 음악을 즐기는 분들이 많았다. ‘포토넷’ 편집장 시절에 인연을 맺은 이들이다. 그들의 격려와 도움으로 음악에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처음에는 모차르트, 쇼팽 등의 전기를 발간하며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의 틀을 갖춰 나갔다. 처음엔 사진 출판사에서 낸 음악책을 어색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말한 대로 한 분야에 통찰력을 지닌 이들은 다른 분야에서도 그 통찰력의 빛을 발한다. ‘거장이 만난 거장 시리즈’는 이러한 예술가들의 통찰력으로 음악을 바라본 책 시리즈이다. 샤를 보들레르가 지은 ‘리하르트 바그너’, 사회학자 노르베르트 엘리아스의 ‘모차르트, 사회적 초상’, 소설가 앙드레 지드의 ‘쇼팽 노트’ 등이 그렇다.

자신의 출판사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는 책이 있다면?

김동연 ‘음악혐오’는 첫 단행본이라는 데에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장르를 규정할 수 없을 정도로 신화, 역사, 철학 등이 섞여 있다. 소리 내어 읽어도 좋을 문장들도 가득하다. 곁에 두고 자주 펼쳐보고 싶은 책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를 만족시켜준 책이다. ‘바이올린을 위한 밤의 노래’는 좀 다른 차원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준다. 이건 악보집이다. 단지 연주 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감상을 위한 악보이기도 하다. 음표를 글자 읽듯이 읽어나갈 때에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하나의 회화 작품처럼 보일 때도 있고. 그래서 연주자와 감상자 모두를 염두에 두고 선곡 및 음반 제작을 했다.

최재균 사진의 포토넷, 음악의 포노 외 ‘걷는책’은 포토넷의 자매 브랜드이다. 연출가 피터 브룩의 ‘빈 공간’(2019)부터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의 ‘회복하는 가족’(2019)까지 다양한 책이 나왔다. 걷는책은 날고 뛰려는 사람이 가득한 시대라 우리는 한 걸음씩 걷겠다는 심정으로 지은 이름이다. 휴대하기 좋은 판형을 택하고 종이도 가벼운 재질을 사용했다. 책을 가까이 하길 바라는 마음을 판형에 반영한 것이다.

두 출판사의 책 중에는 번역서가 많다. 번역과 번역가의 중요성도 체감할 텐데.

최재균 바버라 런던·짐 스톤의 공저 ‘깊고 충실한 사진강의’를 번역(2016)한 적이 있다. 외국어에 능한 번역가라 해도 그 분야에 전문지식이 없으면 번역과정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번역가가 음악을 애호하고 지식이 깊어야 한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그런 점에서 번역가란 귀한 존재들이다. 전쟁에 비유한다면 작곡가와 연주가는 전투부대이고, 출판인·번역가·평론가 등은 그들을 돕는 지원부대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두 존재가 모두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국내의 상황은 전투 부대 양성에만 힘을 들이는 것 같다.

저자는 한 명이지만 그 책을 둘러싼 번역가와 출판사는 많다. 출간하고 싶은 책이 다른 출판사에서 먼저 번역되어 나오면 기분이 어떠한가?

최재균 서운할테지만, 읽고 싶었던 책이라면 한편으론 기쁘고 반갑다.

번역할 원서는 어떻게 고르나?

김동연 ‘음악혐오’는 파리 서점에서 직접 만난 책이고, ‘프란츠 슈베르트’(한스-요아힘 힌리히센, 2019)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책이다. 클래식음악은 과거의 음악이다 보니, 음악책도 현재를 사는 사람이 들려주는 ‘옛 이야기’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현대인이 만드는 현재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그리웠을 때 만난 책이 필립 글래스 자서전 ‘음악 없는 말’(2017)이다.

음악의 소리의 예술로 태어나 귀로 들어와 마음으로 향한다. 이와 달리 음악책 읽기는 조용한 묵독(黙讀)을 통해 지식들이 머리로 향하게 한다. 음악책 읽기의 매력이다. 두 사람이 생각하는 음악책 읽기의 매력이란 무엇인가.

김동연 음악은 무형 예술이다. 책은 이러한 음악에 대해 누군가가 부단히 사유한 기록이다. 그것을 통해 보이지 않는 음악을 보다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최재균 글은 읽는 이를 상상하게 만든다. 소설에 나오는 음악이 있다고 치자. 들어본 적이 없어도 글을 통해 음악을 그려볼 수 있다. 책 읽기란 어느 분야를 알아가고 상상하는 적극적인 문화 행위이다. 음악가가 연습과 연주를 통해 한 작곡가를 알고 깊이 빠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글 송현민(편집장) 사진 포토넷·프란츠

 

 

최재균 추천 포토넷·포노 책

 

윤미네 집-윤미 태어나서 시집가던 날까지 | 전몽각 | 포토넷 | 2010

다시, 피아노 | 앨런 러스브리저 | 이석호 역 | 포노 | 2016

거장이 만난 거장2-내 친구 쇼팽 | 리스트 | 이세진 역 | 포노 | 2016

음악의 글3-음악에서 무엇을 들어 낼 것인가 | 에런 코플런드 | 이석호 역 | 포노 | 2016

재즈 선언 | 윈턴 마설리스·제프리 C.워드 | 황덕호 역 | 포노 | 2018

 

김동연 추천 프란츠 책

 

바이올린을 위한 밤의 노래 | 김동연 | 2017

음악 혐오 | 파스칼 키냐르 | 김유진 역 | 2017

음악 없는 말 | 필립 글래스 | 이석호 역 | 2017

클래식 음악 연표 | 김동연 |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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